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ista(프로미스타)에서 Carrion de los Condes(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에 가다

2024. 9. 1. 12:24꿈속의까미노순례길

Fromista(프로미스타)에서 Carrion de los Condes(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에 가다 19.3km 17번째되는날 성모님에 대한 묵상

Albergue Samta Maria 식품 11uro 5/18 2018

 

프로미스타(Fromista)에서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 (Carrion de los Condes) 여정은 극히 짧은 19.km 이지만

메세다 고원의 한가운데 숨어있는 4개의 작은 마을을 지나야 오늘의 목적지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에 이르게 된다

 

그첫째마을이 뽀블라시온 데 깜뽀스이다

그두번째 마을이 레벵가 데 깜뽀스 이다

그세번째가 비야르멘떼로 데 깜뽀스 이다

그리고 네번째 마을이 비얄까사르 데 시르가 이다

그리고 시르가를 지나서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에 도착하게 한다

프로미스타(Fromista)를 출발하여 걷다보면 잘 정비된 보행자 도로가

국도와 연결되어 끝없이 뻗어나간 지평선이 팔렌시아(Palencia)지방으로 달려나간다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피해 갈수없는 메세타 한복판에서 까리온데 로스꼰테스까지 가려면

자동차 전용도로와 나란히 정답게 붙어있는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가야한다

 

오늘도 어제처럼 짧은 여정이기 때문에 평소보다 천천히 걸으면서

프로미스타와 비얄까사르 데 시르가에있는 아름다운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들을

여유롭게 감상하는것도 좋은 시간이 될것이다

하지만 자신만의 생각을 할 시간을 갖는다는것은 더욱 유익한 시간이 될것이다

 

정해진 길을 따라 걷기가 단조롭고 지루하다면 뽀블라시온에서 우시에사 강을 건너지 말고

레벵가 데 깜뽀스로 우회하여 비야르멘떼로 데 깜뽀스로 직접가는 루트를 택하면 된다

그리하면 작고 아름다운 마을 비요비에꼬에 들릴수가 있는것이다

 

또한 까리온 데 꼰데스로 가는 마지막 마을인 비얄까사르 데 시르가에 들러 템플 기사단이 만들었다는

블랑까 성모성당을 방문하는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

 

프로미스타에서 나와서 N-611 도로를 넘어 500km정도 걷다 보면 버스 승차장과 관광객을 위한 안내소가

있는 넓은 광장이 있다 이곳이 바로 성마르띤 성당이 있는 광장이다

프로미스타 알베르게에 머문 순례자라면 알베르게 바로 앞이 성당이므로 까미노 화살표를 찾아 헤멜필요가 없다

 

성당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서면 끼미노의 첫마을이 되는 뽀블라시온 데 깜뽀스로 향하는 길에 들어서게되는것이다

경사가 없는 평탄한 길이라서 아침에 시작한 순례길은 거침없이 이어진다

그러나 햇빛을 피할 그늘이 없는 메마른 메세타 지역이라서 아침 시간에는 속도를 내어 걷는것이 좋다

 

뽀블라시온 데 깜뽀스에 들어서기 직전 순례자는 잠시 휴식을 취할수 있는 산 미겔 성당을 만날수가 있는것이다

뽀블라시온 데 깜뽀스는 중세시대 예루살렘 성 요한 기사단의 영지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마을 출구에서 왼쪽으로 난 까미노를 선택하면 우시에사 강 을 건너 레벵가 데 깜뽀스를 거쳐 P-980 자동차 도로 옆

까미노를 약 한시간 반 가량 걸어야 한다

조금더 돌아가는 루트가 될수도 있으나 수로룰 따라서 비요비에꼬를 지나 비야멘떼로 네 깜뽀스 까지 보다 쾌적한

길을 걸을수 있는것이다

 

12세기에 만들어진 레벵가 데 깜뽀스를 거치든지 빨렌시아의 아름다운 수로옆에 세워진

작은 마을 인 비요비에꼬를 거치든지 까미노는 어김없이 비야멘떼로 데 깜뽀스에 도착하게 된다

 

