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담봉에서

2024. 8. 23. 16:22추억속의산행후기

★♪까꿍♪★

구담봉에서 드리는 시산제(始山祭)

추억속의 산행후기

2011-06-03 16:54:47


설악산에서 한라의 제주에서 때가 아닌 춘삼월의

폭설에 자지러진 연분홍 매화꽃이

눈폭탄의 무게에 짓눌려 울고있는 꽃시새움의 추위속..

눈폭탄에 파묻힌 갖피어난 매화의 안스러운 모습이

세금폭탄에 가위눌린 선량한 세납자들의 모습으로

오버랩 되어 오는 것은

왠 뚱딴지 같은 뜬금없는 생각일까...

 

세금폭탄이 눈폭탄이 고뇌에 찬 삶이 주는 어지러움이

산으로 향하는 우리들의 발목을 잡고 늘어질 것인가...

차창에 드리운 뽀얀안개를 지우듯이

온갖 상념을 지워버리고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선진항공버스안...

정원을 초과하여 좌석을 가득히 메우고도 남아

바닥에 앉고 또는 서서 담소하는 산우들의 모습에서

남다른 감회가 봄안개처럼 스멀스멀 피어나고 있었다...

 

충북 단양군 구담봉에서 드리는 시산제

전회원이 마음과 정성을 모아 준비해온 시산제의날..

시산제(始山祭)

우리들의 생각의 수레바퀴를 타임머신을 타고

태초의 그곳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이시대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버려야 할 구태의연한

관습처럼 여겨질수도 있지만..

거대한 대자연앞에서 세상의 그어떤 문명의 이기로도

대적할수 없는 미약한 우리들 삶의 본질을 기억할때

우리는 새삼스러히 웅대한 자연의 섭리에

엄숙해 질수밖에 없는 존재들이 아닐까 여겨진다

 

산악인들이 시산제를 처음 시작한것은 언제일까..

1966년 설악산 관광진흥사업의 일환으로

설악산악회와 예총속초지부 공보실이 공동주관한 등반대회

축제의 성격이 짙은 산제의 시작이 그처음이요

1968년 동국대학교 산악회가 신년초에 북한산에서

돼지머리와 음식을 장만하여 제사를 올리면서 그기초를

넓혔다고 한다

 

당시에는 최근의 시산제처럼 우리나라 전통의 유교적 순서에 따라

축문을 읽고 소지를 하는등의 의식을 치르지 않았지만

등반중 사망한 악우들과 산신께 무사산행을 기원하며 제를 올렸다 한다

 

지금처럼 산악계에서 본격적으로 시산제를 올리게 된것은

27전인 1971년에 서울특별시 산악연맹에서

그해 2월 첫째주 명성산에서 제1회 설제를 올리었고

그다음해인 1972년 2월 첫째주 운길산에서 제2회의

설제를 올리게 되었으며

설제(雪祭)의 초창기에는 1천여명의 회원이 참여하였고

30여대의 버스가 동원될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고 하는데

이처럼 설제란 이름으로 서울시연맹이 매년 산제를 올리면서

80년대 들어서면서 거의 모든 산악회가 연중행사의 하나로

실시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산에 제를 올리고 소원을 기원하는 행위는

<삼국사기>잡지 제사편에 전하는

신라의 5악 숭배사상에서 찾을수 있다고 한다

 

통일신라는 북으로 백두산 남으로 지리산 동으로 금강산

서로 묘향산 중으로 계룡산을 5악으로 숭배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묘향산에 상악단 지리산에 하악단 계룡산에 중악단을

설치하고 1년에 두차례에 걸쳐 산신제를 지냈다고 한다...

 

이런 산악 숭배사상은 동제나 서낭제에서도 찾아 볼수있으며

나라의 근심이나 자신과 가정의 안위를 산신제를 기원하여

안정을 찾고자 하였음을 볼수 있으며

이시대의 시산제란 산악인들의 무사안전을 기원하고

회원들의 친목과 단합을 위한 행사로 발전해 왔다고 할수있다

 

충북 단양군 계란재 출발장소에 도착한것은 9시 40분..

간단한 준비운동을 끝내고 계란재 능선을 타고 옥순봉에 오르고

다시 구담봉을 올랐다가 출발지점으로 돌아오는 원점산행시간은

4시간이며 차질없이 진행되어야 했다

산행후에 시산제를 올리며 점심시간을 갖기로 하였다

 

산길능선 구릉지에는 봄볕이 완연하고

보드라운 흙더미를 헤집고 올라온 파릇한 새싹들이

양지바른곳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가던 발길을 멈춘 산객들이 냉이 캐는

소년소녀가 되어 잊었던 동심으로 흠뻑 빠져 들었다

 

얼마 가지 않아 사람들은 옷을 벗어 걸치고

유난히 맑게 개인 하늘에서 불어 오는 봄바람을

만끽하며 유유자적 산책하듯이 걸어가는

얕으막한 산행길은 한시간 여만에 그리어렵지 않게

옥순봉에 올라 283m의 표지판의 숫자를 손으로

가려야 한다면서 깔깔대고 사진을 찍었다...하하

 

