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10. 08:27ㆍ꿈속의까미노순례길
함박웃음방/자유게시판
2018-06-30 19:48:34
론세스바예스는,
스페인의 오래된 바닥의 포장 돌과 건물들을 둘러싸고 있는 백 살은 넘은 듯한 웅장한 나무 하나하나가 오랜 시간 이 순례 길을 지나간 사람들의 증인이 되어줍니다. 그리고 이 길과 그 길을 지난 사람들이 현재까지 유럽 전역에 퍼져있는 전설의 기원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 오래된 건물들은 탐욕 때문에 들어온 침략자의 군대에게나, 믿음으로 길을 찾아온 순례자들 모두를 위한 휴식 장소였습니다. 또한 피레네 산맥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자연 환경은 이 역사적인 장소에 또 다른 특별한 매력을 선사합니다.
겨울에는 흰 눈으로 덮여 있는 피레네의 산맥의 봉우리 사이로 언뜻 보이는 초록색 초원이 가축들에게 먹을 양식을 제공한다면, 여러 건축물과 시설은 프랑스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영토로 발을 들여 놓은 순례자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순례자들을 편안히 쉬게 해주는 몇 개의 아름다운 성당과 샤를마뉴, 롤랑, 론세스바예스 전투와 관련된 역사가 있는 마을로 이곳은 역사, 예술, 문화, 전설이 모두 갖춰져 순례자라면 반드시 보아야 할 곳입니다.
샤를마뉴와 롤랑의 전설
론세스바예스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서사시 ‘롤랑의 노래'(La Chancon de Roland)에서 나온 샤를마뉴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롤랑은 프랑크 왕국의 황제 샤를마뉴의 조카이자 12명의 성기사 중에서 가장 용맹하고 뛰어난 기사였습니다. 샤를마뉴는 그를 너무나 사랑해서 자신이 아끼는 보검 두란다르트(Durandart)를 하사하였는데 이 검은 요정들이 만든 검으로 산을 쪼갤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졌다고 합니다. 778년 8월 15일 샤를마뉴와 그의 군대는 이슬람교도에게 사라고사(Zaragoza)를 탈환하려는 전투에서 패하고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피레네 산맥을 넘던 중 후방을 맡고 있던 롤랑의 부대가 롱스포에서 사라고사의 마르실리오 왕으로부터 습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프랑크 왕국의 군대에는 악명 높은 배신자인 가늘롱(Ganelón)이 있었는데, 그는 롤랑의 의붓아버지로 롤랑이 기사로 성공하여 샤를마뉴의 오른팔이 된 것을 질투했다고 합니다.
불시에 기습을 받은 롤랑의 군대는 위험에 처하게 되었으나 자존심과 책임감이 강한 롤랑은 부하인 올리비에(Oliveros)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왕의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전설의 뿔 나팔 올리판테(Olifante)를 불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자신의 주위에 60여명의 부하들만이 남게 되자 올리판테를 불어 도움을 청했다고 합니다. 이때 샤를마뉴는 가늘롱과 함께 체스를 두고 있었는데, 올리판테 소리를 들은 가늘롱은 이미 사라고사의 왕 마르실리오와 결탁하여 롤랑을 처치하려는 자신의 계획이 성공했음을 알게 됩니다. 롤랑은 죽는 순간 성 베드로의 치아가 포함된 자신의 칼 두란다르트를 파괴하기 위해서 커다란 바위에 내리쳤는데 바위만 갈라지고 칼은 멀쩡했다고 합니다.
이 전투에서 롤랑과 프랑크족의 열두 명의 성기사, 용감한 부하 올리비에와 튀르팽(Turpín) 주교까지 전멸을 당했다고 전해집니다. 뒤늦게 전투에 패한 것을 알게 된 샤를마뉴는 후방 부대가 잠복했던 계곡까지 돌아가 끔찍한 대학살을 보고, 죽은 병사들을 위한 카톨릭식 무덤을 마련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모두 옷을 벗겨서 함께 매장했습니다. 그러나 적군과 아군을 섞어서 매장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샤를마뉴는 그들을 구분할 수 있는 증표를 달라고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조금 뒤 병사들이 그에게 달려와서 입에서 장미가 피어나는 시체가 있다고 전했다고 합니다. 이에 샤를마뉴는 이들을 분리해서 그리스도교 무덤에 매장했습니다. 이것이 로시스 바예(Rosis Valle; 장미의 계곡) 즉 론세스바예스라는 지명의 기원입니다.
