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isa Monte

2024. 10. 23. 17:10팝아티스트

 
마리자 몽찌는 마치 이웃집에 사는 대학생 누나(혹은 언니) 같다. 악보와 악기를 끼고 다녀서 '음악도구나'라고 넘겨짚다가 어느날 창문 밖으로 피아노나 기타 소리와 함께 넋을 잃고 듣게 되는 목소리의 주인공 같은 존재 말이다. 감각적이지만 천박하거나 야하지 않고 그렇다고 얌전하고 '스탠다드(=고리타분)'한 것도 아니다. 몽찌의 두 번째 앨범이자 출세작으로 알려진 이 앨범은 이런 평에 잘 들어맞는다. 덧붙여 브라질계 미국인이자 아방가르드 펑크 뮤지션인 아르뚜 린지(Arto Lindsay)의 프로듀싱이라는 '국제적 신뢰도'도 확보하고서...

처음을 장식하는 "Beija Eu"는 상큼하기 그지없는 발라드로 브라질에 살지 않더라도 '히트곡'이었음을 예상할 수 있게 한다. 세 번째 트랙인 "Ainda Lembro"는 라이오넬 리치와 다이아나 로스(혹은 조규찬과 박선주)를 연상시키는 '사랑의 듀엣곡'이다(남자 가수는 에드 모타(Ed Motta)). 그렇지만 '라틴'이나 '브라질'의 색채가 완연한 곡은 두 곡 사이에 있는 트랙 "Volte Para O Seu Lar"이다. 퍼커션의 잔 리듬, 툭툭 끊어지면서도 훵키한 베이스 라인, 목소리와 경쟁하듯 삽입된 관악기, 중반부 이후 등장하는 노이지한 기타가 어우러진 흥미진진한 곡이다. 아르나으두 앙뚜네스(Arnaldo Antunes)가 만든 이 곡은 '실험적이면서도 대중적'이라는 어불성설도 때로는 말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그는 아르뚜 린지(Arto Lindsay), 톰 제(Tom Ze)와 더불어 '브라질 아방가르드'라고 부를 만한 인물이다).

그 외에도 류이치 사카모토가 참여하여 뉴 에이지 무드를 만들어 놓은 "Rosa", 이와는 반대로 토속적 느낌을 던지는 전주에 이어 보사 노바 스타일의 기타 위에 얹히는 "Borboleta", 남자의 목소리와 '주고받기(call and response)' 형식으로 전개되는 '레게풍 삼바(?)'인 "Ensaboa" 등이 흥미진진하게 포석되어 있다. 다소 '미국적'으로 느껴지는 훵키한 넘버도 있는데 "Eu Sei"는 히트 싱글로 적절해 보이고, 까에따누 벨로주의 고전인 "De Noite Na Cama"도 훵키하게 재해석되어 있다.

한마디로 자국의 '대중'들로부터 인기를 누림과 동시에 국제적 '평단'에서도 주목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모범답안을 제출한 음반으로 평할 수 있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해괴한 주장이 아니라 대중음악의 '국제주의'에 걸맞는 음반이라는 뜻이다. 물론 브라질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브라질 출신의 국제적 디바 마리자 몽찌의 최근작이다. 이번 앨범은 브라질의 음악 어법에 비교적 충실했던 전작과 비교한다면 팝이나 록의 어법에 기운 편이다. 첫 곡 "Amor I Love You"는 제목과 동일한 가사에서 훅(hook)이 분명한 팝송이고, 또 하나의 사랑스러운 곡 "Perdao Voce"는 성악을 공부한 성과를 느끼게 해주는 고음의 배킹 보컬이 인상적이다. 한편 "Nao Va Embora", "Nao e Facil", "Tema de Amor"는 '까마귀 언니 셰릴'을 연상시킬 정도로 그루브있는 (한국 사투리로) '얼터 록'에 가까운 스타일이다. 공연 장면에서 소매없는 옷을 입고 긴 머리를 휘날리면서 기타 치고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면 더욱 더. 그렇지만 독특한 발성법과 프레이징만으로도 이 노래들이 '브라질 아티스트의 음반'임을 알아차리기는 어렵지 않다(이것도 '편견'이겠지만 포르투갈어 발음은 노래 가사가 되면 참 예쁘다).

물론 앨범의 중반부를 넘어서면 브라질의 색채가 완연해지는 곡들이 등장한다. 피아노의 나른한 반주가 이끌어 가는 "Abololo" 같은 곡은 유럽의 음계도 아프리카의 음계도 아닌 묘한 느낌을 주는데, 한 정보를 보니 브라질 북동부의 민속음악의 전형적인 선법(mode)라고 한다('공부'한 사람은 그걸 리디안 선법이라고 할 것이다). 신곡과 더불어 전통 민요(포크송)와 대중 음악의 고전을 적절히 삽입하는 전략은 이번에도 여전해서 빠울리뉴 다 비올라(Paulinho da Viola)의 삼바의 고전인 "Para Ver as meninas"가 수록되어 있다. 까바뀌뉴(cavaquinho)의 애잔한 소리와 벅벅 문질러대는 퀴카(cuica) 드럼을 더해 세련되게 편곡되어 있다. 브라질 후배 음악인들에게는 영원한 전설인 까에따누 벨로주(Caetano Veloso)의 작품인 "Sou Seu Sabia"와 조르헤 벤(Jorge Ben)의 작품인 "Cinco Minutos"도 재해석되어 있다. 가장 보사노바다운 곡을 원한다면 짧은 길이지만 "Gotas de Luar"의 무드에 젖어들 수 있다.

전체적으로 평가하면 새로운 실험을 시도했다기보다는 이제까지의 음악 경력을 차분히 결산하는 앨범에 가깝다. 앨범 타이틀처럼 말이다. 평면적으로 비교한다면 1994년 앨범이자 출세작인 [Mais]에 더 높은 점수를 주어야겠지만 이 앨범이 보다 '원숙하다'는 점을 쉽게 무시할 수도 없다. 부드럽고 편안한 느낌을 생래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브라질 음반이라고는 [Getz/Gilberto] 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이 앨범을 듣고 실망할 일은 없을 것이다. 라디오나 카페에서 "Gotas de Luar"나 "Sou Seu Sabia"를 우연히 듣게 된다면 인터넷 음악 사이트 게시판에다가 "이 곡 뭐에요"라고 질문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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