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30. 12:10ㆍ꿈속의까미노순례길
빨라스 데 레이(Palas de Rei) 에서 살세다( Salceda)로 가다 39.6km 10.00 euo Alberuge Boni 6/1 2018 (31번째날)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성 야고보 성인이 잠들어 있는 땅
별들이 쏱아지는 들판이라는뜻의 꼼뽀스뗄라
가슴속에 자신의 본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열열한 사랑을 품고 사는자 모두
하늘의 은혜가 별처럼 쏱아지는
꼼뽀스뗄라의 들판에
날마다
구름떼처럼 모여 들고
자신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아름다운 세상을 허락해 주신 주님을
향한 그들의 마음은
환희에 가득찬 기쁨의 노래가 되고
주님을 향한 그들의
폭포수 처럼 흘러 넘치는 사랑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타오르고
이지상에서 피어나는 유일하고
가장 아름다운 꼼뽀스뗄라의
반짝이는 별이되어 그곳 하늘아래
오래도록 고운빛으로 빛나게 되기를
소망하는
그리스도의 신자라면
누구나 한번은 가고 싶어하는 그곳
아니 반드시 가고야 말겠다는 꼼뽀스뗄라는
이지상에 존재하는 하느님의 궁전인것이다
이제 내가 그토록 열망하고 소망했던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가
내눈앞에 꿈처럼 펼쳐지고 있는것이다
대망의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오늘은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그곳에 도착하기 하루 전날의 감격속에
목숨을 건 도전은 계속되고 있는것이다
빨라스 데 레이에서 살세다 까지는
40km 이며 오늘 내가 걸어야하는 길은
정확하게 말해 39.6km의 먼 길이고
가장 힘들고 긴장된 코스가 되는것이다
귀국일정 때문에
내가 살세다까지 40km를 걸어야 한다는
나의 절박한 까미노 일정을 확인하고
알베르게의 호스피텔리어는
몇번씩이나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것이었다
나에게는
도저히 하루에 걸어낼수 있는 거리가 아니라는것이다
배낭을 다음 목적지로 보내는 티켓의 주소을 작성하면서
내가 가만히 생각을 해봐도 호스피텔러의 말대로
내가 도저히 해낼것 같지 않는 절망감에
눈앞이 아득해지기도 하는것이었다
하지만 오늘 내가 40km의 먼길을 반드시 걸어야만
6월 5일까지 착오없이 프랑스로 돌아갈수 있게되고
서울로 향하는 귀국행 비행기를 탈수있기 때문에
이것은 어쩔수없는 나의 운명의 도전이되고 있었던것이다
내가 프랑스에 입국하여 까미노가 시작되는
프랑스 생쟝에 도착한 그날부터
예기치 못한 상황들이 나를 난감하게 하고 있었다
프랑스의 몽파르나스 역에서 떼제배를 타고
중간 기착지 바욘에 내려서 버스를 타고 한시간 거리의
생쟝역에 내리면 그곳에서 길을 물어보지 않아도
사람들은 말없이 전에 수없이 와본 사람들처럼
순례자들의 사무실로 향하게 되는것이다
사무실에서 순례자 여권인 크레덴시얼을 발급받은 후에
사무실위쪽에 있는 숙소에서 짐을 풀어 놓고
밖으로 나와서 기념사진을 찍을려고 하는 순간
나의 스마트폰의 화면이 검정색으로 변하면서
전혀 작동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고
까미노 시작부터 불길한 경고음이
강열하게 나를 강타하기 시작했던것이다
무거운 배낭을 매고
산들 바람에도 몸이 좌우로 흔들리는
사면초가의 천길낭떠러지
절벽위에서
한발자욱도 옮겨 놓을 수없는
난감함으로
어쩔줄 몰라했던 출국 전날밤의 꿈이
까미노 첫날부터
나를 망연자실하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암담함을 무엇으로 형용할수있겠는가 ...
그러나 다행히도 순례자 사무실의 봉사자의 도움으로
그곳의 시내로 가서 스마트폰을 고칠수가 있었던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던것이다
결벽증이라는 말을 들을만큼
자신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나의 완벽주의는 어디로 간것일까
그많은 날들의 정성어린 꿈과 자신감은
무용지물이 되었고
온몸의 나사가 한순간에 풀려버린듯
무장해제당한 비참함이 어이가 없었던것이다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듯이
어른도 세월따라 늙어가면서 실수투성이
아이로
돌아가는것이
인생의 순환의 고리인것 같기도 해서
그러한 자신을 인정해야 하는
아픔이 나를 슬프게하기도 하였던것이다
내가 까미노를 준비하면서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내아이들은
아무리 말려도 가고야 말겠다는 나를 위해
까미노길의 대선배
순례자를 감독으로 고치로 선임하여
짐의 무게를 줄이는 것이 첫번째 과제라고
누누이 교육을 시키고
귀가 뚫어지도록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못말리는 욕심때문에
내가 그동안 준비해왔던 예쁜 옷들을
버렸다가는
그 다음날 다시 찾아서 꽁꽁챙겨서
까미노행 비행기에 올랐던
나의 무모함으로인하여
짐이 나를 짓누르는 ~~~
고된 내삶의 무게와 같은것이되어서
나를 까미노 내내
고통으로 얼룩지게 만들고 있었던것이다
내가 까미노행을 결심하였을때
우리 아이들의 적극적인 반대뿐만이 아니라
그동안 나를 케어해 주시던 의사 선생님들도
적극적으로 가지 말라고 하셨다
임플란드 시술과정에서 있었던 치과 선생님
그리고 계단을 오르고 내릴때 조금씩 시큰거리는
오른쪽 무릎 치료를 담당해주시던
정형외과 선생님께서는
절대로 가면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곳에 가는것은 죽으러 가는것과
같은것이라고 하셨다
60대 중반의 사람들이 그곳에 가는것은 보았지만
칠순을 넘긴 사람이 가는것은
처음 보신다고 하시면서
단정적으로 반대를 하시는것이었다
그동안 아픈적이 없었던 무릎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출입하게된 나의 마음은
그럴수록 더욱 포기할수없는 갈망을 키워가게된것이다
나와 비슷한 년령대의 선생님께서
스스럼없는 친근감으로
맹열하게 가지말라고 만류하실때마다
나는 그와는 반대로 하루라도 빨리
올해안에 가야한다는
내년이면 절대로 갈수없게 될것같은
절박한 심정이 되어
더욱 가고야 말겠다는
굳센 의지를 키우게된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선생님에게 선언하게 된것이다
여기서 죽는거나 그곳에 가서 죽는거나
죽는것은 마찬가지니까
차라리 까미노에 가서 죽겠다고 하였었다
이러한 나를 보시고
너무나 어이가 없으셨는지
허허허 그렇게 웃으시던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두번의 연골주사를 맞게 하여 주셨다
만약을위한 철저한 대비인것이었다
그렇게 엄마를 걱정하는 우리 아이들과
의사선생님들의 극진한 걱정을 뿌리치고
떠나왔던 나의 까미노는
시퍼런 칼날위에 맨발로 서있는
신들린 무당처럼
보는이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공포로 얼룩지게 하고 있었던것이다 ㅋㅋㅋ
어디 그뿐이겠는가?
