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이란?

2024. 9. 4. 11:46꿈속의까미노순례길

함박웃음방/자유게시판

2018-07-13 22:26:05


 

1. 산티아고는 누구인가

산티아고 순례길, 성 야고보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야고보가 복음을 전하려고 걸었던 길입니다. 9세기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되고 성 야고보를 스페인의 수호 성인으로 모시게 되면서 오늘날 순례길이 생겼습니다. 산티아고는 제베데오의 아들이며 신약 성서의 저자인 요한의 형으로 갈릴레아 출신의 어부였습니다. 7월 25일이 축일인 가톨릭의 성인이며 알패오의 아들인, 또 다른 사도 야고보와 구별하여 장야고보로도 불립니다. 우리에게는 성 야고보로 불리는 성인으로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자 베드로의 가장 절친한 친구였다고 합니다. 또한 그의 어머니인 살로메는 성모와 친척으로, 따지고 보면 성인과 예수는 인척 지간이 됩니다.

영어 권에서는 세인트 제임스(St. James)로, 불어 권에서는 생 자끄(Saint. Jacques)로 불리며, 스페인어 권에서 산티아고(Santiago)로 불립니다. 야고보 성인은 스페인의 수호성인이며 또한 니카라과와 과테말라의 수호성인이기도 합니다.

야고보 성인은 성정이 순직하고 신심이 강했다고 성경에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성인의 성정을 좋아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안타까워하기도 한 예수는 베드로 성인과 더불어 사도들 중에서도 그를 가장 신임하고 사랑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가 야이로의 딸을 소생시킬 때나, 타볼 산에서 변모할 때 그리고 게세마니 언덕에서 피땀을 흘리며 기도할 때 항상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야고보 성인을 자신에게 가까이 있도록 한 것으로 볼 때 추측됩니다.

성인은 서기 44년 빠스카 축일 전날, 헤롯왕 아그리파 1세에 의해 예루살렘에서 참수되어 예수의 12제자 중에서 처음으로 순교하게 됩니다.

성경에는 예수의 수난의 말씀이 끝났을 때 성인의 어머니인 살로메가 이렇게 간청하게 했다고 전해집니다. ‘주님의 나라가 서면 저의 이 두 아들을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예수는 그가 마치 자신을 따라서 첫 번째로 순교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마시게 될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느냐? 그 자리에 앉을 사람들은 내 아버지께서 미리 정해 놓으셨다.’ 성인이 순교한 날도 예수가 승천한 날과 같은 성 금요일로 예수가 마신 잔을 성인도 마시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2. 산티아고 길의 역사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자리 잡은 이베리아 반도는 대서양과 지중해에 둘러싸여있는 땅으로 사람의 주먹처럼 생겼습니다. 스페인에 가톨릭이 전해지기 시작한 것은 1세기 중엽 로마인들의 침략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 이전 사도 바울을 포함한 7명의 사도들이 포교를 했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본격적으로 스페인에 가톨릭이 알려진 것은 야고보 성인 때문이었습니다. 야고보 성인은 예수의 12제자 중의 한 사도로 복음서, 사도행전과 관련하여 중요한 역할을 한 사도입니다. 그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뒤, 유대 땅을 떠나 머나먼 서쪽 땅으로 선교를 떠나게 됩니다. 바로 로마 제국의 속주인 이스파니아(현재의 이베리아 반도)에서 포교하려고 여행을 떠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고보 성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신자로 만든 사람의 수는 극히 적었다고 합니다. 이에 성인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나 얼마 되지 않아서 헤롯왕 아그리파 1세에 의해 참수되어 순교했습니다. 그의 스페인 전도여행에 대하여 성경에 묘사된 것은 없습니다. 다만 유대의 헤롯왕에 의해 기원후 44년에 처형되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의 죽음은 성 루까가 로마에서 쓴 사도행전 12장 1절과 2절에 언급되어있습니다.

‘헤로데 왕이 교회의 어떤 사람들에게 박해의 손을 뻗쳐 우선 요한의 형 야고보를 죽였다’

< 야고보의-순교 >

전설에 따르면 헤롯왕에 의해 처형된 야고보는 제자들에 의해 수습되어 돌로 만든 배에 실려 스페인 북서쪽으로 향해 보내졌다고 합니다. 몇 명의 제자들이 그의 유해가 담긴 돌로 만든 널을 해변까지 나르자, 천사가 양 옆을 붙잡고 있는 돌로 만들어진 배가 나타나 그 널을 실었다고 합니다. 이 돌로 만든 배에는 노와 돛 그리고 선원조차도 없었다고 하는데, 그 배는 일주일 동안 지중해를 지나 대서양까지 나아갔다고 합니다. 배는 풍랑을 만나고 나서 로마 시대 갈리시아 지방의 수도였던 현재의 빠드론 지역인 이리아 플라비아에 닿아 기다리던 제자들이 시신을 수습했다고 합니다.

