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rgos에서 Hornillos del Camino로 가다

2024. 9. 2. 12:04꿈속의까미노순례길

Burgos(부르고스)에서 Hornillos del Camino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21.0 km (5/15 2018 14번째날 )

 

절망의 언덕을 넘어선 사람의 여유로움이란

모진 비바람의 풍랑에서 사투를 벌리며 돌아온 항구의 안온함일까

황량한 사막의 한복판에서 만나는 기이한 오아시스의 푸르름일까

Burgos의 Municipal Albergue는 멋지고 우아하였다

그리고 한껏 평안하고 평화로운 밤을 보낼수 있었던것은

스페인의 대표 명물로 손꼽히는 부르고스 대성당을

지척에 두고 함께 호흡하고

잠들수있다는 들뜬 행복감이었을것이다

 

스페인 사람들의 혼령을 쏱아 부어 만들어진

예술혼이 깃들인 장엄한 건축물들은

하늘의 영역을 넘나들며

그들의 간절한 신앙의 정신을 담아낸

신성한 작품들로서 그모든 작품들 마다

순례자들에게 한없이 감미로운 명상의시간이 되고

할말을 잃고 매료되게 하는것이었다

 

부루고스 시내로 이어지는 거대한 공원의 풍광은

하늘나라의 정원을 연상케하는

청정함을 간직한 거대한 자연생태공원이었다

이나라사람들의 행복한 삶이 녹아있는

평화와 사랑의 공간이었다

행복한 사람들의 숨결이 살아숨쉬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숲속을 가득히 메이리치고 있었다

공원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뚝방길 넘어

작은 시냇물이 넘실거리고

사람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천연그대로의 숲속에는

이름모를 생명들이

살아숨쉬는 평화로운 삶의 터전이었다

 

숲길을 걷는내내 행복한 순례자가 되고

선생님을 따라 일열로 서서 조잘대고 걸어가는 아이들과

체험학습 나들이에 나선 중고등학생들의 자유분방한 모습들은

무리를 이루고 지나가는 싱싱한 들꽃들의 잔치를 보는듯 신선하다

 

마구마구 즐겁게 행복하게 그들을 카메라속으로 유인하기도 하였고

그러한 순례객들의 짓굳은 표정과 요구에도 환호성을 지르면서

즐겁게 응대하고 줄지어 걸어가는 아이들이 예뻐서 어쩔줄몰라했던

소중한 시간들...

이것은 이우주가 아름다운 생명체라는것을 소리쳐 외치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그넒은 숲속의 나무 그늘의 벤취에는

현지인들의 평화로운 산책과

그들의 정다운 삶이 그대로 녹아 있었고

순례객들과 눈이 마주치는 이들마다

다정한 미소를 머금고

순례객들을 환영해주며 지나간다

 

그리고 숲길이 끝나는 곳에서 만나게 되는 부루고스의 모습은

아름답고 웅대하여 말할수없는 감흥에 사로잡히게 하는것이다

스페인 사람들의 독특한 석조 건축물들이 이곳에서도

최신형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며 아름답고 화려하다

관공서 건물앞에 자리잡은 분수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며 오색찬란하다

자동차와 사람들이 넘쳐나는 네거리를 지나고

몇시간씩이나 함께 걸어왔던 강물이 다리밑으로 사라질때

부르고스 산타마리아 대성당을 만나는 감격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그감격을 무엇으로 다 표현할수 있을까

예로부터 이곳에 존재했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은

돌로 지어지고 단순 명료한 우아함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시대가 흐름에 따라서 프랑스에서 들어오게 된 고딕양식의

화려한 건축양식이 추가되고 수놓아지면서

거대한 예술의 세계는 엄청난 변화의 발전을 가져온것으로 보인다

 

이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서

하느님 사랑을 표현하고

그사랑에 보답하는 인간들의 순수한 사랑과 열정을 담아내는

거룩한 예술혼은 사람들을 감격하게하는것이며

그감동의 순간들을 매일같이 되풀이 하는것이

이곳 부르고스 대성당의 자랑스러운 일상인듯 싶었다 !

 

내가 이곳에 이르르게 되었고

이귀한 역사를 함께 호흡하고 느낄수있다는 것은 얼마나 복된 행운인가 !

어느덧 어둠이 깊어가고 잠이 들었는가

밝아오는 새벽이 어둠을 걷어가는 시간에 알베르게를 나선다

어제 만났던 그자리의 거대한 부르고스 성당을 다시 만나고

돌아서서 다시 보고 아쉬워하며 뒤돌아보는 꿈결같은 시간이 흘러간다

사람들은 저마다 그새벽의 아침 광장에서

이곳을 잊지 않을려고 사진을 찍으면서 어절줄 모르고 기뻐한다

 

부르고스 성당앞에서 다시 만난 아르헨티나 친구는

나를 다시 만나게 된것이

너무나 감격하여 눈물을 흘릴듯이 반겨준다

나또한 얼마나 기쁜일인가 !

 

어제와 오늘 어찌하여 그렇게 이곳 주위를 뺑뺑 돌아기면서

잠못들고 부르고스를 얼사안고 춤을 추고 있는것일가 ?

그것은 다시보고 또 보아도

그전경이 너무나 멋지고 아름다워서일것이다 !

이토록 아름다운 정성으로 다듬어지고

수백년 동안 멈춤없는 기도를 통하여

생명을 불러넣어 지은 웅대한 부르고스 대성당을

지나오면서 안녕을 고해야 하는 마음은

아쉬움으로 가득해지고 있었던것이다 !

 

황량한 벌판 메세타 고원에 홀로 서게 되면

절해 고도의 망망대해에 위배된 죄인의 모습처럼

뻐를 깍는 외로움과 마주하고 걸어야 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밝아오는 새벽 어둠이 드리운 마을길을 벗어나고

먼저간 이들의 먼 그림자가 나의 이정표가 되기도 하는

까미노길의 아침은

발아래 펼쳐지는 작은 돌맹이들과

어느곳에서나 발견되는 야생화들이 벗이되고 친구가 되어준다

바람은 날마다 내가 앞서가도록 나를 떠밀어 주는것일까

오늘도 변함없는 따가운 햇살이 등뒤에 따라오는가 하면

멀리서 들리는 뻐꾸기 울음소리는

통역이 필요없는

세계인들의 유일한 공통언어라는것을

일께워주면서 저마다 다른언어로 말하는

순례객들을 미소짓게 하기도 하는것이다

 

부루고스에서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까지는

20km가 안될정도로 짧은 거리이지만

이제로부터 남들에게 뒤떨러져서 걷는것은

마음이 허락하지 않아서 발걸음이 빨라진다

방이 없어서 다음 마을로 가야하는 불상사를

나는 다시는 겪고 싶지가 않아서일것이다

부르고스의 출발점은 Burgos University 캠퍼스를 지나서

산 마르띤 아치를 통과하고 오래된 레이의 병원(Hospital del Rey)과

산 아마로 소성당(Ermita de San Armaro)을 지나 철길을 건너간다

왼쪽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뒤로하고 농로를 따라 걷다가 보면

비얄비야 데 부르고스 까지는

아르란손 강의 비옥한 농지와 숲길을 걷는 기분좋은 산책길로 이어진다

어느덧 현대적인 보행자 육교에 도착하면 오랫동안 따라다니는 고속도로와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까지 이동하는 고속도로가 이어지는 분기점을 넘어간다

이제 순레자들은 까스뜨로 산의 발치를 지나

아르소비스뽀 다리(Puente del Arzobispo)를 통하여

아를란손 강을 건넌 후에 첫번째 마을 따르다호스를 만나게 되는것이다

 

아르소비스뽀 다리는 알폰소 6세가 적을 추격할때 말이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는

전설로 유명한데 심플하고 멋스런 중세의 다리이다

순례자들은 17세기의 교차로를 통하여 따르다호스에 들어가게 된다

마을 중심도로인 마요르 광장을 통과해야 하는데

로마시대의 옛성터에서 고풍스런 기원을 엿볼수가 있는것이다

 

다음 마을인 라베 데 깔사다스까지는 2km 거리이며 우르벨 강 (Rio Urbel) 다리를

건너면 바로 라베 데 라스 깔사다스 마을에 도착한다

튼튼하게 지어진 오래된 집들 사이 도로를 따라가면 순례자들에게

차가운 물을 제공하는 샘터가 있다

굉장히 고맙고 아늑한 휴식을 즐길수가 있는것이다

그곳에서 13세기에 만들어진 산따 마리아 성당을 만날수 있고

마을의 중심을 지나면 공동묘지와 함께 모나스 떼리오 성모 성당이 있는데

그곳을 빠져나오면 오늘의 목적지인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에 이르게 되는 황무지 고원지대가 기다리고 있는것이다

 

오늘은 고원의 적막한 순간들과 만나고

나를 알아 보고 기뻐해주는 사람들과 사진을 찍으면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만끽하기도 하였다

어떤분은 가다가 다시 돌아와서

엄지손을 치켜세워주는 기쁨의 순간을 보여주기도 했던 까미노길은

나에게 가슴 뜨거운 사랑으로 감사함이 넘치게하는 날이기도 하였다

 

