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레이로스(Ferreiros)에서 빨라스 데 레이 (Palas de Rei)로 가다

2024. 8. 30. 12:19꿈속의까미노순례길

페레이로스(Ferreiros)에서 빨라스 데 레이(Palas de Rei)로 가다 2018 5/31 (30번째날) Buen Camino 33.4km 10.00eur

 

예정된 시간과 합당한 경비와 잘 짜여진 스케줄

한치의 오차도 없는 양호한 건강상태까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진행될때

까미노 데 산띠아고의 길은 성공하는것이다

 

청천벽력같았던 어제의 일은

엄청난 충격속에 지금도 나를 짓누르고

내가 과연 해낼수 있을까

무장해제 되어버린

공황상태의 내가 어이없고 한심한것이다

 

어쩌라는것인가

까미노 출발전

한국에서부터 30일 일정의 계획표에 따라

스페인의 여행 계획을 세웠고

프랑스와 스페인의 마드리드 바르셀로나까지

예약이 잡혀있었던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30일 여행이 33일로

불어나 있다면 얼마나 황당한 일이 겠는가 ?

 

어쨌든 심심산중의 이곳에서

사면초가의 궁지에 몰린 내가 할수있는 일이란

무조건 걷는일인것이다

 

버스도 없는 이곳에서 택시로

남은 구간을 지나간다면

걸어왔던 지나간 시간들은 모두가

휴지조각이 되어 까미노의 의미는

상실되고 자동으로 실패하게 되고

지워질수없는 치명적인 오점을 남기게 되는것이다

 

남은 3일간의 걸어야 할 길을

이틀동안 나누어서 걸어야 하는것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스페인에서의 다른 여행계획은 몽땅 취소하고

남들이 2일 동안 걸어야 하는길을

나는 하루동안에 걸어낼수 있어야만

계획된 스케줄 대로 귀국할수가 있는것이다

 

페레이로스는 내게 무지 매혹적인 땅이었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 울창한 숲을 간직한 페레이로스

이곳으로 부터 100km 전방에는

이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이

평생동안 꿈꾸어 왔던 소망의 땅

산띠아고 데 꼼빠스뗄라가 있는것이다

 

너무나 다급해진 내가 만약 버스를 타고

남은 구간을 지나간다면

과거시험장의 응시생이 컨닝 페이퍼를 이용하여

장원급제하는

엄청난 잘못을 저질르는 루시가 되는것이다

 

그것은 루시가 가장 싫어하는 삶의 방식인것이다

의로움과 진실은 나를 지탱지켜주는

생명의 물줄기 같은 것이고

가장 강열한 내삶의 버팀목이 되는것이다

 

예정되어있는 소망의 까미노

내가 이길을 걸어가다가 지쳐서 죽음을 맞을 지라도

나 이제

이길을 마다하지 않고 걸어가겠노라고

가슴 뜨겁게 차오르는 영혼의 울림이 가득한 아침을 맞았다

 

인적이 드문 산속의 작고 아담한 알베르게에서 불편하지만

작은 부엌에서 식사도 해결하고 먼길 떠나는 새벽

식당의 로비에서 만난 프랑스 여성과의 대화속의 당찬 한마디가

더욱 33.4km의 대장정의 도전에 나자신의 전부를 던지게 하는것이었다

 

이곳에서 차를 타고 가면 어떨까 하는

나의 착오 때문에 일어난 일을 잠시 말했을때 그녀는

고개를 말없이 좌우로 흔들면서 자신 같으면

절대로 차를 타고 가지 않을 것이며

온전하게 두발로 산띠아까지 걸어갈것이라고 말하는것이다

 

이어리고 어여쁜 스무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천사에게

나는 부끄럽게도 나의 게으른마음을 고백하고

근엄한 하느님의 참된 음성을 전해 듣게된것이고

힘찬 발걸음에는 어떤 의심의 마음도 사라진듯 가벼워진것이다

 

알베르게를 벗어나서 조금 걸어가다가 만난 표지석에는

노란색 화살표와 파란 바탕에 하얀 조가비가 선명하고

100.747 km 라고 쓰여진 글씨가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있었다

 

이곳으로부터 이러한 석주 표지석은 500m 간격으로 세워져서

힘들게 도전하는 아름다운 순례자들을 격려하는 벗이 되는것이다

 

알베르게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곳에서

순례자들의 온갖 소망의 글씨가

요란한 100km 표지석을 지나간다

 

끝없이 이어지는 들판에는 화려한 봄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나서

지나가는 순례자들의 정다운 벗이 되어 주는것이다

 