두 가지길 모두 특별히 까미노 사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비요비에꼬 루트는 뽀블라시온 데 깜뽀스를 나와 오른쪽 까미노를 통하여 수로를 따라 걷다 보면

한시간 후에 비요이에꼬를 만나게 되고, 여기에서 마을을 통과하여 아르꼬나다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진행하면 우시에사 강을 건너게 된다

 

강을 건너 오른쪽으로 강변을 따라 자라난 버드나무 길을 따라 직진하면 왼쪽으로 비야멘떼로 데 깜뽀스로 향하는 길을 만나게된다

레벵가 데 깜뽀스를 거치는 루트는 더욱 간단하다

뽀블라시온 데 깜뽀스의 마을 출구에서 우시에사 강을 건너는 왼쪽 까미노를 따라 자동차 전용 도로와 나란히 걷기만하면 된다

레벵가 데 깜뽀스에서는 오른쪽으로 비요비에꼬를 지나 아르꼬나다로 향하는 도로를 가로질러 P-980 자동차 도로를 따라가면 그만인것이다

 

비야멘떼로 데 깜뽀스는 레벵가 데 깜뽀스와 마차가지로 전형적인 까미노 마을로 성 마르띤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곳이다

순례자들의 마을이라고 해도 여름 한철 바를 제외하고는 순례자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가 없는곳이다

순례자들은 P-980 도로의 오른쪽으로 이어져있는 까미노를 따라 비얄까사르 데 시르가로 이동해야 한다

 

비얄까사르 데 시르가는 인구가 약 250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나 중세 스페인에 있었던 템플기사단의 본거지였으므로

맛있는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이 있기 때문에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곳이다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양식이 적절하게 절충된 불랑까 성모 성당의 아름다운 회랑에 감탄했다면 성당 내부에 있는

돈 펠리뻬 왕자와 그의 아내인 도냐 레오노르의 영묘와 템플기사단의 비밀이 숨어있는 우물을 살펴보는것도

재미있을것이다

성당 앞에 있는 마을 광장은 새롭게 정비된 듯 굉장히 깨끗하다 식탁에 앉아 성당을 느긋이 쳐다보는 순례자의 동상곁에

나란히 앉아서 사진을 찍는것도 좋은 추억이될것이다

 

비얄까사르 데 시르가에서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로 향하는 까미노는 N-980 도로의 오른쪽을 따라 걷는다

3km 지난 지점에서 조그만 언덕이 시작되며 언덕을 오르면 도로를 가로질러 까리온 떼 로스 꼰데스로 향하는 내리막길이 나온다

 

빨렌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이자 까미노의 심장으로 불리우는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는 이미 12개의 크고 작은 성당 건축물과 병원이

있을 정도로 번성했던 도시였다

특히 중세의 산 소일로 왕립수도원에서는 까리온 데 꼰데스를 찾아오는 순례자에게 11월부터 4월까지는 한개의 커다란 빵을 주었고

5월에서 10월까지는 반 개의 빵을 주었으며 성직자에게는 빵과 2개의 계란 포도주 1/4병과 20레알의 돈을 줄 정도로 번성했다고 전해진다

 

도시입구에있는 산따 마리아 델 까미노 성당은 12세기에 만들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로 현관에는 동방박사의 경배와 이슬람 교도에게

바쳐진 100명의 처녀의 전설에 관한 조각이 새겨져 있다

순례자는 산따 마리아 광장을 통하여 아름다운 판토크라토르가 있는 산띠아고 성당을 지나가게 된다

광장 입구의 아치에는 24개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조각이 숨겨져 있으며 오래된 중세의 다리를 건너면 현재는 호텔로 사용되고 있는

오래된 산 소일로 왕립 수도원에서 도시가 끝나게 된다

 

 

성모어머님께

오늘은 2018년 8월 31일 유난히 무더웠던 8월의 마지막날 31일 입니다

내이웃에있는 최원준 내과 병원에서 혈액검사를 했고 그결과를 보기위해 병원을 찾았습니다

뇌혈관 질환에 대한 종합검진 검사에서 고지혈증 때문에 최원준내과를 다니게된것은 3년이 되었습니다

 