이를 통하여 성 야고보는 스페인의 수호 성자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게 됩니다. 성 마르코가 베네치아에 부를 주고, 성 안드레아가 비잔틴의 위엄을 상징하듯이 성 야고보는 당시 이슬람 세계와 접하고 있던 변경 지방인 갈리시아의 수호성인에서 스페인전체의 수호성인이 된 것입니다. 당시 갈리시아는 레꽁끼스따(Reconquista; 718년부터 1492년까지, 약 7세기 반에 걸쳐서 이베리아 반도 북부의 로마 가톨릭 왕국들이 이베리아 반도 남부의 이슬람 세력인 무어인을 축출하고 이베리아 반도를 회복하는 일련의 과정. 스페인어로 ‘재정복’이라는 말)의 열기가 고양되던 곳이어서, 성 야고보의 전설은 당시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 언제나 볼 수 있게 됩니다.

야고보 성인은 정치적으로 이슬람 세력과의 전쟁에서 주요한 명분이 된 것입니다. 전설 속에서 야고보 성인은 로그로뇨 근처 ‘끌라비호 전투’에서 백마 탄 전사의 모습으로 나타나 이슬람 군대를 향해 칼을 휘두르며, 이슬람교도의 앞을 막았다고 합니다. 야고보의 모습을 보고 사기가 오른 가톨릭 군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진격하여 승리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야고보는 평화주의자로서의 이미지를 가진 산티아고 뻬레그리노(Santiago Peregrino; 순례자 산티아고)보다 산티아고 마타모로스(Santiago Matamoros; 전사 산티아고)라고 많이 불립니다. 현재 산티아고 데 꼼뽀스뗄라 시청으로 쓰고 있는 라호이 궁전에 백마를 탄 야고보 성인의 기마상이 놓이게 된 것도 이러한 이유입니다. 그렇지만 용맹한 모습으로 백마를 타고 있는 성인의 모습과 발 밑에 떨어진 이슬람교도의 머리는 아이러니한 대조를 이룹니다. 9세기부터 가톨릭에서는 이슬람 침략에 대항하는 방법의 하나이자 북부 스페인 사람들이 이교도로 개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산티아고까지의 순례를 장려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의 홍보는 중세 마케팅의 결정체가 되었으며, 이후 순례자들의 숫자는 수백 년 동안 계속 증가했습니다. 특히 터키가 예루살렘을 점령하면서 순례 여행이 위험해지자 수많은 프랑스 신자들이 예루살렘 대신 산티아고 순례에 나섰다고 합니다.

1189년 마침내 산티아고 데 꼼뽀스뗄라는 교황 알렉산더 3세에 의해 로마, 예루살렘과 함께 가톨릭의 성지로 선언되었습니다. 또한 교황은 칙령을 발표하여 성스러운 해(산티아고의 축일인 7월 25일이 일요일이 되는 해)에 산티아고 데 꼼뽀스뗄라에 도착하는 순례자는 그 동안 지은 죄를 완전히 속죄 받고, 다른 해에 도착한 순례자는 지은 죄의 절반을 속죄 받는다고 대사를 선언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순례자들의 수는 12, 13세기에 가장 많이 증가 되는데 이 시기에만 약 50만 정도의 순례자들이 이 길을 걸었으며, 이때 순례 길을 따라 수많은 도시와 마을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이후 이베리아 반도에 가톨릭의 수복이 완료된 후 순례자 숫자는 점차 줄어들었고 20세기 중반에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순례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쇠퇴의 길을 걷던 산티아고 순례는 1982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으로서는 처음으로 산티아고 데 꼼뽀스뗄라를 방문하면서 다시 가톨릭 신자들의 대중적인 인기가 불붙기 시작합니다. 또한 1987년에 EU가 까미노를 유럽의 문화유적으로 지정하고, 1993년 유네스코가 까미노를 세계문화유산에 추가하면서 순례자들이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 1997년 파울로 코엘료가 발표한 <연금술사>가 세계적인 밀리언 셀러가 되면서 소설의 배경이 된 이 순례자의 길이 젊은이들의 문화 코드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3. 산티아고 순례의 현재

현재 대부분의 순례자는 프랑스와 스페인을 지나는 루트인 까미노 프란세스를 따라 걷습니다. 보통 까미노 프란세스는 피레네 산맥 발치의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출발하게 됩니다. 실제로 도보 순례자가 걷게 되는 거리는 산티아고 데 꼼뽀스뗄라까지 808킬로미터이며 피스떼라까지는 929킬로미터에 달합니다. 장거리 도보 순례인 만큼 개인차에 따라 짧게는 30일 길게는 40일이 걸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한 순례자들은 이 길의 일부분을 몇 년에 나누어 걷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산티아고 데 꼼뽀스뗄라에 있는 순례 사무국에서는 산티아고 데 꼼뽀스뗄라까지 마지막 100km 이상을 걸은 순례자에게 꼼뽀스뗄라(Compostela; 순례완료증서)를 주고 있습니다. 순례자 수는 야고보 성인의 축일인 7월 25일이 일요일이 되는 성스러운 해에 절정에 이룹니다. 지난 희년인 2010년에는 27만 명이 넘는 순례자가 이 길을 걸어 산티아고 데 꼼뽀스뗄라에 도착했습니다.

