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 Hill

1983년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영화 <람보 - 더 퍼스트 블러드>가 우리나라에서 개봉됐을 때 안타깝고 슬픈 내용과 함께 그 비장한 주제가 'It''s a long road'는 같은 해 F.R. 데이비드의 'Words', 가제보의 'I like Chopin', 버티 히긴스의 'Casablanca'와 함께 유독 국내에서만 인기를 얻었던 이른바 '한국형 팝명곡'의 전통을 세운 노래 중 하나다. 1990년대 중반부터 경쟁적으로 발매되기 시작한 컴필래이션 음반의 종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그 수많은 짜깁기 음반, 특히 사랑의 발라드 모음집에 단골로 등장하는 'Sometimes when we touch'의 재조명은 이런 옴니버스 CD에도 나름대로의 존재 가치를 부여했다. 이 두 가지 사실의 고통 분모인 싱어 송라이터 댄 힐(Dan Hill)은 1954년 6월 3일 캐나다의 토론토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은 미국인이었다. 그러나 앵글로색슨의 토종 백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인종 차별과 마녀 사냥 식으로 자행된 매카시즘을 피해 1950년대 초반 윗동네로 이사했다. 이러한 성장 배경은 1977년에 발표된 2집 <Longer Fuse>에 수록된 'McCarthy's day'에서 표현된다. “이것은 아마 가장 개인적인 곡일 것이다. 이 노래를 수록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내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수록하기로 했다.” 프랭크 시나트라와 재즈 보컬리스트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은 이 캐나다 가수는 1975년 처음 등장해 자국에서의 입지는 견실해졌지만 미국에서는 1977년까지 그렇지 못하다가 'Sometimes when we touch'을 통해 훌륭한 재목감으로 인정받았다. 이 곡은 미국에서 얻은 최초의 탑텐 싱글이며(3위), 또한 그래미 후보로 지명되는 영광도 만들어 주었지만 무엇보다 댄이 존경해 마지않는 작곡자 배리 만(Barry Mann)과 공동 작곡을 하는 귀중한 경험을 했다. 배리 만은 작곡 파트너 신시아 웨일(Cynthia Weil)과 함께 1950년대와 1960년대 팝의 고전을 제조한 전설적인 작곡가로서 라이쳐스 브라더스(Righteous Brothers)의 명곡 'You''ve lost that lovin'' feeling'과 형제 그룹 핸슨(Hanson)의 'I will come to you'을 작곡했다. 1977년도 캐나다판 그래미상인 주노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작곡자와 남자 가수상을 수상하면서 1970년대를 마무리했지만 이렇게 큰 성공은 그에겐 심리적인 부담으로 작용해 이후 10년 동안 5장의 앨범을 꾸준하게 발표했지만 이전의 성공을 추월하는데는 역부족이었다. 그 중간에 발표한 곡이 <람보>의 주제곡 ''It''s a long road''이었지만 영화의 성공과는 달리 이 노래는 주목받지 못했고 1987년 여가수 본다 셰퍼드(Vonda Sheppard)와 함께 한 'Can''t we try'가 6위에 오르면서 재기의 시동을 걸었다. 1996년에는 팝계를 휩쓴 셀린 디옹(Celine Dion)의 블록버스터 음반 <Falling Into You>를 짐 스타인만(Jim Steinman), 알도 노바(Aldo Nova), 데이비드 포스터(David Foster) 등과 공동으로 제작해 그 해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댄 힐은 스탠다드 계열의 가수들이나 재즈 보컬리스트로부터 짙은 영향을 받았지만 음악 전체적으로는 팝적인 색채가 강한 성인 취향의 어덜트 컨템포러리 음악을 추구하면서 1970년대 초반에 만개한 싱어 송라이터의 계보를 1980년대까지 이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