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n Arden

1993년에 홀연히 등장한 잰 아덴(Jann Arden)은 1990년대 미국에서 봇물을 이루던 여성 싱어송라이터에 대한 캐나다의 대응이었다. 물론 그 이전 경력으로 따지면 사라 맥라클란(Sarah McLachlan)이란 거대한 선배(하지만 나이는 잰이 5살 연상)가 있긴 하지만 잰 아덴의 음악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사라 맥라클란의 그것과 구별된다. 두 여성의 음악이 개인적 취향의 포크와 어덜트 컨템포러리 팝 록에 기반을 둔 것은 공통분모이지만 사라의 음악이 얼터너티브 록의 범주에 포함되는 반면 잰의 음악은 보다 성인 취향에 좀더 소프트 록에 근접한 사운드를 들려준다는 차이점이 있다. 또한 가사적인 면에서도 사라 맥라클란의 시각이 독특하고 개성적인 반면, 잰 아덴은 보통 사람들의 따스한 마음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온화하고 보편적이다. 1988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였던 캐나다 캘거리에서 1962년에 태어난 잰 아덴은 어려서부터 소프트 팝 남매 듀엣 카펜터스(Carpenters)나 컨트리 싱어 존 덴버(John Denver), 그리고 여성 싱어송라이터 칼리 사이먼(Carly Simon)처럼 감성이 풍부한 아티스트들의 음악에 심취했다. 그녀는 13살에 이미 곡을 쓰기 시작해 17살 때는 첫 싱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식적인 데뷔 앨범 <Time For Mercy>가 1993년 공개되어 캐나다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음악상인 주노상을 수상하기까지 잰 아덴은 골프 공을 닦거나 바에서 웨이트리스 일을 하면서 그 기다림을 실력 축적의 시간으로 발효시켰다. 바로 이 어려운 기간에 느끼고 깨달았던 삶에 관한 생각과 인간 관계는 그녀의 노래에서 중요한 축을 이루는 가사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1994년에 발표한 두 번째 음반 <Living Under June>으로 이 캘거리 싱어는 캐나다라는 지엽적 인기를 떠나 범세계적인 인기가수로 떠오른다. 크리스천 슬레이터가 주연한 영화 <베드 오브 로지스>(Bed Of Roses)에 삽입되어 빌보드 싱글차트 12위에 오른'Insensitive'를 위시해 'The Load out / Stay'으로 유명한 포크록 싱어 잭슨 브라운(Jackson Browne)과 듀엣으로 함께 한 'Unloved', 차분한 'Good mother' 등이 무더기로 인기를 누렸다. 특히 'Insensitive'는 리앤 라임스(LeAnn Rimes)가 커버해 1998년도 앨범 <Sittin' on Top Of The World>에 싣기도 했다. 1997년의 <Happy?>에서는 싱글 'The Sound of' 만이 본국인 캐나다 차트에서 환영을 받았지만 음반 전체적으로는 그녀 특유의 감성적인 멜로디와 따스한 가사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포스트 그런지의 선두 주자 크리드(Creed)의 가장 큰 히트곡 'With arms wide open'과 흡사한 멜로디 소절을 가지고 있는 'Hangin' by a thread'는 이 음반의 맨 마지막으로 자리하고 있다. 같은 해에 발표된 영화 <내 남자 친구의 결혼식> 사운드트랙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2000년에 발표된 <Blood Red Cherry>는 음악적인 면이나 상업적인 면에서 전작들만큼의 성공을 이어가는데 실패했다. 잰 아덴의 1집과 2집은 국내에 발매되었지만 자극성 없이 차분하게 들리는 그녀의 곡들은 1990년대 중반 그런지 록의 젊은 폭발성과 힙합으로 대표되는 흑인 음악의 그루브한 리듬, 그리고 영국에서 건너온 산뜻한 브릿팝의 물결에 의해 묻혀버렸다. 허무와 냉소, 그리고 패배주의가 팽배했던 1990년대의 음악 트렌드에서 밝고 긍정적이며 인간미가 넘치는 잰 아덴의 노래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그래도 여전히 살 만하다는 것을 깨우쳐 주었다. 섬세한 감성의 음악 외에 바로 이것이 그녀가 1990년대 음악계에서 주목받은 또 다른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