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세다(Salceda) 에서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Santiago de Compostela)로 가다

2024. 8. 30. 10:59꿈속의까미노순례길

추억속의 산행후기

2018-08-06 03:39:14


살세다(Salceda) - 빼드로우소(Pedrouzo)-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Santiago de Compostela)로 가다

Albergue Compostela(꼼뽀스뗄라) 28.3km 15eur 6/2 2018 (32번째날)

 

온세상이 깊은 잠에 빠진듯 어둠깊은 새벽 5:30

살세다의 보니(Boni) 알베르게(Albergue)를 나선다

 

생과사의 갈림길이 운명에 맡겨진듯

전쟁터로 향하는 전사와 같은 비장함으로

똘똘 뭉쳐진 긴장감은 터질듯이 팽팽하다

 

수풀속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와 함께

인적없는 새벽의 어둠이 죽음과 같다는

날카로운 불길함이 엄습해온다

 

마침내

꿈에 그리던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로

향하는 이 성스러운 날의 아침에

어찌하여 나는 지금까지 한번도 상상해 보지않았던

혼자 걷는 순레자들을 노린 범죄자들의

출현을 떠올리고는 머리끝이

곤두서는 공포감으로 어쩔줄 몰라하고 있는것일까 ..

 

누구보다 혼자 걷기를 즐겨하고

동녁의 햇살이 떠오르기전의

고요를사랑해왔던 내가 아닌가..

 

그런데 이렇듯 갑자기 찾아온 뜻밖의 정신적 고립속에

아름드리 나무들이 우뚝솟아있는 캄캄한 새벽의

산길을 걸어간다는 것이

이토록 무서운것인줄 정말 몰랐던 것이다

 

내가 걸어가는 이길은

내가 평생 처음 걸어가는길이 아닌가 ?

 

누군가

범죄하기로 마음만 먹는다면

그범죄자는

이길의 특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가는길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갑자기 나타난다면

나는 속절없이 당할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혼절할듯 숨막히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걸었다

 

마을에서 떨어진 산길에는 나무들이 숲을이루고

아무리 걸어도 끝나지 않을것 같은 스산한 숲길은

한참동안이나 이어지고

내가 걷고있는 발자국 소리에 내가 놀라지 않도록

까치발을 하고 비명같은 울음을 삼키며 내달리고 있었다

 

살세다에서 뻬드로우소에 이르는 두시간 동안의

이알수없은 불길함의 사투는

잊을수없는 두려움속의 고행길이 되었던것이다

 

내가 출발했던 살세다와 뻬드로우소에 이르는

길의 초입에는

산띠아고 데 꼼빠스뗄라에 도착하기

하루전날 순레중에 사망한

기예르모 와트의 기념비가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놓고간 애뜻한 사랑의 마음이 담겨진

돌맹이와 메모지와 꽃송이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살세다에서 8.5km에 이르는 뻬드로우소는

성 야고보 성인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순례길의 대장정이 마무리 되는 마지막 전야의

순례자들를 위한 유명한 알베르게가 있는곳으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설레임으로 가득찬 평화의 종착역이기도 한것이다

 

뻬드로우소에서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까지는

20.1km로 다섯시간이 소요되며 마지막 하루를 보내며

이곳에서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여 야고보 성인과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하는 기도처이기도 한것이다

 

28.3 km의 거리를 오늘 12시 이전에 마쳐야만 한다는

고집스러운 나의 오늘의 일정은

산띠아고 대성당에서 있는 매주 토요일 오후 1:30 분에

집전되는 미사에 참석하기 위함이었던것이다

 

내 비록 냉담자로서 전례미사중의 가장 핵심인

성체를 모실수는 없지만

하느님께 대한 간절한 희망을 품고 이곳까지 와서

미사를 참석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무례를 범하는 어리석은자로 남을수는없는일이었다

 

내가 오늘 12시 이전에 도착하지 못한다면

이세상이 마지막 날이 올것 처럼

고집스럽게 땅만 보고 내달려왔던 그길에는

별빛조차 흔적없이 사라진

밤하늘을 향하여 한없이 뻗쳐 올라간 유칼립투스라는

유난히 키가 큰 나무들이 오솔길을 만들고

내가슴속에서 아직도 선명한 그림자를 남기면서

신비로운 바람소리로 일렁이고 있는것이다

 

도둑이 들려면 개도 짖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내가 30일 일정인줄 알고 있었던 순례길의 책자가

갑자기 33일이라는 것을 발견하고는

얼마나 기절하고 놀랬었는가 ?