라베 데 라스 깔사다스는 아를란손 평야에 위치하는

시내가 흐르는 중세 분위기의 곡창지대의 작은마을이다

라베 데 라스 깔사다스는 언제 지어졌는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라베(Rabe)라는 마을 이름의 유래는 스페인에서 유대인들이 추방당하기전

이곳이 유대인들의 마을이었기 때문에

랍비(Rabi:유대교스승)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는 말도 있고

 

축구 포지션으로 우리들에게 친숙한 리베로(Ribero:둑)라는

단어에서 나왔다는 말도 전해진다

라베 데 라스 깔사다스에는 내가 좋아하는 13세기에 만들어 졌다는 고딕 양식의

산따 마리나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 de Santa Marina)이 아름답게 건재하고 있었다

또한 모나스떼리오 성모 성당 (Ermita de Nuestra Senora Monasterio)이

모나스떼리오 성모상을 보존하고 있어서 순례자들에게 귀하고 아름다운 성소가 되는곳이다

 

어제는 막내 희에 대한 명상으로 오늘은 첫째딸 윤이에 대한 명상의 날이 이어졌다

우리 윤이에 대한 생각만 하면 나는 언제나 가슴이 아리고 아팠었다

빚진 죄인의 마음이라고 할까

 

다른 아이들도 물론 그러하지만 이아이에 대해서만은

내가 성숙된 인간으로서의 어른 노릇을 못했었다는 자책감으로 늘 마음이 아픈것이다

한때 나는 내 삶의 견딜수 없었던 고통 때문에 모든것을 정리하고

이아이들도 나로부터 정리하고 싶었던 절박했던 때가 있었다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것은 무엇일까

먹을수 있는 음식물과 따뜻한 잠자리와

정신을 성숙하게 하는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일것이다

그리고

외부로 부터의 침입을 막아주는 튼튼한 보호막이 되어주는

가정이라은 이름의 울타리가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참된 삶의 요소가 될것이다

 

나는 내아이들을 지키는 울타리가 될수가 없었다

나는 힘이 모자라고 대항할 능력이 없었다

나의 목숨도 늘 위태로운 환경속에서

인간세상의 기틀이 되는

가정을 이루고 정상적인 삶을 지탱할수가 없었던것이다

 

죽음의 공포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몸과마음이 피폐해지고 만신창이가 되는것이다

고뇌하는 무서운 시간을 감내하면서

오직 그 어둠속에서 벗어나기만을 간절하게 바라는

나의 결정은 큰아이 시집보내기 였었다

그어이없는 결정의 여운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였는지

말하고 싶지는 않다

 

결혼이란 그러하다 모두가 축복이라 말한다

생명이 태아나는 생일을 축복이라고 말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결혼이 모두가 축복이 될수가 없는것이다

이세상에 나처럼 말하는 사람을 만난적도 본적도 없지만

나의 결혼도 축복이 아닌 악연의 고리를 타고

45년이란 기나긴 세월동안

알뜰하게도 나의 삶을 하루도 평화로운 날없이

이 아름다운 세상을

나혼자 지옥속을 헤메이게 하였고

방황하고 울부짓게 하면서 살게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세아이들을

내가 통째로 부양하는 무거운 책임도 나의 것이 되었으며

가정경제을 해결하는것도 나의 책임이 되었던것이다

육남매중의 둘째인 내남편의 부모님께서

집을 팔아서 막내 아들집으로 가셨다가 전재산만 털리고

어느날 길바닥으로 쫒겨났을때

그분들을 모시게되는 7년동안의 책임도 나의 것이되었다

인간의 사람됨의 품성이란

학벌이 말해주는것도 아니며 사회적인 직위가 말해주는것은 더욱 아니더라

 

이나라에 처음 신의학을 접목시켜준 것은 선교사들의 입국을 통한 연세세브란스이다

조선말기에 이곳에 들어가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가 되신 시아버지

육남매를 낳으시고 사셨지만

그당시 3류공대를 나온 내 남편이 대학을 졸업한 유일한 존재였다

첫째 셋째 아들 모두 지금도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시껄렁한 대학에 돈내고 이름만 걸어놓고 왔다갔다하는

청강생출신이고 고졸이 그들의 최종학력인것이다

위로 모두 누이들은 어떠한가 ?

세여성 모두가 최종학력이 고졸이 전부이다

그러하다면 나의 아버지는 의사도 아니고

내가 어릴적에 이미 세상을 떠나신 분이셨지만

나의 제일 큰 언니는 그당시 춘천사범을나왔었고

나의 둘째 언니는 전쟁통에 국민학교 4학년이 최종학력이되었다

아들을 염원하셨던 아버지의 바램으로 다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우리 셋째언니는 나보다 한살위로서

학교의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무학대사인것이다

그리고 나는 강제적으로 타의에 의해서 개가를 하신

나의 어머니가 낳으신 남동생의 대학 진학을 위해서

대학을 포기했던 고졸이 나의 최종학력인것이다

내가 고졸학력인것이 어쨌다는것인가?

내 아버지가 비명에 돌아 가신것이 어쨌다는것인가?

도대체가 그잘난 의사집안의 아들 딸들이

고졸학력의 나보다 무엇이 그리 잘난것인가 ?

나보다 잘났다고 함부로 말할수있는 형편이 전혀 아닌것이다 !

 

결혼하는것에 대해서도 그랬었다

내남친의 친구였던 이사람이 나에게 청혼을 했을때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던 일이라서 깔깔 대고 웃었던것이다

7년동안이나 친구로 지낸것이다

이웃으로 살기도 했었다 나는 이사람의 큰 누이도 잘알고 지냈었다

 

그결혼의 말이 오고갈때 큰누이가 나를 시댁으로 불러서 갔을때

시댁의 모든 식구들이 모여 있었고

그것이 결혼 승락의 자리인것을 알고 당황스러웠었다

내가 아주 좋아서 덥석 먹이를 삼킬것이라고 생각한것같았었다

 

나는 비록 그집안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보잘것없는 신분일지라도

제일 큰 시누이가 나를 초대한 자리에서

가장 윗어른이신 시아버지 되실분께서 "이결혼은 안된다 "고 하셨다

 

내가 지난날 사귀었던 남자 친구의 어머니께서 반대를 하셨기 때문에 헤어졌었다

그러하기 때문에 나는 천하의 제일가는 의사집안이 아니라

떼부잣집이라 할지라도 나를 거부하는곳에는 결코 발을 들여 놓을수가 없는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집안에서 한사람이라도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도 그러한 결혼은 못합니다"

 

그렇게 나는 어린 나이에도 남다른 당돌함과 결단력을 가지고 있었고

내가 그들에게 구걸하고 밀리는 그러한 결혼같은것은 결코 할수가 없는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알게된 일이지만 큰누이의 무서운 계략에 내가 말려든 결과가된것이다

 

어릴적에 딸을 시집보내면서 어른들은 입하나를 던다고 말씀하셨다

가난이 뼈에 사무치는 시절이라서 딸을 시집보내는것으로 먹을것을

아끼게 되는 경제효과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던것이다

결국 직업없이 놀고 있는 동생을 친정집에서 한사람이라도 없애버리려는

골육지책으로서 큰시누이가 나를 선택하고 일을 꾸민것이었다

 

나는 1972년 1월 30일 명동의 거구장에서 약혼식을 하였고

그해 4월 29일 종로예식장에서 결혼하고 광장동에서 신혼생활이 시작된것이다

 

사람이 도둑을 맞을려면 개도 짓지 않는다는 옛말이 있는것이다

그가 학교다닐때 학과의 학회장을 하면서

그사람의 친구들도 내가 모두 알고 지냈기 때문에 그사람의 술버릇이

그토록 큰 질병의 수준이라는 것을 감지 할수가 없었던것이다

 

내가 그사람과 결혼한것은 진실한 삶의 맹세가 되는것이다

그러나 그사람이 나와의 결혼을 결정한것은 생활의 방편에 불과했던것이다

 

그당시에는 강남이 아직 형성되기 전이고 집을 팔고 사는것을 하루에 몇번씩

등기이전없이 매매가 되는 시절이라서 나는 내가 전세들어살던 자금으로

부동산을 사게되는 사고 파는 것을 통하여 작은 연립주택을 소유하고 있었던것이

내인생의 크나큰 불행을 초래하는 무서운 감옥이 될줄은 꿈에도 몰랐던것이다

 

그당시 우리 시댁의 사정이란 참으로 암울한 것이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근사한 모양으로 표장된

병원집의 내막은 다른 사람들은 전혀 알수가 없었던것이다

아버지가 의사이고 밥술이나 먹는다 치더라도 아들셋이서 직장없이

30대의 나이로 집에서 방바닥이 닳아 빠지도록 등짝을 붙이고

붙어 살면서 부모님의 속은 썩어서 문드러지는 지경이었던것이다

그리고 큰 아들은 사회생활을 할수없는 사회부적응자로서 결혼하여

아들이 둘이나 있는 가장임에도 아내에게 쫒겨나와 집에서

기거하면서 시시때때로 시댁으로 돈을 뜯으러 오는 아내의 친정 가족들에게

시아버지와 큰아들은 언제나 호된 봉변을 당하면서도 속수무책으로 지내는 처지였던것이다

큰 며느리인 그여자 때문에 시댁은 집을 세번씩이나 팔아서

그녀에게 생활자금과 독립자금을 상납했던것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조금있으면 다 털어먹고 다시 나타나서 온갖 행패를 부려서

