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troga(아스또르가)에서 Rabanaldel Camino(라바날 델 까미노)로 가다

2024. 8. 31. 11:50꿈속의까미노순례길

Astroga(아스또르가)에서 Rabanal del Camino로 가다 5/25 2018 (24번째날)Albergue Municipal 알배르게 도착후 비쏱아지다

 

인터넷 불통의 연락두절 상태가 불러온 다 큰 내아기들의

까미노 인터폴을 통한 엄마 찾기 지명수배 사건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만년 모범생으로 살고자 눈썹 하나도 다치지 않으려고

살얼음을 걷는듯 살아온 나의 자존감에 검은 먹칠을하고

새침떼기(?) 말년에 세상안에서 가장 요란한 존재로 떠오른다는것이

나를 못살게하는 부끄러움이 되고 있었다 . . .

 

아휴.. 고것들이 왜 갑자기 엄마을 찾는다고 야단이었당가 ~ !

내가 졸지에 물가에 세워놓은 세살먹은 아이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엄마찾기 삼만리의 지명수배사건의 주인공이 되어

나도 모르게 까미노 인터넷상에서 굉장한 이슈로 떠올랐던것이고

걱정반 우려반의 태산같은 염려와 까미노에서는 가는곳 마다 천사가 지켜준다는

아름다운 믿음의 사랑의 글들이 난무했던것을 생각하면 쥐구멍이라도 기어들고 싶어지는 아침을 걸어간다

 

그러고 보니까 지금 내가 지나가고 있는 이길은

우리 아이들이 위험을 예감했었던 그런곳이기도 하다 ~ㅎㅎ

아스또르가에서 벗어나면 끝없이 이어질것 같았던 평원이 끝나고

레온 산맥으로 이어지는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산세가 거치른 다른 풍경이 전개되는 지역인것이다

앞으로 만나게 될 무리아스 폰세바돈 그리고 산따 카딸리나같은 곳은

사라졌던 마을이 산띠아고 순례자들 때문에 부활하여 큰도시로 발전된곳이라고 한다

 

이곳은 예로 부터 산적들이 출몰했던 곳으로

지금 이시대에도 순례자들이 강도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스페인 당국의 위험경고 싸인이 표시되는 지역이기도 한것이다

 

자식들은 자라서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된 자식들은 늙어가는 부모들을 물가에 세워둔 어린아이 보듯

애태우고 속상해 하는 것을 보면 어이가 없다

 

너희들이 내속을 얼마나 끓이면서 자랐는지 아는가?

특히 우리둘째는 태어나면서부터 낮시간에는 절대로 잠을 안자는 아이였다

 

눈을 감고 잠들었다고 생각하고 내려 놓는 아주 미세한

작은 동작 하나만 취해도 눈을 반짝뜨고 마는것이었다 ㅎㅎㅎ

 

절대로 어떤 경우에도 어떤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지만 낮에는 절대로 잠을 안자고

엄마가 안고 있어야 했었다 ~~~ ㅎ

 

밥먹는 시간에도 안고 밥을 먹었고 화장실에 갈때 한순가만 내려 놓아도 죽어라고 울어 제낀다

세상이 무너저라 울어 제끼다가도

저녁식사 시간이 지나면 그때부터 잠들어서 이른 아침까지 잠자고 아침 6시경에 깨어나서

절대로 울지 않고 혼자서 발버둥 치면서 신바람나게 잘 놀고 있는

아주 신기한 아이였었는데 . . .

이 아기가 커서 지금은 내가 세살먹은 아이로 보이는 모양인것이다

아이고 내가 몬산다고요 ㅋㅋ

 

내가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은

문제가 없다고 몇번씩 서비스센타에서 점검받았었다

 

유심칩을 유럽통합 칩과 스페인것 두가지를 모두

사용해보았지만 wifi가 벗어난 지역에서는 불통이었다. .

내가 스마트폰 다루는 솜씨가 부족한것 때문일수있다는 우려때문에

젊은 사람들에게 부탁해 보았지만 wifi 가까이 있을때만 되고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사진까지 업로드가 되지 않아서 애를 태웠었다

 

나는 이시대의 모든 첨단 문명의 이기들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원시시대의 나그네 처럼 아날로그의 까미노를 걸었던것이다 ㅋㅋㅋ

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인가 ?

