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서 암스테르담으로 가다

2024. 5. 20. 12:22꿈속의까미노순례길

2018-12-24 01:36:52


06JUN 파리(Paris)CDG Airport Charles de Gaulle 18:35 -Amsterdam 20:00 - 06JUN 21:25 Amsterdam - 서울 (Seoul)14:50 ICN.01012019.

 

한치앞을 내다 볼수없는

인간의 나약(懦弱)함을

다시 확인(確認)하는 시간이 내눈앞에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시간을

정확하게 지켜야하는

나의 사정(事情)은 아랑곳 하지 않는 비행기는

이륙(離陸)의 시간을 지체(遲滯) 시키면서

귀중한 한시간이 흘러가 버린것이다

 

프랑스 파리 샬를드골 국제공항

서울행 비행기안에서 몇몇 탑승객들은

가방을 챙겨들고 비행기에서 훌훌 떠나가고 있었다

 

나의 경우에는 특별한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미련없이 떠나가는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죽치고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던것이다

 

한시간 정도 비행후에 암스테르담에서

다른 항공기로 갈아 타야 하는

비행 스케줄 때문에

하루가 연장(延長)될수밖에 없는 상황(狀況)을

인식하게 되어 답답하고

실망스러웠지만 어쩔도리가 없었던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지체한 비행기는

암스테르담으로 날아가서 멈춰서게 된것이다

내가 타고 있어야 할 비행기는

벌써 한두시간 전에 이륙(離陸)하고 없는것이다

 

서유럽 여행때 와보았던 네달란드 암스테르담

커다란 풍차의 나라 암스테르담

땅이 해수면(海水面)보다 낮기 때문에

얼마나 불안할까 하는 걱정을 씻어 낼듯이

지상(地上)에서 가장 아름다운

튜우립 꽃밭으로 유명한 네델란드는

내가 어린시절 읽었던 책속에서

바닷가에 살았던 한스 브링커라는 소년이

학교에서 하교(下校)하는 길에

제방에 뚫린 구멍에서 바닷물이 새어 들어오는것을 보고

밤새도록 손으로 막아서

온몸으로 막아서 나라를 구했다는 이야기가

너무나 감동적으로 가슴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어서일까

내가 스페인 까미노 여행 예약(豫約)할때

암스테르담을 경유(經由)하는

프랑스 항공편을 선택했던것도

그런 이유가 다분히 많은것도 사실이었고

제주여행갔을때

서귀포 용머리해안의 하멜 상선전시관(商船展示館)에서의 기억도

역사(歷史)속의 네델란드는

무척이나 호감이 가는 나라중의 하나였기도 한것이다

 

거친 풍랑(風浪)에 떠밀려 표류(漂流)하던 네델란드 상선은

1653년 8월 15일 제주앞바다에서

난파(難破)되어 선장(船長)과 몇몇사람들은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36명이13년동안 억류되어 살다가

1666년 9월 14일 조선 효종 4년에 배를 몰래 구매하여

일본에 있었던 네델란드 동인도 회사로 탈출하게 되었고

그당시에 출판(出版)하게된 "하멜 표류기"는 유럽의 전역에

선풍적인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는 작품(作品)으로 등장(登場)하게 된것이다

 

그리고 동방(東方)에 묻혀있던 조선(朝鮮)이 알려 지게 되고

네델란드는 조선(朝鮮)과의 교역(交易)을 준비했지만

일본이 이들과 조선(朝鮮)의 중계무역(中繼貿易)으로 인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잃을것을 염려한 방해공작(妨害工作)으로 무산된것이다

그래서 그당시의 조선(朝鮮)이 네델란드를 통하여

신세계(新世界)의 신문명(新文明)을 접하게되는 기회(機會)를 차단 당하게된것이다

이시대로 부터 조선(朝鮮)은 일본에 의해서

행운(幸運)을 맞는것이 아니라 악운(惡運)을 맞는 불행속으로

깊이 침잠(沈潛)되어간것이라고 할수있는것이다

그당시 일본은 맨처음 군함 4척을 이끌고 일본에

상륙했던 미국과 어쩔수없는 교류(交流)를 맺었으며

타종교 선교를 질겁하는 일본의 완고한 거부(拒否)로 인하여

천주교 선교를 포기한 네델란드는

미국상륙(上陸)이전에 일본에 진출(進出)하여 일본(日本)을

신문명국가(新文明國家)로

통상무역국가(通商貿易國家)로 변형(變形)시켜가고 있었던것이다

 

지금으로 부터 까마득한 먼 옛날 350년전의 조선(朝鮮)에서

있었던 "하멜의 표류기" 이야기는

처음인것 처럼 생각되지만

하멜이 표류해오기 26년전에 같은 동인도 회사에 근무했던

네델란드인 벨테브레라는 사람도 제주 해역에서 표류하게되어

배에서 내렸다가 서울로 압송되어 박연이라는 이름으로 귀화하여

한국여인과 결혼하여 정부의 관료직을 맡으면서 살다가

하멜이 표류되어 조선에 왔을때 통역하는 일로 만나서

평생돌아갈수 없는 자기나라 사람을 만나서

옷섭이 다 젖도록 울었다는 기록(記錄)에

가슴이 저미는 슬픔이 눈에 선해지는것이다

 

