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노래 "카라얀의 브루크너 7번"

2024. 5. 22. 22:03음악창고

음악창고

2012-08-14 23:51:53




이별의 노래 "카라얀의 브루크너 7번"







를린 필의 팀파니 주자를 역임한 베르너 테리헨은 자신이 쓴『푸르트벵글러인가? 카라얀인가?』라는 책에서, 푸르트벵글러와 카라얀의 차이를 <예술가>와 <통솔자>의 차이로 정의한다. 스스로 작곡가이기도 했던 푸르트벵글러는 작품이 자신의 자식인 것처럼 오케스트라를 자기의 체험 세계 속에 끌어드리는 유형의 지휘자였던 반면에, 카라얀은 "작품을 눈앞에서 완성해 가는 위대한 음악 감독"이고 자기의 연주에 대해 늘 객관적이었다고 서술하면서, 스스로의 개성과 방식을 모두 던져 전인격적으로 작품을 향해 갔던 푸르트벵글러에 대해 카라얀은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화려한 음의 두루마리를 만들어 갔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론 이러한 음악적 접근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예술적 취향의 문제이지, 가치 판단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테리헨의 평가에 일정 부분 동의하면서, 카라얀 음악의 정수가 하나의 완결된 형태로 판단할 수 있는 음반이 1989년 4월에 그가 살아 생전 마지막으로 남긴 빈 필과의 브루크너의 7번 교향곡 녹음이라고 생각한다.

80년대에 들어와서 카라얀은 자신과의 유대감이 희박해진 베를린 필과의 활동을 축소시키면서, 빈 필과의 연주와 녹음을 늘려가던 중에 발표되었던 음반들이 베를린 필과의 연주에서 들을 수 없었던 독특한 음색과 분위기를 표현해내면서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게 되자, 자신의 주요 레퍼토리를 빈 필과 함께 디지털로 새롭게 녹음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작업을 하였는데, 그 중 마지막 사이클이 브루크너 후기 교향곡이었다.

루크너는 오스트리아의 린츠 근교인 안스펠덴에서 태어났다. 이곳에는 유럽에서도 가장 좋다는 파이프 오르간이 있는 성 플로리안 수도원이 있으며, 그는 평생 이 성당의 파이프 오르간 주자로 살았으며, 지금 이 수도원 지하에 그는 자신이 아끼던 오르간 밑에 잠들어 있다. 브루크너의 이러한 경험은 그가 만든 11개의 교향곡이 모두 오르간적인 중후한 음향이나 종교적 깊이를 지니게 한다. 그러나, 브루크너는 오랫동안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물론 새로운 형식과 그 길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시 그가 빈의 음악계에서 마땅찮게 여겨왔던 바그너의 열렬한 숭배자였기 때문이다. 1883년 그가 이 교향곡을 작곡하던 중, 바그너의 부고를 접하게 되자, 제2악장에 장송행진곡을 추가하여 이 거장의 서거를 추모하였기에 <이별의 노래>라는 부제로 불리기도 한다.

라얀 자신에게도 브루크너 교향곡의 녹음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1944년 세계 최초의 시험 녹음의 연주를 그가 의뢰 받았을 때, 선택했던 곡이 브루크너 8번 교향곡 2∼4악장 발췌 녹음이었고, 그의 마지막 녹음이 이 음반인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이었다는 것도 그러하고, 브루크너의 작품을 가장 잘 해석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전임자인 푸르트벵글러와 그의 후계자이자 카라얀의 경쟁자였던 첼리비다케였기 때문에 그들이 완성하지 못하였던 브루크너의 교향곡 전집을 완성시켰고, 또한 베를린 필과의 전집을 기점으로 자신의 객관적이고 정확성에 토대를 둔 지휘 방침이 푸르트벵글러의 유령으로부터 벗어나 평가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 그러하다.

히 그의 마지막 유작인 이 음반에서 들려오는 연주는 오케스트라의 모든 음들이 어떠한 인공적인 노력 없이, 자연 발생적으로 흘러나와, 4관 편성의 대관현 악단의 합주가 마치 소편성 실내악단의 연주처럼 들릴 정도의 극한에 달한 합주력으로서, 이것은 그의 음악적 방향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한 인간으로서 평생을 두고 노력해왔던 목표에 도달했다는 점에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또한 현대 관현악의 연주 역사에 두 번 다시 들을 수 없는 기적의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치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고 미끄러지듯 연주하는 유연한 흐름, 그리고 플루트와 첼로가 엘레지 풍으로 노래하는 부분에서 나타나는 정열은 그가 이상형으로 추구하였던 음색과 선율에 대한 극도의 예민함 그리고 완벽함 미감에의 집착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리고 코다 바로 앞에서 처음 들어가는 팀파니 소리를 배경으로 첼로가 노래하는 부분의 절묘함은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한숨이 나오게 한다. 그리고, 제 2악장인 아다지오 악장의 모데라토의 부주제부에서 나타나는 현악기의 음영이 깊은 표현은 빈 필의 우수함과 맞물려 쓸쓸함 속에 묻어있는 아름다움이 빛을 발하고, 바이올린과 첼로가 나누는 대화는 마치 연인들이 이별하는 안타까움이 묻어있다.

70년대까지 그가 들려주었던 감각적인 성향으로 표면을 다듬어 내려는 모습이 이제는 정점에 달해, 억지로 꾸민 장식적인 아름다움에 연연하지 않고, 마치 모든 악기들이 연주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소리들을 드러내는 듯, 소리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 느껴지게 하는 연주는 우아하고 유려한 음색 위로 미묘한 빛의 광채가 유동하는 음의 향연이고, 여기에 빈 필 특유의 매력까지 더해 육감적인 관능미까지 느껴질 정도의 탐미적인 아름다움에 넘치는 오케스트라 앙상블의 극치를 보여준다.

론 그가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을 자각하고 녹음했을 리는 없지만, 이 곡이 갖는 <이별의 노래>라는 성격이 이렇게 처절하게 나타나는 연주는 없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최정상에 서있던 그에게 음악 내적, 외적으로 쏟아지는 모든 찬사와 비난을 뒤로하고 이제는 음악을 통해 이승과 마지막 인사를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인사가 처절할 정도로 아름답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론 그는 푸르트벵글러가 지니고 있었던 철학적 논리나, 예술적 영감을 보여주는 지휘자는 아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음악적 사유에서 스스로를 반영시켜 나가면서, 자신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갔던 거장이었다.

제는 그에 대한 부당한 편견이나 비난 혹은 그에 대한 맹목적인 찬사로부터 벗어나 그가 남긴 음반에 대한 평가를 새롭게 시작해야할 때가 아닌가 한다. 어쨌든 그는 1950년을 기점으로 20세기 후반부를 대표하는 지휘자이며, 그의 활동으로 인해 본격적으로 클래식 음악계와 음반 산업이 가속도가 붙게 되었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며, 또한 그는 20세기 오케스트라의 지휘법의 모범적인 규범을 확립한 명지휘자로서의 평가를 마땅히 받아야한다고 생각한다.

리고 그 평가의 정점에 이 음반이 놓여야 한다고........
 

'음악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뉴에이지 2  (0) 2024.05.22
보사노바................  (0) 2024.05.22
Suchitra Krishnamurthy---Aha Aha  (0) 2024.05.22
성 악 (Vocal Music)  (0) 2024.05.22
I Like You / Donovan  (0) 2024.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