 

까미노 에서의 스마트폰 불통은 죽음을 뜻한다

요즈음 사람들은 문명의 이기에 노예가 되어서 오히려 아날로그적인 삶을 동경하면서

느리게 살기 켐페인을 벌이기도 하지만

 

까미노 길에서의 문명의 이기는 그자체가 생존의 문제가 되는것이다

 

방을 예약하고 식사를 예약하는것은 기본적인것이고 자신의 업무에 관한 일도

인터넷으로 해결해야하는 세상에서

스마트폰 불통은 치명적인 생존에 관한 문제에 부닥치게 되는것이다

 

그러함에도 세살 먹은 아이같은 이 루시가 프랑스에서 부터

스페인의 산을 넘고 넘어 산적들이 우글거린다는 아스또르가 거리를 활보하고

아무탈없이 씩씩하게 행진해 가고 있는 것이 신기하지 않은가 ?

아니 이 얼마나 대견한 모습인가 ?

아닌가 ?

아휴 "울 엄마가 속썩인다"고 난리도 아니었던것이다 ㅋㅋ

야 이눔아 니는 내말 들었니?

나도 니말 안들을끼다 이눔아 아휴.. 내가 몬산다 정말 창피해서 주껐당 ㅋㅋㅋ

 

이른 새벽 아침도 못먹고 알베르게를 빠져나온 시간은 6시 30분이다

아침은 처음 만나는 카페에서 해결하기로 하고 어두운 새벽을 비집고 거리로 나왔다

오늘의 일정은 20.6km로 비교적 짧아서 5시간 정도면 충분할것이다

 

에고에고 뭐냐 우리 딸들 때문에 내가 몬살아

그혼비백산했던 어제의 요란스러움에서 벗어날려고 도망치듯이

노란 화살표와 길바닥의 조가비 모양을 따라 타박타박 걸어간다

 

 

어제왔던 길을 다시 돌아나가는 이른 아침의 거리 모퉁이에는

챙넓은모자를 쓰고 가방을 어깨에 메고 커다란 지팡이를 손에든

순례자 조형물이

유난히 푸른 청옥색의 새벽 하늘 아래 정겨운 모습으로 서있는것이다

 

도시의 어둠을 밝히는 거리의 조명등불은

길바닥의 정결한 보도블럭의 정성이 가득히 돋보이게하고

고요한 아침의 신비로움이 아름답게 빛나게 하는것이다

 

 

신을 향한 인간의 사랑이 빚어내는

건축물들의 예술적인 미감은 모두가 신의 경지에 이르는

저마다의 특징을 지녔지만

안토니오 가우디의 작품이라는 박물관은

한눈에 사람을 사로잡는 예술혼으로

불나비가 불에 뛰어드는 유혹처럼 강열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아시시의 성프란시스코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와 인연이 깊은

아스또르가의 대성당

산따 마리아 대성당을 다시 올수있기를 기원하면서

고즈넉한 도시의 어둠을 가르고

노란 화살표를 따라 조가비의 정다운 표식을 따라

설레임 가득한 희망의 까미노는 그렇게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는것이다

 

말을 물가로 데리고 갈수는 있지만 강제로 물을 먹일수는 없다고한다

도도히 흘러가는 강물의 고요함속에는

너와나의 결코 풀지 못하는 아픔이 존재하고 있는것이다

 

그것을 마음깊이 묻어두고 외면한체로 살아가지만

가끔씩은 쇠망치로 가슴을 내려치는 아픈 울림이되어

서로가 이해하지 못하는 아픔의 눈물을 흘리게 되는것이다

 

아프리카 사막과 같은 메마른 너와 나의 가슴속으로 흐르는 그비애의 슬픔속에는

악녀 후스띠나의 인물이 바로 나인것이다

연약하고 힘없는 자신의 아비를 공격하는 가해자 악녀 후스띠나가 내아이의 가슴속에 엄마란 이름으로 살고 있는것이다

 

나에게 이것보다 충격적인 고통이 되는일은 없는것이다

 

연약하고 가엾은 피해자 아비를 받아 들이지 못하는 나를 향한

나의 냉담에 대한 컴플레인 걸기는

각종 성물과 주보에 쓰여진 말씀으로

나를 얼음처럼 차가운 마음에서 탈출하게 하려는 애끓는 시도가 눈물 겹기만 한것이다

 

내가 그러한 내아이에게 응답할수는 없는

그 참담하고 막막한 절망을

이세상의 어느 누가 그것을 알겠는가 ?