샤를마뉴는 적을 쫓아가 전멸시켰고 사라고사를 정복했으며 가늘롱과 공모했던 왕인 마르실리오를 죽였습니다. 프랑스에 숨어있던 가늘롱은 신의 심판을 받고 네 토막으로 잘려 사형 당했다고 합니다. 샤를마뉴는 롤랑과 그의 부하 올리비에 그리고 튀르팽 주교의 유해를 프랑스로 가져갔다고 전해집니다. 샤를마뉴는 당시 이슬람교도들에게 당황스러운 패배를 당하고 나서 시사 골짜기로 후퇴해 흐느껴 울었다고 합니다. 이곳엔 아직도 그의 눈물로 젖은 바위가 있다고 전해집니다. 이때 하늘에서 천사가 나타나 그를 위로하며 젊은 여자들을 불러 모으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이에 샤를마뉴는 53,066명의 아가씨들을 불러 모은 후 그들을 기사들처럼 갑옷을 입히고 무장시켰다고 합니다. 이슬람군들은 이들을 샤를마뉴의 대군이라고 생각하여 두려움에 떨며 항복하고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후 젊은 여자들이 발까를로스로 돌아와서 창을 바닥에 꽂아놓고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 아침 일어나보니 기적이 일어나 땅에 꽂아놓은 창이 꽃이 핀 나무로 변해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이곳을 ‘창의 숲’ (Bosque de Las Lanzas)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집니다.
론세스바예스는 롤랑의 노래와 관련된 것으로 넘쳐난다.
샤를마뉴가 자신의 군대가 공격 당하는지도 모르고 체스를 두었을 때 사용했다는 아름다운 체스판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샤를마뉴의 방이라고 알려져 있는 성령의 성당에는 롤랑이 죽어가며 자신의 칼을 부러뜨리려고 애쓰던 장소가 있고, 프랑크의 열두 기사와 전투에서 죽은 영웅들이 매장된 장소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바녜따 언덕에는 롤랑이 도움을 청하며 뿔나팔 올리판테를 불었던 거대한 바위가 있습니다. 골짜기 반대편의 발까를로스는 샤를마뉴가 체스를 두다가 도움을 구하는 뿔나팔 소리를 들었던 장소라고 합니다. 그리고 론세스바예스에서 빰쁠로나로 가는 길 위, 린소아인(Linzoáin)이 끝나갈 무렵엔 롤랑과 그의 아내와 아들의 발걸음이 표시되었다는 거대한 돌이 보존돼 있습니다.
사도 야고보와 순례 기사의 전설
시사 골짜기 근처에는 야고보 성인과 관련된 기적이 처음으로 일어난 장소가 있습니다. 서른 명의 기사가 함께 순례를 떠났는데, 한 명의 기사만 빼고 나머지 기사들은 어려움이 닥쳐도 서로 도와주고 결코 포기하지 말자는 맹세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순례를 하는 도중 한 기사다 병에 걸렸고 맹세한 기사들은 모두 병자를 버리고 떠나고 오히려 맹세를 하지 않은 기사만이 남아서 병든 동료를 돌봐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그 병든 기사는 곧 시사 골짜기에서 죽어버리고 그를 돌봐주던 기사는 동료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과 두려움에 떨며 울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처음 보는 어떤 사람이 말을 타고 다가와 두 순례 기사를 자신의 말에 태워서 단 하룻밤 만에 그들을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로 데리고 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착한 기사는 산띠아고에 도착하고 나서야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사도 야고보인지 알아보았다고 합니다. 이에 사도 야고보는 죽은 순례 기사에게 무덤을 마련해주었고 살아남은 기사에게는 돌아가는 길에 거짓 맹세를 했던 옛 동료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순례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한다고 말하라고 전해주었다고 합니다.