최근에 혈당까지 높아져서 선생님께서 얼마전 관리차원에서 혈액을 검사한 결과

위험수치가 6에서 3으로 떨어졌다면서

요즘에 무순 운동을 하였길래 이렇게 좋아진것이냐고 물으십니다

 

내가 까미노에서 돌아왔던 2018년 6월 8일 이후에 한번도 운동을 한적이 없습니다

집에 돌아온 그날 부터 몸이 8kg이상 빠져서인가 잘 걷지도 못하는

충격적인 빈사상태로 건강의 회복이 불가능해보이는 절망속에 지냈습니다

 

물 한모금도 마시고 싶지 않고 밥도 절대로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면서

식욕 자체가 없어진다는 것은 엄청난 공포스러움이라는것을 처음 경험했는데요

몸전체의 컨디션을 조절하는 기능이 마비되어서 앉았다가 일어나는 동작하나도

힘든 상태가 되었습니다

위장이 나빠져서 소화가 되지 않고 아프고 눈이 갑자기 나빠져서 안과에 두달넘게 다녔지만

시력의 회복은 어렵게 된것 같습니다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해골같습니다 쾡한 눈동자에 앙상한 목덜미의 뼈가 들어나 있고

움푹들어가서 마지막 병동의 죽음을 기다리는 중환자가 같은 나의 모습에 경악하게 된것입니다

 

밥을 제대로 먹을수가 없고 기운이 없어서 병원에 갈 기운도 없는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 병원에가면 의사선생님께서는 틀림없이

나를 보고 입원을 하라고 처방하실것 같은 공포스러움이 컷던것입니다

 

그래서 우선은 죽을 쒀서 미음을 먹으면서 몸을 추스리면서

몸의 회복을 기다려 보기로했습니다

 

휴식을 취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첫번째의 고통은 위장이 고장 신호를 심하게 보낸다는것입니다

위장은 어렸을때 부터 좋지 않았었는데 오랜 시간의 꿀마늘 요법으로 고생을 덜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가슴에 손을 대고 누르는곳마다 심한 통증이 유발되어 큰일났다고 생각할때

내가 보고있던 페이스북 화면에 아침에 더운물을 마시고 위장병이 치유되는 민간요법이 떠있습니다

 

또 어떤날은 보리밥을 먹고 위장병과 성인병을 고쳤다 기적같은 보리밥치유 민간요버이 떠있는것입니다

그리고 또 어떤날은 "차가운물을 마시면 절대로 안되는 33가지 이유 "가 차례로

내손안의 페이스북에서 원격지원 사격인듯 은혜로운 소식을 전해 듣고 차례대로 시행했던것입니다

내가 누구에게 말해본적도 없고 내가 전혀 생각지도못한 일이 내눈앞에 펼쳐진것입니다

 

물에 빠진사람은 짓푸라기라도 잡습니다

꽁보리밥 먹기 한달을 시행했습니다

아침공복에 4컵의 뜨거운 물 마사고 한시간 굶기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나는 이제 절대로 항상 냉장고의 찬물을 벌컥 벌컥 마시는 일은 없습니다

사람이 습관적으로 냉각된 찬물을 마시면 인체기능은 투입된 찬물 때문에

인간의 정상적인 체온을 유지하기 위하여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고

그런 상태가 지속되는 경우에 몸기능의 각부처에 이상이 생긴다는것입니다

 

그고통을 말못하는 인체가 병에 걸리는 명백한 원인이 된다는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천사들의 소리없는 처방들이 나에게는 얼마나 소중했는지요

인간의 몸은 70%가 물로 구성되어 있다는 과학을 눈으로 확인했던 시간이기도 합니다

 

극도의 인내를 요하는 까미노 길에서 물마시고 화장실 가야하는 문제는

특히 혼자가는 여성 순례자들의 숨겨진 고통이 되는것도 사실인것입니다

인간에게 물은 곹 생명이라는 말은 참됩니다

인체안의 물은 모든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수로가 될뿐만 아니라 인체안의

모든 부서의 연결고리가 되는 전극의 역활을 한다는것입니다

 

물도 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고 밥도 먹고 싶은 생각이 없고 배가 고프지도 않고

