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의 혁명 비밥(Bebop)!

2024. 5. 22. 22:18음악창고

음악창고

2012-08-14 22:37:50


 
 
"저녁 어스름에 뉴욕 52번가 민턴스 플레이 하우스엔 손님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오늘 저녁은 바로 이곳 클럽에 고정 출연하는 찰리 파커(Charlie Parker:알토 색스폰)와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트럼펫)라는 젊은 재즈 뮤지션들의 격정적인 연주가 기다리고 있다. 소문을 통해 익히 알고있던 새로운 경향의 재즈 음악에 사람들은 벌써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들의 들고 나온 비밥(Bebop)은 이전까지 스윙이 재즈의 전부인줄 알고있던 이들에겐 하나의 충격이었다. 사람들의 기대와 흥분으로 가득한 클럽 전면의 무대 조명은 켜지고, 이윽고 그들이 등장한다. 찰리와 디지, 그리고 막스 로취(Max Roach:드럼), 버드 파웰(Bud Powell:피아노)이 함께 하는 오늘 공연은 디지가 작곡한 비밥의 고전 'Groovin' high'로 그 시작을 장식한다.“


★ 대중음악의 혁명, 비밥(Bebop)!


1944년, 비밥 출현의 원년으로 기억될 이날을 기점으로 재즈는 스윙(Swing)이라는 국민음악에서 '흑인의 혼'이 점철된 아티스트들의 영역으로 환골탈태된다. 비밥(줄여서 밥이라고도 함)의 탄생은 재즈의, 아니 세계 대중음악계의 새로운 변화를 알렸다. 이제 대중들은 술맛을 돋우기 위한, 춤을 통한 찰나의 즐거움에 도달하기 위해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음표 하나, 화성 하나, 리듬 하나에 귀를 곤두세우고 연주에 집중해야 했다.

그렇다면 비밥이라 불렸던 이 새로운 음악은 과거 재즈 선배들이 무도장에서 연주했던 스윙과 전혀 별개의 음악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재즈 연주가 1930-40년대 스윙까지만 하더라도 춤추기에 좋은 음악이라는 점에서 중심이 철저히 대중이었다는 점에 반해 비밥은 바로 '연주자' 자신에게 위치한다. 대중음악역사에서 비밥이 가지는 의의는 물론 난해하기로 둘째라면 서러워 할 음악 텍스트 자체에도 있지만 대중음악이 바야흐로 '아티스트의 산물'로서 격상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 자리한다.

또한 음악적으로도 재즈사가들은 비밥의 시조를 위에 언급한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로 인정하지만 1930년대 몇몇 두드러진 스윙시대 선배들의 음악적 시도를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밥은 이전 스윙과 '전혀 별개의 돌출된 음악'이라고 못 박기는 힘들다. 실제로 비밥의 선구자 찰리 파커는 30년대 중 후반 부기우기(boogie-woogie) 열풍을 몰고 온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 악단의 테너 색스폰 주자 레스터 영(Lester Young)으로부터, 디지 길레스피는 로이 엘드리지(Roy Eldridge:트럼펫)의 영향을 받았다고 스스로 얘기할 정도로 스윙 시대 때부터 비밥의 출현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찰리 크리스천(Charlie Christian:기타), 아트 테이텀(Art Tatum:피아노), 레스터 영, 로이 엘드리지와 같은 1930년대 젊은 스윙 뮤지션들은 이른바 프로토 비밥(Proto bebop)이라는 지형도를 형성해간다. 이들의 연주는 물론 전형적인 스윙의 4/4박자 연주에 맞춰져 있지만 과감한 솔로 진행, 독창적인 코드 전개를 비롯하여 주요 멜로디에 부응하는 사이드 맨으로 한정시키기에 아까운 연주력을 지닌 '스윙시대의 또 다른 예외'로 기억되며 후대 재즈 뮤지션들의 연주에 귀감이 되었다.

여기에 1940년대 초반 재즈의 본거지인 뉴욕 52번가에 등장한 클럽 '민턴스 플레이 하우스'는 비밥 출현의 공간적인 배경이 된다. 위에 언급한 찰리 크리스찬, 레스터 영 등이 연주 활동을 하기도 한 이곳은 클럽 매니저였던 테디 힐(Teddy Hill)의 배려로 창작에 목말라 하던 젊은 흑인 재즈 뮤지션들이 활동할 수 있는 연주공간을 마련했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신인발굴에도 힘써, 이곳 클럽을 중심으로 '새로운 음악적 실험'을 가능케 하는 여건을 조성해줬다.