시아버지께서 할수없이 그들에게 매달 생활비를 대어주고 살고 있었던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집을 팔아서 큰아들을 길바닥에 버리고 도망치듯이

막내아들 집에갔다가 2년도 함께 살지 못하고 길거리로 내쫓기게된것이고

그것이 내가 부모님을 모시게 된 동기가 된것이다

내가 절대로 안된다고 말하면 아무도 말할 사람이 없음에도

그당시 나스스로 성당을 찾아가서 믿게된 신앙 때문에

그신앙의 요구 때문에 그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집 근처로 이사를 오시겠다는 부보님을

오지말라고 참아 내칠수가 없어서 그대로 받아들였던것이다

그러나 그결과는 너무나 참담한것이었다

 

그때까지 큰누이 한사람만 성당에 다녔었다

나때문에 남편과 3남3녀의 형제자매와 시부모님까지

전가족 모두 카톨릭신자가 된것이다

 

나는 카톨릭에 입문하기 전에도 교과서대로 사는 사람이었다

그러한 성격의 사람이 신앙에 접목되었을때에는

하느님과의 약쇽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게 되는것이다

 

내가 부모님을 받아들였던것은 남들에게 칭찬을 받고자 함이 아니었다

부모님을 모신다고 하여 남편의 술버릇이 없어지는것은 더욱 아니었다

시부모님께서 우리둘째가 고3수험생일때 그해 2월에 이사를 오셨다

나는 수험생 딸을 돌봐야하고 나의 생활경제를 책임져야하는

고된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시모님께서 돌아가실때까지

5년동안 잘해 드릴수는 없었지만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 남편의

온갖 폭행에 시달리면서도 죽을힘을 다하여 부모님을 모신것이다

그러나 그모든 나의 진실했던 마음은 휴지조각이 되었다

 

그것을 뒤집은 사람은 내남편이었다

날마다 말끝마다 "너가 우리부모님에게 한것이 무엇이냐"고 하면서

수습이 될수가없는 난동으로 이어지고 "너같은것은 이제 필요가 없다"는것이다

 

이남자가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나를 내친것은 성당 자매님들 때문이었다

남편을 통하여 시부모님의 존재가 알려지게 된것이고 성당의 자매님들이

봉사한다면서 시부모님집을 드나들게 되면서

이남편이라는 남자가 "너같은것은 필요없다"고 결정타를 날리게 된것이다

시부모님 댁에 드나들던 여성들은 성당의 수많은 봉사단체중의 하나였는데

그녀들이 시부모님집에 드나들면서 설거지도 해주고 벗이 되어 이야기도 해주고 하니까

완전하게 신바람이 나서 나를 미친개 내어쫒듯이 하여 발길을 끊게 하였던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정해진 날에 매일 오는 여성들이 아닌것이다

그녀들이 가정생활을 하면서 자신들이 할일을 다하고

남은 시간을 이용하여 오게되는 봉사활동인것을 계산하지 못했던것이다

 

처음에는 날마다 여러사람이 오고갔지만 나중에는 한사람도 오지 않는

불상사가 생기고 똥오줌으로 난장판이 되었을때는 어쩔수 없으니까 나를 부르는것이다

그당시 나는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로 이사를 갔기 때문에

남편이 음주운전사고로 인하여

면허가 취소되어 아파트 땅바닥에 세워둔 남편의 자동차가

내차지가 되어서 그것을 몰고 일하러가고

아침 저녁으로 우리집에서 올림픽대로를 타면 10분 거리에있는

시부모님집을 오가면서

시어른들을 돌보면서 일하러 다녀야하는 힘든 상황속에서

어느날인가

성당의 봉사단체 자매님과 시부모님 집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그녀는 나를 향해서 상사가 부하에게 하는식의 어처구니없는 말을 거침없이 하는것이었다

 

그녀가 나에게 한 말과 행동은 모든것이 남편에게서 비롯된것이었고

내가 그녀와 시비를 가린다는것은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모욕이며 슬픔인것이다

 

내가 왜 죄인인가 내가 왜 그녀에게 타이름의 대상이 되어야하는가 ?

내가 왜 시부모님들을 저꼴로 만든 장본인이 되어야 하는가 ?

 

나는 그녀들 무리들에게 이끌려서 성당앞에 있는 찻집에 끌려가서 "빨간팬"이라는

다단계판매에 강제로 가입되게하는 수치스러운 굴욕을 당하기도 했던것이다

 

남편이라는 남자로 인해서 내가 생판 모르는 여성들에게

인권 유린적인 모욕과 무차별적인 하대를 당한다는 것은

내가 더이상 지탱해갈수 없는 인내의한계점에 도달하게 되었던것이다

 

내가 그녀들을 상대로 내 가정 생활을 말하고 설명한다는것은

더욱 용서 못할 나자신에 대한 모욕이 되는것이다

 

나는 그이후로 성당에 발을 끊엇다 피눈물이 나는 후회였다

하느님과의 약속을 결코 지킬수가 없는 나는 악독한 사람이 되었던것이다

내가 교과서대로 사는것이 얼마나 웃기는 짓인가 ?

 

내남편이라는 이남자는 지금은 돌아가신

유명하신 김정수 신부님도 속여 먹었었다

어느날인가

신부님께서 나를 부르신다는 전갈을 받고

성당으로 신부님을 뵈러 갔을때에

"왜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데 일을 하러 다니는가 ?"

하시면서 나를 강한 어조로 문책을 하시는것이다

나는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아무말도 못하다가

그랬다 "신부님 트릭입니다"

신부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는 나를 빤히 바라보시다가

아무말없이 일어나서 나가셨던것이다

 

그렇다

트릭(Trick)이란 남을 속이기 위한 비열한 숫법의 사기이고 간교한 책략인 것이다

이 남자의 사기술은 천부적인것이었고 천부적으로 탁월한 자신의 이러한 사기술로

다른사람을 속여 먹는것에 대하여 엉뚱한 자부심을 느끼고 사는 남자였던것이다

 

내가 너무나 멍청한 사람이기 때문일까 진정한 바보여서 그런것인가

나와 결혼하여 살고 있는 이남자가 밖에나가서 나에 대해서 남들에게

전혀 이해가 가지 않은 거짓말을 하고 다닐줄을 정말 몰랐던것이다

남들이 내 남편의 말을 듣고 나에게 테러를 행하는대도 그것을 의심할줄 몰랐던것이다

 

1980년은 전두환 대동령의 언론통폐합이라는 국가의 엄청난 혼란의 시기였었다

한마디로 나라가 온통 뒤집어진 상태에서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이 많았었다

 

나는 내남편이 언론사에 종사하다가 하루아침에 직장이 없어져서

거리를 헤메는 고급한 사람은 아니었다 ~ !

내남편이라는 사람은 결혼을 하고 10년 동안 직업없이 살면서

친구랑사업한다면서 내 수중에 있던 모든 돈을 알뜰하게도 날렸고

그동안 아이들은 셋으로 불어나 있었는데

잠실의 작은 아파트만 하나 남긴체로 알거지 신세가 된것이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일학년일때 어느날 인가

죽은듯이 누워있는 나에게

엄마 배고파 하면서 아이들이 외마디 소리를 지르는것이다

내가 물만 마시고 굶은지가 이틀이 지난것이니까

아이들 또한 제대로 먹지 못했고

본격적으로 굶은지가 하루가 지났으니까

배고프다는 그울음소리가

비명에 가까운 외마디소리인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저년은 어디가서 돈도 못빌려 온다 "

나의 이름이 저년이고 이년이고 또 다른 고약한 이름의

수도없는 무슨년이

나의 이름으로 돌변되어 불려지는것이 나의 이름이었던것이다

 

나를 보고 어디를 가서 대책없는 남의 돈을 빌오라는것인가

그동안 아이들 때문에 어쩔수없이 당하기만 했던 내가

이남자와 본격적으로 맞장을 뜨게 되는 엄청난 싸움이

벌어지게되고 5층 꼭대기 창문에서 떨어져서 죽을려고

시도했다가 무산되기도 했는데

그것을 알게된 이웃사람들이 그런말을 했었다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다시는 그런 생각을 하지 말아라

그곳에사는 어느부인이 부부싸움끝에 5층꼭대기에서

떨어졌는데 죽지를 않고 척추를 다쳐서 평생을 누워서 지낸다는것이다

 

병원집 아들인 내남편이 그날 집에 갔다가 오겠다면서

나갔다가 오후 늦게 집에 돌아왔는데 그의 손에는

검은 비닐 봉지에 아이들과 이틀을 먹을 수도 없는 쌀이

두대접 정도 들어있었던것이다

 

그당시의 우리아파트 작은방의 전세금이 백만원 하던 시절이었다

시아버지의 병원수입이 하루에 30만원이라고

자랑했던것이 머릿속에 각인되어있는것이다

내가 쌀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 돈을 달라고 하지를 않았었다

그런데 평생처음 쌀이 떨어져서 집에 간 아들에게 검은 비닐봉지에

2일 동안 먹을수도 없는 쌀을 어찌 보낼수가 있을까 ...