이곳 스페인에 오기전
프랑스에서는
남들이 들으면 기절할일들이
두번씩이나 있었던것이다
너무나 창피해서 절대로 남에게 말할수 없는
비밀이지만
어쩔수없이 발설할수밖에 없는일이기도한것이다
내가 그토록 열심히 준비해 왔던 순례자길의 주의 사항들이
일순간에 사라지고 무산되어버리는 일 때문에
망여자실 했던일들을 지금 생각만 하여도 눈앞이 아찔해지는것이다
내가 스페인에 오기전 프랑스에서
8일동안이나 여행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몽마르뜨르에 갔다가 에펠탑 스카이 라운지에 올라가서
한껏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지하철를 탈려고 하였을때
일주일 짜리 티켓이 5일만에 동이 나버린것이다
에펠탑 바로 아래 위치하는 지하철 입구는
워낙 협소한 공간이라서 있어야 할 역무실도 없었고
역무원도 없었고 현금이나 동전으로 표를 사는 기계도 없었다
지하도가 이어지는 입구에
카드사용이 가능한 기계한대만 있었던것이다
나는 프랑스 입국하던날 일주일 티켓을 샀기 때문에
아직은 이틀이 유효하다고 생각하였는데
날짜로 일주일 유효한것이 아니라
하루에 쓸수 있는 초과분을 넘겨서 써버렸기 때문에
결국 5일만에 일주일분의 티켓은 무용지물이된것이다
그래서 나는 반드시
나의 카드로 티켓팅을 해야만했던것이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긴줄을 이루고 서있었기 때문에
나도 그줄에 서게 되었고
각국어로 표시된 머신의 글자를 영문으로 하고
티켓팅을 사작하였는데
다른사람들 처럼 단숨에 성공할수가 없었다
사실은 국내에서도 지하철 표 티케팅을 해본적이
별로 없고 가끔씩 다른사람을 위해서 티켓을 구매할때도
나는 기계치라 할만큼
그러한 티켓팅이 별로 유능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런 준비없이 갑자기 처음 해보는 외국에서의
티켓팅은 공포 그자체가 될수밖에 없었던것이다
그래서 몇번이고 에러가 나니까
나의 뒤에 서있엇던 중년의 프랑스 남성이
자기가 도와 주겠다면서 자청하고 나선것이다
그래서 카드를 다시 장착시키고 순서대로 잘 진행하고
나보고 비밀 번호를 입력하라고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나의 생각은 비밀번호를 가려야 하는것이었다
그런데 나의 옆에 서있는 이남성의 키는
나보다는 훨씬 크기 때문에
나의 손바닥으로 가리고 번호를 처야
상대방에게 내 비밀번호를 보여주지 않게 되는것이다
한국에서 은행에 갈때마다 비번을 가려야된다고
머리에서 쥐가 나도록 들어왔던
그말을 잊은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친절을 베푸는
너무나 멋지고 잘 생긴 남성이 보는 앞에서
손바닥을 가리고 비번을 칠수는 없었던것이다
아휴...
그래서 옛 어르신들이 고목나무에 꽃이 핀다고 하신것일까
어째서 나는 그리도 철딱서니가 없는 철부지 인가 !
내 딸 아이들이 "우리 엄마가 속썩인다 "는
성토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듯 한것이다
순간적으로그러면 안된다는 생각이
압도적으로 나를 옥죄어왔지만 ~
나는 나의 손으로 비번을 가릴수가없었던것이다 !
노출된 상태에서 나는 그냥 비번을 치고 있었던것이다 ㅋㅋㅋ
그사람은 나보다 키가 크기 때문에
나의 비번을 확실하게 볼수가 있었던것이고
어쩔수없는 나의 이상한
태어날때부터 고장난듯 바보같은 나의 성격은
반드시 지켜야하는
안전사항을 나스스로가 지켜내지 못했었던것이다
왜 그순간에 너스레를 떨면서 그순간을
재치있게 넘기지 못한것일까....
나는 아직도 잘생긴 남자 앞에서 수줍음을 타는
열아홉살의 순수한 여성이었던것이다
이 얼마나 못말리는 딱한 노릇인가 !
꿈속에서도 오매불망 그리웠던 프랑스 파리
에펠탑의 평화로운 품안에서
유효기간이 훨씬 지나간
고목나무에서도
요란한 굉음소리를 질러대는
청춘의 꽃잎 파리들이 피어나고 있었던것이다
어쨌든
지하철 티켓은 기분 좋은 리듬속에 찰칵하고
아래로 떨어져 나왔고 그것을 받아든 나는
그분에게 기쁨의 감사인사를 하게되었던것이다
그런데
그때 그사람은 나에게 "카드를 뽑으라"고 말하는것이었다
내가 인사하는것이 바빠서 카드 뽑는것을 잊고 있었던것이다 (!!!)
