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o Puente - 라틴 재즈의 거장

2024. 5. 16. 21:54올드팝송

Tito Puente는 라틴 음악가중 가장 유명하고 음악 프로그램에 가장 많이 등장한 사람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의 50년 넘는 음악 인생은 4번의 그래미 상, 다양한 음악적 타이틀과, 장편 영화나 각종 콘서트와 같은 수많은 프로그램에서의 눈부신 활약으로 가득차 있다.
전생의 그는 “살아있는 전설”로 추앙 받았으며 그의 "Oye como va" 나 "Para los rumberos" 등의 불후의 명곡을 남긴 그의 음악 활동으로 라틴 대중 음악의 고전이자 모범이 되었다.


그의 삶을 탄생에서부터 되짚어 보자면..

1923년 뉴욕 출생이며 Ernesto Anthony Puente, Jr.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그의 부모는 뿌에르또 리꼬에서 미국으로 건너온지 얼마 되지 않았었으며 “El Barrio”로 알려진 뉴욕의 동쪽 할렘가에 거주하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쿠바 음악에서부터 재즈, 스윙 등의 음악을 들으며 자랐다. 그의 음악 수업은 25 센따보 짜리 피아노 레슨에서 부터 시작했다. 여동생 Anna와 짝을 이뤄 어린 시절부터 받았던 춤 수업이 훗날 그의 음악의 탁월한 리듬감의 자양분이 된다. "Los Happy Boys"라 불리던 밴드와의 협연으로 타악기 연주자로 처음 자신을 선보인 첫 앨범 “La Pey de Timbal”의 녹음때 그는 “내가 진정으로 춤을 출 줄 아는 얼마 안되는 연출가중의 하나인 것이 자랑스럽다.” 고 말했다. 그의 춤에 대한 경험은 그의 내성적인 성격을 바꾸고 무대에서 자신의 존재를 돋보이게 하는 동기가 되었으며 동시에 그의 뛰어난 리듬감의 바탕이 되었다.


1940년대 무렵, 짧은 시간 안에 그는 명성을 얻었다. 세계 2차 대전 때 군대 내에서의 타악기 연주를 군복무와 함께 이행해야 했는데 다행히도 군에서 그의 자리를 지켜주었다. 그의 뛰어난 능력과 기술은 짧은 시간 안에 괄목할만한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그가 라틴 음악계에 던진 커다란 충격으로 라틴 음악 역사상 처음으로 띰발이 오케스트라의 맨 앞에 위치하게 되었다. 사실, 항상 서서 띰발을 치는 것이 그의 버릇이었는데 그 단순한 변화가 그 리듬 부분에서 짧은 시간안에 기존의 연주 규범을 바꾸는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50년대 이후 맘보의 선두주자가 되었고 당 대의 가장 유명한 예술가들과 몇 편의 재즈를 작곡했는데 그와 함께 재즈 작곡에 참여했던 작곡가들로는 el gran Dizzy Gillespie, Lionel Hampton, 그리고 Woody Herman 등이 있다. 그는 타악기를 통한 그만의 음악 해석 방법으로 현대 라틴 음악사의 한 시기를 장식했다.


60년대는 “Oye como va”(1963)와 같은 신화적인 성공과 멕시코 기타리스트인 Carlos Santana를 훗날 70년대에 유명하게 만든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Celia Cruz, La Lupe,와 같은 카스트로로부터 추방당한 음악가들과의 협연이 많이 이루어진다.


그의 음악은 "El show de Bill Cosby", "Los Simpsons", "Late Show with David Letterman", 그리고 "Plaza Sesamo" 같은 굵직한 티비 프로그램과 Oscar Hijuelos 수상작을 영화로 각색한 우디 앨런의 "The Mambo Kings", "Radio Days”와 같은 영화에 출현함으로써 더더욱 유명해졌다.


4번의 그래미상과 11번의 노미네이트, 국립 예술 아카데미의 에우비 블레이크 상, Smithsonian 명예 메달, ASCAP 건립자의 상, 뉴욕대 음악 명예 박사 학위 등의 화려한 수상 경력 또한 그가 라틴 재즈의 거장이었음을 나타내준다.


지난 2000년 5월 31일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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