죽은줄만 알았던 사람들이 13년만에 살아서

돌아간 15명의 생환(生還)이 얼마나 기막힌 기쁨이었을까

상상을 초월하는 고난을 이겨내고 본국으로

돌아간 네델란드사람들의 의지(意志)는 한때 세계를

주름잡았던 해양선진문명의 대국(大國)이었음이

부럽기도하고 지금으로부터

350년전 네델란드상선(商船)의제주도표류기는

꿈같은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는것이다

 

오늘 집으로 돌아갈수없다는 걱정스러움은

잠시 접어두고 암스테르담 공항(空港)에 도착(到着)하여

간단한 통과수속(通過手續)을 마치고 공항밖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공항근처에 있는

오늘 숙박(宿泊)하게 되는 IBIS HOTEL에 도착했다

아침과 저녁식사가 호텔에서 제공(提供)되고

공항의 식당(食堂)에서 사용할수있는

10유로 티켓을 받았다 그리고

나에게 배정(配定)된 2층의 방으로 올라갔다가

저녁식사를 하기위해 4층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특급호텔 뷔페식당의 메뉴로 가득한 레스토랑에는

여행객들과 일반손님들이 식탁(食卓)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서양식 스테이크 일식 중식까지 없는 음식이 없을 정도

음료수(飮料水)와 과일 디저트 음식까지

산해진미(山海珍味)가 다 있었지만

한접시 이상은 먹을수가 없으니까 그신기(新奇)한

음식들을 눈으로 즐기면서 커피한잔으로 맛잇는 저녁식사를 마쳤다

 

다른 여행객들은 짝을 이루고 시내 관광(觀光)을 즐기려고

한껏 밝은 표정으로 호텔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나역시 하루를 이곳에서 지낼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이용하여

지난번에 왔을때 타지 못했던

크루즈를 타거나 미술관(美術館)에 갈수도 있겠지만

포근하고 아늑한 호텔방에서

오랫만에 평화로운 게으름을 피우는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다는 생각으로

방으로 돌아와서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던것이다

 

지금의 나에게

한껏 베풀어지고 있는 자유(自由)

지금의 나에게 한껏

베풀어지고 있는 여행(旅行)의 자유(自由)란

열심히 일하고

정직(正直)하게 살아온 사람들만이

향유(享有)할수있는

하늘이 내린 특권(特權)이 아닐까

하늘이 내리는 축복(祝福)이 아닐까

하는 감사(感謝)함으로 가득하다

 

푸른호수에 떠있는 백조의 우아함은

수면아래서 잠시도 멈출수없는

힘든 발동작에서 기인(起因)한다는 비유(比喩)처럼

내가슴속에서

지워질수없는 풀지 못하는 숙제들은

엄동설한의 냉기(冷氣)처럼

가슴속을 파고 드는 비수(匕首)가 되어

언제나 나를 아프게 하는것이다

 

이념(理念)이란 무엇일까

인간의 삶안에서

그괴물같은 이념(理念) 때문에

가정(家庭)이 파괴(破壞)되고 가족(家族)이 파괴(破壞)되고

국가(國家)가 파괴(破壞)되는것을 목격(目擊)하면서 나는

때때로 아연(啞然) 실색(失色)하고 절망(絶望)하게 되고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게 되고 울부짓기도 하는것이다

 

내가 진정(眞情)으로 원하지 않는 그이념(理念)의 사슬이

나를 올가미에 가두고 운명(運命)의 뜨거운 불길속에서

가슴을 태우고 방황(彷徨)하는 외로운 섬이 되게 하는것이다

 

사람의 생각이나 사상(思想)은 인류(人類)가 존재(存在)하는

그날부터 인간(人間)의 역사(歷史)와함께 진화(進化)되어온것이다

수많은 사상(思想)과 이념(理念)이 철학(哲學)이라는 이름으로 생성(生成)되어

이인간사회(人間事會)를 지배(支配)하다가 소멸(消滅)하기를 반복(反復)하여 온것이다

수많은 종교(宗敎)의 출현(出現) 또한 마찬가지 차원(次元에서

생성(生成)되었다가 소멸(消滅)되어가는것이다

인간이 생존(生存)하는 한

인간과 함게 생존(生存)할수밖에 없는

이들 사람들의 이념(理念)과 철학(哲學)과 종교(宗敎)가

아직도 어떤것이 진실(眞實)된 것이고

완전(完全)한 것이라는 결론(結論)에 이르지 못하고

이세상속에서 바람처럼 사람들의 삶속에서

날마다 뒤척이면서 성장(成長)하고 성숙(成熟)하여 가는 단계(段階)에 있는것이다

 

