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nk Floyd

2024. 10. 9. 08:50팝아티스트

1960년대

Syd Barrett의 시대
Pink Floyd의 시작은 1965년 런던에서 시드 배럿(기타 및 보컬), 리차드 라이트(키보드), 로저 워터스(베이스),
닉 메이슨(드럼)이 Sigma6를 결성하면서부터이다.

The Tea Set, The Megadeaths, The Abdabs 등 여러가지 팀이름 속에서 방황하던 Pink Floyd는 마침내 팀의 리더인 시드 배럿(Syd Barrett)에 의해 두 명의 미국인 블루스 기타 연주자 Pink Anderson과 Floyd Council의 이름에서 따 온 The Pink Floyd Sound로 최종 이름지어진다.

Pink Floyd는 대부분 사람들에서 그들의 70년대 컨셉트 음반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시작은 매우 다른 사이키델릭 음악이었다.

1967년 초 싱글 "Arnold Layne"과 "See Emily Play"로 데뷰한 Pink Floyd는 그해 말 첫 번째 정규 앨범 Piper At The Gates of Dawn을 발표한다. 이 앨범은 영국 최고의 사이키델릭 음반 중 하나로 인정받으며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또한, 거의 모든 음악을 작사, 작곡하며 팀을 이끌었던 시드 배럿(Syd Barrett)은 영국에서 가장 재능있는 음악적 천재로 알려진다.

Pink Floyd는 1967년 후반 미국 투어에 나서게 되고, 그 곳에서 시드(Syd)의 심각한 약물 문제를 경험한다. 그는 당시 합법이었던 LSD를 복용하고 있었고, 스타가 되는 것에 대한 많은 압박을 받고 있었다. 미국 투어 중 Dick Clark's American Bandstand에 출연한 시드(Syd)는 "Arnold Layne" 과 "See Emily Play"의 립싱크 대신 정신병자처럼 카메라만 뚫어지게 쳐다보기만 했고, 라이브에서는 엉뚱한 곡을 연주하거나, 연주를 전혀 할 수 없는 정신적 불안 상태로 팀 동료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그래서, Pink Floyd는 1968년 초 시드(Syd)의 오랜 친구인 데이빗 길모어(David Gilmour)를 팀에 참가시켜 리듬기타를 연주하도록 했다. 하지만, 시드(Syd)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고, 어느 날 그는 팀의 연주에
참가하지 않는다. 이것이 시드(Syd)가 Pink Floyd와 함께한 마지막이 된다.


1970년대

새로운 Pink Floyd
시드(Syd)가 빠진 Pink Floyd에 많은 사람들은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멤버들은 1968년 6월 두 번째 앨범 A Saucerful of Secrets를 발표하고 미국, 유럽 투어에 나선 후 Barbet Schoeder 감독의 영화 More의 사운드 트랙까지 담당한다.
1969년 멤버들은 새앨범을 제작하기 위해 스튜디오를
들락날락 거렸지만 실제 그들은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결국 당시 Pink Floyd의 음악에 가장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던 릭 라이트(Rick Wright)의 아이디어로 Ummagumma에는 각 멤버들의 솔로 곡들을 담고, 멤버들은 자기의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1970년에 발표된 Atom Heart Mother는 영국에서 1위에 오른 Pink Floyd의 첫번째 앨범으로 당시까지는 최고의 성공을 거둔 앨범이된다. Pink Floyd는 이 앨범을 통해 처음으로 다양한 사운드 이펙트와 그들의 개념적인 테마를 실험하게 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Pink Floyd는 처음으로 이 앨범에 격렬한 사운드 이펙트 사이에 20분이 넘는 긴 곡을 삽입시켰고, 이러한 앨범 제작 방식은 그후 그들의 앨범 제작의 기본 방법이 되었다. "Atom Heart Mother" 발표 후 유럽과 미국 투어에 나선 Pink Floyd는 다음 앨범 Meddle이 발표되기 전에 one of These Days"와 "Echoes"를 무대에서 연주하곤 했다. Pink Floyd는 투어 중에 음악을 만들어 투어를 마친 후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는 형식으로 앨범을 제작하곤 했다.

1972년 초 월드 투어에 나선 Pink Floyd는 무대에서 "Meddle"의 곡들을 연주했을 뿐 아니라, "Eclipse"라고 불리는 시리즈에서 그들의 새로운 곡들을 연주하였고, 이것이 바로 그들의 최고 성공작 "The Dark Side of the Moon"의 시작이었다.