이렇게 나보다 먼저 카드까지 챙겨주는 그에게
더욱 고마운 마음이 되었고
그사람은 자기와 함께 있는 남성을
친구라고 소개하면서
그사람과도 인사를 나누게 해주는것이었다
어디서 왔느냐는
자연스러운 인사말로
잠시동안의 만남과 헤어짐의시간이 지나고
나는 지하철를 타기 위해서
그곳를 떠났었다
그리고 잠시 걸어가다가
무언가 이상한 예감으로 섬뜩한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그래서 급하게 가방을 열고
지갑을 뒤져보니까 있어야 할 카드가 없어진 것이다
그순간 그티켓 머신이 있는 곳으로 마구 달려갔었다
그런데 아까 만났던 그남성들은 깜족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너무나 당황스러웠지만
어쨌든 카드를 찾던가 아니면 경찰에 신고를 해야하는데
나의 전화는 먹통인것이 어이가 없는것이다
그래서 티켓머신 입구 부근에 있는
여러가지의 편의점이 있는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제복을입고 상주하고 있는 여성 경비원 두사람이 있었다
내가 급하게 사정을 말하고
전화를 좀 빌려주면 안되겠냐고 했었다
그러나 그곳의 두여성 경비원은
단숨에 안된다고 딱 잘라서 말하는것이다
너무나 다급했기 때문에 경찰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본국의 은행으로 반드시 전화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경찰을 불러달라고 외마디 소리를 질렀었다
그랬더니 그러겠다고 했지만 경찰은 오지 않았다
그래서 경비원에게 왜 않오냐고 난리를 치기도 하면서
30분도 더 지난 다음에 경찰차가 나타났었다
그리고 나에게 자초지종을 묻는 경찰들에게
티켓 사느라고 그랬던 상황을 설명하니까
그사람들이 두사람의 남자가 아니냐고 묻는것이다
그렇다고 하니까
그럼 그사람들이 너의 카드를 가지고 갔느냐고
묻기도 하는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사항이기 때문에
절대로 잘못 대답해서는 안되는사항인것이다
그래서 분명하게 그사람들이
내카드를 가지고 간것은 아닌것이지만
내가 그들과 인사하는 사이에 그곳에서
잃어버린것이라고
말할수밖에 없었던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명백한 나의 실수로
카드를 분실했기 때문에
보험에서도 보상이 않된다는 절망감은
나를 더욱 자지러지게 하고있는것이었다 !
아까 그사람들이 진짜 나쁜 사람들이라면
지금쯤 나의 돈을 통장에서 몽땅
뽑아 갔을것이란 생각을 하니까
하늘의 날벼락을 맞은듯 기절초풍을 하게 되는것이다
내가 너무나 절박하게 된 상황에서 경찰들에게
그사람들을 좀 찾아 달라고 하여였지만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안된다는 것이다
그럼 내가 본국의 은행에 전화를
걸수있도록 도와 줄수없냐고 하니까
그것도 안된다는것이다
우리나라의 전경들 처럼 앳된 얼굴의 프랑스 경찰들은
무려 네명이 좁은 경찰차에 앉아서
사색이되어서 어쩔줄 몰라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나에게
얼른 숙소로 돌아가서 도움 받으라는 것이었다
자기들은 업무상 절대로 할수없다는 말을 남기고
행운을 빈다면서
잠시동안 머물다가 유유히 사라지는것이었다
이일을 어찌 해결해야만 하는가?
분과 초를 다투는 다급한 상황에서
나의 숙소가 있는 몽주르 까지는
전철을 타고 버스를 갈아 타고 가야하는
적어도 한시간 이상은 넘게 걸리는 먼거리인것이다
그래서 할수없이 처음에 만났던 여성 경비원들에게 달려가서
나는 단숨에 그들에게 말했다
내가 돈을 줄테니까 본국에 전화할수 있게 해달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그녀들은 알았다고 말하면서
"1분에 5유"로 라는것이다
너무나 다급해진 나는 은행의 긴급 전화번호를
찾는것도 어려워서
우리 큰딸에게 먼저 전화를 걸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딸에게 은행으로 연락하게 하였고
오늘 당장에 통장에서 빠져나간 돈이 얼마인가를 물었었다
그랬더니 본인에게만 알려줄수있다는
응답을 받았다면서
내가 다시 은행으로 직접전화를 하라는것이다
그리고
"오늘 당장 외국에서 결제된 금액은 50유로"라고 하는것이다
"오오 하느님" 하면서
나는 그만 땅바닥에 주저 앉을뻔 하였다
아까 내가 카드로 티켓팅할때
나를 도와 주겠다고 했던 남자가
분명히 나의 카드에서 50유로를 뽑아간것이었다
세상에나 몇번이고 다시 물어보아도
오늘 결제된 금액은 50유로 뿐이라는것이었다
세상에나 그사람들은 왜 50유로만 뽑아간것일까?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불가사의한 사건인것이다
그사람들은 충분히 더 많은돈을 뽑아 갈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사람은 어째서 50유로만 뽑아간것일까 ?
그것은 지금도 변함없는 나의 의문사항이 되는것이다
너무나 불가가의한 수수께끼가 되고 있는것이다 ~~~ !
50유로이면 단돈 60.000원 정도의 한화로서
그렇게 작은 액수의 돈을 뽑아갔다는것은
참으로 믿을수없는 기적인것이다
우리나라의 은행의 기계에서는
카드로 돈을 인출할때 돈보다는 먼저
명세서와 카드가 나오고
그다음에 돈이 인출되는 문이
소리를 내면서 열리는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카드가 깊숙하게
들어가 있고 아무런 다른 작동이 없기 때문에
지하철 티켓만을 손에 잡고
카드를 뽑아내는것을 순간적으로 잊었던것이다
그러한 나에게 그남성은 카드를 뽑도록
도와주기도 하였던 친절한 남성이었던것이다
다정도 병이란 말처럼
티켓팅을 도와준 그남성에게
감사인사를 하게되면서
미처 지갑에 챙기지 못하고 손에 들고 있었던 카드가
악수를 하는 과정에서 나의 손에서
빠져나가는것을
인식할수 없었던것이 화근이 된것이다
그들은 정말 전문적인 도둑들이었을까 ?
경찰의 말이 지금도 믿기지 않을만큼 "두사람이었냐는 물음"은
의문으로 남아있지만
친구라고 소개했던 사람과의 인사하는 과정에서
카드를 분실했던것이 확실한것이다
그두사람은 비슷한 연령대의 50대 남성으로
너무나 준수하게 생긴 점잖은 신사풍의 남성들이었던것이다
나는 그날 카드를 쓸일이 없었다
모두 현금으로 사용했었고
50유로를 카드로 결제한적이 없는것이다
분명하게 그들이 뽑아갔을것으로 생각되는
50유로는 프랑스 파리에서
그시간에 인출된것이 통장에 기록으로 나와있는것이다
그들은 나에게 어떤 이유에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카드에서 50유로만을 인출하고
그이상의 돈을 인출하지 않았다는것은
내생애의 가장 귀중한 까미노 순례길을 도와준
내가슴속에서
영원히 잊지못하는 고마운 천사로 남아있는것이다
내가 본국에 전화를 걸면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두여성 경비원들도 함께 기뻐하면서
어떻게 된것이냐 하는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들에게
50유로만 없어졌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을 믿어줄것 같지도 않았을뿐만 아니라
내가 50유로만 없어졌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오히려 내가 무엇인가
착각한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유발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인출해간 돈이 없다고 말했던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녀들에게 지갑에서
10유로를 꺼내어 그녀들에게 주었다
그렜더니
그여성 경비원이 "왜 그것만 주냐"는것이다
그래서 나는 얼른 지갑을 펴서 보여주면서
그것밖에 없다고하니까
그들이 나를 빤히 처다보다가 웃으면서 알았다는것이다 ㅋㅋㅋ
사실은 지갑의 안쪽에는 그보다 큰돈인
20유로 50유로의 지폐가 있었지만
더 달라는 그들에게 절대로 더 주고 싶지가 않았었다 ~ !
