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10. 09:04ㆍ꿈속의까미노순례길
내가 그토록 바라던 산티아고로 가는길의 첫관문인 생쟝 (St. Jean Pied de Port) 에서의 새아침이 밝았다
프랑스 파리에서의 일주일 동안의 개인일정을 보내고 내가 있었던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몽파르나스에서
TGV를 타고 바욘(Bayonne)에서 내리면
기차역에서 연결된곳의 버스를 타고 1시간 20분 거리의 생쟝에 도착하게 된다
바욘에서 버스에 동승하게 되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열망하는 나와 같은 일행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게 되고
서로에게 각별한 친근감을 느끼며 말없는 눈인사를 나누게 된다
화창한 봄날의 나른함이 식어가는 오후 생쟝에 도착한 사람들은 망서림도 없이 능숙한 솜씨로
1628년에 건설되었다는 St. Jean 의 오래된 시가지로 들어서는 계단위의 작은문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노란색의 화살표와 가리비의 이정표를 보고 물만난 고기처럼 거침없이 찾아드는 사람들의 발길은
좁은 골목길에 자립잡은 아기자기하고 고풍스런 예쁜 집들 앞에서 감탄을 자아내며 잠시 멈추어지기도 한다
그순간은 마치 잠을 자다가 꿈을 꾸는듯 다른 세상에 온듯한 신비로운 감흥에 사로잡히기도 하는것이다
집집마다 다른 모양의 정성으로 꾸며진 오래된 건물의 대문앞과 창틀에는 예쁜 꽃들이 줄지어 피어있고
북쪽으로 이어지는 골목끝에 잡은 스페인 문 (La Porte d'Espagne)은 피레네의 급경사가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지만
로마시대로 부터 스페인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다고 한다
나폴레옹의명령으로 스페인을 침략하기 위하여 이 까미노 길을 통과하기도 하였으며
1714년 프랑스 공주 이자벨 드 파르네시요(Isabel de Farnesio)가 지나가기 편하게
확장되기도 하였다네요
지금도 순례자들이 스페인의 나바라로 들어가는 가장 선호하는 관문역활을 하고 있는
이문은 보는 이들의 가슴속에서 오래도록 아름답게 기억될것이다
까미노 순례자들의 신분증명서가 되는 CREDENCIAL을 발급해주는 사무실에서
배정받은 나의 숙소가 이 스페인의 문 바로 가까이 있는 북쪽이어서
어제 늦은 오후에 산책하면서 고색창연한 이곳의 말없는 정취에 흠뻑 매몰되기도 했었다...
어릴적 읽었던 수없이 많은 책들속에서 지략과 용맹스럼움이 뛰어난 영웅 나폴레옹이
스페인 원정길에 1.430 m의 눈덮인 피레네 산맥의 고지에서
지쳐쓰러지고 힘들어하는 병사들을 독려하며
불굴의 의지로 피레네 산맥을 넘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들은 아직도 내기억의 저편에서
잊지못할 추억으로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까 그것이 오늘 내가 이곳에 와 있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꿈에 그리던 Saint Jean Piet Port의 이 아름다운 관문앞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좌절을 맛보았던 어제의 악몽은
함차고 활기차게 출발해야할 생쟝의 이 아침을 어둡게 하는 장애물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두려워할 내가 아니며
죽고 사는것은 운명이라는 각오가 나를 새롭게 하고 나의 등을 떠밀고 있었다
작은 스마폰 알람소리에 눈을 뜬것은 아침 6시
어둠속에서 소리없이 기척없이 기상하여 남을 방해하지 않고 화장실 다녀오고
어제밤 미리 챙겨두었던 배낭을 메고 식당으로 향했다
미리 지불된 아침식사의 메뉴는 빵과 쨈 그리고 커피 한잔으로 간단하게 끝내고
밖으로 나왔을때는 어제의 맑은 하늘은 간데가 없어지고 어두운 하늘에서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가랑비가 쉬임없이 내릴것이라는 암울한 날씨에 놀란 사람들이 허둥거리면서 발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800km의 산티아고길을 30일 동안 끝내겠다는 각오속에 예정에 없었던 무거운 배낭을 매고 30일 프로그램속에서