그쌀을 보내면서 얼마나 아까워서 부들부들 떨었을까 . . .

그분들은 왜 나에게 이런짓을 하시는것인가

도대체가 이해가 가지 않는 몹쓸 사람들이었던것이다

 

그당시의 이나라의 여성들이 가질수있는 직업이 무엇이겠는가

돈도 없고 배워서 간직한 전문저격증도 없다면

길거리로 나서야 하는것이다

나는 내아이들과 살기위해서 마지막 남은 작은 아파트 하나만은

절대로 팔아서 입에 털어 넣는 일은 할수가 없었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내가 길거리로 나서는 직업을 선택했던 것이다

 

요쿠르트 배달이 그시작이었다 처음 그일을 시작한 여성들은 아파트 계단을 뛰어오르고

뛰어 내리는 작업을 하루종일 계속 하다보면 체력이 소진하여 하열을 하는 여성들도 있는것이다

내가 일하던 그곳에서 만난 예쁘장한 젊은 여성은 나와 친하게 지내게 되었는데

어느날인가 아파트 바닥에서 일하지 않고 어떤 여자분과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는것을 보았었다

 

나보다는 몇달전에 요쿠르드 배달을 하게 된 이여성은 그당시 유명한 신문사에 근무하던 남편이

언론통페합으로 문을 닫게 되어 직업을 상실한 남편때문에 길거리로 나선 열혈 모범여성이었던것이다

그중년의 나이 지긋하신 여성은 그녀의 시어머니셨던것이다

 

그녀는 날마다 새벽같이 아파트 정문에 미리나와서 요쿠르트 케리어를 끌고가는 며느리를 따라다니시면서

요쿠르트 배달을 하지 말라고 통사정을 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시는것이었다

우리집안이 아무리 빈한하더라도 너를 요쿠르트 배달을 하게 할만큼 빈한한 가정이 아니라면서

며느리를 따라 다니는것을 보고 나는 땅바닥에 주저 앉아서 대성통곡을 하고 싶은 심정이 되는것이었다

 

지금도 언제나 그생각을 하면은 눈물이 나는것이다

사람은 이렇게 불행속에서도 행복한 사람으로 사는 복많은 여성이 있는것이다

취학전의아들 둘을 키우고 있었던 그여성은 아름답고 참한 품성이었다

 

이여성의 시어머니께서는 자신의 아들이 직업을 상실하여 실업자가 되었는데

그아들이 직업을 찾을때 까지 부모님들이 생활비를 보내주겠다고하시는것은

며느리를 험한일로 내몰고 못본체하는 야비한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것이고

그것은 자신의 사회적인 체면을 해치는 일이기 때문인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며느리에 대한 인간적인 도리를 다하시겠다는 어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계시는 희생과사랑의 마음을 보여주시는것이어서 무한한 감동을 받게되는것이다

 

말끝마다 잠재의식속에 병원집 아들이라는 괴기스러운 자부심이 심하게

들어내 보이는 내남편이라는 사람은 어이없은 공포심까지 발생되게 할뿐만 아니라

내인생의 암적인 존재이고 하늘이 내게 내리시는 천벌의 상징처럼 생각될때가 많았던것이다

박사학위를 받은 정신과 전문의도 내남편에게 속아 넘어 갔었다

법원의 위탁교육상담실의 전문교육을 받은 대학교수 카운셀서 담당교수도 속여 먹었던것이다

남편과 성당의 성가대활동을 함께 했다는 어떤 여성이

안면식도 없는 나에게 달려 들어서 머리채를 휘어 잡고 늘어지고

나의 부라우스를 젓가슴이 들어나도록 찢어버리고

폭행을 감행했던 사실등은 아무리 생각을 해도 불가사의한것이다

 

어떻게 하면 남들이 내남편의말을 믿고 일방적으로 나에게 달려 들어서

무차별적으로 폭행을 감행할수가 있는가 ?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고 그교활한 술수가 몸서리치게 분한 것이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남편을 알고 지내는 모든 사람들의 적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사람은 집밖을 나가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혀 다른 정보로

자신을 입력시키고 집밖에서는 전혀 사실과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었던것이다

 

존경받고 돈많은 병원집 아들이 여자를 잘못 만나서 집안이 망했다

나는 그병원집의 재산이 탐이 나서 이집의 남자를 사기쳐서 결혼한 악독한 여자인것이다

 

소설도 이런 소설이 없는것이지만 일부분은 사실인것이다

그래서 이남자가 쓰는 이소설은 아주 근거가 없는 소설은 아닌것이다

 

그주인공이 시아버지 병원의 간호조무사로 있었던 큰며느리인것이다

 

경북 의성출신의 중졸여성이 큰 아들과 결혼한 스토리를

내가 한것처럼 꾸며서 사람들에게 퍼뜨리고 정말인것처럼 슬픈표정을 짓고 사는것이다

 

더욱 가증스러운것은 시부모님들은 내가 소유하고 있던 연립주택 보다는 큰 개인 주택

한채밖에 없었는데 무슨 큰 재벌 행세를 하는것은 용서못할 추악한 짓거리인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연민의 정을 품게 만들고

자기집안의 돈이 탐이나서 사기 결혼을 한

그악독한 몹쓸 여자를 폭행하도록 유도하는

그끔찍한 혓바닥이 나는 너무나 가증스럽고 무서운것이다

 

자신은 그러한 사유로 인하여 불행하게 된것이며

병원집 아들이 출세하여 떵떵거리고 살고도 남을것인데

그여자때문에 나때문에 오늘날 이렇게 가엾은 남자가 되었다고

자신을 변명하여 말하면서

그들 무리속에서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순진무구한 선한 남성으로 대우 받으면서

멸시를 받지 않고 살려고 안깐힘을 쓰고 있는것이다

 

이것은 내가 꾸며낸 말일수가 없는 사실인것이다

이남자을 아는 모든 사람들은 나를 범죄인으로 알고 있는것이다

 

이남자가 정년퇴임할때 내가 절대로 안갈려고 했었는데 결국은 끌려갔었고

그자리에서 만나게 된 수많은 남녀 동료들이 나에게는 눈길 한번도

주지않으면서 깔깔 대고 나를 완전히 없는 그림자 인간으로 취급을 했던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무시당하는것을 노여워 하는것이 아니다

 

다른사람들에게

나를 완전히 범죄인간으로 입력시켜 놓은 이남자에 대하여

결코 용서를 할수가 없는것이고

이남자가

그많은 사람들을 사기친것에 대하여

절대로 그냥 넘길수가 없다는것이다

이것은 이남자가 죽는 그날까지 계속될것이다

 

심지어는 나와 함께 생활하고 함께 고통받았던 내아이들 까지 회유시켜서

나와 웬수가 되도록 이간질을 시켜서 중국에 가있엇던 막내가 몇년동안이나

나와 연락을 끊고 살았던것이다

그리고 그막내가 최근에 노란리본을 가방에 달고 다니다가

그것때문에 나와 의견충돌을 일으키고 집을 나가서 다시 연락이 두절되어 가슴이 아프다

 

나는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시댁이란 곳에서 돈을 한푼도 받은적이 없다

그잘난 병원집의 아들이라는 이남자는

내가 결혼할때 받았던 패물까지도 나몰래 훔쳐다가 팔아서 유흥자금으로 날렸던것이다

 

이사람이 사업한다면서 나의 돈을 가져다 그냥 쓰레기처럼 없앤돈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아무런 죄의식도 미안함도 없는것이다

그냥 지나간일은 절대로 입밖에 내면 안된다는 희안한 법칙만 존재하는것이다

오히려 내가 둘째를 가졌을때 남편이 장사를 한다고 하여 어쩔수가 없어서

집을 팔고 갈곳이 없어서 시댁에 잠시 들어가서 살았었는데

나에게 밥값을 요구하셨다 식모월급까지 나보고 주라고 요구 하셨다

 

내가 아이를 낳았을때도 미역 한올 사다 주신적이 없으신것이다

그당시 시댁에서 키우던 개가 있었는데 개가 새끼를 여러마리 낳아서

이웃집에 분양을 하셨는데 그 강아지를 먹이라고 하시면서

시어머니께서 남들은 아무도 명절때가 아니면 사서 먹지 못하는 소고기를 세근을사서

강아지 먹이로 주시는 것을 보는 나의 마음은 참으로 어이가 없는 슬픔으로 아득해졌었다

 

인간으로 태아난 사람은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아야할 것이라고 나는 어느 순간엔가

허공중에다가 강력하게 외치고 싶고

두고 두고 잊을 수없는 기억으로 남아서 지금도 나를 아프게 하는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낳은 아이들은

그집에서 기르던 개만도 못한것들이 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용서가 되지를 않는것이다

 

한국인들의 가장 편한 변명이 술 때문이다

법원의 판결에도 세계에서 가장 어이없는 무죄판결로

통칭되는 술이 취한 상태라서 고의성이 없기때문에

살인도 무죄에 가까운 형량의 선고가 내려지는 것이

몇년 전까지의 한국의 이해되지 않는 현실이었던것이다

 

45년동안 하루도 술을 안마시는 날이 없는 이사람은

몸이 이상이 왔을때만 술을 먹지 않는다

 

술을 먹은 상태에서 자동차를 운전하여

버스의 뒷꽁무니를 들이받아서 차를 폐차 시키는 사고을 치고

다시 차를 뽑아서 음주운전으로 횡단보도의 보행자를 치는

자동차사고를 쳐서

천만원씩 세번씩 변호사를 사서 승소 판결을 받았던것은

보기드문 판례로 기록되고 있다고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내가 포기 했었더라면 나의 집 전새산을 날리고

어렵게 구한 그의 직장도 날리고 영원한 폐인으로 살뻔했던것이다

 

첫직장 생활 3개월 동안만 나에게 월급을 수령할수 있도록 해주었고

두번의 자동차 사고 핑게를 대면서 그이후로는 빚을 갚아야 된다면서

절대로 나에게 평생동안 생활비를 한푼도 준적이 없는것이다

20년 정년퇴직 할때까지 절대로 나에게

월급받은 돈을 결단코 한푼도 준적이 없는것이다 ~~~ !