나의 딸과의 통화 그리고 은행본점 직원과의 확인전화는
너무나 소중하고 값진 통화였었지만
모두 합쳐도 2분이 초과되는것도 아닌것이고
내가 경찰을 부르기 전에
그녀들에게 전화 좀 쓸수있게 해달라고 하였을때
그들은 안된다고 했었던것이다
그들이 너무나 다급한 나의 상황을 알면서도
냉정하게 거절하는 그들이 너무나 충격적인것이었다
내가 그들에게 10유로 지페를 주면서도
그녀들이 돈을 더 요구할것이라는 나의예감은 틀림이 없었던것이다
내가 그당시에 그녀들에게 그토록 냉정한 마음이 들었던것은
그들과 우리의 사고방식이
전혀 다르다는것을 이해할수가 없었기 때문일것이다
그들의 금전에 대한 냉혹함은
그들의 생활속에서 규율처럼 지켜지는
가장 합리적인 생각의 일부인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같았으면 그러한 다급한 상황에서
누구라도 그사람의 도움을 거절하지 못했을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사람들과의 생각의 차이점이 되고 있는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곳에서 접했던 황당함이란 너무나 처절했다고 할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절대로 그렇지 아니하다 " 는
간절한 생각을 하면서 냉혹한 그들의 태도에 충격을 받았던것이다
통장의 돈을 통째로 도둑을 맞을지도 모르는
위기의 관광객에게 전화한번도 허용하지 못하는
여성경비원들과 경찰들이 너무나 야속하기만 했던것이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내가
돈을 더 요구하는 그녀들에게 지갑을 펴서 보여주면서
"돈이 없다"고 속으로 화가 나서 말하고 있었던 . . .
야바위꾼 같았던 그순간의 내가 지금 생각을 해도 웃음이 나오는것이다
어쨌든 그날 늦은 밤 몽주르 나의 숙소로 돌아갔을때
언제나 행복한 웃음 가득한 나의 숙소의 호스트는
그날밤도 변함없이 TV 프로그램에서 방송되는
내귀에 익숙한 흘러간 올드 샹송을 따라 부르면서
마냥 즐겁고 행복한 파리지엥의 삶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wifi 비번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아서
그러잖아도
통화가 되지 않은 스마트폰을 들고
몽주르에서 삼성센터가 있는 라데팡스라는 신도시까지 가서
스마트폰의 점검을받도록 하는 ~
남의 고통쯤은 자신의 문제가 될수없는 천하태평의 ~
그러나 샹송에 일가견이 있었던
언제나 사랑스러운 미소의 나보다는 세살 손위의 호스트에게
화를 낼수도 없어서
난감했던일들이 지금도 눈앞에 선한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그녀의 이웃에 사는 초등학생 손녀가 놀러와서
단숨에 wifi 비번을 찾아주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했던것이다 ㅋㅋㅋ
내가 이번에 까미노를 준비하면서
프랑스로 입국하는 코스를 잡았던것은
7년전 서유럽을 패키지로 여행하면서
프랑스를 방문한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때 당시에 가보았던 몽마르뜨르 언덕을
다시가보고 싶었던것은 나의 간절한 꿈이기도 했던것이다
파리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순교자의 언덕
몽마르트르(Mont des Martyrs)로 애칭되는 이곳에는
프랑스의 상징인 에펠탑과 개선문과 더불어
내가 좋아하는 하얀 벽과 높은 돔의
사크레 쾨르 사원 (Basilique de Sacre Coeur)이 있는것이다
사크레 쾨르사원의 돌계단에는
세계각국에서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즉석에서 연주되는 음악에 맞추어
환호하며 흥겨운 음악연주에 매몰되는 한순간들은
여행중에 만나는 가장 아름다운 감동으로 남을것이다
그어느곳에서도 느낄수없는
파리의 예술인들의 낭만의 거리
테르트르광장(Place du Tertre) 은
생명력이 넘치는 자유로운 예술혼의 세계를 호흡하면서
그들의 열정이 살아 숨쉬는
삶의 향기속으로 오래도록 산책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른 한곳은 나의 호기심을 무한히 자극하는
프랑스 교외에 위치하는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섬같은
야경이 아름다운 몽쉘미셀수도원이었던것이다
몽마르뜨르도 가고 싶었지만
바다 건너 영국과 마주 보고있는
노르망디 해변의 몽쉘미셀은 가본적이 없기 때문에
이번에는 꼭 그곳에 가보고 싶었고 그래서
내가 가장 먼저 예약을 했던곳이기도 한것이다
그곳은 프랑스 파리에서 조금 떨어진 교외에 있기 때문에
내가 프랑스에 입국하여 3일째 되는날
몽쉘미셀에 가기로 정성을 들여서 예약을 하기도했던것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예약된 몽파르나스 역으로 갈려면
버스를 타야하고 지하철을 갈아타고 몽파르나스역으로 가야하는것이다
한국에서 예약된 티켓은
아침 8시 떼제베를 타는것이었는데
내가 새벽같이 일어나서
버스를 타기위해 버스정류소에 갔엇지만
버스가 우리나라처럼 새벽같이 오지를 않았던것이다
그곳에서 택시를 탈수있는것도 아니어서
기다렸다가 버스를 타고 몽파르나스역에 갔었는데
아주 간발의 차이로 이미 예약된 떼제베는 가고 없는것이다
걱정이 되어서 역무원에게 말하니까 다음 열차로가라는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걱정을 덜고 다음에 오는 떼제베를 타게된것이다
그런데 룰루랄라 하면서
기차를타고 몽쉘미쉘로 향하는 떼제베의
좌석표가 네명이 앉는 곳이엇다
나의 좌석은 창가의 좌석이고
나의 옆좌석에는 조각처럼 깔끔하게 생긴
젊은 프랑스남성이
테블릿 pc로 열심히 업무처리를 하는듯
책과 서류를 쌓아 놓고 심각한 표정으로 일하고 있었다
나의 앞좌석의 청춘남녀는 갓구어진 군밤처럼
달콤한 사랑에 깊게 물들어버린듯
나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둘이서 정신을 못차리고
남을 의식하지않는 애정행각에 정신이 없는것이다
그래서 내가 프랑스에 잘못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 들기도 했던것이다
그많은 떼제베의 좌석중에 하필이면
남모르는 네명의 사람들이 마주 보고 앉는
좌석이 왜 나의 것이 된것인가 ?