그것을 어찌 이해할수가 있겠는가 ?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어보려는 너의 안스러운 시도는

그럴수록 너와 나의 마음을 더욱 멀리 달아나게하는 바람이 되었고

돌맹이처럼 견고하고 고된 슬픔만 쌓여갈뿐인것이었다 ~~~ ^^*

 

내가 십자가위의 예수님과 멀어진 것은

한때 유행했던

어느 부부의 결별의 마지막 말처럼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져서 그리움만으로 사는것이다

 

차갑거나 뜨겁거나 둘중에 하나을 선택하여 살라하셨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는 마음으로

그분을 마음에 담지말라는 그분의 말씀을 나는 사모하는것이다

 

물론 나의 성서해석이 틀리고 올바르지 않을수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나는 차가운 얼음덩이 마음으로 땅바닥에 떨어지면

쨍하고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져 버리고 소멸되어가는 냉담자로

힘들게 외롭게 살아가는것은

하느님의 순수한 수정처럼 맑은 사랑의 정신에 상처를 남기지 않기 위함인것이다

하느님을 욕되게 하는 썩어 문들어진 악행의 작은 입자가 되지 않기 위함인것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하느님의 사랑을 먹고 마시고 성장하고

하늘나라를 꿈꾸고 힘차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날마다 성체속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모셔야 하는것이다

 

그러나 내가 얼음처럼 독한 냉담속에서 거짓된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

성체를 모신다는 것은 나를 사랑으로 세상에 내어보내신 하느님에 대한 살해자가 되는 것이다

 

지나간날 지성이면 감천이란 좌우명과 같았던 진실된 나의 삶이 통용이 되지 않아서

내발로 성당으로 걸어 들어가서 교리공부 시작하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었다

 

 

지성이면 감천에 더해진 믿음속에서도 절대불변의 고된 나의 삶은 지속되었고

어느날인가 울부짓고 통곡하는 나에게 지구본을 나의 두손에 담아주셨던 하느님이시다

 

분노의 울부짓음속에 움켜쥔 두손에서 지구가 산산조각이 날것임에도

그윽한 두눈으로 나를 응시하시면서 "아가야 미안하다" 하시면서

지구본을 나의 두손에 가만히 놓아 주시던 하느님이시다

 

그 충격적인 기억은 나의 머릿속에서 돌맹이같은 화석이되어 절대로 지워지지 않고 지금도 그때의 감동으로 재현되는것이다

 

그리고 어느해인가 작은 예수회란 산속의 수도원 같은 성당에

매주 금요일밤 열리는 철야 기도회에 다닌적이 있었다

 

산속깊은 곳의 교회 앞마당 넓은 공터에는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펜스가 처진 가운데 오랫동안 공원 조형물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겨울이 지나고 산천에는 예쁜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나는 싱그러운 봄날이 왔다

그날은 밤에 그곳에 가는것이 아니라

공원 조형물 축성식이 있다고 하여서 많은 신자들이

도시락을 싸들고 봄나들이 소풍가는양 즐거운 마음으로 모여들었다

 

그날 그곳에서 거대한 야외 미사가 진행되었고

몇달동안 정성을 다한 조형물이 베일을 벗고

신자들앞에 모습을 들어내는 거룩한 축성식이 거행되는 순간이 온것이다

나는 그때 베일을 벗어버린 조각품을 보고 기절하는줄 알았다

높다란 대형 탑위에 소중하게 받들어 모셔진 모습의 조형물은 지구본이었는데

내가 지난밤에 꿈을 꾸었던 지구본의 모습이 그곳에 똑같이 재현되고 있었던것이다

 

어째서 그신부님께서는 그지구본을 조각하기를 원하셨는가 ?

그리고 나는 어째서 지금 눈앞에 보이는 지구본을 그대로 꿈속에서 볼수가 있었던것인가 ?

 

내가 카톨릭 신앙인이 되어 기도안에서 주님을 체험한것은 그곳에서 이루어진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곳의 조형물을 그대로 나의 꿈속에서 보았다는것을

누가 믿을수 있는 말이 되겠는가 ?

 

내가 그것을 입밖에 내는 순간 광신도가 될것이고

웃음꺼리가 되는것이 두려워 입을 꼭 다물었었다

 

나는 그순간을 잊지 못하는 눈물의 감동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으며

그생각을 하면 가슴 절절한 뜨거운 사랑으로 가득해지는것이다

 

나는 그말을 누구에게도 말해본적이 없는것이다

눈물로 적어갔었던 나의 일기장속에는 아마 지금도 남아 있을테지만 . . .