그 모든 사상(思想)과 이념(理念)이 완성(完成)에 이르는 그날은 언제일까

내가 스페인에서 가장 가슴속 깊이

품고 가게 되는것은

레콩키스타의 정신(精神)같은것이 될것이다

 

야고보 성인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레콩키스타(國土回復運動)정신(精神)으로

이지상(地上)에 건설(建設)했던것이다

 

이것은 전적(全的)으로 내 개인적(個人的)인

관점(觀點)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고 체험(體驗)하고 결론(結論)짓게 된

나의 고유(固有)한 생각으로서

나의 미래(未來)의 소망(所望)이 담겨진 말 일수도 있는것이다

하느님의 제자(弟子)로서의 야고보성인은

복음(福音)을 전하는 오늘날의 신부(神父)와 같은

존재(存在)라기 보다는

나라를 구하는 영웅(英雄)이요 전사(戰士)로서

스페인의 땅위에 보이지 않는 성지(聖地)

하는님의 나라를 건설(建設)했던 장본인(張本人)이셨던것이다

 

이슬람교도들의 800년동안의 오랜 지배(支配)에서

나라를 구(求)해내었던 영웅(英雄)이셨던것이다

이베리아반도 서북단에 위치하며

대서양(大西洋)에 면해있는 갈리시아 (Galicia)지방은

레콩키스타의 끈질긴 투쟁(鬪爭)의 역사(歷史)가

숨쉬는 땅인것이다

 

야고보성인께서 이곳으로

복음(福音)을 전파(傳播)하기위해서 오셨고

이곳에 하늘에서 별이 쏱아지는 벌판을

이룬 성지(聖地)를 이룩한것도

예견(豫見)된 하느님의 성지(聖志)로 생각되어지는것이다

 

스페인은 세계역사(世界歷史)속에서 가장 먼저

세상(世相)에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주의(帝國主義) 나라가 되었다

그것은 레콩키스타의 영웅(英雄)이 일으킨

스페인의 통일(統一)을 이룩했기 때문에 얻어진

하느님의 축복(祝福)일것이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던것이다

 

사람은 누구나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살지는 않을것이다

사람마다 꿈과 희망(希望)이 틀릴것이고 이루고 싶은 소망(所望)이 다르고

무엇에 가장 큰 가치(價値)를두고 살며 가고자 하는 방향(方向)도 다를것이다

 

나는 내가족(家族)과 내조국(祖國)의 안녕(安寧)이 가장 큰 가치(價値)를두고 사는것이 된다

그것은 누구의 가르침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삶의 역사(歷史)가 그것을 선택(選擇)하게 만든것이 되는것이다

 

남들은 내가 해외여행지(海外旅行地)로 나갈때 반드시

태극기(太極旗)를 가지고 가는것을 이상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조금은 쑥스럽기도 한일이지만

태극기(太極旗)는 나의 간절(懇切)한 소망(所望)의 깃발이 되는것이다

내가 죽기전에

이루고 싶은 꿈이 이깃발속에 숨어있기 때문일것이다

 

내가 스페인의 산타마리아 대성당(大聖堂)이 있는 광장(廣場)에서

내가 열심히 태극기(太極旗)를 펼쳐놓고

사진을 찍고 있을때

광장(廣場)의 벤취에서 과일을 먹으면서

한가로운 오후의

화사한 봄날의 햇살을 즐기던 할아버지가

닥아와서 자신이 사진의 모델이 되겠다고

자청(自請)을 하셔서

태극기(太極旗)와 성조기(星條旗)가 함께 나오는

멋진 모델이 되어 주시기도 했던것이다

엄지손가락을 높이 치켜세워 주면서

격려(激勵)해주시는 할아버지

얼마나 감격(感激)했는가 지금도

가슴뭉클해지는 감사(感謝)함으로 기억(記憶) 되는것이다

 

스페인의 레콩키스타들은 780년 동안의

이슬람지배자들을 내쫒고 1492년 독립(獨立)을 선언하였다

완전(完全)한 통일(統一)을 선언(宣言)하게 된것이다

1492년 그해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하는

인류의 문명(文明)의 변화(變化)에 지대한 공헌(貢獻)을 하는

위대한 업적(業績)을 이룩한 스페인이기도 한것이다

 

옛어른들이 이르기를 악(惡)한자 옆에 있으면

정(釘)맞는다고 했다

악(惡)한놈 옆에 있으면 그가 벼락을 맞을때 함께

죽음을 맞는다는 말이다

좋은 사람옆에 있으면 그사람의 영향을 받아서

그사람처럼 좋은 일이 가득해진다는 말도 되는것이다

 

나는 32일간의 스페인의 까미노 순례길을

맨땅에 헤딩하면서 걸어서

걸어서 스페인과 한몸을 이루고 호흡하며 살았다

 