마음이 불편했지만 어쩔수가 없는 일인것이다
특히 프랑스 사람들의 애정표현은
말로는 형용할수없는 열정으로 가득하다는
프랑스 영화의 한장면들이 내눈앞에
클로즈업되었다가 사라지기도 하였었다
그리고
"미라보 다리 아래로 세느강이 흐르고"라는
프랑스 시인의 시어들이 어린날의 추억속으로
나를 한없이 빠져들게 하기도 하였던것이다. . .
프랑스 시인 아폴리네르가
화가 마리 로랑생과의 아쉬운 결별을 노래했던
이 안타까운 사랑의 노래는
예나 지금이나
지상의 모든 청준남녀들의 로망이되는것이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흐르네
기쁨은 항상 고통뒤에 온다는것을 상기하며
밤이 오고 시간이 울리고 세월은 가지만
나만 남았데
손에 손을 잡고 얼굴을 마주보고 서자
마주 잡은 팔 아래로
영원을 바라보기에도 지친 강물이 흘러가더라도
밤이여 오너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만 남는다
사랑은 이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지나가고
세월도 떠나가네 삶이 느린 것처럼 희망이 격렬한 것처럼
밤이여 오너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만 머문다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지나도
흐르는 시간과 떠난 사랑은 돌아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은 흐르네
밤이여 오너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만 머문다 ...
아폴리네르 시인과 화가 마리 로랑생과의
열열하였던
5년간의 사랑의 마음이 녹아있는
세느강변의 미라보 다리는
아직도 아폴리네르의 이유명한 사랑의시와 함께
아쉬움을 간직한채 그자리에 남아서
지울수없는 사랑의 흔적을 그리워하고 있는것이다
내가 눈둘곳이 없도록 서로 사랑을 속삭이고
주고 받는 쪽쪽소리
볼에다 예쁘게
이마에다가 예쁘게 입술 도장을 찍고 있는
그남성은 준수한 용모의
성실한 프랑스 남성이었고
그 뜨거운 사랑을 받아 안고 있는 여성은
한국여성 같기도 하고 일본여자 같기도 하고
중국 여자 같기도 하였는데
나중에 보니까
이들 삼국의 여성은 아닌 동양여성이었다
그녀의 국적을 물어 볼수는 없는 상황이었는데
갸냘프고 매우 겸손하고 여성다운 모습의 그녀에게
올인하고 있는 이프랑스 남성은
그녀에게 온전하게 매몰된듯
자신들앞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
집중력이 대단한
못 말리는 사랑스러운 커플이었던것이다
누구에게나 그런때는 있는것이다
"그런때는 영원한 것도 아니더라"는 생각도하면서
구경만 한다는 것이 무척 부담스럼고
눈둘곳이 없어진 나는 가방속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올드팝송을 담아 왔던 아주 작은 녹음기를 꺼내서
듣고 가면서 눈을 감고 있기로 한것이다 ㅋㅋㅋ
창밖의 풍경을 보는것도 한계가 있고
앞을 보는것도 힘든 상황에서
내가 예전에 5년동안이나 매주 산악회에 나가면서
들었던 내가 좋아하는 올드팝송을
오랫만에 듣게된것이 얼마나 다행일인가?
그것은 말할수 없이 기쁜일이기도 하였지만
그것은 오늘의 일을 망처버리는
큰일을 겪게되는 일의 시작점이 되고 있었던것이다
아쿠아쿠...
나의 옆좌석의 젊은 남성은
세상에 홀로 있는듯 테블릿 pc에 심취하여 있었고
내앞의 청춘남녀들은 눈이 아프도록 서로 마주 보고
사랑에 흠뻑 빠져있고. . .
하염없이 달리는 떼제베안의 루시(Lucy)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팝송음악에 흠뻑취해서
지나간 시간들의 추억속에 마냥 즐겁고 행복했던것이다
내가 내려야 할 티켓의 봉투에는 영문으로 렌 (Renne)으로
쓰여진 티켓을 바라보면서
내가 내려야할 기차역을 가늠하면서 가고 있었다
그러나 음악에 취해서 어렴풋이 몇번의 정거장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타는 모습을 보았고
정거장에 설때마다 확인하는 사이에 내옆에 있던 남성도 내리고
나도 내려야 할 시간이 가까이 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거장 이름들은 티켓에 쓰여있는 이름이 아니라서
마냥 앉자 있게 된것이다 ~~~
프랑스 파리에서 1시간 50분 정도면 내려야 한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음악에 취해서 흘러가다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려야 할 역을 통과하여 온것 같았다
그래서 앞사람에게 물어보니까 그남성이 기절을 하는것이었다
벌써 한참전에 그역을 지나왔다는것이다
어이가 없는것이다 !!!
그 기차는 아주 작은 역은 통과하고
지정된 특별한곳만 정차하는 급행열차였던것이다
그남성은 거두절미하고 자기들은 이제 조금있으면 내리는데
나도 같이 내려서 돌아가야 한다는것이다
그리고 역무원이 지나가니까 그를 불러서
나의티켓을 고쳐서 주도록 부탁하는것이다
실수로 인한 벌칙이 주어지지 않게 도와주는것이었다
내옆에 있었던 그젊은 남성이 내렸던곳에서
나도 함께 내렸어야 했던것이다 . . .
그리고 내앞에 있는 남성이 하는말이
다시 돌아가도 오늘 몽쉘미셀가는것은
어려울것 같다고 말하는것이다 ~~~ !
내가 생각하기로는 아무리 오지라도
그곳이 유명한 관광지역이라면 교통이 좋을것이고
하루에 왔다갔다 할수있을것이라고 생각을 했던것이다
그러나 그곳은 내가 생각하는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독특한 환경의 관광지로서 교통수단이 원활한 곳이 아니었던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교통이 좋은데 프랑스는 더욱 좋을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착각은 내게 너무나 큰 불행을 안겨 주었던것이다
몽쉘미셀수도원은
영국과 마주보는 유명한 노르망디 해변에 위치하며
밀물이 들어오면 섬이 되어버리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역사깊은곳으로
외지의 사람들이 그곳에 갔다가
돌아오는 교통수단은 하루에 한번뿐이라는것이다
그래서 내가 정 그곳에 가고 싶으면
오늘은 그곳의 몽쉘미셀에서 하룻밤을 자고
그다음날도 마지막 차를 타고 나와야 한다는것이다
그곳의 시스템은 하루에 두번 차가 들어갔다가 나온다는 것이다
역무원에게 그남자가 물으니까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는것이었다
그러니까 하루에 두번씩 예약을 통해서 들어가고
나와야 차질없이 그곳의 방문이 가능하고
아니면 하룻밤이상을 그곳에서 숙박을 해야 한다는것이었다
몽쉘미셀은 왜 어째서 그토록 가고싶어하는 나를
이리도 야멸차게 거부하고 있는것일까 . . .
