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ole King
2024. 9. 15. 09:44ㆍ팝아티스트
미국 뉴욕 브로클린에서 1942년 2월 9일에 태어난 그녀는 4살때 이미 피아노를 능숙하게 쳤고 10대 초반에는 많은 작곡을 했다. 친구이자 이웃인 Neil Sedaka가 음악활동을 시작했을 때 그녀는 New York milieu로 그를 쫓아가 그가 데모음반을 만들고 계약을 하는것을 돕는 한편 그녀는 몇 몇세션을 편곡하기도 했다. 뉴욕의 퀸즈칼리지의 학생일 때 그녀는 미래의 파트너이자 남편인 게리 고핀을 만나는데 그의 가사에 대한 시적 재능과 캐롤의 멜로디 흡인력은 잘 매치 되었다. 그녀는 몇몇 싱글들을 완성했는데 "The Right Girl" (1958), "Baby Sittin'", "Queen Of The Beach" (1959), 그리고 Sedaka의 "Oh Carol" 에 답하는 "Oh Neil" (1960)이 그러하다. 그 곡들이 별로 히트하진 못했을 지라도 그녀의 음반시장에서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었던 Don Kirshner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서 고핀과 캐롤은 한 팀으로 Aldon Music empire사와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고핀과 캐롤은 "The Loco-Motion" "Chains" 그리고 "Don't Say Nothin' Bad (About My Baby)"을 만들고 편곡하고 제작했는데, Bobby Vee가 작사한 곡 "It Might As Well Rain Until September"은 1962년에 캐롤이 솔로로서 크게 히트를 치는데 기여했다. 사람들로하여금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이 곡은 미국 차트 30위권에는 들지 못했지만 영국차트에서는 3위에 올랐다. 그러나 다음에 나온 2개의 싱글들은 별로 빛을 보지 못했다. 고핀과 캐롤의 작품들은 60년대가 지남에 따라 더욱 성숙해져갔다. 그래서 여러개의 세련되고 개성있는 작품들 "(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 ( Aretha Franklin ), "Goin' Back" ( Dusty Springfield and the Byrds ) 그리고 "Pleasant Valley Sunday"(the Monkees )이 발표되었다. 그들은 또한 잠시동안 Tomorrow label를 설립했는데 그들의 결혼생활은 캐롤 킹의 1967년 싱글 "The Road To Nowhere"이 나왔을 쯤 그들은 불행했던 결혼생활을 끝냈다. 캐롤은 그후 LA 로 이사와서 Lou Adler's Ode label사에서 이전에 Fugs의 duo였던 Danny Kortchmar (guitar) Charles Larkey (bass)와 the City 를 결성했다. 후에 Charles Larkey는 캐롤의 2번째 남편이 되었다. 그 세 사람의 앨범 Now That Everything's Been Said에는 버젼곡 "I Wasn't Born To Follow" 과 "That Old Sweet Roll (Hi De Ho)"이 들어있다. 캐롤 킹은 1970년에 Tapestry를 가지고 솔로로서 활동한다. 그 음반에는 그녀의 가장 간결한 작품 "You've Got A Friend"이 들어있다. album Tapestry는 그녀의 슈퍼스타로서의 위상을 견고히 했다. 싱어이자 송라이터인 캐롤 킹은 이미 비틀즈서부터 아레사 프랭클린까지 거의 모든사람과 음악활동을 했고 팝 뮤직의 가장 재능있고 성공한 작곡자 중 한 명으로 자신의 자리를 세웠다. Tapestry는 전세계적으로 일천오백만 장이 팔리고 송라이터 싱어가 자리잡는 지평을 열었다. 80년대에 최초로 발매되었던 Pearls는 Goffin과 King 작품들의 '클래식' 으로 극찬받는다. 미국에서 1995년 6월을 기준으로해서 Tapestry는 천 만장 이상 팔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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