가장 힘들다는 26 km의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한다는것이 내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45일간의 프랑스와 스페인의 나의 여행일정에는 짧은 시간에 너무나 많은것을 얻어가겠다는 나의 욕심이 화근이었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 여행의 첫째가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만을 살려서 모든것을 계획하였다면 큰실수가 되지 않았을것이다
30일간의 까미노 데 산티아고 길 예정속에는 여행의 앞과 뒤로 남은 15일간의 여행을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활용하려고
프랑스와 스페인의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 방을 예약하고 비행기표를 사고 유로패스까지 예약하였던
나름대로의 나의 여행계획은 일단은 프랑스에서의 일주일만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 상태인것이다
이제 대망의 생쟝(St. Jean Pied de Port)에 입성한 첫날 부터
스마트폰의 화면이 갑자기 깜깜해지면서 작동을 멈춰버리는 괴기스런운 절망앞 서게 되었던것이다
그때가 바로 여행자 증명서 발급받은 직후에 "스페인의 문"앞에서 그아름다운 전경을 사진에 담고 있을때 였던것이다
이스마트폰은 2015년 5월 북유럽 여행가는날 아침에
전날 이동통신사에 들려서 업그레이드까지 받아온 상태에서
전기가 들어오지않는 기상천외한 작동멈춤으로 여행을 포기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만들었었다
스마트폰 매장이 없는 인천공항에서
무거운 가방을 끌고 1.2.3 층을 수없이 오르내리면서 그곳의 근무직원들을 불러세우고 난리법석을 떨었고
아무도 속시원한 대답을 못하고 방법을 몰라했었는데 어떤 공항에 근무하는 남자 직원이
1층의 맨구석쪽에 있는 합동이동통신사에 가면 스마트폰을 살수도 있을것이라는 구원의 손길을 보내주었었다
나는 생각할 여유도 없이 그날
공항의 합동이동통신사 수리점에서 지금의 이마트폰을 구입했었던것인데 오늘 이자리에서
다시한번 더 스마트폰의 사망진단서를 받게 된다면
까미노 데 산티아고의 입구인 이곳에서 여행을 끝내야하는 절망앞에 서게된것이다
나는 여행 전날 꿈속에서 처럼 까마득한 절벽위에 무거운 배낭을 메고 산들바람에도 몸이 흔들리는
절망의 낭떠러지에 서있게 되었던것이다
어제 피레네 산맥의 관문인 이곳 생쟝 피에트 포트에 도착했을때는 비가 오지 않았다
순례자 여권 Credencial 을 발급해주는 골목에서 기쁨에 들떠있었던 사람들의 표정은 경직되고
시작부터 비를 피하기위해 판초를 꺼내입으면서 사람들의 발걸음이 허둥지둥 빨라지는것을 바라보면서
사람이 위험에 처해질때에는
누군가 동반자가 있는것이 훨씬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사람인자가 작대기 두개가 서로 기대고 서있는것 처럼 만들어진것이 아니겠는가 ?
숙소에서 식당에서 서로 다정한 눈길을 주고 받을수 있었던 사람들은
날씨 때문에 굳은 표정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끼리끼리 갈곳을 향하여 달려가고 사라져가버렸다
혼자라는것을 절감하게되는
이 순간에도 내가 오늘 풀어가야할 숙제가 납덩이처럼 무겁다는 것을 자인하지 않을수 없었다
나역시 그칠것 같지 않은 비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색깔의 판초를 꺼내어 입고
무거운 가방의 벨트를 어깨와 가슴에 허리에 고정시키고
다시는 돌아올수없을지도 모르는 스페인의 문 ( La Porte d'Espagne) 을 굳은 각오로 들어서고 있었다...
스마트폰 정지사건은 나를 한순간 지옥으로 끌고 갔었지만
나의 여행자 순례여권 Credencial을 만들어 주었던 남자직원의 도움을 받아서 스마트폰 매장이 전혀 없는
그곳의 시내한곳에 위치한 스마트폰 엔지니어의 가게를 찾아가서 어렵게 스마트폰이 다시 작동하는 은혜로운 도움을 받았었다
스마트폰의 갑작스러운 멈춤상태는 나를 어이없는 절망상태에 빠뜨리기도 했었지만
그것을 해결하고 난 다음에
그것보다 더 무거운 중압감으로 나를 짓누르는 문제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나의 가방의 무게 문제였었다
나는 서울에서 올때부터 아이들의 성화도 있었지만 생쟝에서만은 까미노에서 제공하는 "동키서비스"을 사용하기로 예정하고 있었다
짐을, 무거운 배낭을 다음 목적지까지 5.00 EUR로 배달해주는 Taxi 서비스를 "동키서비스"라고 하는것이다
사실 순례길을 걷는다는 것은 편안함을 찾아서 떠나는 놀이 여행이 아닌것이다
최소한의 자기 소지품을 챙겨가지고 다니면서 온갖 불편함을 인내하는
온몸으로 드리는 고행의 기도가 까미노의 진실한 순례자의 자세가 되는것이다
아아 내가 한때 사모하고 목숨을 바쳐 사랑했던 그분께서
그분의 곁을 떠나 냉담하며 제멋대로 살아가는 나를 벌하시는것일까...
