Kelis

뉴욕 할렘 출신의 흑인 여가수 켈리스(Kelis)의 3집 음반이다. 켈리스는 힙합과 R&B가 동거한 1999년 처녀작 <Kaleidoscope>와 2001년 2집 <Wanderland>를 발표하며 여성 소울 싱어로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했다. 그녀의 음악은 네네 체리(Neneh Cherry), 블루 캔트렐(Blu Cantrell) 등과도 유사하지만 훨씬 검은빛이며 뇌쇄적이다. 관능적인 리듬 앤 블루스의 느낌과 힙합, 소울을 동시에 머금고 있다. 만약 외모만 더욱 훌륭했다면(지금도 그녀는 아름답다) 일찌감치 비욘세만큼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1집에서는 마치 대선배 도나 서머(Donna Summer)를 닮은 듯한 인상이 강했다. 한마디로 자기 색깔이 부족한 미완성 아티스트였다. 하지만 2집에 이은 이번 신보는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그녀만의 컬러를 확고히 다진 완성품이다. 켈리스만의 독자적인 브랜드인 섹슈얼한 관능미로 무장된 진보적인 힙합/R&B가 숙성됐음을 자랑한다. 보컬에도 깊이가 더해졌고, 외모 또한 마찬가지다. 앨범 재킷과 속지만 살펴봐도 여성적인 매력은 꽤나 농익다. 내적 외적으로 완벽한 업그레이드를 실현시킨 것이다. 음반을 관통하는 사운드는 바로 데뷔 때부터 작업 파트너였던 넵튠스(the Neptunes)가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미 첫 싱글로 커트되어 빌보드 팝 차트 3위를 기록하고 있는 'Milkshake'를 포함해 상쾌한 하우스 파티 트랙 'Protect my heart' 등 현재 가장 잘 나가는 프로듀싱 듀오는 다섯 곡을 윤기 나고 탄력적인 리듬 플레이로 가져간다. 전작들에 비하면 넵튠스의 사운드 메커니즘 비중이 다소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이들은 켈리스 음악의 코어이다. 당연한 사실 한 가지는 켈리스의 3집이 이들의 레이블인 <스타 트랙>을 통해 첫 선을 보인다는 점이다. 21세기 비트 메이커로서 평단의 찬사를 받고 있는 이들 외에도 실력파 R&B 송 라이터 겸 프로듀서인 달라스 오스틴(Dallas Austin)과 토니 토니 톤(Tony! Toni! Tone!)의 라파엘 사디크(Raphael Saadiq), 요즘 몸값이 최고조로 상승한 아웃캐스트의 안드레(Andre 3000)가 제작에 참여해 A급 블랙뮤직을 주조해낸다. 약혼자 나스(Nas) 역시 'In public'에서 랩 피처링을 담당하며 빠짐없이 켈리스를 응원하고 나섰다. 흑인음악계의 명 프로듀서 달라스 오스틴은 일렉트릭 펑키 레게를 구사한 'Trick me'와 래퍼 컴온(Common)의 'I used to love H.E.R'을 샘플링하며 록 사운드를 담아낸 'Keep it down' 두 곡에서 실험성 짙은 힙합을 켈리스에게 선물한다. 또한 초창기 프린스의 미네아폴리스 뉴 웨이브 스타일이 리바이벌된 'Millionaire'는 안드레의 쾌활한 보이스가 경쾌함을 더했고, 사이파이(sci-fi) 소울 색채가 짙은 'Glow'는 라파엘 사디크와 켈리스의 듀엣 포맷이 멋진 앙상블을 이뤄 고혹적인 분위기를 풍겨낸다. 후반부로 갈수록 디스크는 점점 위력을 발휘해 주목할만한 곡들이 무더기로 튀어나온다. 하이라이트 트랙은 단연코 미드 템포 소울 발라드 'Sugar honey iced tea'다. 제목처럼 달콤하고 감미로운 이 곡은 켈리스의 팔세토 보컬이 마치 한 잔의 차를 마신 듯한 향긋함을 전해준다. 라파엘 사디크가 보컬과 제작에 참여한 'Attention'과 넵튠스의 미래 지향적인 비트 미학이 매력적인 'Rolling through the hood' 등도 멋지다. 그만큼 신보는 히트를 예감하는 곡들이 즐비하다. 흑인음악에 인색한 록 전문지 <롤링스톤> 조차도 별점 4개를 첨부하며 전반적인 호평을 내렸다. 사실상 켈리스는 지난해 팝 아이콘으로 부상한 비욘세와도 매우 흡사하다. 음악과 외모 둘 다 그렇다. 차세대 섹스 심벌?! 상업적인 면에서 비욘세 만큼 R&B계의 빅 스타는 아니지만 이 시대가 분명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 독특한 캐릭터를 지녔다는 게 그녀의 강점이다. 스마트한 섹시 미인, 켈리스는 3집 음반을 통해 그녀만의 고품격 하이파이(hi-fi) 초상화를 창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