 

이러한 자신의 무지막지한 삶의 형태를 아주 정당하다는듯이

당당하게 표현하는 말이 있는것이다

 

"내가 매일 술을 마시기 때문에 집에와서 저녁을 먹는일이 없고

아침에는 술이 덜 깨어서 아침밥을 먹는날이 거의 없으니까

나 때문에 생활비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에게 월급을 줄 필요가 없다는것이다 ~~~ !!!

 

막내아들집에서 돈만 강탈당하고 길거리로 쫓겨나신

시부모님께서 우리집 아파트 근처의 작은 아파트로 이사 오신후에

남편이라는 사람이 내게 한달에 40만원씩 돈을 준것을 가지고

거지에게 무슨 큰 은혜를 베풀고 있는듯 거들먹거렸던 행동은 대단한것이었다

 

이남자가 자기부모님이 우리집 근처로 오셨을때 내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자기 스스로 한달에 40만원씩 5년동안 주었었다

시모님께서 돌아가시고 5년이후로 시부님께서 돌아가시기 까지

2년가까이는 나를 필요없다고 내치고

성당자매들과 부모님을 모신다고 하면서 나에게 돈을 주지 않았었다

 

아침저녁으로 언제나 술에 절어사는 아들과 심심하면 놀이삼아 들르는

성당 자매들을 믿고 큰소리치면서 시아버지를 모신다고 기고만장 하였던

이남자 때문에 시아버지의 마지막 고난의 시간이 얼마나 힘들고 무서웠을까

나또한 가슴이 아픈일이며 불시에 시아버지의 집을 방문하셨던 신부님께서

너무나 많이 절규하시면서 화를 내셨다는 뒷말을 전해들었다

그것이 내탓이라고 말할수없는 아픈 혼란을 겪었던 시간의 잔영들은

이제 분노가 되어서 내마음속을 폴폴 날아다니는 먼지가 되었다

하느님 죄많은 저를 벌하소서...

 

월급받아서 저혼자 통째로 쓰고 다니면서 부모님 용돈드리고

맛잇는것을 사드리는것을 보았지만

내가족을 위한 아내를 위한 음식을 사준 기억이 없는것이다

절대로 한번도 없는 이남자가 나를 폭행할때 마다

"내가 니x의 남편이다 "라면서

인간을 조롱하고 학대했던것은 용서가 불가능한것이다

 

잘대로 술을 먹지 않겠다고 본인 스스로 말한다

내가 술을 먹지 말라고 말한적은 결코 없는것이다

내가 먹지 말란다고 먹지 않을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몸에는 수없이 많은 그가 남긴 폭력의 흔적들이 지금도 눈앞에 선명하다

 

왼쪽 무릎의 디스크가 네조각으로 부러지게 폭행하여

대수술을 받고 몇달간을 걷지를 못했었다

그리고 아직도 남아있는 상처에는 철사가 남아있어서

그것이 어디에 부딪치기라도 하면 몹시 아프고 부풀어오른다

 

얼굴의 코뼈가 무너져 내린다든지 각목으로 머리를 처서 혼절 시킨다든가

기타와 부엌의 도마 소주병 등 집안에 있는 모든 뽀족한 물건들은

어느 한순간에 나를 폭행하는 흉기로 돌변되어

나의 전신에 문신을 남기는 이남자가 나의 남편이란다

머리를 수도없이 강타 당하여 찢겨지고 수술을 했던 흉터 때문에

미장원 출입이 자유롭지 못해서 고통받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한것들은 수치가 될수없는

뻔뻔한 나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런한 영광(?)을 이세상의 어떤 여자가 누리고 살겠는가 ? 하는식의

자기 아버지가 나를 치료해주는것

자기 아버지가 의사라는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것이었는데

그것은 시아버지의 병원에서 거지같은 나를 치료받게하는것 모두가

꽁짜임으로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 하는 시위로서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이해불가한 기상천외한 인간의 소행인것이다

내가 폭행에 못이겨서 집을 뛰처나가기를 바라는것이었다

나라는 인간 자체를 소멸 시켜버리고 싶었던것이다

여자가 자신의 집을 소유하고 산다는것이

이렇게 위험천만한 일이라는것을 누가 인식할수있겟는가 ?

그러나 나는 내집이기 때문에 도망쳐서 나갈곳이 없었던것이다

폭행이 이루어지는곳에는 언제나 또다른 이름의 폭행이 존재하는것이다

 

이렇게 비극적인 환경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가장 무서운 인질이 된다

아이들 때문에 꼼짝도 못하는 나에게 언제나 어느때 이든 간에

무소불위의 폭력을 마음껏 휘두르면서 자신이 남편이라고 날뛰는

짐승같은 인간의 손끝에서 나는 한순간도 벗어나지 못한체

너무나 오랫동안 억울한 폭행의 희생제물로 살아왔던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것을 파괴시키는 자가 나의 남편인것이다

우리집과 우리집안에 있는 모든 물건들도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함부로 박살을 낸다

집을 팔자고 해서 내가 동의를 하지 않았을때는

망치를 들고 온집안의 창문과 대문을 박살을 내기도 했었다

특별히 내가 아끼는 물건을 아작을 냄으로서

깊은 희열을 느끼고

속이시원하다 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는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부모님집에가서 그러한 이야기를 하면

부모님들께서도 속이시원하다고하셨다고

자랑삼아서 이야기를 하는것이다

 

무엇보다 무서운것은 내가 생명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내 아이들을 짓뭉게고 짓이겨서 못쓰게 만드는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저주와 악담으로 아이들을 극도의 분노로 이글거리게 만들고는

그어린 아이들의 정신영역을 파괴시키는 작업을 하는것을

목격할때마다

나역시 인간인지라 참을수없는 분노의 살기를 머금게 되는것인데

그렇게 무섭게 돌변하는나를 보고 섬뜩하였는가

내가 있을때에는 아이들을 조롱하고 학대하고 폭행하는 일을 하지 않았던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아이들이 성장하여 알게된 사실이지만

내가 일하러 나가고 없어진 집안에서 이루어지는 아이들에 대한 폭행은

소름이끼치는 위험천만한 경우가 많았음을 확인하고 절망했고 분노했었다

그가 의도하는 바는 너무나 잔인하고 사람이 아닌 짐승의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사람은 나를 마음 놓고 폭행하고

치료비 조차 없었던 그시절에 병원에 갈 내가 아니기 때문에

나를 강제로 택시에 태워서 자신의 아버지 집으로 끌고가서

나를 강제로 치료받게 하고 강제로 시아버지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하라고 소리치고 겁박하는것을 보란듯이 즐기는 인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쩔수가 없어서 "죄송합니다"를 되풀이 하게 되는데 시아버지께서는 그러신다

"왜 맞을짓을 했니? 맞을 짓을 하니까 매를 맞는것이다" 그러시는것이다

 

"큰며느리"라는 여자는 시아버지 병원의 간호조무사로 있었던 여자였는데

외간남자를 대동하고 나타나서 시아버지 병원앞 여관에 함께 투숙하고 있으면서

공갈치고 쌍욕을 할때는 아무런 말씀도 못하시고 돈을 뜯기시면서

유독 나에게만은 왜 그렇게 야속하게 하셨던것일까 ?

 

왜 나에게는 이토록 함부로 대하시는것일까?

 

그분의 아들인 내남편이라는 남자가 꼭 그러한것이다

시아버지 처럼 말이다

그리고 나를 지켜주고 응원해줄 부모님이

안계시다는것을 약점으로 언제나 나에게 함부로 하셨던것이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한없이 비굴한 이들의 습성은 나와는 정반대인것이다

이들이 나를 앞에 세워놓고 참을울수 없는 욕보임을 보인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들에게 분노하지 않으며 내 마음의 평정을 누릴수 있는 인간으로 살았던것이다

 

나의 주위에는 늙으신 어머니밖에 아무도 없기 때문에 마음놓고 기분 내키는 대로

나를 폭행하고 이세상의 최고 악질의 범죄자들이 저질르는 모든 범죄까지도

가정안에서 아이들이 보는가운데 아무런 죄의식없이 행해지고는 하였던것이다 !!!

