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24. 16:43ㆍ추억속의산행후기
천년의 꿈이 서린 계룡산에서
추억속의 산행후기
2011-06-03 15:35:18
예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강풍 돌풍의 기상이변속에
설악산 대청봉과
한라산 백록담에는 첫눈이 왔다하지만
아직은 떠나 보내고 싶지 않은 가을.......
도둑처럼 찿아온 겨울추위가 낮설기만한 새벽아침....
옷을 챙기다가 도로 꺼내고 집어 넣기를 몇번하다가
산행때
더울것이란 염려 때문에 여름바지를 그대로 입고 갔던만....
야탑역 광장에서 버스를 기달리고 있으려니
바지 가랭이 사이로 스며드는 칼바람이
어찌나 스산한가 그냥 집에 가고 싶어졌다.......
그래도 그냥 가기는 아쉽고
그래서 평소에 좀 친하게 (?) 지내고 있는 J님에게
입고 계신 바지 좀 빌려 주심 않되겠냐고
정중히 여쭈어 보았더만
빌려 주신다는 건지 안빌려 주신다는 건지
통모를 말씀만 하셔서 그냥 차를 타고 말았다.....ㅎ
카페 예약방에는 듬성듬성 원형 탈모증 걸린고 멘치로
휑하니...사람들이 많치 않았는데 한 두 좌석이 비고는 만원이 되어있다...
선진항공 윤사장님 부부님과 그친구 부부님
닉을 일일이 기억해 낼수 없는 예전 솔향기님들이 차례차례 모습을 보여 주시니
정든님을 만난양 반갑고 반가워라....
멋진 글솜씨로 솔향기산악회 카페의 수준을 업시켜 주시는
러시아에서 오셨다는 드미뜨리 샤샤님과 날고뛰는선수님을
오늘 처음 산행에서 인사를 나눌수 있어서 모두가 기뻐하였고
귀여운숙녀 바르비님이 예쁜 친구를 몰고와서 솔향기의 미인결집력을 과시하게 되었다....ㅎ
과연 누가 스타로 등극할것인지 기대하셔도 될듯 싶어지네요..ㅋㅋㅋ
컴컴하였지만 카페 예약방에 올라있던 하늘송아지가 안보여서 물어 보니
동학사입구에서 만나기도 하였다고 총무가 그랬지요.
하늘을 날아 댕기는 송아지...ㅎㅎㅎ
(대전에 사시게 되었다고라..)
오늘 산행지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수수께끼처럼 신비로운 이미지로 기억되는 계룡산이다
충청남도 공주 그곳으로의 힘찬 출발이 시작되었다.
희뿌연 서리안개가 가득한 고속도로를 거침없이 달려 계룡산 동학사 매표소에 내렸는데...
뭔가 허전하기만 하였다...
<오메나....건강체조의 대가이신 이강수선배님이 안계신거였다...아고야...>
선배님의 빈자리가 이렇게 클줄은 몰랐다고 한마디씩하고 야단이었지만 어쩌랴...
아침햇살 가득한 매표소 광장에서 몸을 배배 꼬기도 하고 기지게를 펴기도 하며 산에 오를 준비를 하였다...
그러고 있는사이 총각같은 하늘송아지님이 방긋웃으며 나타나서 모두들 반가워서 어쩔줄 몰라하고...
산에 오를 생각도 잊은듯
운좋게도 아직 경내에 남아있는 예쁜 단풍나무 아래에서 박장대소하며
찰칵찰칵 사진찍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예술혼이 담긴 사진을 찍어 내시는 전문 찍사님이 세분이고
세련된 아마츄어 찍사님도 서너분인지라 ....사진에 있어서는 언제나 풍년이라서..
< 하루종일 사진 찍다가 걍 뒷풀이 함 되것당......> 하고 있는데
9시 조금 넘어 산행이 시작되었다
동학사...
우리 핏속에 흐르는 역사의 소용돌이가 숨어 숨쉬는곳...
계룡산의 3대 사찰중의 하나로서 동학사를 지나 관음봉 자연성능 삼불봉 금잔디고개 갑사로 산행이 진행된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쉬움이 많은 이곳은
특이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여...
신라 성덕왕 23년(724년) 상원조사가 터를 잡고 회의화상이 창건하였고
동학사에는 우리나라 비구니의 교육도장인 동학승가대학이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 오른쪽에는 삼은각과 숙모전이라는 전각이 세워져 있는데
즉~ 삼은각은 고려의 문신 길재가 (조선태조3년) 1394년 이곳에 단을 쌓고 고려태조를 비롯하여
충정왕 공민왕의 초혼제와 정몽주의 제사를 지낸것이 시초가 되었고
1399년에는 고려의 문신 유방택이 이단에서 정몽주 (포은) 이색(목은) 길재(야은)의 초혼제를 지냈다고 한다
이듬해 부임한 새공주 목사가 전각을 세우고 삼은각이라 하여 오늘에 이른다고 전해온다...