옥순봉은 희고 푸른 아름다운 바위들이 힘차게 솟아

마치 대나무 싹과 같다하여 옥순봉이라 불리우며

조선 명종 초 단양군수로 부임한 퇴계 선생이

옥순봉이 단양에 속하기를 원하여

암벽에 단구동문(丹丘洞門)이라 각명하여

제천시와 단양군의 군계가 되었다는 유서깊은 곳으로

소금강이란 별칭이 있을 만큼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옥순봉 정상에서 바라보이는 충주호의 전경은

산객들의 마음을 단숨에 빼앗는 단양팔경의 절경을

아낌없이 뿜어내고 있어서 소리없이 옥빛물결에

흘러가는 유람선을 향하여 산객들은 아이들처럼

환호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야 ~ 호 ~>

<야~호~ 없다 ~>

<ㅎㅎㅎㅎㅎㅎㅎㅎㅎ>

티없이 맑은 푸른 하늘의 하얀구름도

저푸른 강물에 빠져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더 머물고 싶어도 지체할수 없는 발길은

구담봉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고 있었다

기암절벽의 모양이 거북을 닮았고 물속의 바위에

거북무뉘가 있어 구담이라 하였다는

구담봉은 절벽과도 같은 암벽로프길을 타며 내려가고

또 새로운 산길을 기어 오르고

룰루랄라 여유만만하며 깔깔거리던 웃음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긴장된 시간의 연속이었다

 

도시락도 싸오지 말래서 빈베낭을 메고 있어서 일까

괸시리 허기져서 좀처럼 먹지 않던 과일 간식도 달고 맛있고

물통의 물도 조심씩 비워져 마침내 빈통이 되었다

이제 그만 가고 싶고 주저 앉고 싶어 질때쯤

구담봉에 도착하였다

 

길고 협소한 암벽로프길에서 오고가는 사람들 때문에

한참 동안이나 지체되는 바람에 맨뒤에 쳐져 버려서

늦어지면 어쩔까 걱정하며 종종 걸음치기도 하였지만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앞선 1시50분에 차질없이 도착하였다

 

조용하고 아늑한 산자락

고맙게도 선진항공 윤두희사장님이 마련해 주신

솔향기산악회 현수막이 걸리었다

깨끗한 깔개가 깔린 제상위에는

과일과 떡 돼지머리 나물과 탕까지 제수에 필요한 모든

준비물들이 입이 떡 벌어지게 준비되어 있었다

 

제물의 종류는 각지방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진설(陳設)이란 제수배열법은 반듯이 그원칙이 있다고 하니

 

홍동백서(붉은것은동 흰것은서)

생동육서(날것은동 익은나물류는서)

어동육서( 물고기는동 뭍고기는서)

두동미서(생선머리는동 꼬리는서)

 

또한 맨첫째줄에 과일

둘째줄에 나물과포 셋째줄에 탕이요

넷째줄에 적과전이며

다섯째줄에 메(밥)을 올린다는것

과일을 놓는 것도 순서가 있다하니

제삿상을 마주 본 상태에서 왼쪽부터

조율이시 즉 대추 밤 감의 순서이며

대추는 씨가 하나여서 제왕을 의미하고

밤은 한송이에 3개가 열리므로 3정승

감은 씨가 6개이므로 6판서를 의미한다

조율이시에 사과를 더한것은 같은 종류의

제수는 홀수를 차린다는 제례전통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제삿상을 마주 본 상태에서

어포류는 왼쪽이며 떡은 오른쪽에 두었다

 

이많은 음식을 차림에 있어서

부회장이신 소나무님의 수고로움과 정성이 극에

달하였음에 감격하고 감사드리고

이어진 제례절차와 제물차리기 축문작성및 낭독등

전통의례 절차는 솔향기산악회 원로어른이신

이강수 혜운님의 사려깊은 정성으로

강신.진찬 초헌 아헌 종헌 첨작 개반삽시 의

순서로 진행되어 함께 참여하신

모든 회원들의 마음속에 더없는 엄숙함과 경건함으로

올한해의 안전산행과 큰사고없이 지난 4년동안

안전산행을 할수있었던 감사의 제를

한점 티글없이 정성으로 올릴수 있어서

하늘을 날을듯 기쁨에 젖은 축제의 의식이 되었다

 

행복한 마음으로 충만한 나눔의 시간이 되었다

떡과고기와 과일

감칠맛 나는 김치와 나물

얼큰한 육계장에 고슬고슬한 햅쌀밥이

입안에 감겨오는 흡족한 점심만찬...

어디에서 이리도 호사스런 잔칫상을 받을까....

 

찰랑찰랑 넘치는 술잔속에

빛바래지 않는 산사람들의 깊은 우정과

정겨움을 가득히 담아 마시며

언제까지라도 그푸른 들녁에 머물고 싶었지만

 

가나다라대장님의 애간장이 녹아 내리는

출발 카운트다운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버스에 오르니 3시50분이 되고 있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

우리들의 의식 또한 봄날의 풀잎처럼

새옷을 갈아 입고 새로운 날을 맞아야 할것이다

옛것이라 구겨서 내동댕이 처버린 이념들이

물질문명에 각박하여진 우리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여유롭게 하는

보물처럼 소중한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함께 하여 주신 모든님들과 산행에 참석하지

못하신 모든 솔향기 산우님들과

자신을 버리고 산악회를 위하여 애써주신

임원진 여러분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남깁니다

 

늘 부족함이 많은 저에게 사랑을 주시는

솔향기님들 감사드려요 ^^*

 

 

2007년 3월 20일 까꿍이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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