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line Dion - 5

2024. 9. 14. 15:22팝아티스트

 
 
블랙 디스크의 정감 지닌 여가수]



결론을 말하자면 셀린 디온이야말로 그 어떤 시대에 출현했던 여류 팝 스타와도 비교 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여가수라는 사실이다. 그녀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누구나 그렇듯 어쩔수 없이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두 가수가 지니지 못한 그 무엇을 더 갖고 있는 여성이 발로 셀린 디온이라는 사실이다.



휘트니 휴스턴! 정말로 훌륭한 가창력을 가진 여가수다.

머라이어 캐리! 아마 한 술 더 뜨는 여가수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이 없을 것이다.

환상적이란 표현이 저절로 나오는 목소리를 가진 여가수들... 흑인적인 필링에 오페라적인 고음역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이들 두 여가수는 각각 80년대와 90년대의 팝계를 놀라게 하며 사람들을 노래로 사로잡았다.



그러나 너무 완벽하다든지 너무 강한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닌지도 모른다. 이들 두 여가수에게 강하고 완벽함 대신 그 목소리에 무언가 조금은 인간미있는 정겨움이 요구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때로는 너무 강하거나 완벽한 가창력이 기계적인 느낌을 주어 인간미를 상실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어떤 고음이라도 마음껏 질러대고 소화하는 두 여가수였지만 조금 부드럽고 정감어린 또 다른면이 있어주기를 아쉬워 했던 것이 팬들의 솔직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 셀린 디온의 출현을 예고하는 분위기 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셀린 디온이 1991년 3월 "Where Does My Heartbeat Now"를 빌보드 팝 싱글 차트 4위까지 올렸을 때, 사람들은 그 모든 바램을 채워줄 여가수가 드디어 출현했음을 직감했다. 그녀에게는 최고의 가창력을 자랑하던 두 가수가 지니고 있는 모든 장점에 그들이 지니지 못한 유연하고 정감어린 부분까지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이 처음부터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이다. 너무 강하게 고음역을 처리하는 휘트니 휴스턴이나 머라이어 캐리에게 조금은 부담감마저 느끼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가장 좋은 가창력을 지닌 셀린 디온은 타고난 음악적 소화력과 풍부한 성량을 바탕으로 애덜트 컨뎀퍼러리(AC)로부터 댄스풍의 음악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노래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다.



결론으로 한 마디를 더 추가하자면 머라이어 캐리가 CD의 음색이라면 셀린 디온은 깨끗한 "비닐디스크"(종전의 검은색 레코드)의 음색을 가졌다고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캐나다의 명 프로듀스 데이빗 포스터가 걸프전 참전용사들을 돕기 위해 미국, 캐나다 인기 연예인 100명을 모아 만든 자선 레코드 "Voices That Care"에서 그녀가 첫번째 여성 보컬을 맡았던 1991년 그녀는 이미 세계 최고의 여가수로 평가받고 있었다.



[천부적으로 가창력 타고나]



캐나다 퀘벡에서 프랑스계 혈통을 받고 태어난 셀린 디온은 그래서 자신의 이름도 프랑스식인 "셀린느 디옹"과 영어식의 "셀린 디온" 두가지로 통용되고 있다. 그녀의 가정은 매우 음악적으로 감각이 있는 집안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아주 어려서부터 음악에 자연적으로 빠져 들었다. 92년 초반이 지나면서 스물네살이 된(1968년생) 그녀는 이미 다섯살때 대중들 앞에 나서서 프랑스에서 전래된 캐나다 민요를 목청높여 불러대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녀의 타고난 가창력을 부러워한 주위 사람들은 그녀에게 빨리 가수가 될 것을 권유했고 그 결과 겨우 열두살때 프로가수가 되기 위한 데모테입을 녹음했다. 그리고 퀘벡의 음악 실력자 르네 안젤릴을 만나 그녀는 어린나이에 처음 앨범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가 정식으로 세계에 그 이름을 낸것은 1982년 동경에서 열린 <야마하 국제 가요제>에서 금상을 받으면서였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겨우 열 네살이었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가히 세계 최고의 여가수로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그 이듬해인 1983년 셀린 디온은 캐나다 가수로는 처음으로 프랑스에서 "D'amour ou D'amitie"란 노래로 골드 레코드를 수상했다. 이 레코드는 그 당시 70만매의 판매고를 보였다. 1988년 스무살이 되던 해에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린 유로비젼 송 컨테스트에 출전, 실력을 전세계에 알리며 입상했다.



싱글곡 "Where Does My Heartbeat Now"는 세계적인 히트곡이 되었다. 이제 셀린 디온은 새로운 각오로 새 출발을 다짐하며 세계적인 명프로듀서와 명 작곡가들을 만나 만든 셀프 타이틀 앨범 "Celine Dion"을 92년에 내놓게 된 것이다. 이번 그녀의 앨범은 91년 그녀가 American Music Award 시상식에 참여, 그곳에서 거물 프로듀서 Walter Afnasieff와 화제의 여류 작곡가 Diane Warren을 만남으로서 그야말로 가창, 작곡, 제작에서의 환상적인 트리오 라인을 구축, "Celine Dion"앨범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앨범에서 대부분의 곡을 프로듀싱한 Walter Afnasieff는 92년 2월중 무려 자신이 제작한 마이클 볼튼, 머라이어 캐리, 뉴 키즈 온더 블럭, 셀린 디온등의 노래를 다섯곡이나 한꺼번에 빌보드 팝차트에 올려 놓았던 대단한 제작자이자 작곡가이다. 그리고 3곡의 노래를 제작해준 Rick Wake는 머라이어 캐리, 테일러 데인 등의 싱글히트곡 대부분을 프로듀싱한 인물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노래를 작곡한 Diane Warren은 그동안 Chicago, Cher, Taylor Dayne, Bad English, Michael Bolton등의 히트곡들을 써준 미국 최고의 인기 작곡가다. 이렇게 황금같은 배역들이 힘을 합쳐 만들어낸 이 앨범에 수록된 노래들은 이미 모두가 히트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노래들로 가득차 있다. 가스펠 분위기로 불려진 "Love can move mountains"에 이어지는 "If you asked me to"는 첫 싱글로 비디오까지 이미 발매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Walter Afnasieff가 제작을 담당한 "Beauty and the Beast는 흑인가수 Peabo Bryson과 함께 부른 발라드 넘버로 영화 주제곡으로 쓰여 92년 64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주제곡 상을 받았고 빌보드 팝 싱글차트 10위권(4월중)에 오르는 히트를 기록했다.'



"With this tear"는 프린스가 특별히 셀린 디온을 위해서 써준 곡이고 리듬앤 블루스 취향으로 잘 불려진 "Did you give enough love는 릭 웨이크가 프로듀싱한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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