The Brighttest Pink Floyd
1973년 발표된 The Dark Side of the Moon은 Pink Floyd가 미국에서 1위를 기록한 최초의 앨범으로, 빌보드에 무려 약 730주동안 머무르고 세계적으로 2천 5백만 장 판매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며, 락 음악 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음반 중 하나로 인정받게 된다. 이 음반은 상업적인 성공 뿐 아니라, 시드(Syd)가 떠난 후 Pink Floyd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많은 비평가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1975년 Pink Floyd는 Wish You Were Here의 녹음에 들어가지만, 그들은 많은 내부 불화를 경험하게된다. 이 불화는 음악적 방향의 견해 차이에서 시작된 것으로 로저(Roger)는 현대 사회의 불안, 공포 및 음반업계의 상업성을 담은 가사를 강조하고 싶어했지만, 데이빗(Dave)과 릭(Rick)은 가사보다 음악적인 면을 강조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불화는 오히려 "Wish You Were Here"에서 음악적인 면과 메시지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장점으로 나타났다. 이 작품은 오래 전 팀을 떠난 시드(Syd)에게 바치는 앨범으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1위를 차지한다.

이미 무대에서 수많은 연주를 했던 "You Gotta Be Crazy"와 "Raving and Drooling"이 많은 수정 작업 후 1977년 "Dogs"와 "Sheep"이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Animals에 실려 발표된다.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에서 영감을 받아 인간을 정치인, 돈만 쫒는 산업주의자, 이들에게 이용만 당하는 노동자의 세 종류로 나눈 이 작품은 Pink Floyd가 방문하는 곳마다
수많은 팬들로 공연장이 매진 사태를 일으키게 한다. 하지만, 완벽한 무대 공연을 원했던 로저(Roger)에게는 이런 상황은 그리 반가운 것만은 아니었다.


The Wall
1977년 말 로저(Roger)는 "Animals"의 tour 중 자신이 무대에서 느낀 관객에 대한 이질감을 바탕으로 락음악의 또 다른 오퍼스 The Wall의 작업에 들어간다. 하지만, 이 작품은 "Pink Floyd가 연주한 로저 워터스(Roger Waters)의 앨범"이라고 불릴 정도로 그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부분적으로 로저(Roger)의 자서전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이 작품은 주인공 Pink가 자신과 외부의 세계 사이를 가로막는 정신적인 벽을 쌓음으로서 느끼는 외로움과 방황을 노래한 작품이다. 비록 The Wall이 천 5백만 장 이상 팔리는 성공작이었지만, 그들은 미국, 영국, 서독에서 30여 차례의 라이브 무대만을 가질 뿐이었다. (아마도 조명 및 벽, 무대 장치등 공연에 들어가는 비싼 비용때문일 것이다.)

1980년대


The Postwall Dream
1980년 대 Pink Floyd는 와해되기 시작한다. The Wall 이후 로저(Roger)는 릭 라이트(Rick Wright)를 비난하며 그를 해고하려 한다. 릭 라이트(Rick Wright)는 83년 작품인 The Finalcut에 참여하지 않는다. 팀은 긴 공백기를 맞이한다.
그 후 3년이 지난 1986년, 데이빗 길모어(David Gilmour)와 닉 메이슨(Nick Mason)이 다시 모여 새로운 Pink Floyd를 시도한다. 하지만, 로저(Roger)는 전혀 참여하려는 생각없이 자신의 솔로 활동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그는 오히려 팀명칭 사용권에 대해 나머지 멤버들을 법정에 고소한다. 그 결과 릭 라이트(Rick Wright)는 멤버의 자격을 잃었지만, 로저(Roger)는 데이빗(David)과 닉(Nick)의 Pink Floyd를 막을 수 없었다.

로저(Roger)가 없는 Pink Floyd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시드(Syd)가 팀을 떠났을 때처럼 Pink Floyd는 재기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987년 데이빗(Dave)과 닉(Nick)의 주도하에 릭(Rick)이 세션맨으로 참여해서 녹음한 A Momentary Lapse of Reason은 놀랍게도 미국과 영국에서 1위에 오른다. 그 후 Pink Floyd는 7년 만인 1994년 The Division Bell을 발표하여 역시 1위를 기록하며 전세계적인 tour에 나선다.

로저 워터스(Roger Waters)는 두 번의 솔로 앨범을 발표하고, 90년 독일의 베를린 월(Berlin Wall)에서 독자적인 라이브로 The Wall을 재창조하여 팬들에게 어필하려 했지만, 그의 레코드는 그다지 많이 팔리지 않았다. 세번째 솔로 앨범인 Amused to Death(1992)에서는 그의 높은 음악성을 과시했지만, 역시 판매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앨범이 Pink Floyd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었다면 Double-Platinum은 문제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드 배럿(Syd Barrett)은 1970년 이후 솔로 앨범을 발표한 적이 없으며, 현재는 자신의 당뇨병을 치료하려는 의지없이 영국 캠브리지의 근교에서 지내고 있다고 알려져있다.
비록 그의 미공개 작품들이 80년대 말 세상에 선보이긴 했으나, 그를 기다렸던 많은 팬들에게는 비운의 락스타로만 기억되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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