생각만 하여도 지금도 눈앞이 아찔해지는

절벽위에 서있는 느낌인것이다 ~ !

 

까미노를 마지막에 포기를 하던가

아니면 아무런 선택의 여지가 없이

3일동안 걸어야 할 길을

하루에 두배 이상의 길을 걸어서

까미노를 포기 하지 않고

완벽하게 완성시켜야 했던것이다

하루에 20km 25km 거리가 적당한 거리일것이다

그러나 3일간의 공백을 지우기 위해서 하루에

거의 40km를 걸어야 했던 살인적인

까미노의 마지막 여정은 목숨을 건 사투였다고 할것이다

 

몇일동안을 정신없이 결코 멈출수가 없었던 발길은

미친듯이 걸어서

기적처럼 오전 11시 30분에

산띠아고 꼼뽀스뗄라가 내려다 보이는

몬데 도 고소 (Monte do Gozo) 언덕에 올라

뜨거운 가슴이 터질듯 감격의 눈물을 쏱았다

 

이것은 내가 전혀 기대할수없었던 기쁨이요

내가 감히 꿈꿀수 없었던 환희에 잠기는

그시간이 내게 얼마나 감격스러웠는가 모른다

 

가슴속을 파도치고 흘러가는

은혜로운 감사의 마음은 구름속을 걷는듯

기쁨으로 충만해지는 시간이 되고 있었던것이다

산띠아고 꼼뽀스뗄라 대성당 카테드랄(CATEDRAL)의 첨탑이

내려다 보이는 몬데 도 고소(Monte do Gozo) 언덕은

이제는 성인이 되신 요한 바오로 2세 방문 기념 조형물이 서있었고

모든 순례자들의 사랑속에 기념촬영의 장소가 되기도 하는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나에게 특별한 은총으로 기억하는

감회가 깊은 교황님이시기도 하다

 

우리나라에 카톨릭 신앙의 뿌리를 내리게된것은

이벽 이승훈 그리고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정약용

3형제등이 중국에서 접하게된 성서를 통하여 진리를 깨우치고

이승훈이 중국으로 가서 영세를 받았다는 사실은

카톨릭신앙의 자생적인 발생지로서의 대한민국의 위상은

각별한것이고 세계사적인 의미가 큰것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이나라의 지성인들에 의해서 신앙의 뿌리를 내렸던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처럼 나 또한

내게 주어진 삶의 무게와 고단함에 지쳐서

스스로 성당을 찾아가서 영세를 받았던 것이다

 

내가 영세를 받았던 다음해인 1984년 5월

한국 천주교 전래 200주년 축하와

이땅에서 순교하신 103위 순교자 성인 시성식집전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셨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님을

여의도 광장에서 뵈올수있었다는 것은 내생애의

전환점이 시작되는 기적의 시간이기도 했던것이다

 

대한민국의 40만명의 카톨릭 신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뜨거운 감동을 보여주었던 그날의 기억은

평생동안 잊을수없는 가장 행복한 추억이 되는것이다

 

나 비록 지금은 그뜨거웠던 열정의 간절한 신앙에서 벗어나 냉담하고 있지만

한번 하느님의 자녀로 축성된자는 영원한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되는것이다

 

아직도 내가슴속에 향기로운 빛으로 떠오르는 오월의 태양과

신비로운 사랑의 마음으로 충만했던 그날의 순간들을 잊을수가없는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자리 몬데 도 고소 언덕에서

교황님과 마주하고 홀로 서있는 쓸쓸한 마음의 뜰안에는

흑백사진속의 초라한 잊혀진 날들의 아픈 기억들이

내여린 가슴을 더욱 쓰라리게 하고 슬프게하는것이었다

 

삶이란 그 어떤것도

나의 의지대로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라는것이

애닲은것이다

하느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였으나

그러나 그것은 나의 힘이 모자라는 영역밖의 일이되었고

나로하여금 끊임없이 눈물짓게 하는것이었다

 

내가 떠나온것이 아니라

내가 떠밀려서 삶의 풍랑에 떠밀려서

한없이 떠내려가고 있는 속절없는

끝없는 슬픔이 나의 삶이었던것이다

 

그 고통이 얼마나 쓰라린것인가 ?