물을 마시고 싶은 갈증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던 암울했던 나의 지난 순간들은

자동차의 기름처럼 원활하게 돌아야 할 인체기능이 마비를 일으킨 공포의 순간이었던것입니다

 

둘째가 얼마전에 한약을 지어 주어서 먹은것이 많은 도움이 된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밥을 먹지 않으면 예전처럼 극도로 배가 고픈 신호가 오게 되어서 밥을 열심히 챙겨서 먹습니다

입맛이 돌아와서 아주 맛있습니다. 두달 보름동안 2.5kg 정도 체중이 늘어난것입니다

천만다행인것은 최원준 원장님께서 나를 그동안 체크해오시면서

혈당이 높아지는 적신호가 온것을 알아차리시고 6개월마다 정기검진을

잊지 말고 신청해서 받으라고 내가 산띠아고 가기전에 말씀하셨지요

 

그리고 최근에 받은 정기건강검진에서도 고지혈증 때문에 재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통지를 받았는데

내가 먹어하는 약 타려고 갔었는데 원장 선생님께서 검사를 하라고 하셨고

문제 되었던 고지혈증도 없어지고 걱정되던 혈당의 위험수치가 사라졌다는 기쁜 소식을 듣게된것입니다

 

불행중 다행이라는 말이 나에게는 너무나 딱딱 맞게 적용되어져서 무한히 기쁘고 행복합니다

외롭고 힘든 내 영혼의 위로자 성모 어머니 감사합니다

자비하시고 인자하신 하느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어두운 밤길의 등불로 오시는 겸손하신 사랑의 예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이신 예수님을 생각만 하면 뜨거운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넘칩니다

눈물이앞을 가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마냥 눈물만 흘리다가 나중에는 흐느껴웁니다

까미노 길에서는 목놓아 울었습니다 소리치면서 울부짓었습니다

 

예수님 내가 당신께 드릴수 있는말은 없습니다

예수님 내가 당신에게 요구하고 바라는것 또한 아무것도 없는것입니다

다만 내가 절대로 당신에게 돌아갈수없는 영어(囹圄)의 몸이라는것

그것이 아프고 슬픈것입니다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짝사랑의 아픔을 아십니까

짝사랑은 아픈것입니다

누군가 너의 빰을때리거든 오른쪽 뺨도 내어주시라고 하셨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을 믿고 살았습니다

 

나는 당신의 자녀로서 당신의 그말을 믿었고 또한 실천했습니다

내게 돌아온것은 뼈마디가 앙상한 죽음이요

생명을 바쳐서 살아온 그토록 소중했던 시간들이

땅바닥에 짓이겨지고 짓밟혀지는 치욕의 휴지조각이 되어

쓰페기통속에서 먼지처럼 흩날린다는 것은 못견딜 눈물이 되는것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에는 생명이 잉태되어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물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듯이

사람은 사랑을 먹고 자라나고 살아가는 동물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내아비가 돌아가시던 그날밤 단몇분의 순간에 아버지의 음성을 들었고

얼굴도 기억못하는 그아비의 나를 향한 극진한 사랑을 깨닫고

가슴에 새기고 뜨거운 화덕속에 달구어진 쇠덩이도

밟고 지나가는 용기로 모진 세상을 사는 강열한 힘의 원천이게 했습니다

 

내아비가 내게 보여 주신 그사랑을 도구삼고 아주 작은것일지라도

내가 남에게 베풀고 돕고 양보하는 삶의 자양분이게 했습니다

내가 내아비의 자랑이고자 힘든 고행을 달게 참고 살았습니다

 

가정을 이룬다는것은 생명의 잉태가 함축되어 있는 귀한 말이며

그생명을 지키기 위한 삶이란

나의 생명을 바쳐서라도 그생명을 지켜내겠다는 거룩한 약속인것입니다

 

내게 있어서 가족 가정이라는 화두는 슬픔이 됩니다

나를 두고 자신이 남편이라고 늘 강조했던 사람에게는 가족이 없습니다

나를 두고 날마다 자신이 남편이라고 우격다짐을 했었던

이사람에게는 가정이 처음부터 없었던것입니다

 