내가족과 나를 알고 있는 의사들이

절대로 가지 말라고

말렸던 스페인 여행은 내가 선택한 일중에서

가장 유익한 좋은 친구가 될것이란

생각이 가슴속에 새겨지는 시간이 된것이다

 

스페인 까미노 데 산띠아고

그곳은 땅과 하늘과 나무와 돌들과

강물과 작은 짐승들까지

어여쁘고 착하고 그모든것들이

하느님의 말씀처럼 살고 있었던것이다

 

하다못해 길가에 늘상 나와서

노닐고 있는 강아지와 고양이들도

사람을 보고 짓거나 재빠르게 도망치지 않고

한가롭게 길바닥에서 재미있게 놀거나

낮잠을 자기가 일수인것이다

 

한없이 달콤한 맑은공기와

바람이 향기롭고

푸른 하늘위로 흘러가는

하얀구름도 한없이 정겨웠던 그 산천이

사람들이 살아야하는 땅으로

보였었고 느꼈고 부러웠던것이다

 

사람들의 친절(親切)함이란

말할수없을만큼 정중(鄭重)하고 따뜻했고

평화(平和)로움으로 그마음이 가득하게 했던것이다

 

그래서 그곳은 하느님의 나라가

이러한 곳인가를

알아보게 하는 카톨릭국가의

본모습을 일깨워주는곳이었던것이다

 

이것이 태초(太初)에 사람이 살아왔던 본모습일것이고

먼 미래 그때에도 이렇게 사는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方法)이며

정상적(正常的)인 법칙(法則)일것이라고

생각되엇던 것이다

농촌(農村)과 들에서 강(江)가에서

도시(都市)에서 살고 있는 모든사람들이

평화롭고 행복한 모습이 너무나 부러워서

땅바닥에 주저 앉아서 울고 싶을정도 였다면

내가 너무 과잉반응(過剩反應)을 하는것일까 ?

이들의 삶의 반대(反對)는 어떤 삶인가 ?

우리들의 삶은 이들과 어떻게 다른것인가 ?

 

지금 현재(現在)의 카톨릭은

많은 비난(非難)과 비판(批判)의 대상(對象)이 되고

광기(狂氣)어린 혼란(混亂)의 시간(時間)을

보내고 있는 것을 누구나 인식(認識)하고 잘알고 있는것이다

 

그러나 카톨릭의 본질(本質)은 성서(聖書)로부터 출발(出發)하는것이다

그리스도교로 분리되는 기독교(基督敎)도 카톨릭을 떠나서

그생명(生命)의 뿌리를 찾아 낼수는없는 것이다

 

그렇게 분리(分離)된것이 옳다고 우길것이 아니라

인간(人間)이 하는 일에는 실수(失手)가 범(犯)해진다는

평범(平凡)한 진리(眞理)을 외면하지 않는다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가를 이해(理解)하는것이 어렵지는 않을것이다

 

성서(聖書)속에서 사람을 물건(物件)으로 보지 않은

영적(靈的)인 존재(存在)로 인정(認定)하고 계시는것은

인간에 대한 정의(定義)를 내리신것이다

 

그런데 공산주의자(共産主義者)들은 무신론(無神論)이라 정의(定義)하지 않는가 ?

두말할것도 없이 그들이 무신론(無神論)의 이론(理論)으로

공산주의(共産主義) 이념(理念)을 인간(人間)에게 세뇌(洗腦)시키는것은

힘있는 위정자(爲政者)들이 본인들의 이득(利得)을 위해서

사람들의 영혼(靈魂)을 빼앗아 가는 것이다

존엄(尊嚴)한 인간(人間)의 영혼(靈魂)을 강제(强制)로 강탈(强奪)하여 가는 범죄행위(犯罪行爲)가 되는것이다

 

인간(人間)을 영혼(靈魂)없는 짐승으로 만들어서

소나 돼지로 삼아서 자신들의 입맞에 맞는 물건(物件)으로 사육(飼育)하겠다는

엄청난 속임수로서 인간(人間)을 위정자(爲政者)들의 이념(理念)의 도구(道具)로 쓰겟다는것이다

인간(人間)은 누구라도 누구의 도구(道具)로 이용물(利用物)이 되어서는 않되는것이다

 

이 지상(地上)에서 거대(巨大)한 괴력(怪力)을 발휘(發揮)하며

일어났던 공산주의(共産主義) 혁명(革命)

그리고 그 다음 단계(段階)의 사회주의(社會主義) 혁명(革命) 모두가

이지상(地上)에서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施行錯誤)를 일으키면서

실험(實驗)되다가 이지구상(地球上)에서

사라진지가 벌써 반백년이 넘어선것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는것이다

 