그 슬픔이 얼마나 처절한 것인가 ?

하늘아래 뉘라서 그삶의 무게를 알겠는가 ?

 

나는 언제나 외로운 바다위를 떠도는

새가되어 나혼자 주님을 찾아 헤메이는

극한의 바다에서

모진 생명을 이어가는

통한의 시간은 길고 험난했지만

 

언젠가는 뜨거운 마음으로 다시 불러주실

주님의 그날을 기다리며

날마다 죽음보다 깊은

기다림의

고통스러운 인내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었던것이다

 

주님께서 나를사랑하시는가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것인가

주님께서 나를 이곳에 오게 하였는가

내가 주님을 찾아서 이곳까지 왔었는가

 

실타래처럼 엉켜있는 내삶의 이간절한 숙제들은

아직도 명쾌한 정답을 찾지 못하고 오늘 이곳까지 이르렀지만

 

주님의 이름으로 명명되어 심어지고 자라나고 열매를 맺고

땅에 떨어져서 다시 새생명의 씨앗으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주님을 향한 나의

사랑의 행로는 슬플지라도 결코 멈춰지지는 않을것이다...

 

 

순례자들의 소망어린 마지막 쉼터가 되는

뻬르로우소에서 몬데 도 고소까지는 15km 이고

몬데 도 고소에서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까지는 4.4km이다

 

몬대 도 고소(Monte do Gozo)의 언덕은

성스러운 도시 꼼뽀스뗄라(Compostela)를 지탱지켜주는

대도시의 인프라 기능인 철도와 공항이 한눈안에 들어오게 된다

 

중세시대에 말을 타고 이곳까지 왔던 순례자들도

몬데 도 고소(Monte do Gozo)언덕에서 부터는 말에서 내려서

말을 이끌고 대성당(Catedral)까지 걸어갔다는

순례자들의 겸손한 마음으로

나도 그곳에서의 한가로운 시간을 오랫동안 머물수 없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로 발길을 옮겨 놓았다

 

도시로 이어지는 길은 복잡하고 많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서

대성당Catrdral)을 향하여 생애중에 가장 뜨거운 사랑의 마음과

넘치는 기쁨으로 가득한 발걸음을 옭겨 놓고 있는듯 하였다

 

길가의 집들은 모두 현대식의 건물들이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꽃과 나무들로 집을 꾸미는 심미안적인 감각은

그들의 삶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아름답고 아기자기하게 이어가고 있었다

 

도시안으로 들어갈수록 까미노의 표식이 없어서 당황하게 되었다

나와 같은 길을 걷게된 덩치가 커다난 두남자는

산티아고 조형물 아치가 있는 곳에서

기념 사진을 찍으면서

그들 특유의 기쁨 가득한 장난끼 어린 몸짓으로

보는이들을 한없이 즐겁게하는 순례자들이기도 하였다

 

온갖 장난끼어린 제스춰로 떠덜석하게 사진을 찍으면서

그곳을 지나가는 나에게 둘이서 있는 장면을 찍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었다

길을 가다다 내가 까미노의 표식이 없다고 불만을 말했었다

그리고 내가 걱정하는 그소리를 그들도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들이 커다란 발걸음으로 성큼 성큼 가버리면

나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 나도 모르게

그들이 가는곳을 향하여

뛰다싶이 하면서 그들과 함께 걸어가고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엔가 나는 그들을 잃어버린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앞서가는 사람들속에서

한참전에 사라졌던 두남자가 내앞에 나타난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나에게 하는 말이 사뭇 심각한 것이었다

땅 바닥에 조가비 표시가 되어있지 않느냐 는것이다 ㅎㅎㅎ

 

그랬었다 도시의 복잡한 건물의 벽면이나 길가에 까미노 특유의

조가비와 화살표는 사라지고 없었던것이다

까미노가 시작되는 생쟝으로부터 산띠아고에 이르기 까지

스페인의 까미노의 전지역에는 반드시

청동으로 만들어진 조가비 문양의 멋진 표식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수놓은듯이 길 바닥에 아로 새겨져 있어서 순례자들은

그들의 섬세한 배려의 마음에 감격하면서 걷기도 하는것이다

그래서 나도 그날 땅바닥을 유심히 살피면서 가고있었지만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였고 그들이 가버린 길을 따라서 가고 있는중이었다