 

그사람의 악행을 여기에 다 기록을 할수가 없다

그부분들이 참으로 입으로 말할수 없는것들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듣는이와 보는이들이 상처가 될수도 있기 때문에 여기에 옮기지는 않겠다 ~ !

내남편이라는 사람은 어떤말을 항상 즐겨서 이용하는 버릇이 있다

"부부관계란 아무도 모른다 두사람만이 아는것이다 "

이말은 내가 가장 분노에 떨게 하는 말이 되는것이다 ~~~ !

 

성서에 솔로몬의 재판이 기억될것이다

두여성이 한아이를 가지고 서로 자신의 아들이라고 주장을 한다

 

그래서 솔로몬은 형틀을 가져오게 하고

그아이를 반으로 갈라서 두여성에게 나눠주라고 말하게된다

 

두여성 중에서 그아이는 내아이가 아니라면서 외마디 소리를 지르는 여성을 향해서

그 아들을 넘겨주는 명판결을 내리는 솔로몬에 대한 유명한 구절을 누구나 알고 있을것이다

 

부부사이의 일은 아무도 모르는것이다 라고 감히 말하는

인간야말로 아주 흉칙한 거짓말을 하고 있는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잘못을 너무나 교활하고 간교한 속임수로

발뺌하면서 자신의 명백한 잘못을 남에게 뒤집어 씌우는 악랄함인것이다

 

무차별적으로 행해지는 폭행 보다 더큰 문제가 되는것은

자신이 아는 사람들을 교묘한 수단으로 이용하여

자신의 아내인 나를 테러하도록 하는것이었다

 

이남편이라는 사람이 자신이 성당에서 알게된 여자가 나를 폭행하게 한다든지

내가 운영하고 있는 가게의 이웃을 찾아다니면서 나를 모함하고 선동하여

나를 폭행하게 하고 오리려 내가 그사람을 폭행한것이 되게 하여

수백만원의 손해배상을 물어주게 한다든지

자기 동료를 시켜서 나에게 몹쓸짓을 하게단다든지 하는

범죄행각은 참으로 용서할길이 없는 고통스러운 분노가 되는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증명되는 기록에 나와 있는 괴기스러운 끔찍한 테러와 폭행이

일상적으로 상습적으로 이루어 지지 않으면 발작을 일으키고 울부짓는것이다

 

나를 때리고 짓밟는것을 못하게 하는것은

남편의 권리를 박탈하는것으로 생각하는것이다

나를 그토록 무섭게 폭행하면서도

남들에게는 너무나 비굴하게 말한마디도 잘 못하고 쩔쩔 매는것이다

 

학교다닐때 깡패짓꺼리하고 영창에 갈번한적이 수없이 많았지만

문제의 의사선생님이이신 시아버지가 돈으로 해결했기 때문에

"남을 때리면 영창에 간다"는것을 뼈속깊이 학습하고 있어서

나와 살고 있는동안에는 내가 해결해주지 않는다는것을 알기 때문에

술을 아무리 먹었다 하더라도 남을 때려서 사고를 치는일은 없었던것이다

 

그러한 점을 미루어 볼때 남편이라고 울부짓는 이남자의 나에 대한 상습적인 폭행은

언제다 고의적인 너무나 악랄하고 비겁한 범죄행위가 되는것이다

술때문이라고 하는것은 완전한 사기인것이다

 

대신에 이남자가 날마다 밖으로 나가서 남들과 만나면서

날 마다 싸워야 하는 이상성격으로 인하여

기분이 상하거나 자존심이 상하면 술을 퍼마시고

그 분노의 분풀이를 집에돌아와서 밤이 새도록 아내와 가족에게 쏱아내는것이다

지처서 몸서리가 처질때까지 밑도 끝도없은 분풀이의 악행은 계속되는것이다

이러한 악습은 큰형도 똑같은 것이고

그분풀이를 연약한 늙은 시어머니가 그대상이되고 있었는데

그럴때 마다 시아버지는 나의 남편이라는 둘째 아들을 불러서

잡고 있으라고 하고 큰아들에게 무지막지한 폭행을 가하게되는것이다

 

그러면 나의 경우에는 누구를 불러서 이미친 난동을 멈추게 할수가 있겠는가?

아무도 없는것이다 속수무책인것이다

그가 스스로 지쳐서 그만둘때까지 무한대로 진행되는것이다

 

내남편이라는 이남자는 병원집 아들로서

말할수 없는 엉뚱한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는것이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멸시하는 나쁜 버릇이 있는것이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이 출세하고 돈을 많이 버는것을

증오하고 미워하는 무서운 열등의식이 있는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잘못된

사람을 망가뜨리는 무서운 사고방식인것이다

내가 남에게 존중받기위해서는 내가 남을 인정하고

존중할줄 알아야 행복한 사람이 되는것이다

그것이 민주적인 사고의 기본정신이 되기도 하지만

인간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기본예의가 되는것이다

 

나는 이사람을 밖에 내보내고 남을 폭행하여

손해배상 물어주는 걱정을 해본적은없다

그러나 이사람이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면서 다른 사람으로 인하여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 없기를 기도하는것이 습관이 되기도 했던것이다

 

밖에서 기분이 나쁘면 그것을 밖에서 해결이 되지 않는것이다

그래서 무슨일이 있을때마다 일부러 술을 퍼 마시고 집에 와서

마음껏 폭행을 하고 행패를 부리기 시작하면 아무도 말릴 재간이 없는것이다

 

그분노가 완전히 풀릴때까지 지쳐서 쓰러질때까지

2박 3일은 짧은 기간이라고 할수도 있는것이다

어떤때는 일주일을 계속 하는 경우도 있는것이다

그것도 공휴일이 끼인 연휴동안에 집안을 난장판을 만들고

온집안 식구들은 잠을 잘수가 없게하고

나는 부모로서 아이들을 굶길수가 없으니까

그와중에도 밥을 해서 아이들을 먹여야 되는데 그러면

그 밥상을 뒤집어 엎는것이 그가 하는 일꺼리가 되는것이다

그리고 별짓꺼리를 다하다가 배가 고프면 부엌으로 나와서

짐승처럼 밥을 먹고

쉬었다가 다시 술을 퍼마시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그가 행하는 일상적인 푝행이며

그것을 반드시 해야하는일처럼 평생동안 가족을 괴롭히면서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변태적인 폭행을 지속시켜왓던것이다

 

그알량한 의사라는 시부모님들의 응원속에서

이남자은 언제나 하나도 잘못한것이 없는

완전무결한 개선장군이되어 있있고 자기멋대로의 폭행에

희열을 느끼는 너무나 멀쩡한 정신질환자인것이다

 

내가 부부싸움을 하게되는 원인 제공을 한적이 있는가?

나는 수없이 그것을 생각해 보았지만 그런적이 없는것이다

밖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에 의해서 자존심이 상했거나

열등의식을 유발하게 하는 사람을 만났을때

말로는 형용못할 욕설을 쏱아아내면서

가족을 인질삼아서 폭행하고 온가족에게 분노를 쏱아내는것을

날마다 보고있어야한다는것은 너무나 참을수 없는 분노와 공포가 되는것이다

이사람의 폭행에 대한 기록은 수첩마다 가득하고 빼곡한것이다

누구나가 부부싸움은 할 수가 있는것이다 부부싸움을 하지 않는것이 비정상인것이다

그러나 내가 45년동안 살아오면서

원인제공을 내가 했기 때문에 큰 싸움을 하고 고통받고 살아온것은 결코 아닌것이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오다가 택시운전사하고 대판으로 싸우다가

자신의 가방을 택시에 놓고 집으로 왔기 대문에 모든것을 잃어버린것이다

그것 때문에 집으로 돌아와서 강제로 술을 먹고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는가 하면

 

음악을 좋아하기때문에 USB에 내가가지고 있는 음악을 다운 받아 달라고 하여

열일을 제쳐두고 좋은곡을 선곡하여 다운받아 주었는데

 

음악이 좋다고 하면서

다음날 더많은 곡을 다운 받아 달라고 하여 또 그렇게 해주었었다

그러나 자신이 듣고 싶은 음악이 새로 다운받은 USB의 맨아래로 내려가서

새로 받은곡 다음에 나중에 나올것이라고 누누이 설명을 해주어도

아니라고 우기면서 시비를 걸었고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난동을 부려서

사람을 실성하게 만들고 큰 사고를 내기도 했던것이다

 

나중에는 지금 살고있는 아파트를 팔아서

돈을 내어 놓으라고 친구를 동원하여

나를 협박하고 폭행하고 흉기를 들고 위협하여

내몸에 상처를 입히는 사건으로 인하여

법원의 선고를 두번씩이나 받았었고

세번 받은 상태에서 이혼과 감옥행을 원치않은

나의 의사에 따라서 지금은 밖에서 생활하는 상태가 된것이다

 

이러한 이사람의 폭행의 이력은 지금의 나에게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닌것이다

그것은 이사람의 병적인 교활함이 너무나 무섭고 악랄한것이고

나는 괜찮지만

나의 아이들의 정신을 파괴시키는 후안무치한 무서운 범죄행각을 저질르는것이

진정으로 공포스럽고 못견딜 고통인것이다

 

