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와 쿠바의 음악 2

2024. 5. 23. 08:56음악창고

음악창고

2012-08-14 22:07:53


 

★ 쿠바와 쿠바의 음악 2 (박창학님의 홈페이지에서 옮겨옴)





1895년부터 본격화된 쿠바 내의 반스페인 독립 운동은, 당시 이미 막대한 자본을 쿠바에 투자하고 있던 미국으로서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결국 미국은 1898년 초에 스페인에 대해 선전포고를 선언, 약 4개월에 걸친 전쟁에서 승리하여 쿠바, 푸에르토 리코Puerto Rico, 필리핀을 손에 넣게 된다. 그리고, 미국은 1902년 필리핀, 푸에르토 리코를 미국 령으로 삼는 동시에, 일단 쿠바의 독립을 승인하지만, 쿠바의 헌법에 부수 조항으로, 쿠바와 타국 간의 외교 제한, 미국의 간섭권, 해군 기지의 설치권 등을 포함시키는 등, 결과적으로는 쿠바 또한 미국의 보호국로 만들어 버린다.
이 불평등 조약은 선린외교를 표방하던 루즈벨트 정권에 의해, 1934년에 이르러 겨우 폐지되지만, 그 결과 쿠바는, 정치적으로 적대국인 미국의 해군 기지가 지금도 자국 내에 존재하고 있다고 하는 묘한 입장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유명한 구안타나모 Guanta´namo해군기지이다.)

이와 같이 그 출발에서부터 미국의 입김에 크게 좌우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놓여 있던 쿠바에서 1940년에는 풀헨씨오 바티스타Fulgencio Batista의 친미 군사 독재정권이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는다. 그리고, 특히 바티스타 정권과 미국과의 관계는 친밀하기 그지 없는 것이었다. 미국이, 쿠바에서 생산되는 사탕수수의 전량을 사 들이는 것을 보장하는 조약을 양국이 맺는 한 편, 그 댓가로 미국의 자본이 쿠바에 대거 진출하게 된다.
당시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의 부자들 사이에서 지상의 낙원으로 불리우던 세계 최고의 휴양지 아바나는 호텔, 도박장, 사교 클럽 등, 미국 자본에게 있어서는 절호의 사업장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당시 쿠바의 풍경은 국내에도 소개되어 있는 <하바나>, <대부 2>등의 영화를 통해서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다. 그리고, <대부 2>에 등장하는, 미국인들의 국외 탈출 장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러한 시대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아 끝이 나게 되는 것이다. 반면,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 일종의 <서비스 업>으로서 존재하는 음악 산업의 특성을 생각할 때, 당시의 아바나는 많은 쿠바 음악인들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에서는 커다란 기회이기도 했다. 음악인들의 수요 면에서 뿐만이 아니라, 세계 제 1의 시장인 미국으로의 진출이라는 면에서도.




