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rds

2024. 9. 14. 15:05팝아티스트


 
그룹 Byrds는 1964년 Los Angeles에서 결성되어 처음에는 Roger McGuinn,
Gene Clark, David Crosby 세 사람이 트리오로 결성되어 ‘비피더즈’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면서 최초로 ‘Jet Set’이란 데모곡을 만들고 이후에 포크락
스타일의 싱글 ‘Elektra’를 발매하는데 이것이 몇 달 후에 포크락 사운드가
전자화되어가는 것을 보여주는 초기의 곡이 된다.

드러머 Gene Clark과 만돌리니스트 Chris Hillman(그는 그전에 악기를 연주해
본 적이 없지만 전자 베이시스트로 리스트에 오른다.)이 가세하면서 5인조가 되고
그룹의 이름도 Byrds로 바꾼다. 그들은 곧 그들의 악기를 마스터하고 성장한 록
밴드가 되기로 결심한다. 최초의 긴머리 미국 밴드는 음악적으로 뿐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브리티쉬 인베이젼 밴드와 경쟁한다. 그리고 신문, 팬부대,
조지해리슨에 의해 버즈는 곧 비틀즈와 양대산맥을 이룰만한 미국의 밴드로
이름을 날린다.

그들은 1965년 중반에 밥 딜란의 새로운 데모곡을 입수하는데 그것이 바로
“Mr. Tambourine Man”이다. 버즈는 이 곡을 첫 싱글로 발표해 1위에
오르면서 기적에 가깝게 처음으로 포크와 락의 혼합을 완성하게 되는데
몇 절을 빼고 단번에 기억될 만한 12줄 기타음과 비틀즈의 하모니를 첨가함으로
그들은 최초의 빅 포크락으로 전국을 강타한다. 또한 “Mr. Tambourine Man”은
밥 딜란의 주된 해석과 더불어 더 로맨틱하고 오리지날 팝을 잘 조화시킨 것이
믿을수 없을 정도로 좋은 앨범이다 라는 평가도 받는다.

몇 달 후 시거의 “Turn! Turn! Turn!”을 편곡한, 울리는 기타선율과 절묘한
하모니의 혼합이 특징인 그들의 곡이 또다시 넘버원을 차지하게 된다.
그들의 두 번째 곡이 그들의 데뷔 곡만큼 길게 히트하지는 못해서 그들의
혼란스러운 페이스는 계속되지만 1966년 초 발표한 싱글 “Eight Miles High”
은 (고의적이건 아니건) 마약같은 시적인 심상(높은 곳에 올랐을 때의 기분...)과
우르르대는 베이스라인, 그리고 존 콜트레인과 인디안 뮤직에서 영감을 얻은
맥귄의 열광적인 기타연주가 가미되어 사이키델릭의 탄생을 예고한다.

버즈는 “Eight Miles High” 작업 후, 맥귄과 함께한 초기의 송라이터이며 리드
보컬리스트였던 ‘진 클라크’의 탈퇴로 인해 큰 손실을 얻게 되는데, 그가 떠난
이유는 다른 압력도 작용했겠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고소공포증 때문이었다.
“Eight Miles High”는 Byrds에게 있어서는 그들의 마지막 탑 20 싱글곡이다.
많은 라디오 방송국들이 마약에 관한 노골적인 언급 때문에 그 곡을 금지하지만
14위에 오르는 놀라운 성과를 올렸다.

이것으로서 버즈가 비틀즈에게 상업적으로 도전한 기간이 끝나고 그들은 그룹을
재결성한다. 4인조로 계속하는 맥귄, 진 클락, 크로스비, 힐먼은 더 풍부하고 많은
곡으로 성장했다고 추측된다. 그 세 번째 앨범 은 더욱
개척적인 포크락과 사이키델릭한 곡을 수록했다.

“So You Want to Be a Rock 'n' Roll Star”, “My Back Pages” 같은 히트
곡을 담은 앨범 로 그들은 또다시 절정을 맞이한다.
1967년에 크로스비는 그의 최고의 작품으로 노래와 작곡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단언한다. 그는 맥귄, 힐먼과 그리 사이가 좋지 못했고 The Notorious Byrd
Brothers의 작업 후 버즈를 떠난다. 진 클라크가 떠난 지 겨우 몇주 후,
67년 말에 마이클 클라크 역시 버즈를 떠나게 된다. 이 혼란 가운데서도 두드러진
특징은 그들이 Notorious에서 만큼 좋은 음악을 계속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컨츄리 뮤직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가운데서 실험적인 전자음악과
숙달된 포크락을 침착하고 요령있게 섞은 또다른 결과였던 것이다.

맥귄과 힐먼은 한번 더 68년 초기에 그룹을 재결성한다. 맥귄은 전통적인 포크와
컨츄리 음악에서 발달해 째즈와 일렉트릭 음악까지 더하는 컨템포러리 음악의
역사를 담은 더블앨범의 흥분된 가능성을 심사숙고하게 된다. 이 시기에 그는
키보드 연주자 그램 파슨스을 고용한다. 파슨스가 기타, 보컬 등 여러 분야에
참여하게 되면서 파슨스의 영향 아래 버즈는 곧 컨츄리 뮤직으로 전국을
강타한다. 1968년 맥귄, 힐먼, 파슨스 그리고 드러머 케빈 켈리는 아마도 최초의
컨츄리 락으로서 대량발매된 그들의 첫앨범 를
녹음한다.