그런데 세계(世界) 10代 경제대국(經濟大國)의 지위(地位)에

우뚝 서 있는 오늘날의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사대육신(四大六身)이

멀쩡한 이나라 사람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大韓民國) 땅에서

아직도 공산주의(共産主義) 이념(理念)을

찬양(讚揚)하고

신천지(新天地)를 발견(發見)한것 처럼

날뛰면서

날마다 광분(狂奔)하는것을 본다는것은

참을수없는 분노(憤怒)와

참담(慘憺)한 절망(絶望)에 잠기게 되는것이다

 

지상천국(地上天國)을 노래했던 공산주의(共産主義)가

수천수만(數千數萬)의 사람들을 강제노역(强制奴役)과

굶주림으로 떼죽음을 당하게 하여

지구(地球) 뒤편의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난 다음에

지구촌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북한의 공산주의(共産主義)집단은

 

생명(生命)의 위협(威脅)을 느끼고

좋은 방향(方向)으로 생각을 바꾼것이 아니라

끔찍하게도 성서(聖書)를 벤치마킹한

인간(人間)이 유일신(唯一神)으로 둔갑하여

주체사상(主體思想)의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종교집단(宗敎集團)의 유일교주(唯一敎主)가 된것이다

 

 

 

대한민국(大韓民國) 건국(建國)이후 땅속깊은 지하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대한민국(大韓民國)의

동족(同族)을 무참(無慘)하게 살상(殺傷)해 왔던 북한의 붉은 무리들은

폭력(暴力)과 살상(殺傷)만으로는 대한민국(大韓民國)을

무너뜨릴수없다는것을 어느 순간 깊이 자각(自覺)하게 되었고

 

절치부심(切齒腐心) 무슨 수단(手段)을 동원해서라도 대한민국을

적화통일(赤化統一)하겠다는 야심(野心)을 버리지 못하고

1973년부터 생각을 바꾸어

자유대한민국(自由大韓民國)의 제도권(制度權)에

뺄갱이 무리들을 합법적(合法的)으로 진출(進出)시키기 위해서

이나라안의 수재(秀才)들이 돈이없어서 공부에 어려움을겪는

학생(學生)들을 골라서 김일성 장학금(奬學金)을 지불(支拂)하게 되는

엄청난 계획(計劃)을 진행(進行)시키게 된것이다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자유민주주의(自由民主主義)와

자유시장경제(自由市場經濟)의

정체성(正體性)의 허점(虛點)을 뚫고 들어와서

국가(國家)를 파괴(破壞)시키는

인간독극물(人間毒劇物)을 생산(生産)하기 시작했던것이다

그당시 내가 살았던 성동구 광장동에 북괴의 지령으로

김일성 장학생(奬學生)을위한 고시원(考試院)이 열리게된것이

북괴의 악랄(惡辣)한 만행(蠻行)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사실에 지금도 경악(驚愕)을 금치못하는것이다

자유민주주의(民主主義)의 장점(長點)을

악용(惡用)한 이들의 악랄한 숫법은

전국토(全國土)에 뿌리내리는 엄청난 성공(成功)을 이룩하여

 

대한민국(大韓民國)의 기둥뿌리를 이루는

법조계(法曹界)를 시작(始作)으로

정치계(政治界) 교육계(敎育界) 언론계(言論界) 종교계(宗敎界)까지

이제는 사회전반(社會全般에 걸친

국가(國家)의 중요한 요직(要職)은

거의 모두 이들 김일성 장학생(奬學生)들이 꿰차고

들어 앉게 되었고 대한민국(大韓民國)은

거대(巨大)한 쇠그물에 걸린

꼼짝달싹 못하는 돌고래꼴이 되어버린

죽은 시체(屍體)의 대한민국(大韓民國)의 가련(可憐)한

신세(身世)가된 것이

지금의 참담(참담한 내조국(祖國)의 현실(現實)인것이다

 

 

 

모든 사람이 평등(平等)하고 모든것을

똑같이 나눠먹고 분배(分配)하고 산다는

공산주의(共産主義)

그 방식(方式)이 옳은것이라면

그 방식(方式)의 이념(理念)은

절대로 지상에서 사라질수가 없는 이념(理念)이 될것이다

 

지구를 살벌(殺伐)한 공산주의(共産主義) 이념(理念)으로

지옥(地獄)으로

몰고가던 러시아가 어떤 모습을 멸망(滅亡) 했는가 ?

 

지금의 러시아인들은 러시아가

공산주의국가(共産主義 國家)라고 말하면 정색(正色)을 하면서

러시아는 절대로 공산주의(共産主義 國家)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自由民主主義 國家)라고 항변(抗辯)하고 있는것이다

 

이것은 내가 북유럽 여행을 할때 러시아의 여행(旅行) 현장에서

모스크바 대학에 재학중(在學中)인

현지(現地) 가이드가 설명해준 실제적인 상황(狀況)인것이다

 

그렇다면 문화혁명(文化革命)의 깃발을 앞세우고 혁명(革命)을 위하여

수천만명의 인민들을 학살(虐殺)했던

모택통(毛澤東)의 공산주의(共産主義) 말로(末路)는 어떠했는가?