물론 <흑인 음악과 백인 음악의 가장 이상적인 결합>이라고도 불리워지는 쿠바의 방대한 음악적 유산들이 세계 시장에 처음으로 소개된 것은 이보다 훨씬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서의 일이다. 쿠바 음악을 세계에 알리게 된 첫 번째 사건은 <아바네라Habanera>의 유행이다.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쿠바의 수도 아바나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 리듬은 19세기에 이미 크게 유행하여 세계 각국의 음악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아바네라의 원형은 원래 유럽으로부터 쿠바에 전해진 콘트라단싸contradanza(영어로는 컨트리 댄스로도 불리우는, 남녀가 짝을 이루어 춤을 추는 무곡의 한 형식. 말 그대로 Contra짝을 지어 추는 Danza춤...이라는 뜻.)로부터 비롯된다. 이 단어를 짧게 줄여서 흔히 단싸Danza라고도 불리워졌으나, 특히 아바나에 정착한 단싸를 단싸 아바네라Danza Habanera, 즉 아바나 풍의 단싸로 부르게 된다.
그렇다면 벌써 짐작하시겠지만, 아바네라는 이 단싸 아바네라의 줄임말인 것이다. 그리고, 당시 아바나에 머물면서 이 음악에 매료된 스페인의 작곡가 세바스티안 이라디에르Sebastia´n Iradier라는 사람이, 1840년에 아바네라의 리듬을 사용하여 작곡한 <엘 알레그레토El Allegretto>로 인해 유럽에도 아바네라가 널리 알려지게 된다.
이라디에르는 스페인 어 권의 가요곡들 중 가장 유명한 곡의 하나이기도 한 <라 팔로마La Paloma>의 작곡가로서도 유명한 사람이다. 필자는 아직 이라디에르의 <엘 알레그레토>라는 곡을 직접 들어 본 적이 없으나, 비제의 유명한 오페라 <카르멘> 중의 <하바네라>는 이라디에르의 곡을 거의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아바네라의 리듬으로 작곡된 곡들 중, 널리 알려진 곡으로는 이탈리아의 민요 <오 솔레 미오(O so´le mio)>를 들 수가 있다. 지금까지 쿠바 음악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분들이라도 이 두 곡의 리듬을 떠올리시면 대충은, 아바네라의 리듬을 연상하실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이 유럽에 역수입된 아바네라는 유럽으로부터의 이민들을 통해 남미 각지에 전해지게 된다. 그리고, 특히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전해진 이 리듬이 탕고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이, 현재 탕고의 기원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통설이다.
이처럼 세계 각지의 음악에 끼친 쿠바 음악의 영향은 그 후로도 1930년 대에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를 휩쓴 바 있는 룸바, 1950년 대에는 맘보의 붐으로 이어지게 된다.
특히, 푸에르토 리코, 멕시코, 쿠바 등 중남미 스페인어권 나라들 출신의, 이른바 히스패닉 인구가 전체 인구 중의 커다란 비율을 차지하는 미국의 경우, 히스패닉 계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라틴 음악의 시장은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조건 하에서,쿠바의 손(Son), 파창가(Pachanga) 등의 리듬으로부터 출발하여 쿠바, 푸에르토 리코 계의 뮤지션들에 의해,주로 뉴욕의 히스패닉 코뮤니티를 중심으로 발전하게 되는 다양한 댄스 뮤직들 중, 196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되는 것이 살사Salsa인 것이다.
국내에는 그 중 극히 일부분이 1980년 대 중반, 영화의 선전을 목적으로 잠시 소개되는 것에 그치고 말았으나, 그 후로도 미국 내에서의 살사의 인기는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어서, 현재에는 거꾸로 쿠바 본국의 뮤지션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는 형편이다.

비록 극히 표면적인 기술에 불과하지만, 쿠바 음악의 지금까지의 흐름을, 주로 쿠바의 밖에서 이루어진 일들을 중심으로 간단하게 살펴 보았다.
하지만, 이미 언급한 미국의 경제적인 지배와, 쿠바 국내의 독재 정권에 대한 반발은 카스트로, 게바라 등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혁명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1956년부터 시작된 3년 간의 게릴라 전에서 결국 승리를 거둔 반미 카스트로 정권은, 1960년에 미국계 자본을 몰수, 국유화하기에 이른다. 이후 계속되는 미국의 경제 봉쇄와, 망명 인사들을 중심으로 한 반 카스트로 운동에도 불구하고, 사회 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쿠바 국내의 음악적인 상황 또한 크게 바뀌어 가게 된다.




반 카스트로 파 뮤지션들의 대거 망명 등으로 인해, 혁명 이후의 쿠바 음악이 어느 정도는 활기를 잃게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파블로 밀라네스 (Pablo Milanes), 실비오 로드리게스 (Silvio Rodriguez) 등 이후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는 뮤지션들로 대표되는, 누에바 트로바 (Nueva Trova) 운동 등, 쿠바 정부가 중심이 되어 주도하는 문화 운동의 일환으로서 새로운 음악들이 출현하게 되는 것도 혁명 이후의 일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수 많은 음악적 재산들이 현재 쿠바의 중요한 경제적 소득원의 하나이기도 한 것이다.


※ 우리가 일반적으로 발음하는 쿠바라는 단어는 물론 스페인어의 발음에 가깝다. 영어로는 오히려 큐바에 가까운 발음을 한다.

그러나, 왠지 쿠바의 수도 아바나LAHABANA - 스페인 어에서 H는 음가를 갖지 않으므로 - 의 경우는 영어식 발음인 하바나를 따르는 일이 더 많은 듯 여겨진다.
물론 이후로는 아바나로 표기하기로 하는 점을 먼저 기억해 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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