당시 이 앨범은 버즈의 팬들을 갈라놓는다. 몇몇은 그들의 혁신이 자연스럽게
계속된 것으로 보고, 다른 이들은 밴드의 트레이드 마크인 수정같은 기타사운드가
사라진 것을 비탄하며, 맥귄의 가장 야망적인 실험이 짧게 흥행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는 그것이 끝이거나, 적어도 65-68년에 클래식한 버즈 사운드
가 급격히 개조된 것이 틀림없다고 느낀다. 이 변화의 가장 큰 촉매역할을 했던
파슨스는 68년 남아프리카의 버즈의 공연이 문제가 되면서 6개월 후 밴드를
떠난다. 잠깐동안 맥귄은 로데오에서 파슨스의 리드보컬을 대신하지만 그것은
별로 도움이 안됐다. 표면적으로 파슨스가 콜럼비아 발매시 노래를 금지당한 것은
계약상의 장애때문이었다.

크리스 힐먼은 68년 말에 버즈를 떠나서 파슨스와 the Flying Burrito
Brothers를 만든다. 맥귄이 그 후로도 5년 동안 다른 뮤지션들과 함께 버즈를
유지해 나갔지만, 본질적으로 버즈의 이름은 로저맥귄과 백밴드였다.
여론은 다시 후기 버즈의 앨범을 나눈다, 맥귄은 팬들과 비평가들의 마음을 풀어
주어 그에게로 향하게 하는 특이하고 유쾌한 재능가였다. 누구도 12줄 기타를
그만큼 연주할수 없었고, 그는 좋은 편곡가이며 Lennon-meets-Dylan 보컬은
아주 독창적이었다. 버즈 스타일이 잘 반영된 “Chestnut Mare”, “Jesus Is
Just Alright”, “Drug Store Truck Drivin' Man” 같은 곡은 별도로 하고,
68년 후기 버즈의 앨범은 거의 비등한 65-68년 기간동안의 그들의 클래식의
권위과 같이 반향한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맥귄이 특이한 송라이터였기 때문이다.
또한 버즈의 전성기에 다른 류의 쓸모있는 재능과 리더의 아이디어가 합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60년대에서 70년대로 전환하는 시기에, 버즈의 인기하락과 전 멤버들의 활발한
활동은 이중으로 맥귄을 괴롭혔다.
크로스비는 Crosby, Stills, Nash & Young에서 슈퍼스타가 되었다.
힐먼, 파슨스 그리고 마이클 클라크는 the Flying Burrito Brothers로서
컨츄리락에 참여한다. 심지어 상업적인 시각에서 떨어져나간 진 클라크도
컨츄리 락을 반영한 자신의 앨범을 낸다. 원년 멤버들이 73년에 다시 모여 앨범을
내서 탑 20에 올랐지만 처음뿐이었고, 그것은 대단한 밴드가 마지막 한번에
재기를 시도했다가 망하게 된 가장 악명높은 것중의 하나로 남아있게 된다.

버즈의 원멤버들은 7,80년대에 솔로와 아웃사이드 프로젝트로 활동을 계속한다.
맥귄, 클라크, 그리고 힐먼은 70년대 말에 버즈의 사운드에서 원숙미를 더한
변화로 성공한다. 80년대에 크로스비가 마약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반면 힐먼은
the Desert Rose Band에서 주류의 컨츄리 음악으로 승승장구한다.
버즈의 전설은 버즈의 이름을 사용할 권리를 갖고 싸우면서 변색된다.
잠시동안이지만 마이클 클라크는 원멤버와는 전혀 다른 특색을 가진 버즈와 순회공연을
하기도 한다. 1991년에 버즈는 명예의 전당에 오른다. 진 클라크가 몇 달 후 죽고
마이클 클라크가 93년에 죽으면서 버즈의 재결합에 대한 끊임없는 소문은 드디어
종식되었다.

그들은 비록 비틀즈, 롤링스톤즈, 그리고 비치보이스의 거대한 성공에 비해 60년대
중반 짧은 기간 동안 그 업적을 달성했을 뿐이지만, 결과적으로 역사는 버즈를 그들만큼
영향력있는 그룹으로 평가한다. ‘포크락’을 그들 단독으로 개척해낸 것은 아니지만
혁신적이고, 가장 서정적이고 컨템포러리 포크음악의 뮤지컬적인 요소에 브리티시
인베이젼의 에너지를 가미함으로서 다른 솔로가수보다 더 큰 공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리더 로저 맥귄의 리켄베커(12줄)의 기타사운드는 락이라는 용어 안에 영원히 흡수되어
있다. 그들은 또한 천사의 하모니와 끊임없는 전자음의 요소를 통합시킴으로
사이키델릭 락과 컨츄리 락의 선구자로서 생명력있는 역할을 하게 된다.

종종 그들의 초기 시절은 딜런과 비틀즈를 섞은 것으로 묘사된다.
버즈가 딜란과 비틀즈의 영향을 받은 것 만큼이나, 그 다음에 밥 딜란은 버즈에게
영향을 받는다. 버즈의 혁신은 다음 세대 즉 탐 페티와 알이엠, 그리고 셀 수 없는 많은
시끄러운 기타음과 농후한 하모니가 특징인 포스트 펑크 시대의 얼터너티브 밴드들의
작품 속에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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