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adise Lost

2024. 10. 9. 09:00팝아티스트

 
 
둠/고딕 메탈(doom/gothic metal)의 프론티어 밴드 중 하나인 파라다이스 로스트(Paradise Lost)의 통산 9집 음반. 1990년에 등장했던 정식 데뷔작 <Lost Paradise> 이후 줄기차게 추구해왔던 블랙 카리스마가 앨범 곳곳에서 그 특유의 위용을 과시한다.

물론 그들이 항시 '어둠의 자식'임을 자처했던 건 사실이지만 파라다이스 로스트를 지금과 같은 정상의 위치로 견인한 으뜸 요인은 무엇보다 끊임없는 탈피 욕구였다. 초기의 데스 메탈적 그로울링 스타일과 중기 작품인 <Icon>을 통해 확립했던 고딕 메탈의 전범(典範), 6집 <One Second>에서의 일렉트로닉 사운드 전격 도입 등, 그들은 결코 한 곳에만 안주하려 하지 않았다. 평단과 팬 모두로부터 박수 세례를 독점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이다.

신보는 한마디로 여유롭다. 고참의 관록과 향취를 고스란히 내뿜는다. 리프 제조기로서 탁월한 능력치를 뽐내는 첫 곡 'Isolate'와 이어지는 'Erased'가 그 대표적인 예. 텐션감은 비록 과거에 비해 많이 뒤쳐지나 결코 사운드가 '비게' 들리는 법이 없다. 오케스트레이션과 키보드 등, 각종 악기 도입을 통한 옹골찬 형식미학을 완벽히 체득한 까닭이다. 롭 좀비와 제임스 헷필드를 믹스해낸 듯한 보이스를 들려주는 'Two worlds' 역시 빼어난 곡 품질을 자랑한다.

그들의 변신에 대한 갈구는 'Primal'과 'Mystify'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두 곡을 통해 밴드가 고딕 메탈을 넘어서 인더스트리얼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 등을 벤치 마킹한 결과라고 보면 정확하다.

그렇다고 그들이 고딕/둠의 다크 월드에 완전히 등을 돌렸다는 얘기는 아니다. 압권인 'No celebration', 파이프 오르간 연주가 음산한 뉘앙스를 자아내는 'Channel for the pain', 타이틀 곡 'Symbol of life' 등에서 증명되듯이 유려한 곡 전개와 아름다운 서정성, 그리고 이를 통한 헤비 엑스타시의 구현 등, 그룹만의 특허품은 그 모습 그대로 여전하니까 말이다.

파라다이스 로스트의 역작이다. 밴드가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했던 '비판적 지지 세력'을 몰고 다니는지에 대한 이유를 이번 작품에서도 또 한번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라다이스 로스트에게 음악적인 늙음이란 있을 수가 없는 법. 항시 주변의 음악 소스들에 깨어있는 그들이야말로 '열려있는 텍스트'의 진정한 표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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