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ita Bryant 팝아티스트 2012-08-20

2024. 9. 11. 16:39팝아티스트

 
 
“Anita Bryant”

1940년 3월 25일 오클라호마주의 Barnsdale에서 태어난 ‘아니타 브라이언트’의
음악적 행로는 일찌기 6살이 되던 해에 시작을 하게 되는데 이 때에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마련된 무대에 서면서 부터이다. 그녀는 9살이 되어서 처음으로 탤런트 쇼에서
우승을 하였고, 이 우승은 그녀로 하여금 Arthur Godfrey의 텔레비젼 쇼에서 조명을
받게 하였다.

여기서부터 음악생활은 꽃을 피우게 되고 오클라호마에서는 “빨간 깃털의 소녀”
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으며 지역텔레비젼과 라디오 방송에 출연을 하면서 많은
커리어를 쌓게 된다.
1958년에는 본인의 앨범으로 처음 프로 음악세계에 데뷔를 하게 되면서 비록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Anita Bryant’의 이름과 스타일은 주변으로 하여금 그녀를
주목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녀의 성공은 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초까지에 있는데
1958년에는 미스 오클라호마의 왕관을 쓰기도 한다.
1959년 “Till There Was You”는 그녀에게 처음으로 챠트에서 상위를 차지하는
히트를 내고, 후에 칼튼(Carlton) 음반사에서 몇 개의 앨범을 발표하게 된다.
뒤에 마리 오스몬드는 “In My Little Corner of the World”을 싱글로 발표해
히트하고 1960년에는 버트 캠퍼트의 “Wonderland of Night”으로 챠트 상위에
진입한다.

1962년에는 콜럼비아 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3장의 앨범에 대해서 공동으로
프로듀싱 하게 되는데 ‘Velvet Mood’, ‘Mine Eyes Have Seen the Glory’
그리고 70년에 발매된 ‘Abide With Me’가 그것이다.
60년대에서 70년대로 들어서면서 그녀는 팝송보다는
종교적인 곡들에 더 관심을 두게 되고 ‘Myrrh and Wood’라는 종교적인 음반사와
몇 몇 앨범을 발표한다.

80년대와 90년대에 이르러 다시금 흥미를 끌게 되는 것은 비록 그녀는 아직도 노래와
공연을 즐기고 있고 게이 해방에 대항하는 세력의 옹호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다수의 공연을 Branson, MO에 있는 ‘Anita Bryant Theater’에서 시즌마다
하고 있다. 미스 오클라호마와 팝 싱어로서 그리고 복음성가 가수로서 또한
여성대변인으로서의 ‘Anita Bryant’...
그녀는 스스로 음악가임을 또한 동시에 깨어있는 사회의 활동가임을 증명하고 있다.

'팝아티스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Andrea Bocell  (0) 2024.09.12
Anastacia  (0) 2024.09.12
Anita Kerr  (0) 2024.09.11
Antonio Carlos Jobim  (6) 2024.09.11
Animals 팝아티스트 2012-08-20  (4) 2024.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