 

자기들은 땅바닥에 조가비 표식이 있다는것을

반드시 믿고 있는데

너는 왜 모르느냐는 명백한 항의로 들렸던것이다 ㅎㅎㅎㅎㅎ

 

나는 그들의 그믿음이 너무나 가상해서

내가 고맙다고 인사를 하니까

그들도 반색을 하면서 걱정말고 따라오라는 것이다

그들은 내가 길을 잃을까 봐

땅바닥의 조가피 표식을 발견하는 즉시

그들의 가던길을 멈추고 내게로 돌아와서

내가 가야할길을 알려 주는 천진스러운 어여쁜 이 두남자는

 

하느님 궁전으로 가는길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꿈에 그리던 별이 쏱아지는 들판에서 만났던

덩치가 커다란 장난꾸러기

달콤한 웃음을 간직한 나를 위해 급조된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사랑스런 나의 천사들이었던것이다 ㅋㅋㅋ

 

아아

나는 이들판을 걸어가는 것 만으로

하느님의 은혜가 충만해지는 행복한 마음으로 가득해졌던것이다

 

그리고 얼마를 걸어갔을까

그들은 이제 다른길로 갈것이라면서

나를 보고 직진해서 가라고 다시 돌아와서 일러주고

행길을 건너서 유유히 사라지는 한결같은

덩치가 커다란 유쾌한 나의 천사들이었던것이다 ㅋㅋㅋ

 

나는 대성당 있는곳에서 20분 거리에있는 숙소를 찾아야만 했다

기차역 부근의 꼼뽀스떼라 숙소(Compostela Albergue)를

찾는데 애를 태우고 시간이 좀 걸렸었다

 

이름을 인터넷에 나와 있는대로 "꼼뽀스뗄라"로 쓰지 않고

간판을 다른 이름을 쓰고 있어서

스마트폰의 지도 길찾기가 아닌 아날로그방식의

주변사람들을 이용한 나의 길찾기는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가 아니라

내가 찾고있는 숙소이름과 똑같은

"Compostela" 라는 Hotel 까지 가게 되었던것이다

 

같은 업종이지만 호텔과는 다른 순례자들의 숙소도 잘 알고 있었던

그곳의 친절한 호텔 데스크 메니저 때문에 나의 숙소인

" Albergue Compostela"를 감격스럽게 찾아낼수가 있었던것이다

 

Albergue 숙소에서 급하게 짐을 풀어 놓고 나와서

대망의 대성당(Catedral)으로 향했다

 

대성당(Catedral)을 향해서 뻗어있는

옛도시의 고색창연한 골목길의 건물들은

한순간에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고

다른세상에 온것처럼

사람들의 얼굴에는 천국에 온것같은 희열이 가득차 있었다

 

세계각국에서 모여든 서로 다른 모습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떼를 이루고 걸어가는 모습들은

물밀듯이라는 표현이 맞을 만큼

골목길을 가득히 넘쳐나고 있었던것이다

 

그고풍스러운 골목길에서 대성당(Catedral)의 지붕이 보이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탄성을 지르면서 끼리끼리 사진을 찍으면서 즐거워 하는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사진을 찍기는하였지만

내가 나오는 그 감격의

대성당(Catedral) 첨탑이 보이는 사진은 한장도 찍을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누구보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야하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도로를 매우고 있었기에

그럴수가 없었고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될수도 있고

위험할것 같기도하여 아쉽지만 포기했던것이다

 

천년이 넘는 고도의 대성당(Catedral)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Santiago de Compostela)의

광장(Praza do Obradoiro )은

감격 그 자체일수밖에 없는것이다

 

성당입구 광장에서 부터 순례자들을 반기는

연주자들의 경쾌한 음악소리가

하늘 드높게 메아리치고

 

수많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서 환호성을지르면서

기뻐하고

이곳에 있음을 감격해하는것이다

 

나 또한 그들처럼 이곳에서 두발로 서있는 기쁨에 감격하고 있었다. . .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모드가 기쁨에 잠겨서

행복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었고

더러는 땅바닥에 누워서

까미노의 대장정을 이룩한 행복함을 만끽하고 있었던것이다

 

하늘을 처다보며 환희에 찬 감흥에 잠기고

삼삼오오 모여서 단체사진을 찍는사람들로 구름떼를 이루고 있었던것이다

나도 몇장의 사진을 찍었다

나도 다른사람에게 부탁해서 카메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나는 왜 감격해야 할 이순간에

외로운 이방인의 낮선 표정으로

이웅대한 고도의 천년세월의 역사가

이끼처럼 내려 앉은

대성당 광장의 한복판에 서서 한없는 외로움에

잠겨야 하는것일까 ...