비밥을 얘기함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인물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 역시 이곳 민턴스 플레이 하우스에서 내공을 쌓으며 '재즈의 혁명'을 꿈꾼다. 1970년대 펑크(Punk)가 뉴욕 CBGB 클럽에서 '기존 록에 대안적인 새 음악흐름'을 태동시켰다면 1940년대 재즈의 잉태 공간은 바로 민턴스 플레이 하우스였다.

흔히 비밥을 어렵다고들 한다. 스윙에 차츰 익숙해지려는 사람들도 갑자기 비밥을 접하게 되면서 '이게 음악이야!'하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건스 앤 로지스(Gun'n Roses)의 초강력 메탈 사운드에 익숙해 있던 1980년대 록 청중들이 90년대 얼터너티브 사운드의 폭발을 알린 너바나(Nirvana)의 음악을 듣고 어리둥절했듯 1940년대 재즈 팬들에겐 비밥은 낮 설기 그지없는 음악문법이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먼저 비밥이 스윙처럼 음악에 맞춰 춤추기에 어려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반적인 스윙곡이 메트로놈으로 측정한 빠르기로 분당 비트가 110-120인데 비해 비밥은 대부분 비트수가 200을 상회하는(심하면 무려 290)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초스피드는 발이 따라잡기 어렵다. 그럼 느린 비밥 곡도 있지 않은가 반문할 수 있겠지만 90비트 이하의 느린 비밥 곡마저 당시의 상황을 미뤄볼 때 춤을 추기엔 버겁기는 마찬가지였다.

달리 뚜렷한 선율감의 부재 역시 비밥의 접근을 어렵게 했다. 찰리 파커의 명연 'Groovin' high', 'Ko-ko', 'Salt peanut', 'Donna lee' 등에는 뚜렷한 주제 멜로디 대신에 전혀 별개의 또 다른 연주 패턴이 중첩되어 오버랩된다. 도대체 어디고 시작이고 끝인지 분간이 안 된다. 드럼, 베이스, 피아노 파트로 참여한 연주의 사이드 맨들은 누가 연주를 리드하느냐에 상관없이 고난이의 애드립을 구사한다.

말하자면 한 두 악기의 즉흥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악기 전체의 총체적인 즉흥성(total improvisation)을 특징으로 하는 것이다. 회오리치듯 몰아치는 드럼 비트의 요란함, 정해진 경로의 화성이 아닌 디미니시 코드, 이른바 감(減)화음의 빈번한 사용을 통한 반음계적 전개는 청중들의 귀를 한번 더 의심케 했다.

이런 난해성을 바탕으로 한 음악에 1940년대 대중들의 반응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음악도 아니다'라는 식의 혹평은 말할 것도 없고 디지 길레스피, 찰리 파커를 위시해 대부분의 젊은 비밥 연주인들은 출현 당시엔 이렇다할 주목을 받지 못했다. 술과 마약으로 우울한 생을 보낸 찰리 파커는 결국 주목받기도 전에 세상을 등졌고 디지 길레스피, 막스 로치, 셀로니우스 몽크 ,버드 파웰과 같은 쟁쟁한 비밥 뮤지션들도 1950년대 후반에 가서야 비로소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한다.

비밥은 그러나 대중음악 전반에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것은 이후에 전개될 대중음악 내의 끊임없는 '혁신의 미학'을 제시했다. 비밥의 정서란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정서였고, 그 새로움의 추구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승화한다는 점을 시범한 것이었다.

1940년대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50년대 마일즈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60년대 오넷 콜먼 등이 지금껏 재즈의 대가로 융숭하게 대접받는데는 바로 그들의 음악에서 감지되는 '혁신' 때문이다. 대중음악인들의 '새로움을 향한 몸부림'은 비단 재즈 영역뿐만 아니라 비틀즈와 레드 제플린, 섹스 피스톨스, 닐 영, 너바나로 대변되는 록의 지존들에게서도 확인되듯 '혁신'은 대중음악을 이끌어온 동인(動因)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재즈 팬들이 천착하고 있는 장르는 비밥이다. 당연히 오늘날 비밥은 재즈를 대표하는 장르가 됐다. 비밥의 성격을 '어렵다'로 규정하기에 앞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런 상황적 요인들을 전제할 필요가 있다. 당시 젊은 흑인 뮤지션들은 비밥을 통해 그토록 갈망했던 '예술 혼의 발현'은 성취했다. 댄스를 위한 연주에 한정 당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들은 모종의 음악적 실험을 감행한 것이다.

그 결과 나온 비밥이 그리하여 시대적, 음악적으로 20세기 대중음악사의 빼놓을 수 없는 위대한 사건으로 기억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음악은 대중들의 갈채에 앞서 아티스트의 자유와 혼이 선행된다는 사실을 비밥이 다시금 알려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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