 

모두가 평등(平等)하게 나눠먹고 계급(階級)없는

평화(平和)로운 복지사회(福祉社會)를 부르짓었던

그들은 거대(巨大)한 계급사회(階級社會) 노예사회(奴隸社會)로

분리(分離)되어 지금은

해결 불가능한 빈부격차와 암울한 인권의 사각지대가 확대되어

폭발직전(爆發直前)의 화약고(火藥庫)와 같은

인간의 힘으로 막아내기 힘든 무서운 붕괴시점(崩壞時點)에 와있게된것이다

 

해결불가능(解決不可能)한 빈부격차(貧富格差)와 인권문제(人權問題)등은

인간(人間)의 힘으로

거대(巨大)한 자연(自然)의 순리(順理)를 거술러서 막아 보겠다는

공산주주의(共産主義) 정책(政策)으로는

절대로 그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는것을 절실하게 고민하게 된것이다

 

미국의 노예해방처럼 어떤 위대한 의인이 나타나서 인위적인

억압의 사슬을 풀고 체제의 대변혁을 이루지 못한다면

반드시 멀지 않은 시기에 중국은 붕괴될것이 명약관화해 보이는것이다

 

중공(中共) 그들의 공산주의(共産主義體制)가 발전(發展)할수없는

인민의 굶주림과 공궁(困窮)함을 더이상은 견딜수 없게되자

경제(經濟)만을 자유시장경체제(自由市場經濟體制)로 돌린듯 개방(開放)하였지만

진정한 개방(開放)이 아니라 정부주도형(政府主道形)이고 정치(政治)만은

절대로 한치의 오차(誤差)도 없는

공산주의(共産主義) 국가(國家)의 규범(規範)을 지켜가고 있는

나라가 지금의 중공(中共)인것이다

 

만약에 공산주의(共産主義) 체제(體制)가 성공(成功)한 사람들이 선호(選好)하는 정치이념(政治理念)이라면

이세상 누구라도 그것을 타도(打倒)의 대상(對象)으로 삼는것이 아니라

열열하게 응원(應援)하고 그이념(理念)을 지킬려고 혼신(魂神)의노력(努力)을 기울이게 될것이다

 

공산주의(共産主義) 그것은 하느님과 같은 형상(形狀)으로 창조(創造)된

인간(人間)이 취할수없는

저능(低能)하고 비효율적(非效率的)인 방법(方法)이고

인간(人間)의 본성(本性)에 반역(反逆)하는 시스템의 이념(理念)인것이다

 

그리고 공산주의(共産主義)는 거대(巨大)한 힘을

가지고있는 이익집단(利益集團)의

위정자(爲政者)들이 자기자신(自己自身)만의

정치적(政治的)인 야심(野心)을 만족(滿足)시키위해

창조주(創造主) 하느님의 모습으로 태어난 인간(人間)을

짐승으로 변형(變形)시키는

절대로 범해서는 안되는

인간에 대한 최대의 범죄행위(犯罪行爲)가 되는것이다

그것은 인간(人間)이

절대로 이룰수없는 어리석은 야망(野望)인것이다

 

내 비록 하느님의 품을 떠나 냉담자(冷淡者)로 살고있지만

나에게 공산주의(共産主義)를 강요(强要)한다면 죽음을 택(擇)할것이다

 

이땅의 순교자(殉敎者)들이 나무 십자가를 놓고

밟고 지나가도록 하였을때

밟고 지나가는자들은 목숨을 살려주었지만

 

나무십자가를 밟지 않고 지나가는 자들은

가차(假借)없이 칼을 받아야했던 순교(殉敎)의 길을

죽음의 길을 나도 선택(選擇)하게 될것이다

 

공산주의(共産主義)는

인간(人間)의 영혼(靈魂)을 강탈(强奪)하는

창조주(創造主)의 성의(聖意)를

반역(反逆)하는 악행(惡行)이기 때문인것이다

 

내가 받은 하느님의 형상(形狀)을 더럽힐수는 없는것이고

진실(眞實)이 바탕일수없는 삶은

한시간의 한정(限定)된 지상(地上)의 호흡(呼吸)도

하느님에 대한 치욕스러운 모독(冒瀆)이 될수도 있기 때문인것이다

 

내가 태어나던 1946년은 암흑속의 비문명의 참혹한 굶주림의 시대이였다

그 시대(時代)의 나의 아버지가 공산주의(共産主義)에

영혼(靈魂)을 빼앗기지 않으셨다는것에 대하여 하늘에 감사(感謝)했던것이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自由民主主義)에 심취(心醉)하고 자유민주주의(自由民主主義)를 받아들이고

공산주의(共産主義)를 신봉(信奉)하지 않은 죄악(罪惡)으로 내아버지는

아버지를 따르던 세사람의 장정(壯丁)과 함께 한밤중에 아까운 목숨을 잃으셨던것이다

 