그알수가 없는 안타까운 설음이 눈물이 쏱아질것 같아서

몸둘바를 모르고 서성이고있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 이것이 나의 운명인것을...

 

한참 수리중인 대성당은 책자속에서 익히 보아왔던 모습 그대로

하늘을 찌를듯 우뚝솟아오른 세봉우리의 첨탑들은

내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구처오르는 슬픔들을 억누르고

푸른 하늘 아래 무한히 신비로운 모습으로 빛나고 있었던것이다

어찌 되었던 기념 사진을 찍은후에 순례자 여권 발급처인

크레덴시얼 사무실(La credencial Office)을 찾아갔다

12시 정각 쯤에 대성당 광장에 도착했었기 때문에

크레덴시얼 사무실에서 인증부터 받아 놓고

오후 1시 30분에 집전되는 미사에 참석하고

다음날은 땅끝마을이라는

바다가 보이는 피니스떼라(Finisterre)에 갈려고 했었다

그런데 크레덴시얼 사무실에는 백여명도 넘는 순례자들이

빼곡하게 줄을 서서 한없이 기다리고 있는것이 아닌가?

 

여섯명의 사무직원들이 순례자들이 지나온 코스를 확인하고

순례자인증서를 발급해 주고 있었지만

무려 두시간동안이나 기다려서 인증서를 발급받을수가 있었던것이다

내가 그토록 야무지게 계획하고 달려온 날들은 아무 보람도 없이

내가 참석하고 싶었던 토요미사는 당연하게 참석을 할수가 없게된것이다

 

그래서 나는 본의 아니게도 매주 일요일 12시에 집전되는

순례자들이 목숨을 걸고 하루를 숙소에 묵으면서까지 기다려서

참석하고 싶어하는 순례자들을 위한 그유명한 향로미사에 참례하게된것이다

 

모든 카톨릭 순례자들이 평생에 한번은 가고자 했던

산띠아고 데 꼼뽀스떼라

모든 카톨릭 순례자들이 하늘나라에 가기전에

한번은 드리고 싶어하는 순례자 미사(Pilgrim Missa)에

내가 참례하게된것은

나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이며

나의 순례길에 주어지는 가장 큰 기적이라 할것이다

 

무엇이든지 내뜻대로 되어지는것은 하나도 없었던것이다

내가 그토록 무리하게 진행해온 몇일동안의 일정은

오늘 오후 1시 30분의 토요미사를 참례할수가 없게됨으로서

그동안의 나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기도 했던것이다

 

그러나

내가슴속에서 늘 차가운 얼음덩이가 되어

나를 가슴아프게 하는 냉당함에 대한

뼈아픈 고독을 삼키며 울부짓는 나에게 주님께서는

 

나에게 성체성사의 길을 깨우쳐 주시고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잊지 않으신다는 사랑을 보여주시고

나로하여금 내가 걷는 이길이 성체성사의 길이었음을

깨닫게 하여 주셨다

 

이제 이길위에서

오늘 내가 염치가 없어서 성체성사없는 미사참례를 거부하고

피니스떼라(Finisterre)와 무시아(Muxia)로 떠도는 내 영혼을 잡아주시고

순례자 미사(Pilgrim Missa)에 초대해 주시는 은혜를 주신것이다

내가 울며불며 목숨을 걸어온 이길에 대한 보답으로서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순례자 미사(Pilgrim Missa)에

참례하였다는것은

내가 걸어왔던 이고귀한 순례길에서 받게 되는

가장 큰 축복이며

하느님께서 내게 주시는 기적이라할것이다

 

나는 꿈같은 사랑의 은혜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한없는기쁨에 잠긴다

 

오늘 만났던 몬데 도 고소(Monte do Gozo) 의 두천사들의 말처럼

너는 왜 땅바닥에 그려진

조가비 까미노 표식이 없다고 의심하냐 ? 고

그들이 나를 향하여 오늘도 달려 올것만 같은 환상에

실소를 금치못하는것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어서 갔다가 걸어서 돌아오는

거리와 거의 같은 800km의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의 대장정의 순례길

 