오늘의 목적지인 빨라스 데 레이 까지는 33.4km

인적이 끊어진 깊은 산중 마을의 계곡을 지나가고

9km 전방에서 뽀르또마린(Portomarin)에 이르게 되며

 

까미노 왼쪽에 위치하는 Loio 수도원이 있고

1170년 이슬람교도들로부터 순례자들을 보호하겠다고

결성된 12명의 기사들이 세운 수도회 소성당이 유적으로

남아 있다고 하며 이로 인해서 산띠아고 기사단이

탄생되었다고 한다

 

큰 강가에 위치하는 뽀르또마린

mino강을 건너면 뽀르또마린인것이다

 

mino강가의 두마을이 수몰되고 1960년에 주민들을 위해

현재의 자리에 새로 건설 되었다 한다

 

mino강위에 세워진 돌다리는

알폰소왕의 왕비 우라카(Urraca)가

남편의 군대가 진격해오지 못하도록 파괴한후

1120년 새로 건설한것이라고 전해진다

 

내가 mino강의 다리를 건너려로 할때

아무도 없는 호젓한 다리위에서

깔끔한 인상의 한국인 중년의남성을 만났다

 

왜 그리 어색할까

못볼 사람을 불시에 만난듯이

다리 양쪽으로 나있는 보행자 도로에서

내뒤를 성큼 성큼 걸어오는 그남성의 발자욱 소리에

돌아서서 고개숙여서 인사를 했을때

한국인이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간단하게 대답하였다

 

그사람도 나의 음성에서 내마음을 꽤뚫어 본것일까

나만큼이나 얼굴이 상기되어서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그러면서 앞서가고 있었다

 

강위에서 바라보는 강가의 풍경은 아름답다

그아름다운 풍경에 잡음이라도 들어가면 안될듯이

온몸으로 사람을 쫒아버리는

냉기어린 나의 음성이었던것일까

 

이틀전날 밤의 숙소에서의 헤프닝. . .

아직도 기억속에 생생한

사람을 인식하지 못하는 도도한 로봇처럼

유창한 영어실력을 자랑이라도 하는듯

잠들어야 할 알베르게 숙소에서 큰목소리의

대화를 멈출줄 모르던 남도여성의 무례함이

엉뚱한 곳에서 분출하는 불기둥이 된것인가 ?

 

일자리를 얻기위해서 유럽을 떠돌아야 하는

슬로바키아인의 무례함보다는

그한국인여성의 남을 의식하지 못하는

무례함이 지울수 없는 악몽처럼

무의식속에서 되살아나고 있었던것이다

 

나혼자만의 자유로운 호흡으로

강바람을 마시며

앞서가는 남성을

멀리 보내기 위해서 발걸음의 속도를

조절하며 걸었다

 

절벽처럼 가파른 높다란 돌계단을 오르면

돌로 쌓아 만든 멋스러운 대문을 만나고

고풍스런 성당도 만나게 되는데

수몰되기전의 mino 강아래 있었던 유적물이 아닐까

생각하며 지나 간다

 

뽀르또마린에서 콘사르에 이르는 길은

8km에 이르는 오르막 길이고

이곳에서 1.2km의 평탄한 길을 오르면

까스뜨로마요르라는 작은 농촌마을이 나오는것이다

 

오스삐딸 네 라 끄루스 마을을 가기 위해서는

경사가 심한 산길의

적막함을 쫒으며 걸어가야 하고

아주 작은 마을을 지나는 길목에서

만나게 되는 카페에 들렀다가

뜻밖에 아르헨티나 친구를 만나서 너무나 반가웠다

 

까미노 여정에서

가장 많이 만나게 되는 친구중의 한명이다

 

다정다감하고 열정적인 친밀감으로 언제나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그를

떠나보내고 나도 뒤따라 일어나서 오늘 남아 있는 시간을 열심히 걸어간다

 

소들이 푸른낙원에서 방목되는 광경이 아름다운 벤따스 데 나론을 지나고

리곤데 언덕을 힘들게 오르면 1.3km 전방에 아이레세 마을에 도달하게 되며

이제 빨라스 데 레이에 가기 위해서는 5km 전방에 있는 아몬떼로소를 지나면

오늘의 목적지인 빨라스 데 레이에 도착하게 되는것이다

 