이사람은 모두 중년이 되어버린 아이들을 지금도 공격하고 있는것이다

자기 자신이 사람으로서의 인간대접을 받을수없는 만행을 저질른것은 전혀 생각을 하지 못하는것이다

 

때문에 멀쩡한 나를 자기와 같은 범죄인으로 둔갑 시킴으로서

자기 자신의 추악하고 더러운 범죄행각을 상쇄시키고

아이들에게 자신이 나보다 더 잘난 사람으로 인정 받고 싶어하는것이다

 

정말이지 끊임없이 아이들을 회유하고 교묘한 수단으로 나를 모함하는것이다

나를 세상에서 가장 악질의 여자로 추락을 시키는것이다

 

아이들은 내가 하도 답답하여 이런 말을 하면 펄펄 뛰는것이다

아빠가 그런 말 한다고 엄마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것이다

 

그러나 아이들도 무의식중에 남편처럼 나를 공격하고 있는것에 대해서 기암을 하게되는것이다

이것은 남편에게 고통당하고 폭행당하는것 보다 더 무섭고

목숨을 끊어 버리고 싶을 만큼 충격적인 분한일이 되는것이다

 

나의 인생이란 없이 살아온 45년의 결과가

아이들에의해서 다시 난도질 당한다는것은 너무나 잔인한것이다

내가 스페인 그곳에서 통곡하고 혼절했던것도 바로 그러한 것 때문인것이다

내가 이아이들을 낳았고 함께 살아오면서

이아이들이 눈으로 보고 살았으면서도

그것을 모른다는것

내가 왜 그런것을 알아야하는가

하면서 절규하고 나를 몹쓸인간으로 공격하는것이다

 

그러니까 아빠에 대한 기분나쁜 말들은 절대로 말하지 말라는것이다

기분 좋은 소리만 하라는 것이다

듣고 싶지가 않으니까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의 입을 강제로 틀어막아서 벙어리로 만들겠다는것이다

남들도 그리하면 안된다고 하는 말까지도

인정할수가 없다는것은 너무나 무섭고 잔인한것이다

 

내가 이제와서 이런 아이들과

참으로 불편하고 어이없는 믿음을 줄수도 받을수도 없는

이상한 부모자식의 관계가 되어서

서로 만나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갈수는 없는것이 아니겠는가 ?

 

생판 남이라고 할지라도

자기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자기가 듣고싶지 않은 이야기는

하지말라고 하는 사람과 어떻게 함께 교류하면서 살아갈수가 있겠는 ?

 

가족이란 의미를 찾아볼수가 없는 너와 나의 관계가 어이없고 허탈하다

나에게는 처음부터 남편은 없었고 협박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깡패만 있었다

생사를 넘나드는 위험속에서 자식을 길렀지만은 그들도 지애비처럼

나에게서 자신이 원하는것만을 얻어가겠다는것이지 그이외의것은 거부하는것이다

 

가족이란 서로 지켜주고 보호해주는것이 가족의 진정한 의미가 아니겠는가

기본적인 신뢰가 전혀없은 부모와 자식간의 생물학적인 관계뿐인 가족이

어찌 가족이며 가정을 이루는 가족의 구성원이라고 하겠는가?

그러한 가족은 해체되어야 하는것이다

가족일수가 없는것이니까 . . .

 

사실은 내가 이가정을 이루고 살아 왔었지만은

이가정의 가장이 나를 위해서 한번도 보호막이 되어주거나

가족을 부양 하는 기본 상식이 존재하지 않는 가정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비상식적인 상태가 무의식적으로 지금도 계속되는것이고

내가 남편이 아닌 자식들에게까지도 아무런 보호를 받지를 못하면서

아이들과 가족이라는 허울좋은 관계를 유지시켜간다는것은

나를 너무나 치욕스럽게하고 잔인하게하는 가혹한 고통이 되는것이다

 

어무렴 내가 그토록 아무렇게나 취급되어도 되는 하찮은 물건인가 ?

애비늑대가 물어 뜯어먹고 새끼늑대가 물어 띁어먹고 만신창이가 되고

피투성이가 되어서 뼈골이 양상한 시체가 되어서

아곳에나 버려진다는 것은 사람이 할짓이 아니지 않는가 !

 

내가 어떻게 해야만 이끔찍한 치욕에서 벗어날수가 있는가 ?

내가 어떻게 해야만 한순간만이라도 정상적인 인간의 삶을 누리면서

마지막 남은 나의 삶을 온전하게 살아갈 수있을까고 고민하는

그자체가 견딜수 없는 고통이되고 억울함이 되는것이다

 

내가 자녀들을 위해 치른 희생이 어찌 웃음꺼리가 되고

자녀들에게 조리돌림을 당하는 원망의 대상이 되는가 ?

 

이것은 나와 남편 그리고 나와 아이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너무나 불공평한 관계가 되는것이다

남이 아닌 가족과의 관계라고 할지라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하찮은 쓰레기 취급을 당한다는것은 너무나 불공평한것이다

나에게 뼈가 녹아 내리는 아픔을 강요하는 그불공평함은 용서가 되지를 않는것이다

 

내가 우리 큰아이를 결혼시키고 둘째도 사귀는사람이있어서

결혼을 시키고 모든것을 접어 버릴려고 했던

그때가 바로 우리둘째가 대학을 졸업하던 해인것이다

 

둘을 한해에 결혼을 시켰었다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파열음을 내면서 나를 할퀴고 지나간 것인가 ?

말로는 형용할수가 없는 분노와 통탄의 세월이었던것이다

이남자는 더욱 미처서 날뛰고

나와 큰 아이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 날마다 전개되었던것이다

그는 내남편이 있었으나 남편일수가 없는 깡패이고 양아치였다

집안에 들어온 날강도 였던것이고 나는 평생동안 먹고 살기위해 노동자로 살았다

남편이라고 날마다 강조하면서도 평생동안 생활비를 한푼도 책임지지 않았기 때문에

땅바닥을 헤메고 다니면서 노동하는 아내를 멸시하고 창피하게 여기고 천시하였던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아내를 한수 더 떠서 자기 집안을 망처먹은 도둑년으로 몰아갔던것이다

당신 왜 그런 거짓말 했냐 그러면 절대로 안했다고 딱 잡아 떼거나 아니면

"야 이년아 니년이 안그랬으면 그만이지" 하면서 주먹질이 시작되기도 하기 때문에

내눈앞에서 거짓말을 한다고 해도 그냥 포기하는것이 속편한 일이 되는것이다

 

그리고 이남자는 병원집의 돈많은 귀공자 행세를 하면서

만나게되는 사람마다 자기가 술을 사면서 거들먹 거리고

환심을 사는데만 혈안이 되는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돈을 감당하기가 어려운것이고

돈이 그사람 손에 쥐어지기가 무섭게 사라지게되는것이다

가족을 부양한다는 의무와 책임같은것도 없으면서 자녀들과 먹고살기위해

노동하고 다니는 아내를 학대하고 내가 자기 집안의 돈이 탐이나서

자기를 속이고 접근하여 사기결혼을 당하게된것이라고 말하고 다녔던것이다

때문에 직장의 많은 동료들이 이남자를 참 불행한 남자로 알고 있었던것이다

나 때문에 이남자의 집안이 폭삭망했다는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그거짓말을 되풀이 말하고 다녔기 때문에

이사람은 자기 최면에 걸려서 나중에는

진짜로 나를 사깃꾼으로 생각하고 살았던것이다

지금와서 나자신을 돌아보면

내가 아이들을 향한 사랑은 완전한 짝사랑이마다

막무가네식의 모성애가 빚어낸 45년동안의 희생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치욕의 허우적 거림이요

그막장의 끝은 잔인한 치욕의 빈공간이 되는것이다

모든것은 듣고싶지 않은 내가 만들어내고 제공한 고통이라는듯

내남편과 똑같은 언행으로 나를 단숨에 지옥속으로 밀어내는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는 그러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나는 이제는 더이상 그러고 싶지가 않다고 생각하게 된것이다

 

나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남에게 구걸하면서 살아오지 않았다

나게 오는사람 막지 않고 가는사람은 결코 붙잡지 않는다

내가 어째서 이아이들에게 구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

가족간의 사랑도 구걸하여 얻어지는 것은 죽음보다 무서운 치욕이 되는것이다

내가 최근에 아비를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아이들과의 불협화음이 있을때 마다

결혼에 대한 후회를 새삼스럽게 떠올리게 되는데

어느 목회자님께서 인터넷에 올린글을 보고 내가 왜 진작에 몰랐을까하여 이곳에 적어본다

 

* 이런 남자와 결혼하지 마라 * 글: 선우

아침 잠이 많은 남자와 결혼하지 마라

아침에 게으른 사람이 오후에 부지런한 사람은 없다

배나온 남자와 결혼하지 마라

자기관리를 하지않는 사람이 가족을 부양하는 의무를

성실히 이행한다는것을 본적이 없다

 

물건을 집어던지는 사람과 결혼하지 마라

나중에 사람을 집어 던지기도 한다

 