멀쩡하게 결혼하여 잘 살고있는 딸의 시댁에 처음 초대받아 가게된 축복의 자리에서

양가집 사돈이 식탁앞에 마주 앉은 자리에서 내남편이라는 사람이 내뱉은 첫마디가

"이게 좀 무식하거든요 " 사돈 댁의 3자녀의 식구들이 다 모여 앉은 자리에서 내뱉은

내남편의 이말 한마디는 청천벽력과 같은것이었습니다

 

이년 저년 무수히 많은 무슨년이 나의 이름 처럼 쓰여지는 가정이라서

그말이 쉽게 순화되어 나올수가 없는것이지요

그곳 그엄숙한 내딸의 운명이 걸린 자리에서 내밷아진 내남편이라는 사람의 나의 호칭은

이년이 아니고 "이게" 가 된것이 참 다행한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하나를보면 열가지를 안다고 했습니다

이사람이 밖에 나가서 나를 어떤 사람으로 표현하고 다니는가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세상에는 서로 지켜야 할 예의만 있는것이 아니라 엄격한 책임을 묻는 형법이 엄연하게 존재하는것입니다

 

내가 낳은 아들이 밖에 나가서 사람을 살상하는 중대 범죄를 저질른것일지라도

그부모가 된자가 지탄의 대상이 되는 중범죄자 아들을 숨겨주는것은 법률의 제재를 받지 않는 법이 존재하는것입니다

 

이법률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건강한 가정 건강한 가족은 국가의 기틀이 되는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는것입니다

 

생명이 잉태되고 자라고 국가의 기틀이 되는 귀한 존재인 자녀들을

목숨을 걸고 보호하고 지켜내는것이 부모된 도리이기도 하지만

그토록 값진 목숨을 걸고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에 대한

존재의 존귀함이 국가의 법률로서 보호받고 존중받는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사돈앞에서 자신의 부인을 "이게" 라고 표현하는 사람에게는 가족이 가정이 없는것입니다

이런사람에게 아이들이란 어떤 존재의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러한 사람에게서 아이들은 무엇을 얻어서 모진 세상의 풍랑과 마주 하고 싸워서 이길수가 있겠습니까

 

파멸이 있을뿐입니다

 

가족을 부양하지 않은자가 어떻게 가족을 말합니까

자녀와 아내를 보호하고 지켜야한다는

가장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은

처음 부터 없었던 이사람이 어떻게 가정을 말할수가 있겠습니까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돈많은 부잣집 병원 아들로 행세하고 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내집안의 돈을 가져다 남들에게

항상 술사주고 으시대면서 말도 되지 않는 상류사회 인간으로서

남들에게 귀한 존재로 살려고 발버둥치면서

오직 남들에게 날마다 칭찬받고 사는것에 목숨을 걸었던

참으로 이상한 이남자는 내남편이 아닌것입니다

 

그래서 이사람은 날마다 죽기살기로 자신이 남편이라고

폭행을 행사함으로서 자신이 밖에서 나가서 행하고다녔던 죄악을

무의식적으로 부끄러워하면서 나중에는 그것이

나에 대한 열등의식으로 발전하여 끝간곳이없는 거짓과 모함으로 발전된것이고

아이들 때문에 아무짓도 못하는 나를 겁박하면서 수많은 세월을 스스로 단죄하는 범죄인으로 살았던것입니다

 

자신이 가족을 부양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아비이면서도 자녀들은 자신이 모른다고 날마다

말하는 이남자를 대신해서 길거리로 나섰던 노동자인 내가 부끄럽다는 이남자

 

자신의 상류사회 포장에 방해가되는 먹고 살기위해 길바닥을 전전하고 다니는 아내가

어느순간엔가 결혼 사깃꾼 돈많은 병원집 재산털이 범인으로 둔갑되어 있었던것은 무엇으로 설명되어야하는가

 

"니년이 아니면 그만이지 이년아" 이것이 그의 설명이다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아이들은 무방비상태로 이 모든것을 보고 자랐다

