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ilyn Manson

2024. 10. 2. 11:15팝아티스트

 
 
시대를 타고나는 것은 아티스트에게 커다란 하늘의 축복이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갈무리했더라도 시대의 은총 없이 비상하기란 정말 버겁다. 그런 점에서 마릴린 맨슨은 행운아일 것이다. '세기말'이라는 혼란스럽고 어두운 시대는 그에게 음악계를 고공 비행할 수 있는 날개를 달아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뉴 밀레니엄. 희망이라면 희망의 시기다. 과연 새 '세기초'도 그에게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줄 수 있을까.

소위 음악을 꽤나 듣는다는 매니아들 사이에서도 마릴린 맨슨에 대한 단상(斷想)은 음악이 아닌 '이미지'가 주를 이뤘다. 섹스의 화신 마릴린 먼로와 세기의 살인마 찰스 맨슨의 이름을 합한 그의 명칭(그룹명이기도 하다)과 함께 흉물스런 분장과 저주받은 앨범 커버는 음악을 듣기도 전에 이미 일반의 뇌리에 '사탄의 자식'이라는 인상을 각인했다. 게다가 끊이지 않는 사건과 사고로 타블로이드의 가십난에 단골로 등장하면서 그런 '이미지 포위'는 더욱 확고해졌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 특히 보수세력과 기독교 단체에서는 그가 음악보다 쇼크기법으로 인기에 부합하려고 한다며 비난했다.

정말 맨슨의 음악과 행동은 순전히 스포트라이트를 위한 의도된 계획이었을까. 그럼 10대들이 '맨슨교의 교주'라 칭하며 기꺼이 광신도를 자청하는 이유는 어떻게 풀이해야 하는가. 음악 외적인 퍼포먼스? 한때의 엽기적 패션?

우선 '걸어 다니는 화약고' 맨슨과 관련된 사건과 사고 퍼레이드를 보자. 1994년 10월 유타주 솔트 레이크시에서의 공연 도중 그는 몰몬교의 성서를 한 장씩 찢으며 관중들에게 뿌리는 용감무쌍한 돌출행동을 벌였다. 이후 그는 솔트 레이크에서 영원히 공연을 할 수 없게 됐으며 자연 악마주의 논쟁에 휘말렸다.

1997년 11월에는 네바다주의 레이몬드 쿤츠라는 사람은 자신의 15살 난 아들이 맨슨의 2집 앨범 <Antichrist Superstar>를 듣고 자살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1998년 1월에는 텍사스의 18살 청소년 존 슈로더(John Schroeder)가 맨슨의 노래 일부분인 'I am the God of Fuck'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는 이유로 경찰서로 끌려가는 일이 발생했다. 그는 125달러의 벌금을 물었다.

분쟁의 씨앗을 제공한 마릴린 맨슨의 행위는 어찌됐건 비판의 대상이 되기에 마땅하다. 하지만 그의 행동을 이목제고를 위한 방법론으로 해석하기 전에 한번 이면에 숨은 메시지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는 성경을 찢은 행위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하기 위해 계획된 것이었다. 종이 한 장이 중요한 게 아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념에 대해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들이 배운 모든 것들이 그들이 '믿고자 하는 것'인지 혹은 '믿어야 한다고 배운 것'인지 다시 한번 숙고하기를 원한다."

# 맨슨은 가해자 아닌 피해자?

결국 신앙의 근본을 파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라는 이름 하에 행해지는 온갖 부패와 타락을 꼬집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1994년 데뷔작 <Portrait Of An America>부터 줄곧 담아온 중심 테제기도 하다. "미국은 죄를 전가시킬 아이콘을 즐겨 찾는다. 내가 적 그리스도의 역할을 맡았다는 걸 인정한다. 사람들은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을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활동과 연관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맨슨은 그렇게 희생양이 된 자신의 처지를 말한다.

가사도 다를 게 없다. 데뷔 앨범의 수록곡 'Lunchbox'는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한 학생이 도시락으로 저항하는 내용인데 총에 대한 노래로 저널리스트가 잘못 해석함으로써 피해를 당했다고 한다. 'Get your Gunn' 역시 낙태에 관한 곡인데 미디어에 의해 잘못 오역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각의 10대들은 사회의 오판과 매도에도 불구하고 한사코 마릴린 맨슨을 자신들의 대변자로 받아들인다. 그의 깊은 속내는 모를지언정 어느 정도 의미파악은 한다. 진부함과 상투성에 안주한 부모세대와는 다르기에 말이다. 그것은 음악에서 더욱 광채를 발한다.

맨슨은 '쇼크 록의 창조자' 앨리스 쿠퍼, '글램 록의 대부' 데이비드 보위, 그리고 '악마의 화신' 오지 오스본의 이미지를 물려받아 그 위에 제도권과 종교계를 향한 비판적 메시지를 더함으로써 자신의 형체를 갖췄다. 그 비주얼 이미지들에 그치지 않고 그것들을 음악으로 발현시켜 완벽한 천지창조를 이뤘다.

