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의 정체성

2024. 5. 22. 22:08음악창고

음악창고

2012-08-14 23:13:17


정체성(Identity)은 어느 예술분야를 막론하고 그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고민해 봐야 할 의무적 자기반성이다.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뇌부터 자신을 어떻게 가꾸어 나갈지에 대한 방법론,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해왔고 앞으로 무엇을 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의지와 확신 속에는 언제나 '나'라는 정체성이 핵심이 되기 마련인데, 그러한 점에서 볼 때 음악의 '장르'라는 것은 불문곡직하고 언제나 중심이 되어야 할 뮤지션의 정체성을 '규정'과 '잣대'로 도태시키고 반감해버리는 악역을 맡는다.

그것은 또한 표기와 분류의 편의를 구실로 한 평단의 자의적 해석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다분히 인위적인 개념이다. 자유와 개성을 존중한다 하면서도 '이거다' '저거다'로 구분, 규정하여 자기 입맛에 맞는 장르로 편입시켜 글을 쓰고 언급하는 주관적 해석은 뮤지션의 정체성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져올 수 있음을 그들은 알아야 하고 또 조심해야 할 필요가있다.

R.E.M의 정체성은 그러한 점에서 '얼터너티브'의 시조라는 편의적 해석에 상처입은 사고사례다. 즉, 밴드의 무수한 가능성과 다양성을 차치해 버리고 '얼터너티브'라는 순간의 유행이 빚어낸 작은그릇에 R.E.M같은 큰 그릇을 포개면 그 모양새가 당연히 억지스럽고 어색할 수 밖에 없는것이다. 하나의 부분에 머물러 있는 소위 '그런지'한 사운드를 좀 연출했다 해서 R.E.M을 얼터너티브 밴드라 매도하는 건 정말 너무하지 않은가.

재고하고 존중할 필요가 있다. 뮤지션의 정체성에 상처 입히는 평론, 리뷰 따위는 지양 되어야 한다. 물론 처음부터 장르 속에서 생성된 정체성이라면 장르 내에서 요리해도 그리 큰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특정장르에 묶어 두기엔 무언가 석연찮은 R.E.M같은 밴드에겐 애써 낙인을 찍을 필요는없다. 그래도 굳이 낙인을 찍고 싶다면 [Out of time]같은 앨범에 찍자. R.E.M의 '전형'으로, 그들 최고의 '명반'이란 낙인을.



오래토록 기억될 만한 명반들이 유난히 많이 발매된 1991년도에 빛을 본 [Out of time]은 장르와 시대상황의 불합리성을 거부하는 그들 만의 고유한 사운드와 작법으로 충만한 '베스트 오브 베스트'앨범이다.

감성적인 보컬라인과 다양한 악기들이 엮어내는 사랑스러운 하모니가 부담없는 시작을 알리는 "Radio song", 컨트리뮤직의 순수함에 기댄 락앤롤의 원초적인 8비트 리듬이 반가운 공전의 히트곡 "Losing my religion", 이국적이고 침잠된 분위기로 일관하는 우울모드 "Low", 지성인들에게 지지를 받을 수 밖에 없을 편안한 감수성과 희망적 메세지의 완벽한 조화 "Near wild heaven", 영적이고 을씨년스러운 느낌을 지울 수 없는 "Endgame", 신나고 밝고 조화로우며 행복한 사람들의 이야기 "Shiny happy people", 베이스와 드럼의 리듬파트가 곡의 주요한 수단이 되어 반복되는 감동의 코러스에 취해지는 "Belong". 여기까지 듣고도 이 밴드를, 이 앨범을 얼터너티브에 국한시키고 싶은가. 아니 국한시킬 수나 있겠는가.

더 들어보자. 전형적인 포크계열의 사운드를 선보이는 "Half a world away", 90년대 보다는 80년대의 뉴웨이브에 근접한 느낌을 주는 "Texarkana", 제목에서 이미 장르구분을 떨쳐내는 "Country feedback", 얼터너티브계의 '큰형'이라 할 만한 증빙으로 작용하는 "Me in honey"는 차라리 모던락, 브릿팝의 느낌과 흡사하다. 하긴 모던락과 브릿팝이 얼터너티브와 그리 크게 다름이 또 무엇일까만.

어찌 되었든 간에 이 앨범이 R.E.M의 '정체성 확립'에 결정적 기여를 했음은 분명하다. 더불어 R.E.M에대한 막연하고 애매한 지식과 편견도 이 앨범 한 장으로 어느정도 정리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더 이상 간섭하지 말자. R.E.M의 정체성을 그들 스스로 만들어 나가도록 내 버려 두는 것은 팬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을 유일무이한 값진 배려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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