Credencial Office 에서 상담할때도 나는 분명히 동키서비스를 쓰겠다고 했었다
그남자직원은 성실하고 신심 깊으신 신부님같으셨는데 왜 동키서비스를 쓸려고 하는가 물었었다
그래서 최근의 무릎의 아픈 증상도 걱정되지만
피레네 산맥의 가장 길고 험한 코스 때문에 이곳에서만은 동키서비스를쓰고 싶다고 말했었다
정 그러하다면 내가 배정받은 숙소(Albergue)의 주인(Hostelier)과 상의하면 될것이라고 했었다
보통 Albergue 주인장들이 그일을 취급하는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동키서비스"를 취급하는곳이 한곳에 정해져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여자 주인장이 그곳에 전화를 걸었을때
전화가 되지 않았고
다른곳에 전화를 해보니까 그곳은 오늘 문을 열지 않았다는것이다
아침도 아니고 늦은 오후 시간인 그때에 문을 열지 않았다는것은 가슴이 내려앉는 절망감을 안겨주는 느낌이기도 하였다
허지만 그 여자 주인장은 나보고 조금만 그다려 보자면서 희망적인 말을 하기를 멈추지 않았었지만
내마음은 왠지 어둡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었다
그렇다고 문을 열지 않고 소식이 두절된 "동키서비스"를 더이상 어찌할수가 없는 입장이라서 밖으로 나와서
한눈에 바라보아도 평생동안 기억속에 담겨있을것 같았던 기이하고 독특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스페인의문을 사진찍으면서 조금은 기분이 좋아 지는듯 하였는데
갑자기 스마트폰의 화면이 시꺼멓게 변색되면서 나중에는 작동이 스톱되었던것이다
그때의 당혹함이란... 그절망감이란....어찌 할바를 모르고
스마트폰을 충전기에 꼽아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충전기가 고장인가하고 전기에 꽂아보면 아무 이상이 없이 불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문제를 해결해줄수 있는 조력자도 협조자도 없는 상태에서
다행히도 오후 4시가 넘었는데도 아직도 Credencial Office에는 사람들이 근무중이었다
그래서 그곳으로 가서 나의 Credencial을 발급해준 남자분앞에서 기달렸다
아직도 그곳에 도착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직무수행이 한참이었기 때문에
어찌하지 못하고 기달릴수밖에 없었는데
그분은 고맙게도 그러한 나에게 무슨 할말이 있는가라고 해서
다급해진 나의 입장을 말하고
스마트폰을 교체해야하는 일이 발생한것 같은데 도움을 줄수가 없냐고 했었다
그분은 스마트폰의 교체는 어렵다
이곳에는 스마트폰 상점이 없기 때문에 도시로 나가야 한다는것이다
그리고 그곳의 시내에 있는 가게 주소를 적어주면서 이곳을 찾아가서 부탁해보라는것이었다
스마트폰 매점은 아니지만 스마트폰의 엔지니어가 운영하는 일종의 스마트폰 서비스센터였던것이다
그곳의 일반주민들도 그가게를 아는사람이 없었다
이곳 저곳 헤메고 물어보다가 나중에는 우체국 같은 관공서에 들어가서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시내 한폭판을 가로 질러서 한참을 가야하는곳에 가면
커다란 수퍼마켓이 있고 그옆에 그가게가 있을것이라고 했다
내가 그가게에 도착했을때에는 50대의 가게 주인과 여성고객인가 열심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나의 사정을 이야기 하고 이것을 고칠수가 있는가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남자분도 나처럼 나의 스마트폰에다가 충전기를 꽂아보고 뺏다가 꼽기를
몇번씩 되풀이하는 가운데 갑자기 한순간에 불이 반짝하고 들어 왔던것이다
그 한순간이 나를 살려낸 순간이어서 나는 기뻐서 숨이 멈출것 같았었다 ~~~ !
