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13. 16:46ㆍ팝아티스트
브루스는 스프링스틴이 10년 간의 무명시절 끝에 마침내 75년
가을에 국가적인 인지도를 얻었을 때 비평가들은 그를 락&롤의
구세주로 칭송하였다. 그는 50년대 락의 열정과 60년대 락의
신중함을 70년대 스타일로 접목시킨 가수이다. 그의 락 스타일은
Jerry Lee Lewis처럼 거칠었고 가사는 Bob Dylan의 가사 처럼
정교 했다. 그리고 그의 콘서트는 모든 것이 최고로 이루어진
거의 종교적인 축제의 장으로 비교 될 수 있다.
그러나 도시 생활을 노래한 절박함과 젊음이 넘치는 관심사, 그의
강력한 가창력, 활기에 넘치는 기타 연주, 백업 밴드의 우수성,
그리고 몹시 거칠은 그의 실황공연 태도 등으로 인하여 스프링스틴은
제 2의 밥 딜런이라는 과장된 평가를 받았다.
타임지와 뉴스 위크지는 스프링스틴의 음악적 면모를 다루지 않고
단지 시대적 현상에 포커스를 맞추어 커버를 장식하기도 했다.
어쨌든 스프링스턴의 앨범 는 크게 히트하였고
그는 라이브 공연에서 주로 활약하였다.
1949년 9월에 남부 뉴 저지에서 태어난 스프링스턴은 10대 부터
락&롤에 빠졌었고 60년대 중반에는 Garage Rock에서부터
Power Trio Blues-Rock까지 스타일의 변화를 추구하면서 여러
밴드를 거쳐가며 연주했다. 그는 70년대 초반까지 그린위치 빌리지에서
싱어와 송라이터로서 활동했으며1972년에 그는 콜럼비아 레코드사와
계약하고 몇 년에 걸쳐 함께 연주했던 뉴저지 뮤지션들도 영입했다.
그의 데뷔 앨범 (1973)은 초기
발매 때에는 대중들에게 어필되지 못했고 4년 뒤에야 그 앨범에
수록된 "Blinded by the Light"은 히트되었다. 1973년에 발매된 앨범
또한 평론가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앨범 판매는 저조했다.
다음 해에 스프링스턴은 섹스폰 연주자 Clarence Clemons,
세컨 기타리스트 Steve "Miami" Van Zandt, 오르간 연주자
Danny Federici, 피아니스트 Roy Bittan, 베이시스트 Gary Tallent,
그리고 드러머 Weinberg와 함께 그의 백업 그룹 The E Street Band를
다시 조직했다. 그는 이들과 지방순회 공연을 다니고 콜럼비아사와는
마지막으로 세 번째 앨범을 작업하는데 1975년 8월에 발매된 앨범
은 평론가들과 대중 양쪽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타이틀 송은 40위권에 진입하였고 앨범은 10권에까지 올랐다.
드디어 스프링스턴은 자신을 둘러싼 과대 평가에서 벗어나 음악활동에
충실해 그의 포지션을 굳히게 된다. 그러나 그는 몇 년 동안 전 매니저에 의한 소송사건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러는 와중 그 당시 음악 세계는
변화를 맞이 했고 비평가들이1975년에 열광적으로 스프링스턴을
호평한 이유는 그가 Soft rock, Heavy metal 그리고 Art Rock의 세계에서
베이직한 Rock & Roll 의 가치를 다시 불러들였다는 데 있다.
그러나 스프링스턴이 4번째 앨범
(6/1978)을 냈을 때 펑크와 뉴 웨이브 운동은 그를 선두에서 밀쳐내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또한 Bob Seger와 같은 비슷한 사운드의 락커들이
나타났을 때 스프링스턴의 사운드는 참신성이 떨어지며 덜 혁신적
이라는 이유로 외면당하기까지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공장 일에 얽매여 탈출구를 갈망하는 청소년들에게 어필하는 앨범을 발매해 팬 층을 두텁게 했다. 그러나 그 앨범은 히트를
하긴 했지만 에 필적하진 못했다.
1980년 10월에 스프링스턴은 더블 앨범 (10/1980)로
차트에서 탑을 했고 "Hungry Heart"는 그의 첫번째 탑 텐 히트곡이 되었고
아무도 그를 더 이상 과대 평가된 가수로 보지 않았다.
앨범 에서는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의 곡들을 대거 수록하여
록과 포크 음악을 겸비한 전천후 아티스트로서의 면모를 과시하였지만
그는 그 전처럼 아주 커다란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후 1984년 6월에 앨범 가 발매되었고 7곡의
히트 싱글과 천만장이 팔린 그 앨범은 스프링스턴을 마이클잭슨과
프린스와 더불어 팝의 황제로 각인시켰다. 그리고 1년 이상이나
투어공연을 한 후에 그는 5개의 LP와 3개의 CD 로 컨서트 앨범
을 발매
했는데 차트 상위 권에 랭크 되었다. 한편 스프링스턴은 19987년에
노력과 정성을 쏟아 앨범 을 발매하는데 그
앨범에는 첫번째 부인과의 이혼의 기미가 보이고 있었다.
또 다른 마라톤 투어 후 89년 11월에 15년 동안이나 함께 했던
E Street Band는 해체되고 92년 3월에 그는 동시에 앨범
와 을 발매하는데 그 앨범들이
상위 차트까지 오르긴 했지만 전보다는 팬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스프링스틴은 93년까지 투어 공연을 계속하였고 그는 에이즈로 죽어가는 변호사에 관한 영화 <필라델피아>의 사운드 트랙 "Streets of Philadelphia" 를 만들었는데 그 노래는 94년에 탑 텐에 오르면서 아카데미 주제가상과 다음 해에도 그래미상을 휩쓴다.
또한 스프링스틴은 95년 2월에 새 트랙을 추가하기 위해
The E Street Band를 다시 모으고 그레이티스트 히트 앨범을 준비했는데
그 앨범은 즉시 베스트 셀러가 되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스프링스틴은 95년 11월에 앨범 를 발표하고
솔로 투어에 나서고, 98년 후반에는 전에 발표되지 않은 곡으로 4개의
디스크 콜렉션을 발매한다. 2001년 봄에는 뉴욕 시티에서 공연한 라이브
앨범 이 발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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