아침 7시에 페레이로스를 출발하여 사생결단을 하듯이

목적지 빨라스 데 레이 에 정확하게 오후 2시 40분에 도착

마지막 순간 비가 와서 옷이 젖었지만

걱정되었던 33.4 km의 대장정을 무사히 통과하게 해주신

주님게 무한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해졌다

그리고 오늘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30일과 31일 그러니까 어제와 오늘

내가 지나온 길에서 돌을 줍지 않았다

 

나는 까미노가 시작된 어느 지점 부터인가

도시마다에서 하나의 돌을 줍는 것을

반드시 이행해야 할 과제처럼

여기고 돌줍기를 멈추지 않았었다

 

돌때문에 가방이 무거워서 허리가 휘청거릴 정도이고

본국으로 돌아갈때 짐의 무게 때문에 그동안 내가

애지중지 주워온 돌들을 몽땅 버려야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면서도

 

땡볕속에서 가야할 길이 너무나 바빴을때도

나의 그 미련한 돌을 줍는 욕구는

절대로 포기할수없는

하루의 엄숙한 과제가 되어 있었던것이다

 

어제 그제 29일 그날

스페인의 생명의 물줄기가 속살처럼

부드럽게 움트고 흘러가던 O'CERREIRO를 지나서

 

TRIACASTELA의 부서지고 엉키지 않는

흰빛을 띄는 흙의

길바닥에서 좀처럼 찾을수없었던 돌들속에서

 

검붉은 피의 형상을 한 돌을 주었을때

아아 하는 탄성속에

주님의 성체를 떠올렸고

이길은 주님의 고통의 길이구나

피의 길이고 성체의 길로 내마음이 단숨에

고정되어 가면서

 

그토록 강열한 돌줍기의 집념이

그날이후에 깨끗이 사라져버린것이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어제와 오늘 내가 걸어온 그먼길에는

누가 꾸민것도 아닌데

부서지고 깨어지고 잘개쪼개진 돌들만이 가득했다

 

연이틀 한결같이 똑같은 모습으로 발아래

도로위에는 단단한 흙길뿐이고

부서지고 깨어진 잘개 쪼개진 돌들만 가득했던것이다

그리고 더욱 신기한것은

오 세브레이로 후반부터 줄기차게 따라오는

붉은 꽃들의 행열은 여전히

나의 발길이 닿는곳 마다 피어나서 한들거리고 있었다

 

국내에서는 볼수가 없는 붉은꽃이

피방울이 떨어질때의

형상을 하고

길가마다 피어있는것을 보면서

나혼자만이

그러한 생각을 하는 것일까

 

아니어도 좋다

다만 그분의 흔적은

이길을 걷는동안 내마음을 온전하게

 

그분과 함께 있도록 도와주고

내영혼을 사로잡고 있는

오물들이

죄악들이

뼈를 깎아내는 증오들이

 

그분의 진리안에 불태워지고

정화될수있는 시간으로서

후회가 없었다면 그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30일 예정인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33일인것을 이틀전에 알고

기절할뻔했던일

 

마드리드와 바로셀로나 여행을 위한 짐때문에

피레네 산맥에서의 위험했던 순간마다

기적처럼 조난의 위기를 벗어나기도 했고

 

결국에는 헛된 욕망의 산물인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위한

짐보따리는 집으로

보냈으나

 

덜어낸 짐보따리의 무게도 이길수가 없어서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5월 8일 부터 집에 오는날까지

동키서비스라고 말하는 택배 신세를 졌던것이다

 

그리고 까미노 친구들 중에

아무도 하지 않는 돌줍기로 가방의무게를 가중 시키고

 

남들보다 무거운 가방을 들어주는 알베르게 사람들과

동키서비스 직원들에게

미안했던 마음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것이다

 

내가 고집스럽게 하고자 했던 마드리드와 바로셀로나 여행을 모두 취소하고

까미노 데 산티아고의 길에 올인할수 있었던것은

나의 뜻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옳은 의지대로 진행되었던것이다

 

예수님의 가장 강열한 사랑의 의지가 숨어있는

성체성사의 길위에서 오늘도

무수하게 무리지어 피어있는 꽃들을 보며 혼호성을 지르며 걸었다

마냥 기쁨으로 충만한 몽환의 꿈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오늘의 숙소 이름도 기쁨이 충만해지는

BUEN CAMINO 인지도 모른다 ㅋㅋㅋ

내일도 거의 39.6 km 이상을 잘 걸어야 한다

 

그리고 주님께서 도와주셔야 꼼빠스텔라에 입성하는 기쁨을

누릴수가 있게 된다는 생각이 간절해 지는것이다

무엇이든지 내뜻대로 되는 것은 없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