이바녜따 늑대의 전설
중세 산띠아고 가는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모르는 사람이 함께 걸어가자고 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강도들이 다른 순례자들을 속이기 위해서 순례자의 복장으로 변장하고 동행하기를 청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도둑들은 숲 속에 이르면 동행하던 된 순진한 순례자들을 폭행하고 옷을 다 벗긴 다음 상처 입은 순례자를 숲 속에 버려두고 도망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순례자들은 순례길을 걸으며 야고보 성인에게 기도하길 멈추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느 날에도 이처럼 순진한 순례자와 강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같은 순례자인줄 알고 동행하던 순례자는 늑대 무리들이 주변을 어슬렁거리자 공포에 떨며 싼띠아고 성인에게 더욱 열심히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독 눈에서 이상한 광채를 내뿜는 늑대 한 마리가 순례자로 변장한 강도를 공격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가까스로 늑대를 피해 달아난 순례자와 강도는 목동들이 살던 오두막을 발견하고 숨었으나, 한밤중에 다시 눈에서 광채를 내뿜는 늑대가 이끄는 성난 늑대 무리가 오두막을 공격했다고 합니다. 다음날 강도는 늑대에게 발기발기 찢긴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로 백 년에 한 번씩 사건이 일어난 날에는 까미노의 모든 늑대들이 저녁부터 해가 뜰 때까지 울부짖는다고 전해집니다.
거인 왕 산초의 전설
론세스바예스에는 산초 7세의 무덤이 있습니다. 무덤의 크기는 보통이지만 2미터 50센티미터에 이르는 조각상이 있습니다. 산초 7세의 별명이 엘 푸에르떼(El Fuerte) 즉 ‘강건한 왕’이기 때문일 것 입니다. 또한 산초 7세가 라스 나바스 데 똘로사 전투(La batalla de las Navas de Tolosa)에서 전리품으로 얻은 사슬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사슬은 오늘날 나바라 주의 문장이 되었는데 원래 이슬람 에미르 미라마몰린(Emir Miramamolín)의 막사를 보호하던 사슬이었습니다. 론세스바예스의 성모 발견 전설에 따르면 10세기경 목동 몇 명이 가축을 돌보면서 밤을 보내고 있던 중 뿔이 환하게 빛나는 사슴이 그들 앞에 서 있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호기심이 생긴 목동들은 어느 날 밤, 두려움을 떨치고 사슴을 뒤쫓아 가기로 결심하고 사슴을 따라갔다. 그러자 사슴은 어느 한 곳에서 멈추더니 발로 땅을 파기 시작했고 마치 그곳을 파라는 듯한 표정으로 목동들을 쳐다보고 나서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합니다. 목동들이 모두 함께 그 땅을 파기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땅 속에 돌로 만든 아치 아래 모셔있는 성모 마리아 상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후 이곳에 성당이 세워졌고 발견된 성모상을 현재 건물 안에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론세스바예스 둘러보기
1. 산따 마리아 왕립 성당 (Real Colegiata de Santa María)
고딕 양식의 이 성당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고딕 양식으로 건축된 초기의 건물입니다. 이곳에는 아름다운 고딕식 성모 마리아 조각이 보관돼 있습니다.
14세기에 만들어진 아름다운 성직자 회의실엔 강건왕 산초 7세의 고딕 양식 무덤이 있고 라스 나바스 데 똘로사(Las Navas de Tolosa)의 전투에서 얻은 전리품 일부도 있습니다.
회랑은 17세기 양식입니다. 현재의 성당 건물은 원래의 건물 자리에 13세기에 재건축된 것 입니다. 원래의 건물은 아라곤과 나바라의 왕인 전투왕 알폰소 1세의 소망에 따라 빰쁠로나의 대주교 돈 산초 데 라로사의 재임기에 지은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작품들은 산초 엘 푸에르떼의 건축가들이 가져왔고 산초 왕의 후계자들이 마무리했습니다.
아름다운 고딕 회랑과 회의실, 다른 부속 건물 등이 있으나 세월의 무게 때문에 부분적으로 무너졌다. 1445년에 화재가 일어나 성당 건물이 훼손되었으며 1600년에는 지붕에 내려앉은 눈의 무게 때문에 남쪽 회랑과 성전의 지하층이 무너졌다. 따라서 1615년 건축가 돈 후안 데 아라네기에 의해 재건되었습니다.
