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ly Brothers
2024. 9. 20. 09:04ㆍ팝아티스트
Everly Brothers : 에벌리 브라더스 Don Everly, Phil Everly 에벌리 브라더스는 최고의 초기 락엔롤 스타대열에 있었을 뿐 아니라 모든 장르를 막론하고 가장 영향력있는 락커중 하나였다. 그들은 초기 락 엔롤을 컨츄리와 팝음악이 갖고 있는 장점들과 잘 융화시켰다. 모든 락음악에 미치는 그들의 영향력은 비틀즈, 사이몬 & 가펑클 그리고 많은 컨츄리 락커들에서부터 Dave Edmunds 와 Nick Lowe에 이르기까지 대단하다. 초창기의 컨츄리 & 웨스턴 아티스트의 아들인 돈과 필 에벌리는 아주 어렸을 때 부터 기타를 연주하였고 돈이 8세 그리고 필이 여섯살일때 아이오와에 있는 라디오 방송국에서 그들의 가족과 함께 노래를 부른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1954년에 그들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내쉬빌에 가서 콜럼비아 레코드사와 간단한 계약을 맺었다. 카덴스 레코드사로 이적한후 그들은 싱글 "Bye Bye Love"로 57년에 첫 히트 곡을 내 놓았다. 이곡을 출발점으로 해서 1962년까지 팝 분야 뿐 아니라 컨트리 & 웨스턴과 리듬 & 블루스에서도 성공한 수 많은 스매시 히트곡들이 계속되었는데 카덴스 레코드사에서 발표된 싱글 "Wake Up Little Susie", "All I Have to Do Is Dream", "Bird Dog", "('Til) I Kissed You" 그리고 "When Will I Be Loved"이 바로 그 히트곡들이다. 에벌리 부라더스는 갈망하는 마음으로 젊은이들의 사랑에 대해 노래하였고 그들의 맬로디는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록 매력적이었다. 그들의 하모니는 Appalachian의 컨츄리 음악 덕분이기도 하지만 열정적인 모던 팝의 센서빌러티를 그들이 잘 소화해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은 거친 락음악을 추구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원하다면 언제든지 하드한 락을 추구할수 있는 잠재력은 가지고 있었다. 에벌리 브라더스는 프로듀서 Archie Bleyer, 위대한 내쉬빌 세션플레이어 Chet Atkins, 송라이터 Boudleaux과 Felice Bryant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돈과 필은 때때로 그들 스스로 휼륭한 곡들을 써냈다. 60년에 에벌리 브라더스는 Cadence를 떠나 Warner Brothers레이블과 계약했다.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에벌리 부라더스는 레코드 사업에 있었서 워너스 에게 많은 이윤을 가져다 주었다. 그들은 결코 Cadence 레코드사에 처럼 진가를 다시 발휘하지 못했지만 필과 돈은 워너스와의 첫번째 레코딩에서 상업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성공을 했다. 워너스사에서 나온 첫번째 싱글 "Cathy's Clown"은 그들의 최고 히트곡 중 하나이고 넘버원에 올랐다. 워너스에서 나온 첫번째와 두번째 Lp는 그들 최고의 작품은 아니었지만 초기 60년대 베스트 락 앨범중 하나였다. 몇년 동안 "Walk Right Back", "Temptation"와 센티멘탈하고 소프트팝적인 "Ebony Eyes", "That's Old Fashioned"과 같은 히트곡이 계속 발표되었다. 돈과 필의 사생활은 60년대 초기에 많은 어려움에 봉착한다.: 그들은 군대에 입대하고 6개월동안 학업에 정진한다. 심각하게도 돈은 자동차 스피드 광이 되고 62년에 약물과다 복용으로 거의 죽을 지경에 까지 이르른다. 그때쯤 "That's Old Fashioned" (1962)는 그들의 마지막 탑 텐 히트곡이 된다. 사실상 락엔롤 슈퍼스타의 첫번째 세대인 그들은 다른 아티스트 처럼 소프트 팝이나 컨츄리에 표류하기보다 홀로 락엔 롤을 고수했다. 60년대 중반에 발표된 그들의 레코딩이 미국에서 크게 호응을 받지 못했을지라도 64년에 탑 40위권 싱글 "Gone, Gone, Gone"을 비롯한 몇몇 곡들은 여전히 훌륭했다. 65년에 발표된 "Price of Love"은 브리티쉬 인베이젼이 정점에 달한 영국에서 차트 2위에 올랐다. 그들은 잘 어울릴것 같지 않은 비틀즈와 버즈의 기타 선율을 그들의 노래와 잘 조화시켰고 그 당시의 영국 밴드보다도 에벌리 브라더스에게 영향을 많이 받은 홀리스와도 앨범을 만들었다. 그들은 68년에 앨범 로 컨츄리 락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들은 세계투어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70년에 네트워크 티비 버라이어티 쇼에서 진행을 맡았을 지라도 이런것 중 아무 것도 히트 메이커로서의 그들의 커리어를 되살리진 못했다. 몇십년동안 함께 한 그들은 마침내 73년에 해체되었다. 그들은 그 후 솔로로서 활동했지만 그들 각자는 최고의 사운드를 위해 서로를 많이 필요로 했다고 전해진다. 에벌리 브라더스는 83년에 함께 다시모여 공연과 레코딩을 했고 기타리스트 Albert Lee가 이끄는 백업 밴드와 함께 한 공연 에서 그들은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든 음반은 폴매카트니가 그들을 위해 히트 싱글을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50년대와 60년대 처럼 주목받지못했다. 락의 역사에서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중 하나인 에벌리 부라더스는 80년대 후반 이래로 앨범을 발매하지는 않았지만 라이브 공연을 계속하기는 하였다. 50년 대의 가장 뛰어나고 기념비적인 록 & 롤 사운드를 만들어냈던 그들은 흐느끼는듯한 콧소리로 정확하고 세련된 하모니의 창출이었다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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