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24. 16:03ㆍ추억속의산행후기
갈까 말까 가야산
추억속의 산행후기
2011-06-03 16:16:12
오늘 산행지인 경남합천 가야산을 가기위해
한시간 앞당겨진 시간에 마추어 잠실역에 도착해 보니
첫차가 5시 38분.
8호선을 타고 야탑역이 아닌 단대오거리로 간다하여도
틀림없이 10분정도는 늦어지게 생겨서
택시를 타기위해 불야불야 밖으로 뛰쳐 나왔다.
그때 시간이 5시 20분
아직은 시간이 여유로운지라
잠실역에서 야탑역가는 버스가 있다기에
한번 기다려 보기로 하였는데 잠시후
마침 성남행 119버스가 와서 무조건 타고 보았는데
야탑역을 지나간다고 하였다....
조금전 지하철역에서
그냥 나오는 바람에 카드에서 차비만 속절없이
빠져나갔지만
이제 만원이 넘는 택시비까지 절약이 되었으니
기분좋은 아침이 되고 있었다....
어둠속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솔향기산악회 회원들의 정다운 모습들...
그속에
한때는 오누이처럼 다정했던 두사람과의
요란스러운 아침인사도 잠시....
그들을 뒤로 한채로....
어린날 수학여행의 풋풋한 설레임의 기억이 가득한
해인사가 있는 가야산을 향하여
힘찬 출발이 시작되었다...
차창을 스치는 희뿌연 어둠 넘어로
마지막 잎새마저 떨쳐버린
앙상한 나목들의 행열이
완연한 겨울을 노래하고 있었다
온듯
벌써 멀리 도망쳐 버린 세월의 끝자락에서
허허로운 상념에 사로잡혀 졸고 있는 사이에
쉬임없이
거침없이 내달린 버스가
경상북도 상주군 백운동 가야산국립공원
백운매표소에 도착한 시각은 아침 9시 40분경이었다..
우뚝솟아 오른 먼산 꼭대기엔
하얀눈이 해맑은 햇살에 반짝거리고
눈이 시리도록 푸르른 하늘이
사람들의 가슴에 기쁜 탄성을 자아내고 있었다...
오늘도 이선배님의 구령에 따라
삶에 찌든 몸과 마음을 풀어 주는 건강체조는
또다른 상쾌함의 극치이며
평화롭고 행복한 산행의 시작이 되고 있었다
비가 올것이란 일기예보를 뒤엎고
밝은 햇살이 쏟아지는 계곡을 따라 걷는
사람들의 마음이 갑자기 바빠진것은
(이볕에 저눈이 녹기전에 얼릉가야해....ㅎ)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씻어내며
중얼거리는 이사람들의 마음이야 말로
저 산위의 눈꽃같이
순백의 아름다움이 아닐런지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법어로
세상에 큰족적을 남기신 성철 큰스님의
깨달음의 수행처 백련암도
이하늘 아래 이깊은 산속 어딘가에 있을것이다..
억겹의 세월이 흘러도
그겉모습은 변할지라도
만물의 본질은 변할수 없다는....
생사(生死)란 본래 없고
눈을 감고 있을때는 캄캄하다가도
눈을 뜨고 있을때는 광명인것 처럼
즉 생과사가 자유와 해탈이며
생사밖에서 해탈을 구한다면
그것은 눈을 감고 있는것이다....
육신은 옷에 비유할수가 있어
옷이 낡아 그옷을 벗었다하여
사람이 죽는것이 아니라는 성철스님의
크신 깨달음의 경지는
우리들에게 더없는
희망의 메세지를 전해주고 있는데
허지만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고
깨닫지를 못하는
세속에 물든
어둠속을 방황하는 가엾은 군상의 무리가
얼마나 안타 까운것일까요...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갈파했던 파스칼의 말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고 있다
한줄기의 바람결에도 흔들리는
미약한 갈대와 같은
존재이지만
생각할수 있음으로
그어떤 존재 보다도 위대하다는 인간...