가족이 할수없는 만행이 늘상 저질러지는 가정안에서 이것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바른 말을 하고자 하는 나의 입을 틀어 막고 싶은것이다 그추악함이 싫은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아비를 버린것 처럼 되어 함깨 지내지 못하고 밖에서 살게된것을 성토하는것이다

 

아이들아 내가 말하겠다

처음부터 가정이라든가 가족이 존재하지 않았던 이남자에게

내가 더이상 거짓된 가정을 제공할수가 없다는것이다

 

자신의 사회적인 열등의식의 울분을 가정안에서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언제든지 마음 놓고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의 여자로 절대로 살고 싶지는 않은것이다

 

나는 칭찬과 비난의 말에 초연하게 사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자신의 사람의 도리를 잊고 살지는 않았던것이다

내가 칭찬을 받기위해서 시부모님을 모셨던것이 아니었지만

말끝마다 내가 시부모님을 모신것이 아니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남들에게 자신이 부모님을 모셨다고 나발을 불고 다녔기 때문에

어느날인가 그의 동료가 국가에 상신하여 효자상을 타게 하겠다고 해서

그어이없는 사고(?)를 막기위해서 내가 "안된다"고 말한것 때문에

폭행당해 죽지 않은것만으로 감사한일이다

 

3남3녀 육남매가 모두 나보다 손위 사람들이었고 남자들 뻬고 시두들 모두 잘 살고 있었지만

그들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부모님을 길바닥에 버리는 사악한 사람들이었고

그러한 처지의 시부모님을 내가 두말하지 않고 7년 동안이나 모신것을

고맙다는 못할지언정 자신이 부모님을 모신것이라고 떠들고 다니면서 나에게 발길질을 한것이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낄수 없다면 그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가 체험하게 될것이라고 생각하는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남자가 아이들을 통하여 나를 굴복시켜서

"가정"이라는곳의 가장으로서

다시 내집의 가족으로 입성하려는 계략은 굴복시킬수도 없고 나를 감동시킬수도 없는것이다

 

어떻게 그럴수가 있는가

아이들을 동원하여 나를 굴복시키고 말겠다는 그의 의지가 가상한것이다

그리고 그말에 흔들리는 아이들이 어떻게 나의 가족일수가 있는가

 

애비라는 자가 한밤중에 술을 먹고 혼수상태로 딸에게 전화를 걸어서

잠을 깨웠다는것 하나만으로 질겁하고 참을수가 없어하면서

나를 보고 그를 받아들이지 않은 내가

인간의 도리를 벗어난 부도덕한 인간이라고 낙인 찍으려고 하는것은

그 아비와 조금도 다르지 않는 양심이 제거된 인간이 아니고 무엇인가?

 

지금껏 아비가 내게 행한것을 보고도 그런말을 한다는것은

가족일수가 없는 냉혹함인것이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내가 희생되기를 바라는가

그를 내가정에 다시 받아 들인다는것은 나의 생명을 버리는

희생을 강요하는것이다

(너희들은 나에게 그럴 권리가 없다는것을 알아야 할것이다)

 

내게는 그인간의 존엄이 원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것처럼 되어버린

내가정과 내가족이 이루말할수없는 형용할수없는 참혹한 슬픔이 되는것이다

 

사랑이 없는것이다 사랑이 자랄수없는 토양을 내가 제공(?)한것이 되는것이다

그럴지라도 내가 지금 그것을 어찌할수가 있겠는가 ?

없는것을 있게 할수는 없는것이다

 

내가 가족이고 가정이라고 생각했던것들이 모두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것이

되어버린 이상 그것에 대한 미련이란 있을수가 없는것이다

 

이렇게 된 원인제공자가 나이며 그래서 고통받았던것에 대하여 나를 단죄하려 한다면

나는 더이상 할말이 없게 되는것이고 해결의 방법도 없는것이다

 

그러한 너희들이 태도가 때로는 심장이 뛰지 않는 로봇같아서 공포에 휩싸일때가 많은것이다

 

나에게는 진정한 가족이 없는것이다

나는 한가정을 이끌어온 엄마로 살았지만

내가 남편에게 한번도 가족으로 보호를 받지 못했던것 처럼

자식들에게 까지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는것

자신들이 필요할때가 아니면 가족일수 조차없는 인간으로 전락되었다는것

그것은 나에 대한 인간에 대한 심각한 치욕이 되는것이다

 