 

그리고 더욱 신기한것은

내가 몰라서 못하는 것들을 꿈으로 가르쳐 주신다는것이다

 

꿈속의 형상을 선배 카톨릭 신자들에게 물어보니까 성모님에 대한 묵주기도라고 했던것도 있었는데

그때는 묵주기도를 몰랐던 시기의 영세받은 초년생시절인것이다

 

엄마가 생활 터전에서 이른 아침부터 일해야하는 생활패턴속에서 성장하는 내아이들의 생활상태를 꿈으로 현몽하시고

그것을 내가 발견해내고 고칠수 있게 하셨던 하느님과의 나의 교감은 뜨거운 눈물의 감사함과 은혜로 가득차있는것이다

그 커다란 위용과 신비로운 힘은 구름을 뚫고 하늘에 닿아 있는것이기도 했던것이다

 

내가 그당시 성빈센치오 봉사활동을 하고 있을때 였을것이다

나의 막내를 데리고 어렵고 힘들고 병든이들을 돕는 수도원을 찾는다든지 실제적인 자신의 것을 나누는 봉사를 할때였었다

나자신이 어려운 처지이면서 내가 행하는 이봉사가 나의 이 선행이 가증스럽고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선한 척하는 악행의 마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했을때 ~~~

 

캄캄한 밤하늘에서 나에게 무엇인가를 보여 주시려고 애쓰시는것같은 종이로된 기록장이 눈에 보였던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종이와 종이가 바람처럼 날아가면서 쌓이는것이다

"아아.. 세상에서 행한 나의 어떠한 조그마한 선행도 하늘성전에 기록된다는 강열한 메시지로서 나를 질책하시고 나를 눈물짓게 하셨던것이다

 

믿지 않는 자에게는 보이지 않고 존재하지 않으시는 하느님

티끌하나 없는 마음으로

전심전력으로 의지하는 자에게

당신의 존재하심을 보이시는 사랑의 하느님

먼지와 같은 존재의 나에게

온우주를 맡기시면서 나를 위로해주시고

이슬과 같은 미약한 나를 믿으시고

당신의 사랑 전부를 내어주셨던 하느님이신것이다

 

그위대한 사랑 을 무엇으로 표현할수가 있겠는가 ?

나는 그꿈을 꾸었던 그날 이후에

절대로 두손을 꽉쥐는 행위를 한동안 할수가 없었던것이다 ~~~ !

 

내가 분노로 떨때마다 꽉쥐어 지던

나의 두손을

절대로 잠든 사이에도 꽉쥐면 안된다고

소스라쳐서 잠에서 깨어나고는 하였던것이다 ~~~ !

 

나의 두손안에 놓아 주신 동그란 지구본

그것은 나를 믿으시는 극한의 사랑인것이다

 

따사로운 오월의 봄날에

풀밭에 나와 나란히 앉아 계셨던 하느님

말없이 나와 동행하여 주시던 하느님

 

그소년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그눈을 들여다 본 순간 깜짝 놀랐던것이다

그것은 어린 소년이 아니라 성년의 예수님의 눈이었던것이다

"아 들켰군" 하는듯이 사라지셨던 그눈동자를 절대로 잊을수가 없는것이다

 

그분은 그렇게 겸손하신 모습으로 내옆에 오셨다

내가 좋아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내게오시고 친구가 되어주셨던 위로자 하느님이셨던것이다

 

나는 남들처럼 나무기둥을 타고 샛길로

빨리 강바닥으로 내려가서

평화로운 동산으로 가는것이 아니라

나의 운명의 힘든길을 혼자서

걸어가야한다는것을 알려주시고 예고하시고

함께 하여 주실것이란

응답을 주셨던나의 하느님이셨던것이다

절박한 고통속에서 내가 찾았던 하느님과의 교감의 시간이었다

오직 하느님을 향한 절박한 나의 순백의 기도의 시간이었다

 

캄캄한 밤 하늘의 별들이 쏱아지는 청정한 맑은 공기속에

사람의 그림자를 찾아볼수없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휴식을 끝내고 교회안으로 돌아 갈 때 였었다

 

그청정한 바람속에서 나의 코를 스치고지나가는 바람결에

진한 담배연기 냄새가 나서 깜짝놀란것이다

그순간 엄청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었다

 