그분은 나를 보고 30분후에 다시오면 이것이 쓸수있는가 없는가를 판별해주겠다는 것이다
나는 그가 상혼에 물든 약아빠진 장사꾼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호들갑을 떨면서 스마트폰을 살수없는가
이것을 다른것으로 교체할수없는가 하는 등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물건을 팔기위해서
쓸수있는 물건도 쓸수없다고 할 사람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기 때문인것이다
마음속으로 무척 걱정이되었는데 다행히도 좋은분을 만났던 것이다
그래서 30분의 시간을 소비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와서
그옆에 있는 수퍼마켓에 가서 내일 산행에 먹을 음식을 샀다
그리고 그분에게 드릴 그곳에서 제일 먹음직한 과일 한봉지 사서 들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그곳으로 돌아갔을때는 몇명의 다른 고객들이 와있었고 아까 함께 있던 여성도 있었다
그사람은 내가 가게에 들어 서자마자 기쁜 얼굴로 스마트폰이 멀쩡하다는것이다
아무 이상이 없다며서 선뜻 나에게 건내주는것이다
그래서 나도 과일 봉지를 그분에게 내밀었다
그랬더니 그분이 놀란 얼굴을 하고 이것을 나를 줄려고 사왔느냐고 했다
그렇다고 하니까
너무나 기뻐하면서 감사하다는것이다
옆에 서있던 문제의 그여성도 너무나 기뻐하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것이다
이분들보다 더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내가 아니겠는가 !!!
기브 앤드 테이크
이것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행복한 삶의 요소가 되기도 하는것이다
나는 돌아오는 발길이 가볍고 날아갈듯이 기쁜마음이 되어있기도 하였다 ...
그런데 돌아오는길에 보니까 문제의 "동키서비스"사무실이 문이 열려있고
사람들의 모습이 여럿이 보였다
스마트폰 고장나기전에 몇번씩이고 이가게앞에 와서 문을 두드려 보기도 하고
이웃에 물어 보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러한 다급한 마음은 사라지고 그곳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깨끗이 사라지고 없어진것이다
내가 무슨 이유에서 인가
이곳에 오자마자 겪지 않아도 될 기묘한 일들을 겪게 되고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과같은
불안한 심리상태의 나를 인정해야 하는것은 나에게는 절대로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인것었다
나를 처음부터 맹열하게 거절해왔던 "동키서비스"에게 나의 소중한 짐을 맡기고 싶은 생각이 없어진것이다
허지만 내짐에 대한 위험부담율이 얼마나 높은가는 내가 잘 인식하고 있었다
내가 집에서 짐을 쌀때 몇달 몇일을 심사숙고하고 짐을 풀었다 쌌다가 하기를 되풀이 했었다
무게가 무거워 빼기도 수십번 했었고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인가 10 kg이 넘는 짐을 줄이는것은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버린것이었다
프랑스와 스페인에서의 여행일정에 필요한 옷들과 신발까지 책을 보태면 어쩔수가 없었던것이다
책도 내가 볼려고 했던 책을 버리기 위해서 일일이 스마트폰 사진으로 중요부분을 스켄했었고
새벽에 운동하러 나갈때 등산하는것과 같은 복장으로
내가 가져갈 배낭을 매고 한시간 동안 한강을 걷는 예행연습을 하기도 했었던것이다
그리고 그정도의 무게는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을것이란 자신감을 얻게 되었던것이다
최대한 8kg을 넘지 않아야 된다는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나는 내가 챙겨가야하는 매일 복용해야할 약의 무게도 엄청난것이었다
비타민과 예방에 필요한 영양제등이지만 45일간의 약품을 챙기면 한보따리가 되었었다
프랑스에서 쓸 식품등이 첨가되니까 무거울수 밖에 없었지만
프랑스을 벗어날때 쯤은 날렵해진 가방을 상상하기도하면서 안심을 했던것이다
나중에야 안일이지만 나처럼 45일간의 스페인 까미노 계획하고 오는 사람은 없었다
고작 배낭을 맨채로 포르투칼에 잠시 들렀다가 가는 사람들은 짐자체를 고민할이유가 없었던것이다
그리고 여자가 아닌 남자들은 어떤 옷을 입을지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그럴수가 없는것이기도 하다
시간절약 돈절약에 너무 신경을 쓰다가 남들이 하지않는 짓을 해서 사서 고생을하게 생겼고 그러한 내가미웠다
미련하고 고집스런 나를 사정없이 막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었지만 어쩔도리가 없게된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짐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서 또 다른 불상사를 맞이하는것을 염려하게 된것이고
차라리 그렇게 불안한 것이라면 내가 내짐을 가지고 피레네 산맥을 넘는다는 결심이 서니까
마음의 불안함이 사라지고 마음의 안정을 누리게 된것이다
그러나 보조가방과 물을 첨가하면 허리가 휠만큼 무거운 무게에 짓눌려서 마음이 납덩이처럼 가라앉는것이다
내가 왜 이리 바보인가 욕심이 많은 미련한 고집쟁이인가
그자책을 프랑스 땅 피레네 산맥에 와서 할줄은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것이다
기여코 배낭을 동키서비스에게 맡기고 피레네 산맥을 룰루랄라 그렇게 걷고 싶어서
꿈꾸던 시간이 엇그제인것 같은데
가랑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풀잎향기 가득한 바람이 나의 콧잔등을 간지럽히는 이른 아침에
꿈결같은 피레네 산맥의 언덕길에 첫발을 내딛고 있었다
앞과 뒤로 아무도 없는 나혼자만의 피레네 산맥의 광활한 무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어제 이곳으로 왔었던 그많은 사람들은 지금 어디로 모두 사라진것일까. . .
