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son Becker

2024. 9. 25. 09:21팝아티스트

 
 
불운의 기타리스트 JASON BECKER


세상엔 많은 사람들이 다가왔다 사라져 간다. 그러나 아직 멀어질 수 없는데... 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미인박명이라든가? 너무 빨리 우리곁에서 사라져 간다.JIMI HENDRIX도 그러했고, STEVIE RAY VAUGHAN, RANDY RHOADS도 그러했다.
정말 너무도 빨리 우리곁에서 사라져가며 잊혀져 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 그들의 숨소리는 그들의 사운드마다 살아있는 듯 하다.
JASON BECKER... 적어도 골수매니아라면 그의 음악을 많이 들어 보았을 것이다. 입문자들은 잘 모르겠지만 정말로 있을 수 없는 떠오르는 별이다.
1969년 7월 22일 미국 캘리포니아 리치몬드에서 태어났다. 그의 음악과의 인연은 클래식 기타를 즐겨 연주하시던그의 아버지에 의해서였다. 어렸을때 아버지께 선물받은 Franciscan 기타를 연주하며 세고비아 같은 연주인의 꿈을 꾸었다. 이어 1981년에는 Takamine 기타를 선물받아 아버지께는 기타를, 삼촌께는 일렉기타 코드와 핑거링 등을 배우며 프로인의 꿈을 키우며 독학으로 기본기를 다져갔다.
13세에 그가 다니던 리치몬드 음악학교 -미국은 음악학교가 많이 있다. 폴 길버트, 크레이스 스몰 등이 나온 G.I.T가 대표적이다.-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재즈 앙상블의 리더로 활동하게 된다.
그는 이때부터 많은 세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데 그의 솔로 애드립은 높은 난이도와 정확도로 나이에 맞지 않는 연주로 많은 사람들이 그의 테크닉에 쉽게 심취되게 되었다. 이후 그는 대위법과 음의 스캐일 등 작곡과 기법을 연마했고 클럽에서 연주를 계속하며 그의 실력을 쌓아 나가갔다.
속주 연주인으로 드물게 그는 애릭 클랩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블루지하며 섬세한 연주가 그의 장점인데 그는 '모든 음악은 평등하며, 열등하거나 우월하다는 시각은 편견이다.' 라는 음악의 가치관에 따라 그는 퓨젼 재즈, 클래식, 록 등 다양한 음악을 모두 수용하고 있다. 16세까지 섬세한 연주기법에 자신을 숙달시켜 17세가 되자, 잉베이 말름스틴, 조지 린치, 율리히 로스 등의 테크니션과 비교의 대상이 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자신을 얻어 제이슨은 86년 10월경 '기타 플레이어'지의 스포트라이트 칼럼을 맡고 있는 마이크 바니 -이 기타리스트의 세계에 너무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다. 또, 나오나 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이 사람의 기타리스트 발굴에는 누구도 따라가지 못한다. 80년 초반이후 왠만한 신인 연주자는 (미국을 중심으로) 거의 그가 발굴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에게 데모 테잎을 보내 마이크 바니 사단에 입적하게 된다. 마이크는 이 기타리스트를 위해 제인슨보다 5살 많은 MARTY FRIEDMAN을 소개시켜 주었고 두 사람은 CACOPHONY란 그룹을 결성하게 된다.
그룹명 (불협화음) 그대로 어떻게 보면 어울리지 않는 독특한 연주를 보여준다. 속주적이고 클래식에 영향을 받아 블루지한 연주를 보여주는 제이슨과 파괴적이며 공격적이고 때로는 단조로우며 오소독소한 리프를 지닌 마티는 어울리지 않는 멋진 트윈 기타리스트가 되버려 첫 프로젝트 앨범 [Speed Metal Symphony]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으나 미국 내에서도 이들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어 신비의 그룹이(?) 되어 버렸다.
이 앨범에서 보면 제이슨의 성격은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피크의 뾰족한 부분으로 -마티는 조지 린치처럼 둥근부분으로 피킹- 피킹을 하며 기존 속주 연주인에 비해 사운드는 약하지만 폭넓은 음역을 왕래하는 핑거링과 손목의 부드러움에 기반을 둔 유연한 스윕 피킹은 놀랄만 하다.
수록록중 를 들어 보면 스래쉬적인 마티와 바로크적인 제이슨의 멋진 앙상블을 들을 수 있다.
기발한 아밍과 뚜렷한 스윕 피킹 속주의 화려함이 기복이 심한 템포의 변칙적인 전개와 함께 그룹명이 빛을 발하는 곡이다.
이 앨범의 의의는 자뭇 크다. 우선 트윈기타의 연주 방법의 확장이다. 상호 보전적인 관계에서 탈피하여 서로 고립되었다가 다시 서로 보완해주고 또 다시 고립된 독특한 연주를 보여준다. 두번째는 스케일과 질서에 영향을 받지 않은 자유 분방함이다. 이 음은 어떤 스케일의 곡이다 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로우며 막힘이 없으나 그들만
의 스케일 -독특한 테마 연주 및 사이키델릭적인 프레이즈- 를 이루고 있다.
또 같은 해에는 솔로 앨범 [Perpetual Burn]을 발표 CACOPHONY와는 다른 클래식에 기초를 둔 음반을 발매했다. 이 앨범은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잉베이를 좋아하고 임펠리테리를 좋아한다면 꼭 소장해야 할 명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그리고 프로젝트 CACOPHONY 활동외에도 많은 이들의 음반에도 손을 댄다. APOCRYPHA, PHANTOM BLUE, POISON으로 인해 더욱 주가가 상승한 RITCHIE KOTZEN의 데뷔앨범 제작에 참여한다. 89년 4월 CACOPHONY는 두번째 앨범 [Go Off]를 발매한 뒤얼마 안 있어 해체된다.
마티가 DAVE MUSTAIN이 이끄는 스래쉬 그룹 MEGADETH의 리드기타로 가입했고 제이슨은 자신과 상반된 록필드의 '미친여우' DAVID LEE ROTH의 꾐에 빠져 -스티브 베이도 그러했다.- [A Little Ain't Enough]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 즈음 화려한 활동에 시샘이라도 하듯 그에게 먹구름이 엄습해 왔다. 기타리스트에게는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Amytophic Lat eval  Sclerosis (근육 위축성 축색경화증)에 걸려 그의 자랑거리인 손부터 온몸으로 점차 굳어져 갔다. -물리학자 스티브 호킹이 걸렸던 병과 거의 같다.- 생명은 구할길 없고 연장시킬 뿐인 이병의 치료를 위해 마티 중심의 기금마련 잼 콘서트 - 타이틀은 'Jason Becker Benefit'이다.- 를 1991년 6월 19일 토니 맥칼파인, 조지 린치, 리치 코젠, 잭 와일드, 비비안 캠블, 스티브 루카서, 위렌 디마티니 등이 열었다.
정말 록필드에서 너무 많은 이들이 쓰러져 갔다. 일렉기타계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어린 명기타리스트 JASON BECKER ...그의 연주모습을 
다시금 생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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