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Forever

2024. 10. 10. 07:34팝아티스트

 

데뷔/결성: 1971년

활동/시기: 1970년대

멤 버: 칙 코리아(K.), 스탠리 클락(Ba.), 레니 화이트(Dr.), 알 디 메올라(Gt.), 빌 코너스(Gt.), 얼 클루(Gt.), 에알토 모레이라(Perc.), 플로라 퓨림(Voc.), 조 패럴(Reed)

리턴 투 포에버(이하 RTF)는 웨더 리포트,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와 함께 1970년대 재즈-록 퓨젼을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공헌한 밴드이다. 1969년 재즈-퓨전의 시작을 알렸던 마일즈 데이비스의 <Bitches Brew>(1969) 앨범에 키보드 연주자로 참여했던 RTF의 리더 칙 코리아(Chick Corea)는 마일즈 데이비스가 내세운 록과 재즈와의 온전한 결합에 일조 한다.
이런 마일즈와의 작업을 통해 얻은 재즈-록 사운드의 영감을 통해 주목받고 싶어했던 칙 코리아는 1970년 조 자비눌과 웨인 쇼터가 조직한 웨더 리포트(Weather Report)와 1971년 영국출신 일렉트릭 기타리스트 존 맥러플린의 마하뷔쉬누 오케스트라(Mahavishnu Orchestra)에 등장이 있은 지 얼마 후인 1971년 11월, RTF를 조직, 어쿠스틱 피아노 대신 펜더 로즈(금속성 소리가 나는 일렉트릭 키보드를) 연주하며 '재즈 퓨전의 빅 3' 로 얘기되어지는 이들 밴드들 중 가장 폭넓은 대중성을 획득해간다.

1974-1976년까지 연달아 4장의 골드 앨범을 발표했고 2개의 그래미상을 얻은 RTF는 결성 당시엔 플라멩코 풍 선율과 라틴 리듬이 넘치는 연주를 시작으로 이후엔 일렉트릭 기타가 전면에 부각된 하드 록의 성향의 강렬한 연주음악을 수용해 나간다. RTF는 재즈 퓨전을 당시 1970년대 록 음악계를 창궐했던 헤비메탈과 아트 록에 버금가는 찬사를 얻으며 '재즈-퓨전'을 당대 주류 대중 음악 장르로 부상시키는 공헌을 한다.

ECM에서 발표한 밴드의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 <Return to Forever>(1972)와 폴리돌에서 발표한 두 번째 앨범 <Light As A Feather>(1972)는 칙 코리아의 키보드 연주를 중심으로 브라질 출신의 퍼커션 주자 에알토 모레이라의 그의 부인 플로라 퓨림의 몽환적인 보컬이 어우러진 라틴 풍의 독특한 재즈 퓨전을 선보였다. 이후 재즈-펑크(Jazz Funk) 연주의 일인자로 부상하는 스탠리 클락(베이스)과 조 패럴(리드)이 함께 한 이들의 첫 두 앨범은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등장한 재즈- 퓨전의 기념비작이다.

1973년 베이스주자 스탠리 클락만 남겨두고 조 패럴, 플로라 퓨림, 에알토 모레이라가 솔로 활동을 위해 팀을 탈퇴한 상황서 칙 코리아는 당시 라이벌 밴드였던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의 존 맥러플린과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예스(Yes)의 키보디스트인 릭 웨이크먼(Rick Wakeman)의 연주를 듣고, 일렉트릭 기타 연주를 가세시킨 하드 록 사운드로 전환을 시도한다.

3집 <The Hymn of Seventh Galaxy>(1973)는 일렉트릭 기타리스트 빌 코너즈(Bill Conors)와 마일즈 데이비스의 <Bitches Brew>작업을 통해 알게 된 라틴 록 밴드 아즈테카(Azteck)의 드러머 레니 화이트(Lenny White)를 영입, 마셜 앰프의 폭발적인 사운드로 옷을 갈아입는다. RTF의 묵직한 사운드로의 변신은 '재즈는 지루하고 눅눅하다'는 고정관념을 지녔던 젊은 록 음악 팬들의 귀를 자극했고, RTF의 세 번째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에 진입하는 성과를 거둔다.

1974년 초, 기타리스트 빌 코너즈가 솔로 활동을 위해 팀을 탈퇴, 세계 순회 공연 때 솜사탕 기타 연주로 정평이 난 얼 클루(Earl Klugh)가 잠시 RTF의 일렉 기타리스트로 활동한다. 얼마 후 버클리 음대 재학생이던 신예 기타리스트 알 디 메올라(Al Di Meola)를 영입, 약관 19세의 나이에 카네기 홀에서 데뷔 무대를 갖는다.

새로운 진용으로 정비된 RTF는 같은 해 9월, 밴드의 네 번째 앨범 <Where have I Known you Before>를 발표, 빌보드 앨범차트 32위를 기록하며 밴드의 첫 Top40 앨범이 되었다. 75년 발표한 <No Mystery> 역시 빌보드 앨범 차트 39위를 기록하는 성과를 거둔며 이듬해인 1976년 그래미상 베스트 재즈 퍼포먼스 상을 안겨준다.

폴리돌을 떠나 CBS로 소속사를 옮긴 RTF는 1976년 중세시대 기사에 얽힌 이야기를 연주로 표현한 컨셉 앨범 <The Romantic Warrior>를 발표, 발매 직후 100만장이라는 상업적 성공과 함께 빌보드 앨범 차트 35위라는 이례적 성공을 거둔다. <The Romantic Warrior>로 RTF는 다시 한번 이듬해인 1977년 그래미상 최우수 재즈 그룹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얻는다.

다시 칙 코리아는 스탠리 클락만 남겨두고 팀을 재정비, 라틴 풍의 RTF 초기 사운드로 회귀한 6집 <Music Magic>(1977)을 발표, 밴드의 네 번째 톱40 앨범이 된다. 그리고 같은 해 5월 20일-21일 미국 뉴욕 팔라디움(Palladium) 극장에서 열린 라이브 콘서트 실황을 담은 그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실황 앨범 <Live>(1977)을 발표하고 칙 코리아는 밴드를 해산시킨다. 다시 어쿠스틱 피아노 연주자로 돌아간 칙 코리아는 1983년 자신의 독집 <Touchstone>을 통해 레니 화이트, 스탠리 클락, 알 디 메올라를 다시 불러모아 연주, 그들의 전성기를 생각나게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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