어쨌든 그프랑스 남성은 나에게 너무나 미안해 하는것이다
내가 못내린것이 자기 때문인것처럼 걱정해주고
안타까워하는것이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여성에게 나를 도와주자고 말하는것이다
그남성의 말로는 나에게 지도를 보여주면서
프랑스의 내부 깊숙이 들어왔다는것이고
조금만 더가면 영국이 마주하고있는
프랑스의 바다에 이르는 해변에 가게된다는것이다 ㅋㅋㅋ
아고아고 내가 나를 어찌 혼내면 될까...
아고아고 "울 엄마 때문에 내가 몬산다고요" 하는
아이들의 장탄식이 들리는것 같아서 죽을지경인것이었다
나는 속절없이 그들이 하자는 대로
그들을 따라서 떼제베에서 내렸었다
아담한 시골역의 밖에서는
그들의 부모님들께서 차를가지고 마중을 나와 계셨다
이남성이 역무실에 나와 함께 들어가서
프랑스로 돌아가는
티켓을 바꿔주겠다고하는것이다
그래서 벌금을 물거나 티켓을 다시 구매해야하는
손해를 이남성때문에 면하게 된것이고
파리행 티켓을 확인증 같은것으로 대체해서
받아가지고 기차타는곳까지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그리고 잠시 동안 역의 밖에서 기다리는 그의 어머니를 만났다
인자하신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어디에서나 볼수있는 소중하고 인자하신 어머니의모습이었다
나의 사정을 전해듣고 그분도 걱정 때문에 어쩔줄 몰라하셨다
참으로 순박하고 친절한 그들의 모습을
나는 평생동안 내가슴속에
아름다운 그림 한장으로 간직하게 된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과 같이온 그동양여성은 다름아닌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그녀의 소중한 며느리였던것이다
그래서 내가 너무나 고마워서 나의명함을 건내주었고
다음에 한국에 여행을 올 기회가 온다면
반드시 우리집을 방문하여 달라고 말했던것이다
3일동안은 우리집에서 편안하게 쉬게 해주겠다고했더니
어쩔줄 몰라 하면서
반드시 한국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하면서 헤어졌던것이다
백년전에 만났던 다정한 친구처럼 우리들은
그짧은 한순간의 만남을 통하여
그렇게 헤어지는것을 아쉬워 하면서
나는 프랑스 파리로
다시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갈수 밖에 없었던것이다
내가 말도 안되는 이 창피한 이야기를 한다면
우리 딸들이 얼마나 나를 닥달을 할까 ㅋㅋㅋ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이것은 사실이고 내가 일으키고 말았던
이제는 어쩔수없는 어린아이로 되돌아 와있는
실수 투성이 루시(Lucy)가 되어버린것이다
내사랑하는 내 아가들아
너희들도 세월따라 흘러갈것이고
너희들 또한 이엄마처럼 철부지 어린아이가되어서
열차도 놓치고
예기하지 못했던곳으로의 여행을 하게될지
그것은 신만이 아는 비밀인것이다. . .
그래서 나는 그프랑스 남성에게도 말했지만
내가 오늘 몽쉘미셀에 가는것이 거부된것은
반드시 다음에 가야할 소중한 이유가 되는것이다
지금 보다 더 좋은 날들이 나를 기다리게 될것이란
꿈을 그곳에 남기고 온것이다
이러한 나의 파란만장한 프랑스와 스페인에서의
45일간의 여행은
이룰수없는 꿈처럼 아득했던 불안과 공포를 넘어
내일이면 모든이들이 소망하는
대성당(Catedral) 성소에 이르게 되며
그 기쁨을 하늘에 고하며 행복한 환호성을 지를것 같은
만반의 준비로
가슴이 터질듯한 흥분으로 가득해지고 있는것이다
진심으로 예기치 못했던 프랑스 파리에서의
나의 두번의 실수는
한순간 나로하여금 멘붕상태에 빠트리기도 하였지만
내생애 남은시간 평생을 두고 기억할때마다
천사로 분장된 에펠탑에서 만났던
귀여운 도둑의 해프닝은 나로하여금
오래도록 잊지 못하는
하늘의 은혜속에 기쁨으로 미소짓게 할것이다
그리고 오늘 반드시 성공적으로 걸어가야하는
왕의 궁전이라는 뜻의 빨라스 데 레이(Palas ep Rei)는
산띠아고에 도착하기 전 순례자들이
마지막을 보내는 숙소~
깜포 도스 로메이로스(Compo dos Romeiros)가 있는곳이다
선사시대의 고인돌들과 로마시대 이전의 성벽
그리고 로마시대의 건축물들과 수도원이 있는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도시로서
여러시대에 걸친 저택과 집들이 있는곳을 지나가게 되는것이다
빨라스 데 레이에서 6km 전방에 위치하는 까사노바(Casanova)는
루고 지방의 마지막 마을로서 묵가적인 풍경이 아름답고
오래된 학교는 순례자들의 숙소로 사용되고 있었다
까사노바를 지나면 오래된 로마 가도가 나오며
그길을 따라 가면 꼬루냐 지방의 표지판을 만나게 되는것이다
이곳으로부터 계속해서 까미노는
로마 도로 유적위에 놓인 산책로라는 뜻의
레보레이로 ( Leboreiro)에 이르게 되는것이다
레보레이로는
까미노의 마지막 마을로 들어서는 첫관문과 같은 도시인 것이다
까미노 데 꼼빠스뗄라의 성인을 만나기 전에
순레자들의 정신을 깨끗이 씻어주고
그영혼을 차분하게 준비시켜주는
소중한 레보레이로 마을인 것이다
교차로를 지나면 돌이 깔려있는
마을의 중심거리로 들어서게 되는데
돌로 된 집들이 길가에 나란히 순례자들을 반기고
그다음의 광장에서는
입구가 아름다운 성당에 이르게 되는것이다
4km 전방의 푸레로스(Furelos)마을에서는
로마네스크 다리가 매혹적이며
이곳에서 2km전방에 멜리데(Melide)가 있는것이다
까미노의 싸인을 따라 마을에 들어서면
1375년에 건립된 순례자(Santi Spiritu)병원이 있다
이병원의 앞에는 15세기에 지어진 수도원이 있는데
현재는 인류학 발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것이다
수도원이 사라진 경당은 현재 성당으로 되었고
성당의 내부에는 15세기에 만들어진 야고보 성인이
클로비호 전투때 하늘에서 내려와 아랍인들을 섬멸했다는
전설의 벽화가 지금도 남아 있는것이다
멜리데(Melide)는 로마시대때 부터 있던 오래된 마을이며