2. 왕실 부속 성당 산따 마리아의 회랑 (Claustro de Real Colegiata de Santa María)
17세기에 지어진 회랑은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회랑이 1600년에 눈의 무게 때문에 무너지고 나서 다시 지은 것 입니다. 버팀벽이 있는 견고한 아치는 붕괴 이후 보강을 위해 설치되었습니다. 회랑의 동쪽 복도엔 방어용으로 지은 수수한 산 마르띤 탑이 솟아 있습니다. 탑 내부엔 산초 엘 푸에르떼 왕의 영묘와 13세기에 만들어진 왕의 와상이 있습니다.
3. 성령의 소성당 (Capilla del Sancti Spiritus)
샤를마뉴의 헛간(Silo de Carlomagno) 으로도 불리는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로 산따 마리아 왕립 성당 남쪽, 산띠아고 소성당 옆에 있는 이 건물은 론세스바예스에서 남아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 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샤를마뉴의 조카인 롤랑이 두란다르떼(Durandarte)로 내려친 바위 위에 지었다고 합니다. 17세기 초반에 반원 아치의 현관문이 추가되었고 론세스바예스의 전투를 묘사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으나 현재는 소실되었습니다.
4. 성당 박물관 (Museo de la Colegiata)
론세스바예스 박물관으로도 불리는 꼴레히아따 박물관에는 꼴레히아따에서 오랜 세월 동안 모은 예술적인 보물들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여러 시대의 고서, 유골함, 성합, 주교장, 궤, 조각, 회화 수집품들이 있습니다. 특히 샤를마뉴의 체스 (Ajedrez de Carlomagno)라고 불리는 금, 은, 칠보로 만든 고딕식 유골함이있는데 전설적인 샤를마뉴의 체스판은 은과 칠보로 제작되었으며 화려한 색에 반투명한 고딕식 유물입니다. 실제 체스판과는 달리 63칸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미라마몰린(Miramamolín)이라고 부르는 나바라 주의 문장 등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금은 세공, 자수 장식, 패널화, 캔버스화, 동판화, 목조 조각, 칠보 등 13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회화 작품으로는 르네상스의 거장 루이스 모랄레스(Luis Morales)가 그린 성 가족 (La Sagrada Familia)이 있습니다. 또한 12세기에 은과 보석 장식으로 장정된 복음서도 매우 아름다운데, 나바라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미사용 복음서이기도 합니다.
5. 산 아구스띤 소성당 Capilla San Agustín
14세기에 비구리아 수사(Prior Viguria)가 만든 이 소성당에는 나무 못으로 조여진 높은 궁륭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 수사의 비문은 성당 바닥의 격자에서 볼 수 있습니다. 1154년에 태어나 1234년에 사망한 산초 엘 푸에르떼의 영묘가 이곳에 자리 잡았습니다. 꼴레히아따에 있던 산초 왕의 중세 묘지는 1622년에 파괴되었으나 왕의 와상은 왕의 대퇴부가 60센티미터라고 측정하여 기록한 필사본 덕택에 복구되었습니다. 이 조각의 다리는 십자군, 기사단 군인의 묘지에서와 같이 서로 포개져 있습니다.
산초 왕이 교회가 정식으로 십자군 전쟁으로 인정했던 라스 나바스 데 똘로사 전투에 참가했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또한 이 소성당엔 왕이 위의 전투에서 전리품으로 가져온 사슬이 보관되어 있으며 사슬은 나바라의 문장을 장식하는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6. 산 살바도르 데 이바녜따 소성당 (Capilla San Salvador de Ibañeta)
11세기 수도원 터 위에 세워진 현대적 소성당으로 이곳에서 롤랑이 전사했었다고 하며 안개 낀 날에 순례자를 인도하는 유명한 론세스바예스의 종을 롤랑이 못 박았던 곳이라고 합니다. 현재의 소성당은 1965년에 완공되었으며 론세스바예스로 향하는 순례자들이 쉬어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산 살바도르 데 이바녜따 소성당 옆에는 순례자들이 놓고 가는 단순하게 생긴 십자가들이 있습니다. 현대의 순례자들은 이런 식으로 순례길 고유의 풍습을 자신들에게 적용했습니다. 1127년 산띠아고 순례길에 관한 최초의 가이드북을 쓴 아이메릭 피카우드는 놀라며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순례자들은 이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산띠아고를 향해 기도합니다. 각자 예수님의 십자가 모양대로 십자가에 못을 박는다. 이곳에는 천 개도 넘는 십자가가 있는데 이곳에서 순례 중 산띠아고 성인께 처음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7. 롤랑의 거석 (Monolito de Roldán) (Capilla San Agustín)
산 살바도르 소성당에서 가까운 곳에 론세스바예스에서 일어났던 전투를 기억하게 해주는 돌로 된 유물이 있습니다. 정확한 위치는 어디인지 알 수 없지만 샤를마뉴가 롤랑이 얼굴을 스페인으로 향한 채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 곳이 이바녜따 정상 혹은 산 살바도르 소성당 터였다고 합니다. 또한 빈사 상태의 롤랑이 샤를마뉴에게 알리기 위해 뿔 피리를 불게 했다는 곳이기도 합니다.