오늘 여기 이 산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소리가
옛성현들의 말씀의 언어처럼
신비롭게 들여 오고 있음은
어떤 연유에서 일까...
큰바위 작은 바위돌들로
힘겹게 잘 다듬어진
산길을 걸으며
평탄한 이길을 닦으며
흘렸을 그네들의 수고로운 땀방울에
고개가 절로 숙여 지고 있었네요...
큰개울을 가로 지르는 (백운1교) 철다리를 건너고
크고 작은 돌탑들을 지나
제2 제3의 백운교를 만났다
한가로운 산책길처럼 편안한가 싶었는데
끝없이 뻗어 올라간 철계단을 만나며
긴장하는 시간도 있었다...
높은 산자락에서 만나는 넓다란 쉼터는
깊은 정감이 어리게도 하였고
친절한 안내판에는
앞으로 우리가 올라야 할 칠불봉이 2,5m....
몇번일까
다시 만나는 철계단과 나무계단을 오르니
어느순간..
새하얀 눈꽃바다가 펼쳐져 있다...
저 발아래 고즈넉한 마을의 전경은 아름답기 그지없고
나뭇가지에 내려 앉은 눈이
맑고 투명한 햇빛속에 유리구슬처럼 반짝거리며
천상의 환희로움으로 닥아 올때
사람들은 저마다
발걸음을 멈추고 셔터를 터트리며
경탄해 마지 않았다..
산등성이 마다 나뭇가지 마다
살포시 내려 앉은 새털 구름같은
경이로운 풍광에 어쩔줄 몰라하며
떠날줄을 모른다...
눈밭위에 주저 앉아서
도시락이 미끄러져 굴러가도
까르르륵
숨이 넘어갈듯 웃음이 가득하고
정겨운 마음과
따뜻한 된장국 하나만으로
진수성찬이 되고
향기나는 커피한잔에
나랏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다.....
눈꽃 터널 앞에서 방굿이 웃고
칠불봉앞에서
가야산(1432m)정상에서
멋진 미소 날리며
증명사진 한장씩 찰칵하고
우리가 올랐던 덕유산과 지리산의
산야가 한눈에 들어와
산수화가 되고
병풍이 되어 천년의 향기로
쉼쉬는 시간....
옛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
꿈같은 기쁨에 젖은
산행길이 었으니
갈까 말까 망서리다 못오신 산우님들은
손해볼것 없는 일인지 몰라도
가야산은 가야한다고 여기시며 오셨던
산우님들의 가슴속에는
행복을 한아름씩 안고 서 돌아 왔네요...
언제까지라도
그곳에서 영원하고 싶은
아쉬움 가득한 하산길은
미끄럽고 얼어 붙은 바위와
양지바른곳의 진흙투성이와의 싸움이었다
한시간반이 조금 넘은 하산길에
구조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올라 오기도 하여
뒤에 남은 사람들이 걱정스럽기도 하였지만
모두가 다섯시간에 종주를 마쳤으며
청아님의 과메기파티가 회원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기쁨의 잔치상이 되고 있었다
대자연의 품에 안긴 환희에
가득찬
내가슴 한복판에서 영원한 불길로
피어나는 해인사...
팔만대장경...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떠오르는
해인사와 팔만재장경..
해인사는
대한불교조계종12교구 본사이며
신라 애장왕때 당나라에서 돌아온 순응과 이정
대사가 우두산(牛頭山. 가야산)에
초당을 지으면서 비롯된 절로서
918년 고려를 건국한 태조는 당시의 주지
희랑(希郞)이 후백제의 견휜을 뿌리치고 도와준
보답으로 이절을 고려의 국찰(國刹)로 삼아
해동(海東)제일의 도량(道場)이 되게 하였다
1398년(태조7년)에 강화도 선원사에 있던
고려팔만대장경을 지선사로 옭겼다가
이듬해 이곳으로 옮겨와 호국신앙의 요람이 되었다
이사찰의 창건이후 일곱 차례의 대화재로
그때마다 중창되었는데 현재의 건물들은
대개 조선 말엽에 중건한것들로 50여동에 이른다...
