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die Cochran
2024. 9. 20. 08:54ㆍ팝아티스트
Eddie Cochran 에디 코크란 1938년 10월 3일 미국 Minnesota주에서 출생 1960년 4월 17일 영국 Wiltshire의 Chippenham에서 교통사고로 사망. 장 르 락큰롤 대표곡 Summertime Blues, C'mon Everybody 등. 최근 자료에 의하면 그는 Minnesota에서 자란것으로 되어 있지만, 출생증 명서가 없는 걸로 보아 Oklahoma City에서 태어났을 가능성도 여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미국에서의 빅 히트곡 하나와 영국 차트에서 단 한 번 정상에 오 른 것이 전부였던, 비록 짧은 생을 살다 간 그였지만, 오늘 날 그는 가장 훌 륭했던 락큰롤 아티스트이며 걸출한 리듬 기타리스트로 인정 받고 있다. Cochran은 Chet Atkins에게서도 볼 수 있는 피킹 스타일을 어렸을 적 이미 터득, 만만치 않은 실력을 구사할 수 있었다. 그는 -친인척 관계는 전혀 아 닌- Hank Cochran(1935년 Mississippi, Greenville 출생 / 기타, 보컬)과 듀 오 Cochran Brothers를 결성했다. 그는 이내 록커빌리의 대표적인 기타리스 트가 되었고, Gretsch 6120 기타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으며, 또한 헤 아릴 수 없는 작품들에서 세션 플레이어로 활동했던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 다. Cochran과 그의 친구 Glen Glenn 같은 아티스트들은 50년대 중반의 과도기, rockabilly에서 영감을 받은 컨츄리 뮤직을 하던 시절로부터 탈피, 보다 하 드한 락큰롤 사운드를 추구했다. Ekko 레이블에서 낸 그의 초기 곡들은 발자 취를 남기지도 못하고 사라졌으나, 1956년 영화 ' The Girl Can't Help I'에 서 까메오로 출연해 James Dean을 닮은 외모로 "Twenty Flight Rock"를 부르 던 모습이 부각되어 Liberty 레코드와 계약을 하게 되었다. 별스럽게도, 그의 새로운 소속 레코드사에서는 (그의 음악 스타일과는 다 소 거리가 먼)발라드를 내놓기로 결정했는데, 미국의 차트 20위까지 오른 그 곡의 제목은 "Sittin' In The Balcony"였다. 두 곡의 마이너 히트("Drive In Show" & "Jeannie Jeannie Jeannie")를 낸 그 이듬해 그의 첫 번째 고전(Summertime Blues)이 담긴 음반이 발매되었다. "Summertime Blues(미국에서 8위, 영국에서는 18위까지 오름)"는 지금까지도 많은 아티스트들에 의해 불려지고 있고,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락 음악 중 하나이기도 하다. "보세요, 제 부모님은 제게 그런 말을 하더군요, 아들아, 다음 주 일요일에 차를 쓰고 싶거든 그 전에 돈을 좀 가져와야 할거 다, 라고" 와 같은 노랫말에는, 시대를 초월한 10대들의 삶의 좌절감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담겨 있었고 이것은 당시 사회 분위기와 어우러져 특히 십 대들에게 강하게 어필했다. 반복되는 코러스 -때때로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 지 궁금해해. 하지만 Summertime Bluse 앞에서는 대책이 안 서는 걸-는 미국 10대들의 정서를 완벽하게 장악했다. 'The Who'의 'Live At Leeds' 에 실린 버전은 아마 이 곡의 버전 중 가장 유명할 것이다. 