성가정일수가 없는 죽음과같은 어둠의 소란이

밤낮없이 이루어지는 가정 안에서

갈길을 잃고 헤메이는 나의 자녀가 내가 모르고 있는 동안에

그 담배연기의 바람속으로 유유히 걸어가고 있었던것이다

 

그런것을 모르고 지내는 나를 일깨워주셨던 하느님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게 해주셨던 나의 하느님이셨던것이다

 

우리둘째가 고3 수험생인 그해 2월에 시부보님께서 우리집 옆으로 이사오셨다

나는 그것을 단한점의 말도 토하나 달지 않고 그분들을 받아들였었다

 

내가 우리 세아이들을위해서 철없는 떼쓰기

막무가네 떼쓰기 기도를 올렸던것은

수험생 대학 보내기 떼쓰기 기도가 생전 처음인것이다

 

나는 누구에게 일방적으로 무엇을 달라고하는

떼쓰기하는것을 생리적으로 싫어할뿐만아니라 잘 할줄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께 떼쓰기 기도는

내가 바라는 만큼의 힘든 고행을 지불해야하는

댓가를 지불하겠다는 무언의 약속이기도 하였던것이다

 

하느님 나는 당신의 착한 자녀가 되겠습니다

당신의 이름이 빛나는 착하고 정직한 자녀로 살겠습니다 ~ !

 

허지만 나는 하느님께 생떼를 써서 모든것을 쟁취하고 난다음에

그러한 하느님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스스로 하느님을 잃고 길을 헤메이는 슬픈 나그네가 되었던것이다

하느님께 드렸던 자녀로서의 약속을 지킬수없어서 한없는 죄스러뭄과 분노로

내몸과 영혼을 유황불속에 집어던지고 울부짓는 황야의 악녀 후스띠나가 된것이다

 

내아이들이 수험생이 되기전해부터 시작되는 나의 기도는 아이들이 대학수능시험을 치르고 대학에 입학하는그날까지 만2년동안씩이나 실행되어왔던것이다

 

시험이 끝나는 날까지 만 2년씩 아침마다 성모상앞에서

매일 한시간씩 새벽에 기도드리면서

성모상앞에서 꿇어 앉아서 기도했기 때문에

발등에 굳은 살이 박히는

나에게만 일어나는 기이한 일도 있었다는것을

지금도 기억하면

하느님에 대한 굳센 의지의 사랑이 나를 감동하게 하는것이고

그 소중한 사랑을 잃어버린 내가 한없이 가슴 아픈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나의 간절한 기도는 반드시 응답을 받았었고

꿈으로 확실하게 주님께서 현실에 살아계시는것처럼 증명해주셨던것이다

그것이 살아계시는 하느님의 실체인것이다

 

그리고 내아이의 기도 속에서 내아이와 같은 나의 지인의 수험생 딸이있어서 그아이의 기도도 함께 드리게 되었는데

그아이만 서울 대학에 합격하고

내아이는 대학시험에 떨어지는 꿈을 꾸고 울었었던 기억이 지금도 잊을수가 없는 충격으로 남아있지만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그은혜로운 꿈의 현몽은

하느님은 천금같은 나의 위로자이심을 인증하는것이고

이제는 그것을 받아들일뿐 내아이에대한 운명을 슬퍼하는 일은 절대로 없게된것이다

 

나는 너의 생긴 형상대로 내가 너를 사랑하는것이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당신의 거룩한 사랑의 정체성인것이다

그것으로 내가 내아이들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게 하셨고 그것을 실행하는 힘을 주셨던것이다

 

그러하다 인생이란 자기뜻대로 사는것 같지만 절대로 자기뜻대로 살수가 없는것이 인생인것이다

나는 가슴 아픈 내아이에 대한 운명을 겸허히 받아 들였으며 내가 수용하고 내가 할수있는일을 찾아서

그길을 찾는데 심혼을 기울이게 되었던것이다

 

지금까지 내아이들과 내가 멀쩡한 모습으로 걸어다니고 있다는것만으로

신기한 것이고

그렇게 살아온것만으로 하늘의 커다란 은혜가 되는것이다

 

폭력앞에 멀쩡할수있는것이란 없다

영과 육신이 만신창이가 되는 훼손의 과정이 폭력인것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느 누구에게도