그 역사깊은 스페인의 문을 통과하여 고갯길을 따라서 걷노라면
푸른빛으로 물든 먼산의 부드러운 곡선이 그림같아서 까무라칠듯 감동받기도 하는것이다
빗방울이 사이로 펼쳐지는 오염되지 않은 순백의 자연 풍광에 혼이 빼앗긴것일까
무거운 등짐의무게가 느껴질수가 없는 희열로 가득해지기도 하는것이다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공법으로 지어진 예술성을 띤 예쁜집들이
먼산과 들판에 보석처럼 자리잡고 아늑한 따스함을 발하고 있었다
나의 눈길이 스치는곳마다 환호하는 내영혼의 기쁨이 충만해진다
이유없는 눈물이 가득차오르기도 하였었다
나의 발걸음은 걷는것인가 날고 있는것인가
아무도 없는 그길을 혼자 걸었던 그때의 벅찬 흐느낌의 감동을 지금도 잊을수가 없는것이다
누가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것일까
내가 서있는 이곳에서 만나는 바람과 들판의 풀잎들의 향기가 싱그럽다
발걸음을 옮길때 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아름다운 산하는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부드럽고 둥근 곡선을 이루면서
눈물겹도록 정답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눈앞에 가끼이오고 또 사라져가는것이었다
생쟝을 출발하여 8km 전방에 위치하는 오리손(Orission)이라는 Albergue에 도착했을때는
머리가 흠뻑 젖도록 비를 맞고 걸었지만 그꿈결같은 감흥에서 헤어나지 못한듯 들뜬 기분이었다
오리손 알베르게는 이곳 순례자들을위한 배려로 2004년에 문을 열었다는데 아담하고 예쁜 가게 안에는
이곳에 먼저 도착한 까미노 친구들이 기쁨에 넘치는 얼굴로 차를 마시면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간단한 커피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밖에있는 음료대에서 물을 가득채우고 나설때도
자욱한 안개속에 모든 시야가 가려져 있어서 한치앞이 보이지 않았다
길안내서에서 보았던 그많은 말들과 양떼들은 모두 어디로 간것일가
비가 올지라도 굵은 빗방울이 망치처럼 머리를 후려치는 것은 아니라서 앞서가는 몇몇 사람들의
뒤를 따라 끝없이 걷는 사이에 성모상이 있는 언덕을 지나게 되었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 길을 걷는 순례자들에게
자비로운 성모어머님의 은혜로운 기도를 간구드리고
내가 반드시 가야하는
산티아고 데 꼼빠스텔라를 향하여 나의 발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바람불고 쏱아지는 빗망울속에 그곳 성모님의 동산에서
사진 한장도 찍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긴채 그렇게 바쁜 걸음으로 그곳을 떠가게 된것이다
오직 까미노 친구들의 안전을 위해서 마련된 인적없는 산속의 Orission Albergue의
800 m의 고지를 시작으로
성모어머니깨서 계시는 곳은 무려 1200 m에 이르는 높은 곳이기 때문에 서서히 기온이 급하강하고 있었던것이다
비와 바람이 어름 바람인가 하였는데 어느 순간엔가 겨울처럼 추워져서 어절줄 모르다가 가방안에서 패딩을 꺼내어 입었다
어제 St. Jean에서 사가지고 온 샌드위치도 꺼내어 먹으면서 허기를 달래고 열량을 보충 하였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내가 그렇게 늦게 출발한것도 아닌데 앞서가는 사람은 몇명밖에 못보았고
나의 뒤를 따라오는 사람은 더욱 없는 가운데 그깊은 산속을 나혼자 걷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해발 1430 m의 피레네 산맥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산들처럼 험준한 준령의 위엄으로 사람을 압도하는 산세가 아니라서
산의 고도가 높아지는 것을 걷는사람들이 절대로 알아차릴수가없도록 갈지자의 산길이 먼 곳까지 고불 고불 그어져 있어서
그길이 너무 예뻐보이기도 하고 장난치고 있는듯이 귀여워 보이기도 하는것이다 ㅋㅋㅋ
그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은 철없는 아기가 걸음마를 배워서 한참 신이 나서 앞만보고 마구 달려나가는 기쁨에 찬 발걸음이 되게도 하는것이다
더욱 신비로운 기분에 휩싸이게하는것은 뭉게구를처럼 둥글게 둥글게 그어진 산넘어 산에는
키큰나무들이 자라지 않아서 마치 민둥산 처럼 보이는데
그곳에 길이 나있는것을보고 사람들이 불나방처럼 그곳을 향하여 걸음을 옮겨놓는것을 즐거워 하는듯 한것이다
그런데 기온의 급하강이 이루질때는
길바닥이 갑자기 하얀 소금을 뿌린듯이 색깔이 변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리던 보슬비는 눈보라로 변하여 정신을 못차리게 휘몰아 치기도 하는것이다
무거운 짐의 무게로 헉헉 거리며 뜨거운 숨을 뿜어내는 나의 귓볼에
바늘 처럼 날카로운 눈보라의 얼음꽃들이 따갑게 내리 꽂히기 시작한것이다
어디 피할곳도 없으며 더욱이 멈추어 설수는 있는곳이란 더욱 없는것이다
오직 전진만이 나에게 허락된 의무일뿐인것이다
다시 돌아갈수는 더욱 없는 일이 아닌가 ?
