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와 까마귀

2024. 8. 9. 11:21내마음의창

마음의산책

2012-08-09 00:16:26


까치는 우리의 마음에 까마귀는 일본인의 마음에
둥지를 튼새입니다
밤과 낮처럼 서로 떨어져서 산적이 없는우리와 일본입니다.
미워하다가 보고싶어 안달하는 야릇한 연인같기도한
우리와 일본입니다
왜 무엇 때문에
천년을 두고 만년을 두고 아옹다옹이었을까
그궁금증 때문에 일본이 보고 싶었습니다.
그아픔의 세월을 뒤집어 놓고 싶어서
그들의 언어를 혼자서 습득했습니다.
이땅에 사는 모든이들이
해외여행의 시작은 일본,
결코 가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이들의 마지막 여행지도
일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누구나가 한구절씩은
절실하게 읊어댑니다.
일본은 있다 또는 일본은 없다고요
그도 그럴것이 그들은 무슨한이 그리도 깊었는가
우리의 허리 백두대간에 쇠못을 박아
저주를 내리는 잔혹한
비열한 족속이었습니다.

태초에 세상이 열리고 한번도 남의 땅을
침범해 보지않은 우리와
목숨을 걸고 조상대대로 우리를 침범해 왔던 그들은 누구인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하는 나의 궁금증은
한주간의 일본여행을 선물받게 하였습니다.

비행기안에서 내려다본 우리의 땅은
동해의 푸른물결에 잠겨있고
일본은 거대한 태평양의 숨결에
잠겨 있었습니다.

산천초목이 온통 간지럽고 잔잔합니다.
사람들 마저 자잘한 돌맹이처럼
모두가 비슷한것이 조그마하게 보였습니다.
잘 다듬어 지지 않은 투박한 질그릇같은
조금은 자유분방한 우리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또한 우리의 산과 나무는 얼마나 우람하고 무성하게
천지를 뒤덮고 있는데 말입니다.
바둑판처럼 정교하게 정리된 도시와 농어촌은
깨끗하게 잘 꾸며진 하나의 거대한 정원을 보는것 같았습니다.
그들의 표정속에서도 먼지 한점 없어보여
신기하기만 하였습니다.
해와달은 그들과 우리가 공유한것이 였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생성되는 모든빛과 색깔은 달랐나봅니다.
발디딜틈없는 도시의 군상들속에서
그들은 분명 우리와는 다른 품성을 지녔음을
발견했습니다.

마지막 여정
동경의 아침을 밝히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까욱까욱
독수리의 기상을 지닌 이까마귀의 울음소리는
나의 혼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여행하는 동안 언제나 산에서 들에서
커다란 까마귀들의 날개짓을 봤습니다.
그러나 하늘로 치솟은 높은 빌딩의숲
한가운데에서
온통 까마귀의 울음소리로 뒤덮인 동경의 아침은
경이로왔습니다.
기이한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창문을 열면 맑은공기가 신선합니다.
까마득히 내려다 보이는 거리에
사람들의 바쁜 걸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까아만 양복에 흰와이셔츠의 청년, 장년들,
새까만 정장의 단발머리 숙녀들 ,
흰줄이 그어진 세일러복의 짧은치마의 여학생들.
깡총하게 짧은 반바지의 소년들.
마치 까마귀들의 행진을 보는것 같았습니다.
그들어디에도 흐트러진 모습은 없었습니다.
거대한 까마귀들의
경쾌한 행진을 보는것 같았습니다.
얼마나 정교하고 엄숙한 일상의 행진인가
머릿끝이 숙연해졌습니다.
그들과 우리는 동화속의 배짱이와 개미처럼
느껴지기도했습니다
한순간 누가 우리를 부지런한 민족이라고 했을까
의아해졌습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라는 가난했건만
언제나 태평성대를 노래했던
우리님들의 영혼을 들여다 보게 되었습니다
그도그럴것이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었으니....> 하고 행복하기만한
이강산이었으니.
그랬습니다
그들에게는 우리에게는 없는 것이
신이 내린 선물이 있었습니다.
지진...
지진이 있었습니다.
있으돼 느껴지지 않는것과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사이 처럼 엄청납니다.
삶의 한가운데엔
죽음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절대절명의 위기속에
언제나 깊이 잠들지 못하는
가엾은 영혼들이었습니다.
야생의 동물적인 감각은 그들 모두에게
주어진 운명이었고
죽음을 생명으로 전환시키는 에너지가
되고 있었습니다.
살기위한 몸부림으로.
죽어도 죽지않는 불사신의 혼으로
타오르고 있었던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바람의 흔들림에도
그들은 안심할수가 없었을것입니다.
그들의 정신세계는
모든사물 나무에도 바위에도 고양이에게도
깊은 의미를 갖게하며
신앙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깊은강물 위에도 신사의 상징물이
사시사철 떠 있었습니다
세상의 온갖 신들이 모여 존경받는 신의 천국이었습니다.

우리에게 기쁨으로 닥아오는 까치는 그어디에도 없었고
참새들의 지저귐은 더욱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영하의 추위속에서도 맨살에 짧은 바지를 입혀서
강인함을 기른다는 일본의 소년들
아슬아슬 짧게 올라간 여학생의 교복 스커트에
아무도 눈을 돌리는자 없는 거리.

그들만의 독립된 사고와 행동이 자유롭게
허용되고 존중되는 거리는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상자에 넣고 찍어낸듯이
예의바르고 친절한 품성이게 하였을까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고.
어느 한편에 소속이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수 없는
절대적인 그들만의 생의 방식은 칼의 문화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생각되었습니다.
우리들의 눈에는 독특하게 보여지는 그들의 삶의 방식이
가슴서늘하기도 하였습니다


까마귀. 그들속에 깊이 뿌리 내리고
검은 까마귀 아침마다 까욱대며
그들의 길조가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죽음으로 받아들여지는 까마귀
였으나 그들과 언제나 함께 살아 숨쉬는
까마귀는
그들에게는 없어서는 않될 길조였습니다
지진으로 천지가 뒤엎어진 아침에도
살아남아서 까욱대는 까마귀의 울음소리를
들어야 생존의 환희가
가슴에 깊이 꽂혀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미뱃속에서부터 그들은 탈출을 꿈꿔왔습니다

땅이 갈라지고 하늘이 캄캄해지는 지진의 고통
이제야 우리가 왜 수없이 그들에게 침범당하여
할퀴어지고 있었는지를 알것 같았습니다

그탈출에의 몸부림은 오늘날
빛나는 문화와 경제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그들
이제 다시는 되풀이 말아야할 그들과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글을 전해 주기전에 도자기를 전해주기전에
멋스런 우리의 의류문화를 전해주기전에는
천둥벌거숭이.. 그자체였음을
위안하며 미움에 빠지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싶었습니다.
만년을 푸르른 소나무의 기상을 닮은 우리는
너무나 선한 족속이었습니다.
지헤로운 족속이었습니다
우리의 자존을 되찾고 우리가 그들의 손을
잡고 가야함이
우리의 운명이기도 합니다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너무나
따뜻하였습니다

2003년 5월 12일 까꿍

'내마음의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마음의 풍경 (風磬 )  (0) 2024.08.09
산수연(傘壽宴)  (0) 2024.08.09
낙엽(落葉)  (0) 2024.08.09
깊어 가는 가을산  (0) 2024.08.09
하얀 얼음꽃  (0) 2024.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