그의 음악은 1990년대 사운드의 결정판이다. 메탈, 테크노, 고딕, 인더스트리얼, 로큰롤 등 모든 음악적 텍스트가 집결되어있다. 그래서 딱히 어느 한 장르로 규정하기에는 범위가 광대하다. 허나 포괄적이면서도 분산되지는 않는다. 하나로 결속해 광기 어린 에너지를 뿜어댄다. 이것이 바로 마릴린 맨슨의 힘이자 특수성이다. 그의 작품 중 최고로 평가받는 1997년 앨범 <Antichrist Superstar>가 이를 생생하게 전한다.

수록곡 'The beautiful people'만 들어봐도 충분하다. 분노에 찬 짐 점(Zim Zum, 현재는 존 5로 교체)의 기타 리프와 포효하는 진저 피쉬(Ginger Fish)의 드럼 울림과 트위기 라미레즈(Twiggy Ramirez)의 베이스, 그 사이를 활강하는 게이시(M.W. Gacy)의 키보드는 맨슨의 극단적인 보컬과 맞물리며 '세기말 사운드'를 정점으로 끌어올렸다. 혼돈과 무질서의 세기말 끝물의 정서에 편승하여 더욱 그 음악의 보편적 호소력이 상승한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 상황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마를린 맨슨의 곧 나올 예정인 그의 소설 제목이기도 한 이번 신보 <Holy Wood(In The Shadow Of The Valley Of Death>는 여전히 그의 농축된 음악적 응집력과 함께 도발적 에너지로 가득하다. 현미경처럼 더욱 예리해지는 음(音)에 대한 감각과 멤버들의 빼어난 연주 기량은 더할 나위 없이 준수하다. 이제는 그는 음악 구세주인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의 트렌트 레즈너의 영향권 내에서 완전 해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스스로도 인더스트리얼 메탈 성향의 2집과 글램 지향적이었던 1998년 3집 <Mechanical Animals>사이의 접착제라고 말할 정도로 양자의 색깔이 적절히 혼합, 배치되어있다.

# 콜롬바인 총기사건 공세에 대한 반격

첫 싱글인 'Disposable teens'와 'The fight song'은 'The beautiful people'를 잇는 전형적인 맨슨의 음악 스타일로 그의 광신도들에게 공감의 줄을 퉁긴다. 멜로디 라인이 뚜렷이 들려오는 'Target audience(Narcissus narcosis)'나 'In the shadow of the valley of death' 같은 곡들은 그가 전체 사운드만큼 곡 하나 하나에도 세밀히 신경 쓰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 앨범은 이처럼 전체와 개체 측면에서 질적 동반상승이 두드러지는 것이 특징이다. 솔직히 그의 사운드가 어느 정도 친숙해져 '첫 경험의 쇼크'가 부족하다는 것 외에는 단점이 거의 없어 보인다.

메시지도 날카롭다. 이번 앨범은 1999년 4월 전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콜로라도주 리틀턴의 콜롬바인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을 테마로 잡았다. 그 사건의 주범인 학생들의 집에서 자신의 음반이 발견되어 제도언론으로부터 마녀사냥을 당한 것에 대한 응분의 반격이다. '우리는 하찮은 사람이지만 대단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우리가 죽었을 때 그들은 우리가 누군지 알게 될 것이다(We are the nobodies/We wanna be somebodies/When we`re dead/They`ll know just who we are)'로 시작되는 'The Nobodies'가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롤링스톤>지는 "다른 메인스트림 뮤지션은 상대도 안 되는 연극적인 열정과 통렬한 힐난으로 실제 삶을 전달하는 맨슨을 존경해야만 한다"며 극찬했다.

시대는 태어나는 자 모두를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시대를 움직이는 자는 몇 안 되는 소수이다. 얼마나 잘 이용해서 솟아나느냐가 관건이다. 마릴린 맨슨의 원래 직업은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한 성공적 음악평론가였다. 음악 판을 바라보는 시각이 남보다 열려있고 선봉에 서있음을 시사한다. 세기말을 활동시간표로 선택한 것도 그의 선구안 덕분일 것이다. 처음 나른한 슈게이징 그룹에 몸담았다가 갑작스레 '극단의 이미지와 음악'으로 변모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마릴린 맨슨은 시대를 타고났고, 어쩌면 그것을 이용했다. 그리고 한 때를 풍미했다. 만약 신보로 '세기초'마저 관통한다면 그는 순간의 트렌드를 창조한 세기말 '원 히트 원더'를 넘어서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언제나 있을 왜곡과 부조리를 긁어주는,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이터널리 맨슨'임이 증명될 것이다. 물론 그동안에도 아버지의 혐오는 계속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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