15세기때 갈라시아어로 "형제들의 결사대"란 뜻이라고 전해온다
스페인 북부 갈라시아 지방 봉건주의에 맞서 싸웠던
민중봉기로서 이지방의 성채와 궁이 파괴되었으며
멜리데도 그역사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곳 갈라시아 지방에서
가장 좋은 알베르게로 순례자들의 좋은 쉼터가 되고 있는것이다
멜리데에서 하루의 일정을 끝내고 쉬어야 하지만
나에게는 그러한 호사스러운 휴식이 허락되지 않는것이다
산마르티노 도로를 걸어가다가 Bar에 들러서
또르띠와 차한잔으로 허기를 달래고
오른쪽으로 내달리면 마을마다 만나게 되는
공동묘지와 "산타 마리아 데 멜리데" 라는
이름의 성당 앞에서 순례자들은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하느님의 가호를 빌고
까미노에서 처음만나게 되는 경이로움이 가득찬
"유칼립투스"라는 키큰 나무로 만들어진
병풍같은 가로수길을 걸어가게 되는것이다
오직 걸어야한다는 생각하나만으로
6km에 이르는 길을 걷다보면
보엔떼(Boente)라는 강가의 작은 마을을 지나가게 되는데
이곳으로부터 오늘의 나의 목적지가 되는
살세다(Salceda) 직전 마을인 아르수아(Arzua)까지는
오르막과 내리막길의 연속이어서
인내심 깊은 도전의 시간이 되는것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심호흡을 하며 2.2km 전방에 있는
까스따네다Castaneda)마을로 달려간다
이작은 마을의 옛흔적은 사라지고 없지만 근대적인
건축물들만 고요롭게 자리 잡은 마을을 지나가게 되는것이다
아주 작은 마을인 리바디소 대 바씨오 (Ribadiso de Baixo)에서
2km 전방에 있는 아르수아(Arzua) 까지 오르막길을
걷노라면 현대적인 도시로 거듭난 아르수아 마을에 도착하게 되는것이다
순례자들을위해 예쁘게 꾸며진 편의시설이
반가워서
차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마을의 입구에서 중심부를 통과하는 20여분의 시간이 끝나면
내리막길이 반복되고 마지막 목적지를 향한 도전은 이어지게 된다
이제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떡갈나무숲을 지나고
산정산에 오르면 멀리 내가 지나온 페레이로스의성당이 보인다
그리고 평탄한 길을따라 언덕을 넘으면 30여분 전방에 있는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살세다에 도착하게 되는것이다...
이렇게 마을과 마을이 이어지는 길을 걸어서
내가 가야하는 목적지 카테드랄 대성당을 향하는 집념은
히말라야 산정상을 향하는 전세계의 산악인들의
간절한 소망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
이른 새벽 어둠을 헤치고
길을 떠나는 비장한 마음의 순례자 루시(Lucy)는
칼끝에 서있는 긴장감으로 온정성을 다하여
오늘 하루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게 되는것이다
하늘과 땅사이에
놓여진 단한사람 인것 처럼 루시Lucy)는
그 어떤 잡념에
오몀되지 않는 마음으로
주님께로 향하는 발걸음에
간절한 소망의 기도를 담아
앞으로 앞으로만 내달리고 있었던것이다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아니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
주님보다
내가 더욱 주님을 <사랑합니다 >
이렇게 고백하는 내마음에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는것이다
푸른 하늘과 들판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신선하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꽃들은
나의 발길이 스처가는 곳마다 가득하게 피어나서 미소짓는다
아무것도 용납되지 않은 마음속으로
마을길과 들판을 지나오면서 기쁨의 탄성을 지르게 되는것은
내가슴속에 예수님의 형상으로 새겨지는
붉은 초롱꽃의 무리들이 떼를 이루고 피어나서
바람에 한들거리면서
들판을 환하게 빛나게 하는것을
그전에 본적이 없었기에. . .
말로는 형용할수없는 환희에 잠기되는것이었다
말로는 형용할수없는 기쁨에 잠기게 되는것이었다
나는 오직
오오 하느님
오오 하느님 하면서 그길을 걸었었다
처절한 나의 슬픔을 위로해 주시는
하느님의 은혜속으로 걸어가면서
뜨거운 눈물속에
한없는 하느님의 사랑을 감응할수가 있었던것이다
내가 주님을 향하여 걸어가는
그길위에는
모든 바람도 나뭇가지를 흔들기를 멈추었고
하늘을 높이 날아오르는 새들도
수풀속에서
그모습을 감추고 숨을 죽인듯 고요하였던것이다
그렇게 모진 고행의 길을
죽음을 무릎쓰고 걷기를 거듭했던 나는
결국 오늘 남들보다 일찍 40km의 험난한 질주에
성공할수가 있었던것이다. . .
이것은 나도 믿기지 않는 기적인것이다
내가 해낼수있었다는
그자체가 믿기지 않는 기적이 되고 있었던것이다
하지만 마지막날인 내일은 어떤 날이 될까
결코 짧지 않는 28.2 km를 잘 걸어갈수 있을까 ...
하는 두려움으로
전신이 오그라들것 같은 열기와 고통으로
망연자실해지고
하늘에 그 운명을 맡기고 걸어가야 하는것이다
내가 해낼수 있을까
33일의 프로그램으로 짜여진 책을
끝장까지 읽지 않았기 때문에
갑자기 3일이 추가된 일정을 강제로 하루에
2일간의 거리를 걸어야하는 강행군은
나에게 너무나 잔인한 운명의 장난이었던것이다. . .
그마을의 산속에는 버스가 없는것이다
내가 차를 타고 가겠다고 하니까
순례자 어여쁜 소녀가
아무말없이 고개를 가로 젓는 것이었다
나는 망연자실했던
그 어두운 새벽아침 출발지의 레스토랑에서
어여쁜 소녀의 얼굴에 그려진
굳센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진실을 보았고 감동되었었다
루시(Lucy)는 뭐냐
루시(Lucy)는 그 소녀보담은 새배나 나이가 많지 않느냐 ?