나바라 (NAVARA) 지역에 대해서..
나바라만큼 풍성한 기후, 경관, 문화를 지니고 다채로운 역사와 전통이 가득한 곳은 없을 것 입니다. 자동차를 타고 두 시간 정도만 달리면 피레네 계곡의 습기와 치스뚜(바스크 지방의 구멍 세 개짜리 피리) 소리가 들리고, 소르시꼬(바스크 지방의 민요)가 울려 퍼지는 바스크 지역부터 가죽피리 소리에 맞춰 남녀노소가 춤을 추는 중부 나바라 지방과 호따 춤의 본고장인 에브로 강 유역을 모두 지날 수 있습니다. 나바라는 9세기부터 16세기까지 독립 왕국이었으므로 건축학적으로 중요한 기념물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여러 순례길이 나바라를 지나면서 한 개의 길로 합쳐집니다. 이러한 환경 때문에 오래된 왕국의 아름다운 예술적 유물들도 많습니다.
이 중 론세스바예스의 왕실 부속 성당, 나바라 박물관, 빰쁠로나 대성당, 올리떼 성, 나바라 데 에스떼야 왕궁, 레이레 수도원, 이라체 수도원, 이란수 수도원, 뿌엔떼 라 레이나 다리 등이 있습니다. 나바라는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거나 시골 관광, 생태 관광을 하기에 좋은 곳이기도 합니다. 피레네 지역의 높은 산과 왕실 소유림, 이라띠의 숲 같은 울창한 숲, 바르데나 레알레스의 건조한 지역, 에브로 강 연안의 과수원, 띠에라 에스떼야 산과 중부 나바라의 곡창지대 등 나바라에는 압축된 공간에 다양한 경치와 자연 서식지가 있습니다.
또한 나바라는 아슬아슬한 스포츠를 즐기기에도 제격입니다.
등산, 암벽 등반을 할 수 있고 예사, 아요스 호수에서 수중 스포츠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또는 전통적인 스포츠를 즐길 장소도 많습니다.
축제에 관심이 있다면 란츠, 이뚜렌, 수비에따 등에서 열리는 지방 카니발 같은 오래된 축제를 즐기면 됩니다.
그리고 빰쁠로나에선 거리에서 열리는 엔시에로와 함께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산 페르민 축제(Fiestas de San Fermin)가 열립니다. 전통적인 카니발과 세계적인 축제의 특징을 모두 갖춘 행사로는 ‘마녀들의 밤’(Noche de las Brujas) 같은 축제가 있습니다. 나바라의 이러한 장점들은 훌륭한 도로망으로 인해 더욱 빛을 발합니다. 적절한 대중교통과 양질의 호텔, 캠핑장, 호스텔, 전원주택도 갖춰져 있습니다. 게다가 D.O. Navara 같은 이 지방 고유의 와인, 치즈, 고기, 산악 지방에서 만든 소시지, 칸타브리아해 연안에서 잡히는 생선, 뚜델라의 알카초파와 삐끼요의 고추 같은 에브로 강 연안의 야채, 과자류, 그리고 유명한 파차란(Pacharán; 아니스와 자두로 만든 리큐르) 때문에 나바라 식도락 순례는 훌륭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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