기온의 급강하로 추워지고 길의 살얼음이 위험을
예고하는 가운데 죽을 힘을 다하여 빨리 갈려고 하지만
그것은 생각대로 되어지는것이 아니었다
깊은 안개와 눈보라를 맞으면서 놀라움속에서 걷는동안
프랑스의 기사로 유명한 롤랑의 샘물도 확인하지못했고
스페인의 국경이있는 그곳의 위치도
팻말이 세워진곳의 사진도 찍을 엄두도 못내고 지나와 버리고 만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부터 시작되는1400m의 고도까지
걸어도 끝나지 않은 길의 산속을 추위에 떨면서 끝없이 걷고 또 걸었다...
정신이 완전히 혼미한 가운데 걷고 또 걷고 있는것이다
눈을 뜰수 없을 만큼 눈보라가 몰아치는 산속에서 누구라도 그랬을것이지만
그래도 쓰러지지 않고 걸어서 가고 있다는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었을것이다
얼마를 걸었을까
눈보라속에서만 걷는것이 아니라
그곳 겨울산의 소복히 쌓인 눈을 밟으면서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었다
인적이 끊어진 그곳에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찾을수 없을 뿐만 아니라 쉴수있는곳이란 없는것이다
그런데 나의 눈앞에 멀리 작은 오두막이 한채가 눈에들어와서 점점 가까이 닥아가게 되었었다
그런데 그곳은 페쇄된듯 빈창고같이 보였다
지나오면서 마을이 있는곳에서 이런곳을 보았는데 짐승들의 배설물로 가득한 페창고였었다는것...
나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그작은 오두막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큰 소리로 " Hello !" 하는것이었다
깜짝 놀라서 뒤돌아보는 나에게 손짓하면서 나를 그곳으로 오라는것이다
내가 그곳에 들어섰을때
페치카에는 장작불이 타고 있었고
따뜻한 불기운에 젊은 청춘남녀 다섯명이
나무로 된 의자에 빙둘러 앉아서 탁자위의 음식을 나눠먹고 있엇다
피레네 산맥의 까미노 친구들을 위한 유일한 대피소였던것이다
그당시 내가 얼마나 지치고 기진 맥진 했는가
그들이 내어준 페치카옆의 침대처럼 생긴 긴 나무의자에 앉아있다가 나자신도 모르게 깜빡 졸기까지 하였다
얼마후 그중의 젊은 여자 한사람이 나보고 " 우리들과 지금 같이 가자"는 것이었다
나의 대답은 "아 나는 지금 갈수가 없다" 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좀더 쉬어야 갈수가있다"고 말했다
"그럼 너는 이곳에서 잠을 잘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놀라서" 아니라"고 말하면서
나는 다급해져서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평생처음 남에게 해본적이 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배가 고프다"
"너희들이 가지고있는 음식중에서 나에게 조금만 나눠주면 안되겠냐"고 물었다
그들중에 나의 말을 경청하던 남자가 깜짝 놀라면서 자기가 음식을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그 남자가 바로 지나가는 나를 불러 세웠던 내생명의 은인이요
하늘이 보내주신 "나의 천사" 젊은 청년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억양은 분명히 독일사람들이었고 같은 일행이었던것이다
그남자가 깜짝 놀라서 나에게 능숙한 솜씨로 만들어준 샌드위치는 일반가게에서 파는 음식의 갑절은 고급한것이었다
햄 소시지에 야채와 과일까지 넣어서 맛있는 소스를 곁들여서 만들어준 그의 샌드위치는 최고의 맛을자랑하고 있었다
나는 너무나 고마워서 그들을 보고 그남자를 보고 "너는 나의 천사"라고 감사의 인사들 건내었고
그들은 나에게 괜찮으냐고 몇번씩 반복해서 물었다
만약에 힘이 들면 지금 당장에 도움을 요청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정말로 "내가 괜찮다"는 확답을 받고 난 다음에 나를 두고 떠나갔었다
나는 그곳에서 남아있는 나무토막들로 불을 지피면서 한시간 이상을 그곳에서 몸을 녹이고