부모에게 막대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마라

부모에게 조차 그런다면 너에게 오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효성은 시대와 상관없이 휼륭한 인품이다

 

느린 팔자걸음을 걷는자를 사람을 조심하라 너가 벌어오고 너가 먹여줘야 할지도 모른다

 

친구들앞에서 너에게 면박주는것을 재미있어 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마라

터무니없는 이유로 헤어지기 쉽다

 

여러사람에게 친절한 사람을 경계하라

부적절한 관계로 끊임없는 괴로움을 격을 수 있다

 

연락을 하기전에 연락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지 마라

사랑은 연락을 하지 않아도 찾아온다

 

긴가 민가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마라

이사람이 아니면 살수가 없었던 사람도 헤어질 수 있다

 

성공한 사람을 너무 기대하지 마라

한번도 실패하지 않는다면 인생을 안이하게 살았다는 증거이다

 

"넌 가만히 있어 "라고 자주 말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마라

편하게 살기 보다 그냥 가만히 숨죽이고 살게 된다

 

다정한 사람을 만나 결혼하라

너를 굶기지 않을 정도의 돈을 벌고

가끔 꽃을 사주기도 하고 주머니에 따뜻한 커피를 숨겨놓고

아내를 기다리는 그럴만한 남자를 찾아서 결혼하라

*

내아이들은 어릴때부터 이남자가 날마다 세뇌시켜서

추악하게 만들어 놓은나를

지애비가 말하는대로 따라하면서 그렇게믿고

넌덜머리를 내면서 나를 경멸하고 지애비처럼 함부로 하는것이다

그러면서 나에게 어미라고 말하고

나와의 관계를 부모와 자식으로 지속시키려는것은

너무나 추악해서 이제는 그만하고 싶은것이다

아이들이 남편과 같은식으로 나를 대하는것은 엄청난 공포가 되는것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을 믿고 아이들을 지키고 가정을 지키려고 희생했던

나의 45년의 세월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휴지조각이 되었고 웃음꺼리가 된것이다

마치도 철로위의 두바퀴처럼 그와 나는

절대로 괴도를 벗어나서 도망칠수가 없는

악연의 고리에 채워진체로

나는 날마다 죽음의 음침한 지옥에서 살게 되었던것이다

 

아이들도 이어미가 느끼는 그죽음을 함께 체험하는

고통을 공유하면서 성장하게 되었던것이다

죄스럽게도 . . . .

전인생을 죽음의 공포속에

음침하고 악랄한 짐승의 저주로 가득한 공간에서

언제 불어닥칠지 모르는 공포와 절망으로 불안에 떨면서

끝없는 슬픔으로 물들여진 시간속에 살게 되었던것이다

 

내가 그상상을 초월하는 45년의 세월을

어찌 감내하고 오늘에 이르렀는가 ?

그것은 루이 암스트롱이 달나라에 가는일 일만큼이나

나에게 어렵고 힘든 사투의 시간이었지만

나는 누구를 위한 사투로

나의 생명을 단축시키며 귀한 시간을 허비해온것인가?

 

먹을것이 없어서 나에게 붙어서 내인생 전부를 암흑으로 만들었던

자칭 내남편이라는 남자와 내아이들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내가 마치 이제는 쓸모없는 쓰레기 처럼 길바닥에 버려도 되는 하찮은

물건처럼 나를 함부로 대하는 아이들이 너무나 어이없고 고통스러운것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라는 말 만큼 인간생명의 존엄을

극명하고 귀한존재가 되게 표현 하는말도 없는것 같다

 

사람이 태어나기전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의 움직임

수천수만의 수억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하나의 정점을 향해 돌진하는 보이지 않는 존재의 승리

그보이지 않는 물체가 모태안에서 영양분을 섭취하고

먼 시간 여행을 통하여 생각이 깃들이고 자란다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생명으로 오기까지

누구의 입김으로 심장은 뛰는것일까 . . .

사람은 태어나서 눈에 보이는 존재가되기까지

그이전의 생존을 위한 치열한 경쟁의 승리가 더욱 귀하고

소중하기에 때문에 인간의 생명은 존중받아 마땅한 귀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사람의 생명은 존귀한것이다

어떤 힘이나 위력에 의해서 훼손되어서는 안되는것이다

그러한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자신의 생명이 귀한것이면 남의 생명 또한 귀중한것이다

 

나의 이야기

우리가정의 이야기는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상처가 되는것이다

수치가 되는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감추고

이러한 비참한 죄악들이 세상을 향하여

독버섯처럼 퍼져나가는 전염병 같은것이 된다면

말하지 않는것이 죄악이 되는것이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통하여 그러한 사회악이 제거되기를 바란다

국가의 역사이건 개인의 역사이건

역사는 각개인에게 각국가에게 소중한 자산이되는것이다

나쁜역사는 청산되어야하고 좋은역사는 되풀이 되어야

좋은 세상이되는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이용하여 약자를 짓밟고 생명을 유지해서는 안되는것이다

 

윤이가사랑하는 아들과 남편의 보호가운데

누구보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기를 바라는 것이

나의 소망이 될것이다

글이란 자기 자신의 표현이다

나의 글의 주된 프레임은 정직함과 진실이다

 

인간은 누구나 연약한 존재이며 숨기고 싶은 이야기를

저마다 간직하고 살아가게 되는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글을 쓰면서 내가 말하고 싶지 않은것들은

피해 갈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게된 이후로부터는

글을 한마디도 내뱉을수 없는

암흑속에 잠기게 되고

몇일동안을 아무생각이 떠오르지 않아서

절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이어서 서서히 끊어오르는 분노앞에 서게도 된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나는 말하고 싶지 않아도 진실을 말해야했다

절대로 분해될수없는 생각들을 세상밖으로

끄집어내야 한다는것을 인정하지 않을수없게 된것이다

 

나개인의 야야기이지만 사회정의 차원에서

인간생명의 존중차원에서

절대로 멈출수없는 선로길위의 달리는 열차가된것이다

내가 말하는것은 죄악이 아니길 바란다

그러나 이글로 인해서 내사랑하는 아이들이 상처받고

불이익을 당하지 않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수가 없다는것이다

 

그러나

상처받을일이 있다면 상처받지 않도록 행동하고 살아야 된다는것이 너에게 주는 계명이될것이다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면 잘못에 대한 벌칙으로 생각하고 연대책임을 감수하고 살아야할것이다

 

그래야 상처받지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은 세상을 너자신이 만들어 갈수가 있을것이기 때문인것이다

너의 부모와 조상들의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을때 개인의 삶도 행복해지고

너의 생명을 이어가는 자녀들이 자랑스럽게 자랄것이고

국가는 더욱 발전할것이기 때문인것이다

 

어제는 막내 희를 위한 명상의 시간이었다면

오늘은 큰딸 윤이에대한 명상으로 이어지다가

결코 잊혀지지 않고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폭포수처럼 쏱아져 내려서

나를 감당할수없는 고통속으로 내몰고 오래도록 끌고 다녔던것이다

 

윤이가 우리집에서 가장 내마음을 아프게 하는 희생을 치르게된것을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너가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누리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소망하는것이다

 

세상에 태어나는것도 좋은 부모를 만나는것도 내뜻대로 되는것이 아니듯이

결혼배우자를 만나는것도 내뜻대로 되는것은 아닌것이기 때문에

내앞에 놓여진 삶의 엄숙함을 인정하고 순명하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고 행복의 지름길이 된다는것을 말해 주고 싶은것이다

 

나는 혁이가 우리집에 처음왔던 그날의 그장면을 지금도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밝아오는 햇살처럼 화사하고 온화한 첫인상의 느낌은 희망적인 결과를 의미하는 것이며

혁이를 내가정의 소중한 사람으로 받아 들인 믿음인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사람들이 바라는 모든 행복도 영원한 것은 없는것이다

오늘의 고통이 영원한것도 아닌것 처럼 변화무쌍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족보다 소중한것은 없는것이다

가족이 없다면 세상의 어떤 값진 보화도 그빛을 잃게되고

아무런 가치가 없는 돌맹이에 불과한것이다

가족이 내옆에서 건강할때 살아갈 기쁨이 있고 힘이 솟아나는것이다

모든 길은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한다 ( Every path begins at its foot)

 

이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 계속따라 다니는 이말이

참 마음에 드는것이다

모든길은 밑바닥에서 부터 시작된다 . . .

 

물흐르듯이 살아라 물은 결코 위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모든것을 순리대로 살아가면 느리고 얻어지는것이 없는것 같아도

결국에는 바른 길로 가기 때문에 빠른길로 갈려고 꼼수 부리다가

고생하고 힘을 빼지 않아도 되는 안전하고 쉬운길이 될것이다

 

수고로움없이 얻어지는 모든것들은 모래알처럼 손가락사이로 빠져나가지만

내노력의 땀으로 이루어진 모든것들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 땅이될것이고

귀한 보물이 되어 내곁에 머물게 될것이고 내삶을 풍요롭하는 꽃동산이 될것이다

 

 

모든 길은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한다 ( Every path begins at its foot)

첫인상의 좋은 점은 희망적인 결과를 의이한다

달려라 윤성모

그리고 윤이와 혁이게게

 

2018년 8월 26일 Lucy Ch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