창건이후의 유물로는 대적광전 앞뜰의 3층 석탑과
석등 정도가 있을뿐인데 불가사의한 일은
몇차례의 화재를 당하면서도
팔만대장경판과 장경각판은 화재를 입지 않고
옛모습 그대로 있는 일이다...
통도사 (通度寺) 송광사(松廣寺)와 함께
해인사(海印寺)는
법보(法寶)사찰의 하나로 유명하며
현재는 불교학원인 해인총림(海印叢林)이 있어
많은 학인들로 붐빈다
부속말사는 75개나 되고
홍제암과 약수암 원당암등
성철스님의 도량이었던 백련암도 이절에 속한다..
대장경은 고려시대에 두차례에 걸쳐
국가사업으로 간행되었으니
1011년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거란의 침공을 물리치려는
발원에서 시작하여 1087년까지 무려 77년에 걸쳐 이루어진 것으로
그당시 중국의 장경에 비해 내용이 완벽한 것이었지만
이구판 대장경은 고종19년인 1232년에 몽고군의 방화로
불타버리고 5년뒤 1236년 다시 본격적으로 대장경간행
불사를 추진하여 1251년 완성을 보게 되었으며 16년에 걸친
큰불사의 결실이었으며...
지금 해인사에 보관되어있는 고려대장경이다...
대장경 경판에 쓰인 나무는 섬지방에서 벌목해온
자작나무와 후박나무로서 그것을 통째로 바닷물에
삼년동안 담그었다가 꺼내어 조각을 내고 대패로 다듬은
다음에야 경문을 새겼는데 먼저 붓으로 경문을 쓰고 나서
그글자들을 다시 하나하나 판각하는 순서를 거쳤다...
대장경을 만드는 정성과 한치의 어긋남과 틀림도
허용하지않은 그엄정한 자세는 요즈음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따라 할수도 없거니와 상상하기 조차 힘든일인것이다...
글자 한자를 만들때 마다 절을 한번하였다고 하니 그렇듯
끝간데없는 정성을 들임으로서 서른명 남짓한 사람들의 솜씨로
쓴 무려.. 52.382.960개에 이르는 구양순체의 그글자들이
한결같이 아름답고 일정하며 한자도 잘못 쓰이거나 빠트린자가
없이 완벽하다고 하니 놀랍기 그지 없다...
대장경을 만들 무렵에 고려왕조는 수차례에 걸쳐 오랑케의 침입으로
혼란에 빠졌지만 그러한 시대적 상황에서도 임금과귀족 백성이 나라를
구하겠다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다시 이루어 놓은 것이
오늘날의 팔만대장경이다..
오늘날 몇몇 학자들은 칼과창으로 맞서 싸워야할 처지에서
대장경을 만들기에 힘을 쏟은 무기력한 시대의 사조를
평가절하하는 일이 있다고 하는데...
민족의 염원이 그토록 간절하고 컸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민족의식의 총화라는데서 그의미가 빛난다 하겠다..
뿐만아니라 세계정신사의 산맥에 우뚝솟아난 봉우리이기도 하며
아울러 세계의 인쇄술과 출판물에 끼친 영향 또한 지대한것이라 여기며
가슴뿌듯한 자긍심이 생기고 있는것이다.
현란한 물질만능에 가려져 그빛을 잃어가는
참된 정신문화의 가치를 되새겨 보는
비타민처럼 유익한 역사탐방의 산행이 되고 있었네요.
한장 남은 달력이 우리에게 주는 여러가지 상념들은
즐거움보다는 무엇인가 끝이 나고 있다는 초조로움에
우울해 질수도 있을것이다
허지만
언제나 오늘처럼 똑같은 날은 결코 오지 않을것이고
주어진 오늘 이시간에 감사하며 행복하자...
2006년 12월11일 까꿍이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