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th No more

2024. 9. 21. 10:20팝아티스트


 
 

데뷔/결성: 1980년

활동/시기: 1980년대, 1990년대

멤 버: 마이크 패튼(Mike Patton, 보컬) 짐 마틴(Jim Martin, 기타) 빌리 구드(Billy Gould, 베이스) 로디 보텀(Roddy Bottum, 키보드) 마이크 보딘(Mike Bordin, 드럼)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페이스 노 모어는 1980년대 중반부터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li Peppers)와 함께 헤비 메탈에 펑크(Funk)를 결합시킨 독창적 사운드를 최초로 시도한 그룹이다.

또한 랩, 헤비 록, 펑크, 프로그레시브 요소를 절묘하게 믹싱해 낸 팀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이브리드 록'의 개념을 정의해낸 그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오늘날의 주류 음악 문법으로 급부상한 하드코어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알 수 있다.

페이스 노 모어는 친한 친구사이였던 빌리 구드(Billy Gould, 베이스)와 로디 보텀(Roddy Bottum, 키보드)이 1980년에 그룹을 결성하기로 의기투합하면서 이뤄졌다. 곧 드러머 마이크 보딘(Mike Bordin)과 기타리스트 짐 마틴(Jim Martin), 보컬리스트 척 모슬리(Chuck Mosley)가 가세하면서 완벽한 라인업을 완료했다.

그룹은 1985년 펑크(Funk)와 메탈, 랩이 퓨전된 데뷔작 <We Care A Lot>를 발표하며 미국 대학 방송국을 중심으로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밴드 사운드의 전형을 제시하는 타이틀 곡 'We care a lot'이 대표적이다. 2년 뒤에 내놓은 <Introduce Yourself>도 전작의 노선을 충실히 이어받았다. 하지만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곧바로 수면 아래로 침잠하였다.

그룹의 활로를 모색하던 페이스 노 모어는 언론에 '그는 자기 중심적이고 신뢰할 수 없다'는 성명서를 배포하고 척 모슬리를 전격 해고시켰다. 대신 그 자리에 미스터 벙글(Mr. Bungle) 출신의 마이크 패튼(Mike Patton)을 앉혔다.

특단의 조치는 성공했다. 1989년 3집 앨범 <The Real Thing>은 평단과 대중 양편에서 좋은 평가를 이끌어 냈다. 그룹은 이 작품으로 이듬해 열린 그래미 시상식에서 베스트 헤비메탈/하드 록 퍼포먼스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영광을 안았다. 또한 앨범 차트 11위에 오르며 밴드 최초의 플래티넘을 따냈다.

이는 차트 9위까지 도달한 수록곡 'Epic'이 엄청난 인기를 얻으면서 순식간에 전개된 상황이었다. 1992년에 발표된 후속 음반 <Angel Dust>도 영국 차트 2위, 미국 차트 10에 랭크되며 'Epic'의 파고를 더욱 더 세게 몰아쳤다.

하지만 페이스 노 모어는 이때를 기점으로 내리막길로 향했다. 1995년의 <King For A Day, Fool For A Lifetime>, 1997년의 <Album Of The Year> 등 의미심장한 타이틀의 앨범들을 발표했지만 별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들이 크로스오버 록의 선구자로서 후배들에게 지대한 파급력을 발휘했지만, 그 이상의 음악적 발전이 없었기에 자연스레 도태되고 만 것이다. 결국 페이스 노 모어는 1998년 4월 멤버 전원의 동의하에 해체를 결정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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