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odores
2024. 9. 15. 09:54ㆍ팝아티스트
- 소울 발라드의 하모니 '코모도스' 알라바마주에 위치한 터스키기음악학교(Tuskegee Institute 혐회가 운영하는 4년제 학력인전학원)의 동기들로 구성된 6인조 그룹 코모도스는 처음에는 제이스(Jays)라는 이름으로 학교축제 출연을 비롯하여 도시 주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음악적 기량을 닦아 나갔다. 1969년 아틀랜틱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고 싱글 “Keep on Dancing”을 발표하지만 별반응을 얻지 못하자, 1971년 그룹명을 ‘코모도스’로 바꾸고 모타운 레코드사와 계약을 체결했다. 모타운에서의 첫 데뷔싱글 “Zoo”는 소울 리듬에 약간의 비트가 가미된 곡으로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하게 되자 이들은 잭슨화이브의 순회공연에 오프닝밴드로 또한 야간무대의 밴드로 활약을 하면서 초반기의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이들이 1974년 회사측의 요구로 음악성을 하드 훵키스타일로바꿔 밀런 윌리암스 작곡의 대규모악단 디스코 경음악 앨범 을 발표하도부터 이들의 운명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 앨범의 타이틀 곡이 팝싱글챠트 22위에 랭크되었고, 이 앨범은 50만장 이상의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또한 이들의 두번째 앨범 에 수록된 “Slippery When Wet”는 팝챠트 19위, 소울챠트 No.1까지 오르는 기록을 남겼고 이런 곡을 계기로 소울풍이 섞인 펑키하면서도 리듬감 있는 사운드를 주로 구사하게 되었다. 1975 “Sweet Love”를 비롯하여 “Just to Be Close To You”, 1977년 팝챠트 4위까지 오른 “Easy” 등이 있었고, “Brick House”와 같은 디스코 넘버 뿐만아니라 당시 디스코 음악에 싫증을 느낀 팝팬들에게 새로운 활력소가 되어 1978년 당당히 No.1을 기록한 “Three Times A Lady”같은 히트곡을 연이어 발표하기도 했다. 싱글 “Three Times A Lady”는 뒷날 그룹을 상징하는 이지리스닝 계열의 대표곡이 되었는데 라이오넬 리치는 1979년에 “Sail on”과 “Still”을 또다시 히트시키며 그룹의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를 잡았다. 1980년대로 접어들어 “Old Fashion Love”와 “lady(You Bring Me Up)”을 발표하며 댄스뮤직풍으로의 방향전환을 하던 이들은 발라드성의 곡(Oh No)까지 발표하여 음악의 다변화를 꾀하였다. 한편 라이오넬 리치는 케니로저스가 1980년 6주동안 팜챠트 정상의 자리를 차지한 케니로저스의 대표곡 “Lady”의 작곡으로 외도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여 1981년 6월에는 케니로저스와 함께 앨범 를 발표했다. 이 앨범에서 “I Don’t Need You”가 대히트하여 작곡자와 싱어로서의 명성을 얻게 된 그는 이어서 브룩실즈 주연의 영화 “Endless Love”를 다이애나 로스와 함께 듀엣으로 불러 팝챠트 정상에 9주동안이나 자리하기도 하였다. 높아진 그의 명성으로 그는 솔로선언으로 독자적인 노선을 가게되었다. 라이오넬 리치의 독립선언 이후에 코모도스는 침체기를 맞았고, 1986년 앨범 발표 이후 별다른 활동이 없게 되어 더 이상은 그들의 앨범을 볼 수가 없게 되었지만 코모도스의 활동기간 22장의 골든디스크,11장의 플래티눔 디스크를 획득하였고 지금까지 5천만장이 넘는 음반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다. |
빠른 답장을 하시려면 여기를 클릭해주세요.
'팝아티스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Conway Twitty (8) | 2024.09.15 |
---|---|
Connie Francis (0) | 2024.09.15 |
Chuck Berry (6) | 2024.09.15 |
Chris Isaak (1) | 2024.09.15 |
Chad & Jeremy (1) | 2024.0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