다시 일어나서 걷기를 시작하였다
그곳은 최고의 고지를 지나서 떡갈나무 숲이 우거진 기나긴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한것이다
이곳의 산의 특징은 절대로 산같은 산이 아니면서 얕으막한 언덕같은 산들이
먼거리를 우회하여 고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걷는 이들이
산을 타고 있다는 생각을 할수가 없는
경치가 아름다운 산책길을 걷는것과 같은 환상에 빠지게 되는것이다
그곳을 출발한 이후에 다른점은 키가 큰 나무들이 많이 자라있고 나무숲길이 우거진곳을 내려가야하는것이었다
그때는 이미 오후 5시가 넘은 시간이고 숲은 갑자기 어두워지고 골이 페인 길의 위험도는 말로는 형용할수가 없는것이다
그곳은 북유럽의 노르웨이처럼 저녁 8시가 되어도 해가 지지 않아서 백야현상을 느끼게 하는곳이었다
그러나 밤 9시가 넘으면 숲은 깜깜해진다
눈비가 함께 쏱아지는 날씨 때문에 달빛이 빛출것이라는 기대는 할수가 없었다
대신에 최대한으로 빨리가지 못하면 얼어서 죽을수도 있다는것이다
나는 한낮에 먹은 샌드위치하나로 허기진 상태였었다
다행히도 지금은 독일 친구들을 만나서 얻어 먹은 음식 때문에
극심한 허기로 쓰러지지는 않겠지만
어둠이 깊어지면 발밑의 돌밭을 확인하지 못해서 큰사고에 처할수도 있는것이다
숲이 우거진 산속의 어둠은 극한의 무서움증을 자아내기도 하였던것이다
내가 나중에 생각해낸일이지만 그독일 남자친구가
그 오두막의 아주 작은 창문밖으로
내가 지나가는것을 보고 불러 세운것은 기적인것이다
내가 이사실을 다른 까미노 친구에게 말했을때
아무도 그작은 창문으로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 세우는일은 없는일이고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하였다
자기도 그곳을 혼자서 지나왔는데 아무도 불러 세우는 사람이 없었다는것이다
그리고 그오두막의 창문은 너무나 작아서 밖으로 걸어가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것이었다
내가 그곳을 지나갈때는
하루종일 물한병과 샌드위치 하나로 너무나 지친 최악의 그로기 상태였었다
오두막까지 걸어오면서도 비몽사몽 눈앞이 가물가물 했었고
어둠속에서 미끄러지기라도한다면 저체온증으로 탈수증으로
꼼짝없이 금새 목숨이 끊어질수도 있는 절박한 위기에처해 있었던것이다
내가 그러한 상태로 내리막길 8km를 더 걷는다는것은 무리였었고
큰일날뻔한 일이었던것이다
그젊은 독일친구들이 아니었다면 정말 지금 생각을 해도 너무나 아찔한 순간이 아닐수가 없는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들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그경황속에서 그들의 이름 조차도 알아내지 못했던 나의 무신경에 내가 가끔씩 야속해지는것이다
산티아고의 그길은 생명의 길이다
우리 인간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공기의 소중한 존재를 모르고 살아 가듯이
우리들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주님께서는 피레네 산맥의 눈보라속에서
어처구니없는 조난을 당할수도 있는 그순간에 "Hello"
"Hello" 하시면서 천둥벌거숭이 같은 나를 불러 세우시고
당신의 거룩한 존재를 보이셨던것이다
물한모금도 마실수없는 빈사상태로 오두막을 지나치던 나를 불러세웠던
독일청년 덕분에 다시 기력을 회복한 내가 길은 나선것은 어둠이 깊어가는 저녁 시간이었다
남들은 8시간만에 26km 보행을 마치고 카페에서 술잔을 기울리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시간이었다
오두막에서 8 km에 이르는 목적지의 내리막길은 밝은 한낮에도 위험한 길이며
두시간만에 주행을 완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것이다
어둠이 깊어진 숲속의 산길에서 렌턴이라도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너무 밝은것은 숙소에서 쓸때 남에게 방해가 될까봐 아주 작은것을 골라서