"< 네네 하느님 지송합니다> "
그렇게 매순간 마다
주님께서는 나를 감싸 안으시고 말씀하시고
위로하시고 또한 어여쁜 소녀의 입을 통하여
내가 가야할 길을 인도하시는것이다
내게 놓여진
내일의 그 먼길을
오늘처럼 내가 해낼수 있을까 . . .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것이다
오직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그 수락의 따뜻한 손길 아래서만
이루어 낼수 있는 소망인것이다
오늘의 이길위에는 특별한 성당이나 유적지가
상대적으로 없는 사람들의 삶이 녹아있는 도시를 지나가게 되는것이다
그것은 순레자들에게 가장 소중한 까미노 데 꼼뽀스뗄라가
지척에 있기 때문일것이다
내가 예약한 알베르게 보니(Albergue Boni)는
넓은 도로가 있는 행길옆에 있었고 사설 알베르게 였었다
내가 그곳으로 들어가는것을 본 순례자들이 멀리서
손을 흔들면서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는것이었다
내가 마치도 마라톤의 주자가 되어 대형 스타디움의
마지막 지점을 골인하고 있는것처럼
많은 순례자들은 구름위를 걷는둣
들뜨고 흥분한 상태로
나를 향하여 기쁨의 탄성을 지르면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산띠아고 데 꼼빠스뗄라가 가까운 곳에 있다는것이
말로는 형용하기어려운 기쁨에 잠겨있는 그들은
잠시동안 함께 걸어온 내가
자신들 보다 내가 먼저 쉼터를 찾은것을 보고
아낌없는 찬사와 사랑의 마음을 전하고 있는것이다
순례자들은 그어떤 나라와 민족의
서로 다른 모습과 처지의 사람일지라도
바라보는 방향과
생각이 일치하는 점 때문에
그들 모두는 일순간에 하나가 되고
수만갈래의 언어의 장벽을 뛰어 넘을수 있는것이다
눈으로 말하고 가슴으로 사랑을 전달받고
한순간에 서로 얼싸안고
기쁨으로 충만해지고 행복해 질수가 있는것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순례길위에서 만나는 모든 종족들이
이곳에서 만은 언어의 엇갈림 때문에
서로 반목하는 일이 없이 자유로울수가 있는것이다
내가 정확하게 33.9km의 오늘의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오히려 남들보다 빨리 숙소에 도착하여
샤워하고 빨래하고 식사를 하고 리셉션으로 가서
호스피텔리어를 만나고 있다는
그사실들이 꿈만 같아서 어쩔줄 몰라하고 있었다
내가 리셉션룸에 들어서자
깜짝 놀라서 루시(Lucy)~ 하는 음성이 들렸다
몇일 전에도 카페에서 만났던 안드레아였다
그의 여자 친구도 반갑게 인사를 하며
반가워서 어쩔줄을 모르는것이다
그들은 이순례길에서 가장 많이 만났던
친구들중의 하나인것이다
내가 호스피텔리어에게 마지막날이 되는
내일의 숙소 예약을 부탁하는것을 보고
자기가 나의 숙소를 예약해 주겠다는것이었다
자기와 함께 같은 숙소로 가자는 제안인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제안을 받아 들일수가 없었던것이다
그들은 산때아고 데 꼼뽀스뗄라에 가는것이 아니라
꼼뽀스뗄라에 입성하기 4km 전방에 있는 숙소를 정해서
꼼뽀스뗄라는 그다음날 입성하겠다는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 남은 28.3km의 거리를
내일 새벽에 출발하여 12시전에
꼼뽀스뗄라에 입성하기로 결정되어있는것이다
12시전에 꼼뽀스뗄라에 입성하여
12에 집전되는 순례자를 위한 토요미사에
참석하기로 굳게 결심하고 있었던것이다
나는 마드리드와 바로셀로나 여행까지
몽땅 취소한 상태인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까미노의 땅끝마을이라는
피니스테라에 가보고 싶었기 때문에
고집스럽게 힘든 일정을
죽을 힘을다해서 실행해 가고 있었던것이다
안드레아는 내가 함께 갈수 없다는 말에
실망이 깊은것 같았다
내일 반드시 꼼뽀스 뗄라에 입성해야 되기 때문에
숙소도 산띠아고 데 꼼뽀스 뗄라의 성당 근처로 선택해야 되는것이다
알베르게의 호스피텔러는 너무나 친절하고
다정다감한 젊은 친구였었는데
산띠아고의 대성당 근처의
어떤 곳에서도 숙소를 찾을수가 없다는것이다
토요일이고 주말이기 때문에 순례자들이
만원을 이루고 방을 찾기가 어렵게 된것이다
나의 스마트폰으로는 숙소는 커녕
메일도 확인하기가
어려운 불통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던것이다
유럽용 유심칩도 스페인용 유심칩도
절대로 잘 접속이 되지 않는 불량스마트폰 때문에
루시(Lucy)는 바보가되었고 멍청이가 되었던것이다
그사이 호스피텔리어는 바빠서 자리를 비우게 되었고
난감하게 서있는 나에게
안드레아와 같은 일행인 여성이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숙소를 찾아 보겠노라고 하였다
그녀는 잠시후에
대성당(Catedral)에서 400m 거리안에 있는 숙소를 찾았던것이다
이름도 꼼뽀스뗄라(Compostela)인것이다
내가 가는곳에는 언제나 기적같은일이 일어나는것이다
얼마나 감사한일인가 . . .
말로는 형용하기 어려운 감사함으로 충만한
시간이 내앞에 놓여 있었던것이다
너무나 고맙고 사랑스러운 그녀였다
안드레아도 기뻐하며 축하해주었다
남미의 아르헨티나 브라질
그곳 사람들의 열정적인 사랑과 우정
순박함에 매료되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북미 아에리카와 유럽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그들의 다정다감함은
오래도록 잊을수없는 기억으로 남을것이다
내일 마지막 남은 28.2km를 과연 루시(Lucy)는
잘 걸어갈수가 있을까...
날마다 계속될수 밖에 없는 초과된 거리를
걸어야만 완성되는 까미노 때문에
외줄타기를 하는 고도의 집중력으로
나는 그렇게 매순간마다
간절한 소망의 기도를 올리게 되는것이었다
그토록 소망하고 꿈에도 그리던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Santiago de Compostela)가
눈앞에 와있는 바로 전날밤의 흥분으로 인하여
소풍가는 봄날의 어린소녀처럼 루시(Lucy)는
그렇게 오랫동안 잠들지 못하는
뒤척임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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