인간(人間)이란 날마다 태어나고 날마다 죽어가는 것이 인간삶의 일상(日常)이라하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나의 아버지를 빼앗아간 공산주의자(共産主義者)들은 내생애(生涯)의 악몽(惡夢)이며

내삶의 기쁨을 앗아간 통한(痛恨)의 절망(絶望)인것이다

 

자유(自由와 평화(平和)를 지키고

옳치 않은것을 받아들일수없는

정의(正義)로움으로

이웃을 위한 헌신(獻身)과 박애(博愛)의 마음은

아직도 내심장을 타고 흐르는 혈맥(血脈)속에서 뜨겁게

요동(搖動)치면서 흘러가고 있는것이다

내아버지는 70년전에 나를 떠나서

내가 볼수없는 먼 미지(未知)의 나라로 가셨지만

돌아가신것이 아니며

내곁에서 함께 하는 내영혼(靈魂)의 그림자속에 영원(永遠)히 함께 살아계시는것이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던 그 청량(淸凉)한 달 밝은

가을 밤의 한기(寒氣)를 지금도 잊지 못하는것이다

이세상 누구일지라도

나의 입장에 서게된다면 아버지의 의지(意志)를 따라사는것이

본인(本人)의 사명(使命)이 되는것이고

그리고 나는 결코 옳치 않은것을 받아 들이고

단 한순간도 내생명(生命)을 부지 할수없는 존재(存在)인것을 거듭하여 확인(確認)하게 되는것이다

 

레스토랑에서 간단(簡單)한 아침식사를 하고 돌아와서

잠시 누웠다가 잠든사이에

누군가 방문을 따고 들어오는 소리에 깜짝놀라서 일어났을때

키가 큰 여성 룸메이트가 가운을 걸치고 방밖에서 기절(氣絶)을 하는것이다

 

내가 놀라야 되는데 자기가 놀라서 난리(亂離)가 난 호들갑을 떨어서

백번 미안하다고 말했고 방문을 닫았다

12시 체크아웃 시간이 되어서 무심코 열쇠로 방문을 따고 들어오려고 했던것이다

급하게 짐을 챙기고 공항으로 떠날 채비를 했고

로비에 나와서 나와 비슷한 년령대(年齡代)의 멋쟁이 숙녀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었다

네델란드의 상징인 풍차 그림 앞에서 커다란 나무 신발을 신고

꼬깔모자를 쓰고 민속의상(民俗衣裳)을 입으니까 너무 멋져 보이는것이다

기분이 업되어서 여러장의 사진을 찍도록 부탁하고

어느나라 사람인가 내가 물어 보았다

네넬란드사람이란다

나의 국적(國籍)을 물어서 한국(韓國)에서 왔다고 하니까 한국(韓國)을 모른단다

다른 나라사람들은

나를 한국(韓國)사람이라고 미리 알아 맞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것이 뭔일이 당가요? ㅋㅋㅋ

그래서 너가 왜 한국(韓國)을 모르는가?

중국(中國)과 일본(日本)의 가운데 있는 나라가 한국(韓國)이라고 하니까

아하 ~ 하면서 이제야 알았다는듯이 웃고 있는것이다

그래서 내가 내친김에 아주 먼 옛날에

네델란드 사람이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風浪)을 만나서

배가 난파(難破)되어서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 살다가

돌아갔다는 억사 이야기를 해주면서

그래서 나는 데델란드를 너무너무 사랑한다고 말하니까

그녀도 덩달아 따라서 기분이 좋아서 어쩔줄 몰라하는것이다

자기나라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이세상에 절대로 없는것이고

그녀가 너무너무 재미있어 하는것이다

그리고 이제로 부터

그녀가 어찌 대한민국(大韓民國)을 사랑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 (ㅋㅋㅋ)

 

이렇게 호텔앞으로 셔틀버스가 오는 시간을 보내면서 사진도 찍었고

그리고 시원한 분수가 물을 뿜어내는 정원의 연못가를 산책하면서

색색의 아름다운 꽃들로 꾸며진 조경의 예술의 감각에 감동 받기도 하고

여행객들을위해 꾸며진 쉼터가 그지없이 부럽고 아름답기도 했던것이다

 

하늘 저멀리 건물들이 보이고 조그마한 장난감같은 비행기가

땅에서 솟아올라서 고도를 높여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정원의 베취에서 무심코 바라보고 있었는데

7~8 분 마다 비행기가 한대씩 이륙(離陸)하는 모습을

처음 목격(目擊)하는지라 너무 놀랍고 신기(神奇)했던것이다

비행기마다 고도를 높이는 모습이 조금씩 다른것을 발견할수있었고

주기적으로 떠오르는 비행기가

참으로 대단한 기술력(技術力)의 축적(蓄積)이라는 생각이들었다

 