내가 너희들을 비난하는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이치욕을 결코 용서할수가 없다는것이다

가족도 가정도 없는것이 너희들의 것이라면 나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 들일것이다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살았지만 상대방이 아니라고 하면 그뿐이다

나는 남편을 용서하지 못한다는 악행 때문에 냉담자로서 카톨릭 신앙을 버렷다

나는 이제 가족일수도 가정일수도 없는 인간의 고뇌에서 자유로와 질것이다

나로인해서 세상에 죄악만을 남기게 된 나의 삶을 후회하면서

살아있는 동안 그죄악이 정죄되기를 소망하면서 겸손하게 살것이다

나자신에 대한 슬픔의 토로가 길어졌습니다

 

제가 냉담자로서 하느님을 떠나있는가운데 오늘도 남은 문제가 풀리지않아서 교회로 돌아가지 못하는 슬픔으로 살고 있습니다만

하느님께서 항상 나를 돌봐주시고 나를 위해 예비하시고 보호해주시는 은혜에 대하애서 말할수없는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혈액검사에서 눈처럼 녹아버린 고지혈증에 대한 것과

혈당이 정상으로 돌아온것에 대한 비밀을 저는 너무나 잘알고 있는것입니다

 

어째서 그런 기적이 일어날수가 있는가를 말씀드리고 싶은것입니다 !!!

 

언제나 저에게는 이러한 하느님에 대한 신비로운 체험이 눈앞에 현실처럼 일어나는것입니다

나는 작년 가을인가 봄이었을 겁니다

 

우리 사위가 당뇨라서 언제나 걱정하다가 인터넷에서

생강과 천연발효 홍초를 먹으면 당뇨가 좋아진다고 하여 밭에서 막바로 뽑아온 생강을

사다가 갈아서 홍초와 꿀을 섞어서 사위가 먹을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여 만들어서보냈었습니다

 

그러나 사위가 그것을 먹을 기회를 놓치고 관심이 없어 방치하는 상태가 되어서

딸이 그것을 도로 우리집으로 가지고 와서 내가 보관하고 있게 된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산띠아고 에서 돌아온이후에

과일 갈아먹을 때 그것을 한국자씩 넣어서 식사때 마다 장기 복용해왔던것입니다

 

생강홍초를 만든것은 사위를 위한 것이었는데

사위는 그것을 먹기를 소홀히 하였고 결국은 거부하게 되어서

내가 그것을 먹어온것이 효과를 보게된것입니다

결국 내가 당뇨에 걸릴위기에 처해졌는데 그것을 먹게 됨으로서

당뇨의 위험인자가 깨끗하게 내몸안에서 사라진것입니다

 

그리고 고지혈증에 대한 수치도 낮아져서

열심히 운동만 하면 된다는

염려하고 걱정되었던 당뇨병에 대한

생각지도 못했던 선생님의 완쾌 진단을 받은것입니다

성모 어머니 감사합니다

까미노길의 후기를 쓰고 있는데

오늘이 바로 성모어머니에 대한 묵상을 하였던 날의

글을 쓰고 있었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전혀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고

성모님에 대한 묵상의 주제를 메모지속에서도

하나도 찾을수가 없어서

어제 부터 오늘까지 아무것도 못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카메라와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들을 찾아서 정리하는 정도만한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최원준내과를 다녀오면서

그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한것입니다

 

성모어머니 감사합니다

제가 죽음의 병마에서 헤어날수있도록

예비하시고 지켜주시고

치유의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비로우시고 인자하신 성모어머니

그리고 가엾은 내아이들을 봉헌합니다

나보다 더 큰 상처의 깊은 골짜기에서

헤어날줄 모르고 아파하는

내 아이들에게도 치유의 기적의 은혜를 내려주세요

 

저의 간절한 소망의 이기도를 들어 주세요

어머니 자애로운 성모어머니

제가 건강한 몸으로 살아 갈수 있도록

기적의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8년 8월 31일 Lu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