10세기의 순례자들은 대성당의 은으로 만들어진 상자에 담겨있는 야고보 성인의 유골에 기도를 올리기 위해 강도와 늑대들의 위험을 감수하고 이 험한 순례 길을 걸었습니다. 또한 야고보 성인의 전설이 있기 이전 고대 켈트 족도 은하수를 따라 비아 락테스(Via Lactes)라고 불리는 이 길을 태양이 지는 피스떼라의 태양신전을 향해 걸었습니다. 당시 피스떼라는 세상의 끝으로 알려져 있었고, 사람들이 육로로 여행할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었습니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일본의 순례자들이 가장 많았으나, 국내의 순례자도 해마다 늘어 2005년 14명에 불과했던 한국인 순례자의 수가 공식적으로 2007년에는 이미 일본을 추월해서 449명, 2008년에는 915명, 2012년에는 2,493명, 2013년에는 2,774명의 한국인이 이 길을 걸어 산티아고의 순례자 사무실에서 꼼뽀스뗄라(순례 완료증서)를 받았습니다.

현대의 순례자들은 산티아고와 피스떼라까지 여러 가지 다른 이유 때문에 도보로 순례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인이 잠든 성스러운 도시까지의 순례라는 종교적인 이유로 걷고, 또 다른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벗어난 휴식을 원해서 또는 좀 더 단순한 삶의 방식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순례 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2013년 순례자 통계

< * 위 통계는 2013년 순례를 마치고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 순례자 사무실을 방문한 순례자를 대상으로 한 통계입니다. >

산티아고 순례 길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길’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여행, 특히 장기간의 도보여행에는 어느 정도 위험요소가 따르게 됩니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여행의 첫 번째 원칙 ‘조심’을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만일을 위해서 모든 순례자들에게는 공항에서나 떠나기 전 어디에서나 기일에 맞춘 여행자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좋습니다. 실제로 순례자들이 지나는 스페인 북부의 작은 마을들은 대부분 순례자들로부터 나오는 유로화가 수입의 한 축을 차지하기 때문에 순례자들에게 너그럽고 친절합니다. 그렇지만 순례자들은 까미노를 걸으면서 몇 군데 대도시를 거치게 됩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대도시에서는 구걸을 하는 걸인도, 소매치기도 혹은 강도나 도둑도 있습니다. 대도시에서는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또한 순례자들은 교통사고에 특히 유의해야 합니다. 순례자들이 지나는 길은 대부분 차들이 많지 않은 비포장 시골길입니다. 도시에 들어서면 순례자는 소음과 혼란에 당황해서 교통사고를 당할 확률이 높아지게 됩니다.

그렇지만 주의를 하되 불안에 떨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중세의 까미노는 순례자를 노리는 도둑과 강도, 통행세를 받으려는 영주들과 욕심 많은 여관주인 그리고 늑대로 넘쳐나는 곳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현재의 까미노에는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는 목동과 호기심 많은 아이들 그리고 순례자에게 간식과 물을 건네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만약 길을 가다 신변의 문제가 생기면 침착하게 주위에 있는 현지인이나 동료 순례자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좋습니다. 중세에 순례자를 지키던 백마 탄 템플기사단을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까미노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 예상하지 못한 영적 체험을 한 순례자는 차고도 넘칩니다.

중세시대부터 있던 늑대는 아직도 순례자들에게 문젯거리입니다. 시골길에서 마주치는 목줄 풀린 늑대를 닮은 개들이 있습니다. 보통은 온순하나 가끔씩 사납게 짖어대는 개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세워야 합니다. 도망가지 말고 조용히, 눈을 마주치지 말고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나무로 만든 튼튼한 순례자용 지팡이나 등반용 스틱을 가져가기를 권해 드립니다. 또 다른 늑대는 젊은 여성 순례자에게 접근하는 스패니쉬 마초 청년, 과도한 스킨쉽을 해오는 노인, 동료 남성 순례자들입니다. 보통 이런 젊은 외국 남성들의 행동은 단순한 호기심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론 까미노에서 만나 짧은 연인이 되는 남녀를 종종 보게 되기도 합니다. 지나친 과민 반응은 자신의 순례 길을 더욱 지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세부터 까미노에는 순례자의 지갑을 노리는 술집이 있었고 아직도 대도시와 일부 시골 마을에는 남성 순례자를 유혹하는 야릇한 술집이 성업 중입니다. 까미노에서의 호기심은 길 자체와 그 길을 걷는 자신에게만 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매일 밤 와인의 달콤한 유혹을 적당한 선에서 뿌리치는 것이 현명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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