또 숙모전은 1457년 (세조3년) 에 김시습이 삼은각 옆에 단을 쌓고 사육신의 초혼제를 지내고
단종의 제단을 마련하였다
이듬해 동학사를 찿은 세조는 단종과 안평 금성대군 그리고 사육신을 위해 초혼각을 짓게 하였다
이초혼각은 1904년에 이르러서 숙모전이라 이름을 바꿨다고 전해진다
지난 몇년동안 산을 타면서 체험을 통하여 알게 된것이 있다면
그곳을 지키고 가꾸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한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어느산이나 오르막길은 고행일수 밖에 없다..
하늘은 구름 한점없이 맑고 푸른데... 기울어 가는 상현달이 쨍그렁 소리를 내는듯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초생달은 밑에서 부터 하얀점으로 보인다는 박선배님의 말씀에 너도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걷는 길....
시원한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분주한 발길을 옮길때.
이곳 사람들의 섬세한 배려의 손길이 감지되고 있었다..
자연을 훼손 시키는 법이 없이 이곳 산물인 자연석을 이용하여 손길이 닿지 않은듯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편히 다닐수 있도록 길을 닦아 놓았다니...
봄햇살처럼 따사로운 기운이 언 가슴을 어루만진다..
가파른 오르막길에 위태롭기까지한 너덜바위길을
사람의 손길로 이루어 낼수 없을것만 같은
대역사의 흔적이 곳곳에 스며있음을 보며
한뜸한뜸 바늘로 수를 놓은듯 다듬어진 바위 계단을 밟고 지날때 마다
꽃을 밟고 지나는듯 경탄을 금치 못하였더라..
지리산에 이어 1968년 12월 31일 우리나라 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 받았다고 하니
극찬하고 사랑받아 마땅하다고 느껴졌다
금계포란(金鷄胞卵) 금닭이 알을 품은 형상이요
비룡승천(飛龍乘天) 용이 승천하는 형상이라 두 주체인 계(鷄)와 용(龍)을 따서 계룡산(鷄龍山)이라고
조선초 이태조가 도읍을 정하려 무학거사와 함께 답사할때 내려진 이름처럼
백두대간 금남 정맥의 끝부분에 위치한 계룡산의 위용은 두시간정도의 산행끝에 닿은 관음봉에서
그매력이 발휘되고 있었다..
지금은 군인들이 상주하는 천황봉( 845m)을 중심으로 관음봉과 연천봉 삼불봉등 28개의 봉우리와
동학사 갑사 계곡등 7개소의 계곡으로 이루어진 계룡산이야 말로 백제를 대표하는 산으로
그빼어난 아름다움이 멀리 중국까지 알려 졌으며 신라통일 후에는 오악(五嶽) 중의 서악(西嶽)으로
조선시대에는 삼악(三嶽)중의 중악으로 봉해질 정도로 역사에 검증된 산이라고 한다
관음봉(816m)에서 바라 보는 V자형으로 뚫려 버린 산세 때문에 붙여진 쌀개봉이란 이름을
표지판을 통하여 알아내고는 실소를 금치못하는데..
천황봉 일출은 제1경에 속하고 계룡산 최고봉으로서 대전 공주 논산일대의 산야가 한눈에 내려다 보여
천혜의 자연 경관으로 꼽힌다...
쌀개봉 천황봉 연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들이 마치도 용이 꿈틀거리는 듯하다고 하지만
관음봉에서 넋을 잃고 바라본 그봉우리 봉우리 마다 봉긋봉긋 솟아 오른 모양새가
순결한 새아씨의 젖무덤 같았더라.....(에구구...불량스러워서 죄송합니당..ㅋㅋ)
동학사 계곡과 갑사계곡도 한눈에 들어와 계룡산의 전모를 볼수있음에 경탄해 마지 않았더라..
이제 한결 느긋한 마음으로 사방의 경관을 즐기며 걷는 아슬아슬한 벼랑길...암바위능선..
아니...천헤의 성곽이 되어버린 자연성능을 걸으며...
고층건물이 빼곡히 들어찬 도시 대전이 눈앞에 있고..들에 들국화가 이슬을 머금고 수줍게 피어있을것 같은
논산이 가물가물 보이고...
그리고 신비의 고도 공주가 발아래 광야처럼 펼쳐서 있다....
협소하고 교통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이곳 계룡산일대에서 일년동안이나 일구던 도읍지의 꿈을 접고
한양으로 도읍을 정한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예리한 선견지명은
아직도 유효한 것인지...사뭇 궁금하여 진다
그래...저 발아래...금강이 흐르는곳....