셔틀버스로 암스테르담의 공항(空港)에 도착(到着)하여

점심식사 부터 챙겼다 오픈된 작은 레스토랑에서

부페식의 음식을 먹고 초과되는 금액은

본인이 지불하면 되는것이다

역시 공항(空港)은 수많은 사람들의

만남과 이별이 슬프고 때로는 기쁨이되는것이다

천대만상(千態萬象)의 표정(表情)의 사람들이 어지럽게 물결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내가 식사하던 앞좌석에는 테블릿 PC로 작업하는

중년의 남성이 있었는데 배낭여행객인듯한

두사람의 젊은여성이 걸어와서는

우리들이 있는 곳에서

멀지 않는곳에서 이별(離別)의 포옹(抱擁)하면서

하염없이 울며서

부여잡은 손길을 놓을줄 모르면서 어쩔줄 몰라하는것이다

 

그처럼 헤어지기가 싫은 두사람의 이별(離別)을 슬퍼하던 그들은

울음을 그치고 테블릿PC남성(男性)에게 사진(寫眞)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는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아쉬운 이별(離別)은 각자의 군중(群衆)속으로

사라라졌는가 싶엇는데 언제 나타났는가

다른 일행 두사람이 또 그분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하니까

흔쾌히 사진(寫眞)을 찍어주는것이다

 

그리고 그남성(男性)은 내가 바라보고있는것이 의식(意識)되어서인가

뒤에 앉아 있는 나를 돌아 보고

"내가 직업을 바꿔서 사진 찍어주기를 해야 겠다"면서 껄껄거리고 웃는것이다

 

이렇게 네델란드를 떠나야 하는 시간(時間)을 가까이 줄이면서

세련(洗鍊)되고 앙팡지게 마련되어진

고급진 가게안의 물품(물품)들을 둘러 볼수있었고

로비의 쉼터에 마련된 오픈 카페에서는

피아노 연주를 들을수가 있어서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기도하는것이다

 

조금은 감질나고 조급해지는 비행기(飛行機)를 기다리는 시간(時間)

이시간(時間)이 지나면

나의 프랑스와 스페인 까미노 44일의 긴 여정(旅情)의

아쉽고 날마다 그리워질것같은 단독여행(單獨旅行)의 대단원(大團圓)의 막(幕이 내리는것이다

 

아직도 내마음에 먼지 처럼 쌓인 이야기들이 많고

절망9絶望)의 끝에선것처럼 무섭기도 했던 출발(出發) 전날밤의

꿈이 대과(大過)없이 마무리 될수가 있었다는것에 진심(眞心)으로 감사(感謝)하는것이다

 

 

장기적(長期的)인 일생일대(一生一代)의 여행(旅行)을 떠나오면서

내가 준비(準備)해야 했던것들은 의외(意外)로 생각보다 많았던것이다

 

내가 운영중인 Homestay business를 중단(中斷)할수도 없고

그래서 내가 여행(旅行)중임을 알리고

고지(告知)하고 그것을 이해(理解)하고 우리집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있었다

 

< Canada에서 온 50대의 숙녀 Eva 그리고 France 에서 온 20대의 앳된 소녀 Fadika

Australia에서 온 20대의 청년 Calvin

지구(地球)의 끝자락의 Peru에서 날아온 20대의 어여쁜 Pamela Acana >

 

이들 어여쁜 나의 고객(顧客)들은

나의 보금자리를 자신들의 집처럼 예쁘게

머물다가 떠난자리가 보살펴 줄수없었던

아쉬움과 감사(感謝)함으로 오래도록 기억(記憶)될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할수있는

평화로운 나의 공간(空間)으로

돌아올수있도록 허락(許諾)해주신 나의 주님

오늘의 이소중(所重)한 시간(時間)을 감사(感謝)드리고

내삶안에서 누릴수있었던

먼 여행(旅行)길의 행복(幸福)함과 깨달음의 은혜(恩惠)와

새로운 날에 대한 기대(期待)와 꿈(夢)을

간직(間直)할수있도록 도와주신 주(主)님께 감사(感謝)드린다

 

 

 

집에 도착(到着)했을때 내가 좋아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커다란 장미(薔薇)꽃바구니가

응접실(應接室) 가득히 꽃향기(香氣)를 뿜어내고 있었다

사지(死地)에서 생환(生還)하여 돌아온 엄마의

귀환(歸還)을 축하(祝賀)해주는

내아가들의 사랑의 마음은 아직도

생(生)의 가장 큰 에너지가 되는것이다

 

스페인은 하느님의 거대(巨大)한 음모(陰謀)의 땅인것이다

아무도 모른다

그곳은 하느님의 지상(地上)의 궁전(宮殿)이었던것이다

이것은 지상(地上) 최대(最大)의 비밀(秘密)인것이고

아무에게도 발설(發說)해서는 안되는 초특급(超特急) 비밀(秘密)인것이다 (ㅋㅋㅋ) Buen Camino ^^**

 

                                           Lucy Ch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