주머니에 넣고 다녔는데 어느날인가 그것이 주머니속에 연결된 고리가 풀어지면서
나사가 하나 달아나 버려서 무용지물이 되었다
스마트폰의 렌턴도 밧테리 수명이 다해서 켤수가 없었다
속절없이 깜깜한 밤길을 숲속에서 8 km를 걸어야 하는것은 너무나 힘든 고통이었다
그래도 나는 죽지 않기 위해서
절대로 다치는 일이 없이 건강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가야한다는 일념으로
스틱으로 힘껏 가야하는 길의 방향을 잡으면서
무거운 어깨의 짐에 휘둘리면서도 가는길에 멈춤이없이 끝없는 고행은 계속되고 있었다
내가 도착해야할 론세스 바에스(RONCESVALLES)의 그 숙소도
스페인 정부가 까미노 친구들을 위한 특별배려에서 산속에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는것이었다
천지사방이 깜깜한 숲속에서 그곳의 불빛을 기대하기는 더욱 어려웠었다
그깊은산속에서 그마을의 불빛을 기대하는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바램이요
너무나 멀리 손에 잡히지 않는 꿈같은 것이었다
그럴수롣 이를 악물고 길을 채촉하고 걸었다
그러는 가운데 정말 멀리에 불빛이 보이는가 하면 또 맑은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물가에 도달하게 된것이다
그와중에서도 그맑은 물에 흙투성이가 되고 만신창이가 된 바지를 어둠속에서 정리하고 신발도 깨끗하게 씻었다
그러나 금새 도착할것같았던 그 마을은 절대로 나타날줄 몰랐었다
그래도 쉬임없는 발길을 옮겨서 불빛이 보이는곳에 도착하고
아직도 불이 환하게 켜진 호텔의 정문이 제일 빠른곳을 향하여 걸어갔다
그런데 그호텔에서는 방이 없다는것이다
그리고 나의 이름을 물어서 가르쳐 주었더니
나의 숙소는 그곳에서 한참 언덕위로 걸어 올라가야 하는곳에 있는것이다
그곳에서 다시 높은 언덕길을 걸어올라가는 한걸음 한걸음이
무한의 통증으로 작용하면서
너무나 힘들게 그곳에 도착하였을때는 밤 열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남들은 8시간으로 끝내었을 그길을 나는 무려 15시간만에 목적지에 도착할수가 있었던것이다
내가 그길을 걸어온것인가 아니면 기어서 온것인가
너무나 길고긴 피레네의 나의 여정은 믿기지 않을 만큼 길어서 나자신도 믿어지지가 않지만
나의 그피레네길의 산책은 맨꼴지로 밤 10시에 도착하고 출발하고 15시간이 경과된 이후였던것이다
보통 알베르게는 밤 9시면 무조건 문을 닫아 버리는것인데
어쨌든 불을 끄지 않고 나를 기다려준것이 얼마나 고아운것인지 말로는 형용을 할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곳 레스토랑의 지배인도 나를 기다렸던것이다
그곳의 숙박비는 60.00 EUR였었는데 저녁과 아침이 포함되고 더불룸이 배정되어있었다
레스토랑의 지배인이 나를 안내한 식당의 테이블에는 오직 나만을 위한 저녁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포도주 한병....
포도주 한병을 다마신것은 아니지만 따뜻한 저녁식사 한끼로는 충분했었다
그리고 그지배인은 계속나에게 오늘의 저녁메뉴에 대한 나의 의견을 구하고 있었다
자신이 나를 위해서 특별히 신경써서 마련해준것이라는 애정의 표현이라고 할까
금새 죽을 것같았던 순간은 사라지고 나의 방으로 안내까지 해주는 그들의 친절이 고마웠었다
늦은 시간이지만 샤워하고 오늘 입은 옷들을 빨아서 방의 따뜻한 보일러 위에 널어놓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죽음의 사선을 넘어온 Lucy는 결코 Lucy 자신의 힘으로 사는것이 아니라
하늘의 기적으로 살고 있다는것을 너무나 선명하게 보여주는
꿈결같았던 생명의 길 피레네 산맥의 그 길은
벼랑끝에선 두려움의 고행의 길이기도 하였지만
내기억속에서 오랫동안 무한히 아름다운 감동의 한순간으로 빛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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