대평원에 꿈의 도시...
천도(遷都)의 대역사가 준비되고 있었다...
두고 볼일이지만...
허허벌판에 거대한 콩크리트 건물들이 솟아 오르고
새로운 행정수도가 건설되고 있다
늙은이 무릎 세우듯이
민심(民心)을 거슬러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 이시대의
나랏님의 그큰뜻이 후손들에게 커다란 손실이 아니기를 바랄뿐이다....
박통시대에도 환란(患亂)을 피하여 이계룡을 들고 있기도 하였다..
허지만 이시대에도 도피처 은둔처가 있을것인가...
차라리 남한산성이 경제적이다...ㅎ
항공이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였다면
도래할 미래의 세계에는 ...
엄청난 물류를 해결할 해양의 시대에 살아야 하고
대비할려면 더욱 열린곳에
바다가 가까운 곳에 수도가 위치하여야 유리하다는 것이다...
천년이 지나도록 메뚜기의 본향인지도 모를 이곳에...
아 계룡산의 꿈이여..
꿈틀대며 일어나서 이시대의 막힌 숨을 뚫어 준다면 좋겠어라..
국운이 쇠할때 마다 정씨왕조가 일어나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는
정감록(鄭監錄)에 깃들인 말들 따라 오늘 날에도 신흥유사종교단체의 발원지가 되기도 하니
두고 볼 일이 아니겠는지요....
자연성능에서 만난 하모니카연주자의 낭만적인 모습이 눈앞에 아련해진다
자연과 어울어진 연주솜씨가 눈물겹게 가슴에 와 닿았었는데
사의찬미 그리고 테네시월츠였었는가...
레파토리 또한 수준급이어서 산행의 즐거움과 추억이 한아름이었어라...
계룡8경중에는 부처님을 닮았다는 삼불봉의 겨울 눈꽃과
서쪽풍광이 한눈에 들어 오는 연천봉에서 펼쳐지는 들녘 저녁 노을이 장관이라 하였다
일년 사계중 어느것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절경을 보면서 행복하였다...
그리고 삼불봉에서 신성봉쪽으로 조금만 가면 지고지순한 사랑의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오뉘탑을 볼수가 있는데.... 가볼수가 없어서 아쉬움만 더하였다....
다시 와야 할 이유가 되었음을
행복해 하며 위로 해 본다.......
금잔디고개를 넘으면서...
가을빛이 우리의 마음까지 곱게 물들게 하고
동학사와 신원사와함께 계룡산의 3대 고찰인 갑사(甲寺)를 향하여
여유로운 발걸음이 즐거웠다..
갑사(甲寺)는 백제 구이신왕 원년 (420년)아도화상이 창건한 사찰로서
신라문무왕때
중수한 뒤 화엄종 도량을 개설...
화엄종 10대 종찰의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정유재란때 소실되었지만
선조 37년에 재건되었으며 부도와 당간지주...
월인석보판본 영규대사
사명대사 서산대사의 위패를 모신 표충원등
귀중한 문화재를 간직한 유구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금수강산
이산야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고찰의 고느넉한 풍경이란.....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겸허함이
물흐르듯 휘어져 내리는 처마의 곡선이라던가...
사계에 아우라져 자연풍광이 빚어내는 엄청난 빛깔의
미학에 뒤질새라
섬세한 필치로 채색된 단청의 아름다움과
하늘을 유영하는 물고기의 풍경을 보라....
높고 낮음에 따라 자연그대로의 모습안에
건축되어 지는 사찰의 고풍스러운 멋스러움이
지는 해를 등지고 그빛을 발할때
숨이 막힐듯 신비롭고 아름답게 보이기만 하였다...
천년은 묵은듯...
바람을 이고 푸른 하늘에 의연한 자태를 뽑내는 고목들...
말없는 고요가 깃들이고
하많은 세월 목마른 꿈의 염원이
하늘로 솟구쳐 끝없는 깃발처럼 흔들리는 미류나무
옆에는
여름날 짙푸른 녹음에 쌓여 보이지도 않았던
미미한 존재였던 푸른감이
옷깃을 떨쳐 버린채 허공중에서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붉은 빛을 발하는 별처럼
무수히 메달려 그만의 풍만한 승리를 만끽하였더라..
부서지는 저녁햇살에
은행나무의 마지막 몸짓이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오와...
계룡산....
아름다움의 산이여
솜다리대장님과
올드보이님의 신선한 마음의 향기가 더욱 고와 보였던
50회 뒷풀이의 향연은
모처럼 우리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하였다
사람이 아름다운 산악회...
솔향기산악회...여러분 .....아니 그러합니까....!!
에혀 몬사릉.....
대답 좀 혀봐요...참내...ㅎㅎㅎ
2006년 11월 13일 ...... 까꿍이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