32일 동안 힘들고 어렵게 걸어온 고결한 신심의 증표로서

이제 이곳에서 순례자의 인증을 받기위하여

무한히 많은 사람들이 꼬불꼬불한 기다림의 긴줄을 이루고

서있다는것은 순례자들 모두들에게 또다른 의미의

인증사진을 가슴속에 깊이 새기는 순간이기도 하였던것이다

 

대성당 광장(Praza do Obradoiro )의 오른쪽으로

따라 내려가면 만나게 되는

크레덴시얼 사무실(Credencial Office) 안쪽은

정사각형의 공간의 정원에

늦은 봄날에 피었다가 지고있는 동백꽃의

유난히 붉은 꽃잋들이 땅바닥에 시체처럼 나딩굴고 있었다

 

한달이 넘는 기나긴 시간속을 걸어왔던 사람들이

이공간에서 다시만나 기쁨을 만끽하는 모습들은

가슴이 따뜻해지는 아름다운 장면이 되고 있었던것이다

 

지루하고 짜증날것 같았던 기다림의 긴줄은 오히려

까미노 길에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인하여

모두가 눈물 겹도록

반가운 만남의 축제의 장이 되고 있었던것이다

 

나 또한 그안에 하염없이 서 있는 동안에

까미노 여정에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기쁨이 충만한 시간이되었었다

 

순례자들의 편의를 위해서

크레댄시얼 사무실과 연결되어있는 창구에서

지하철 버스 비행기 표를 예매할수 있었다

 

오직 순례자들의 편의제공을 위해서

토요일과 일요일도 없이 늘 풀가동되고 있는

완스탑 서비스 시스템 덕분에

나도 바로셀로나행 기차표를 예매할수가 있었다

절대로 불가능 할것 같았던 32일간의

까미노 데 산티아고길 완주에는 성공하였지만

나의 마지막 소망이었던 바다가 보이는

땅끝마을까지의 여행은 강제로 취소할수밖에 없었던것이다

땅끝마을이 안된다면 그보다 가까운곳에 있는

"무시아(Muxia)"라도 갈려고 했었지만

미리예약을 하지 않으면 갈수가 없었던것이다

 

산띠아고(Santidgo)에서 그곳까지는 미리 예약을

해야만 하고 하루 당일로 갔다가 올수가 없었기

때문에 어쩔수가 없이 포기할수밖에 없었던것이다

 

이곳에서도 프랑스에서 처럼

내가 가고자 하는 무시아(Muxia)와 피니스떼라(Finisterre)는

교통편 때문에 나의 간절했던 소망은

두번씩이나 무참하게 좌절되었던것이다

허지만 순례자들의 최상의 소망인

일요일에 집전되는 순례자들을 위한

순례자 미사(PILGRIM MISSA)를 드릴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것은 주님의 은혜로운 사랑이었던것이다

 

내가 예정하지 않았던 순례자를 위한

필그림 미사를 드리고 난 그날 이후 부터는

매일 같이 비가 내려서

내가 만일

무시아(Muxia) 와 피니시떼라(Finisterre)에

갔었다고 하더라도

비오는 날의 바다를 바라보는것만으로

그간절했던 소망은 실망으로 끝날번 하였던것이다

나는 3일동안 산띠아고(Santiago)에 머물면서

매일 아침마다 대성당(CATEDRAL)의 성지에서

소중한 시간을 보냈는데

까미노길에서 만났던 친구들을 만나서

사진도 찍고 행복한 만남의 시간을 보낼수

있었던것이 눈물겹도록 고맙고 기쁜일이었다

대성당 광장(Praza do Obradoiro)에서

다시 만나게 된 멕시코에서 왔다는 아름다운 모녀는

유난히도 나의 이름 루시(Lucy)를 선호하고 반겨주었던

그들의 티없이 맑고 따뜻한 미소들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기쁨으로 기억될것이다

 

그들중의 몇몇 사람들은 반드시 한국을 방문하기를

바라며 행복한 만남의 시간이 이어지기를 기도하는것이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의 이야기는 계속될것이다

산티아고(Santiago)의 순례길은

무궁무진 아름답고 행복한 영혼의 산책이 되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