그런한 폭력과 파괴가 허락될수는 없는것이고

그런 폭력을 휘두를수있는 권한 또한 허락될수는 없는것이다

폭력을 거부할수있는 권한 또한 인간에게 있는것이고

그것은 인간 존엄의 최초의 출발점이 되는것이다

 

날마다 되풀이되는 폭력과 용서가 나의 생활안에서

다시 되풀이되는 과정속에서

내가 온전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모시는

거룩한 성체봉헌의 시간은

나에게 주어질수가 없는것이되어갔던것이다

 

절대로 용서되지 않는 무서운 거짓을 행할수가 없었던것이다

 

그것은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의도가 아닐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그분을 향한 진실한 사랑이 될수가 없는것이다

 

거짓된 용서가 있을뿐

참다운 용서가 이루어질수 없는 생활속에서

하느님과 함께 할수없었던것이 나의 고통이 되었던것이다

내가 하느님께 죄짓는것 보담은 냉담의 고통을 안고 살게된것이다

 

교회에 나가기 위해서

남들과 지내온 멀쩡한 생활 패턴을 유지하기위해서

거짓의 탈을 쓰고 교회에 나가는

하느님을 사기치는 사깃꾼이될수는없는것이다

 

내가 영세받고 순진한 시절의 어느날 꿈속에

한없이 따뜻한 빛이 쏱아지는봄날이었다

푸른 보리밭 사이 풀밭에 한가로이 앉아있을때였었다

 

사람들이 강을 건너가는 나룻배를 타기위헤서

강변 아래쪽으로 뻗어있는 커다란 나무를 타고

아주 쉽게 밑으로 내려가는것이다

 

그리고 강변에 세워져있는 나룻배에는

모든사람들이 그배를 타고 영원한 평화의 땅으로 가고 있는것이다

그래서 나도 그나무를 타고 내려갈려고 했던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떤 아기를 등에 업고 있어서 그나무를 타고 내려가면

등에 업힌 아기의 머리가 담벼락에 부딪쳐서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나는 절대로 그나무를 탈수가 없는것는것이다

 

그래서 내가 앉아있는 왼쪽으로 나있는 아주 작은 오솔 길을 따라

멀리 돌아서 저강을 건너는 나룻배를 타야한다는것이다

 

남들처럼 쉽게 눈앞에 보이는 저나무를 타고 쉽게

평화의 땅으로 가지못하고 힘든 길을 걸어서 가야한다는것이다

 

동시에 내옆에는 너무나 해맑은 모습의 어린 소년이

나와 함께 천연덕스럽게 앉아있는것이다

 

나처럼 두무릎을 두손으로 깍지를 끼고 내옆에 앉아서

불어오는 달콤한 산들바람을 즐기는듯 하는

아주 고운 꿈을 꾸고 있었는데 ~~~

그것은 나의 인생을 설명해 주시고 계셨던 하느님이 신것이다

 

천진스러운 소년의 모습으로 나에게 오셨던 아름다운 하느님

나와 함께 해주실것이란 약속을 해주셨던 사랑의 하느님을

많은 세월이 흐르고 난 지금에서야 그참된뜻을 깨달을수가 있게된것이다

 

수많은 생각의 회오리바람속에서 눈을 감고 걸어도

노란 화살표와 땅바닥의 하얀 조가비만 보고 가면 되는 까미노

 

아직도 어제의 혼비백산했던 충격이 정리가 되질 않아서일까

아스또르가를 벗어나서 첫번째 만나는 무리아스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스페인의 전통문화 마을로 지정되었다는

까스뜨리요 데 로스 뽈바사레스의 마을도 단숨에 통과하고

산따 까딸리나 데 소모사와 엘간소를 지나서 오늘의 목적지

라바날 델 까미노에는 12시에 도착

발바닥에 바퀴가 달린듯 20,6km를 단숨에 통과하는 기염을 토하고

내가 숙소에 도착한 순간부터 약속이라도 한듯이

갑자기 소낙비가 쏱아져서 나보다 늦게 도착한 사람들은

신발까지 온통 물을 뒤집어 쓰고 걸으면서 고생이 막심했던것이다

 

나역시 감기 몸살기 때문에 춥고 그래서 얼른 자는것이 장땡인것 같아서

일찍 잠잘리에 들었다

얼굴까지 깊게 뒤집어쓴 침낭속에서

엄마의 자궁속같은 따뜻한 온기와 고요함을 공급받고

평화로운 유영의 달콤한 꿈속으로 깊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제발 제발 나를 쫌 내버려둬 주시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