이어지는 해 그는 또 다른 불후의 명곡, "Let's Get Together" 라는 원제 의 "C'mon Everybody"를 선보였는데, 여기에서도 Cochran은 반짝이는 재능으 로 힘든 하루 일과가 끝난 다음 다시 밤 일을 나가기 위해 준비하는 이들의 아픔을 달래주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있다; "자, 오늘 밤 우리 함께 놀 아요, 내 청바지 호주머니에는 돈이 있고 나는 지금이라도 당장 그 돈을 다 써버릴 수가 있거든요. -반복되는 코러스 : 우하, 우리 함께 놀아요". 이 보석같은 곡은 50년대의 락큰롤이 어떻게 해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는가를, 음악적인 영민함과 여전한 단순함으로, 정직하고 지속성이 강한 노랫말로써 보여줄 수 있었다. 1960년 Cochran은 영국 투어에 나섰고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 드러난 즉각 적인 반응은 Larry Parnes와의 영국 전역에 걸친 패키지 투어를 할 수 있도 록 기여했다. 그는 세션으로서 짧은 녹음에 참여하기위해 고국의 California 로 잠시 왔다가, 이내 투어 열기를 확산시키기 위해 영국으로 돌아간다. 이 와중 그는 Wiltshiere의 Chippenham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되는데, 그가 타고 있던 택시(그는 투어 여행에 택시를 이용했다)가 고장을 일으키며 반대 편 차선으로 뛰어들어 충돌 사고를 일으켰던 것이다. 함께 했던, 작곡가이자 그의 여자친구였던 Sharon Sheeley와 동료 스타 Gene Vincent도 함께 타고 있었으나 그들은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고, Cochran만이 병원에 실려온 지 얼 마 안 되어 세상을 버렸다. (Sharon Sheeley는 훗날 Sex Pistols에 의해서도 대히트를 기록하게되는 Cochran의 사후 히트곡 "Something Else"의 곡을 쓰 기도 했었다.) 그의 사후 영국 차트에서 잠깐 동안 정상을 차지했던, 최고의 사랑을 누린 음반의 타이틀은 그의 죽음에 대한 암시가 되기라도 하는 듯한 타이틀의 "Three Steps To Heaven"이었는데, 놀랍게도 미국에서는 차트 진입에 실패했 다. 또 다른 사후 히트곡이자 그의 마지막 고전이기도 한 "Weekend"에는 제어 할 수 없는 또 다른 젊음의 열정과 주말에 대한 기대가 담겨 있다; "주말을 위해서라면 금요일 밤과 그 모든 것들은 옳습니다, 주말 밤이 늦도록 집밖에 서 논다는 것, 아주 멋지지 않나요?" 1963년 Tornados의 전 베이시스트 Heinz는 솔로로 나서 Joe Meek과 함께 Cochran에게 헌정하는 '에디처럼(Just Like Eddie)'의 음반 제작에 착수했다. Heinz는 Cochran에게 영향받은 수많은 아티스트 가운데 한 사 람에 불과했다. 그의 명성은 앨범 속에 실린 목록을 통해서 계속 이어져나갔다. 최근 영국 의 Rockstar Records의 Tony Berrett은 초기 Cochran의 미발표 곡들이 수록 된 많은 데모 테입을 공개했다. 이 진취적인 레이블(Rockstar Records)은 Cochran의 곡들 전체 목록을 공개, 발매, 그의 이름이 영원히 살아있도록 공 헌했는데. 2년이 조금 웃도는 시간 동안 차트에 올라 있을 정도로 Cochran은 커다란 인상을 심어줬고, Buddy Holly가 그런 것 처럼 지속해서 지대한 영향 을 끼친 것으로 인정받았다. Rob Finnis의 치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쓰여진 최근 출판된 매우 훌륭 한 전기 '나를 잊지 말아요(Don't Forget Me)'를 통해 우리는 그의 활동을 재평가해볼 수 있다. 비록 그의 삶은 짧았으나 Chuck Berry와 함께, 소박한 위트로 10대들의 삶 속에 깃들인 즐거움-파티, 음악, 사춘기적 반항-을 축하 하는 곡을 만들었던 훌륭한 싱어송라이터로 사랑 받고 있으며 또한 진보적인 락 음악의 가장 위대한 대표적 인물 중 한 사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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