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ves Montand

2024. 10. 22. 13:16팝아티스트

 
 
본명이 이브 리비 인 이브몽탕은 에디뜨 피아프의 후원에 힘입어서 기회를 얻은 남자가수 중에 한사람이다. 1921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났고 부친은 작은 빗자루 공장을 하였는데 파시스트에 의해 불태워지자 가족은 프랑스 마르세이유로 달아났다. 1926년 프랑스로 귀화한 가족은 공장을 다시 재건하게 된다.이브 몽탕은 당시 상당한 개구장이 이었는데 밖에서 놀고 있으면 어머니는 곧잘 이브, 몽탕(이브, 들어오너라) 하며 소리쳤는데 이것이 이브 몽탕 예명의 유래이다. 아버지 사업의 부진으로 11세 때 학교를 그만두고 마카로니공장과 누나 미용원에 다니던 그는 1938년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모리스 슈바리에의 힛트곡을 불러 갈채를 받는다. 그는 또 이듬 해 39년 마르세유 뮤직홀 아르카잘에서 직업가수로 데뷔하게 되는데 전쟁이 일어나자 이브몽탕은 조선소직공, 다시가수, 항만노동자, 보조출연자 등을 거쳐 1944년 파리로 진출하게 된다. ABC극장을 시작하여 7월 그가 물랭루즈에 출연했을때 에디트 피아프를만나게돼는데 그녀의 권유로 새로운 레파토리로 마르세유에서 공연하였으나 실패를 한 반면 파리에서는 대성공을 거둔다. 그후 에트왈 극장에서 1회 리사이틀은 좋은 평판을 받아 그의 인기는 급상승하게 된다. 45년 에디트 피아프주연의 영화에 단역으로 데뷔하지만 46년 에디트 피아프의 도움으로 극중에서 중요한 역활을 맡아 명곡 고엽(Les Feuilles Mortes)을 초연한다. 이영화는 자크 프레베레시나리오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고엽역시 프레베레 가사이며 조세프 코스마가 작곡했다. 이브 몽탕은 50년에는 Barbra의낭송으로, 51년에는 Le Cocher DeFiacre로 ACC디스크 대상을 받았고 53년 54년 에트왈 극장 실황녹음음반으로54년 ACC디스크 대상을 받아 가수로서의 명성을 확실히 했다.그가 배우로서의 진가를 발휘한 것은 52년 "공포의 보수"란 영화에서 였는데 니트로 글리세린을 운반하는 트럭운전수로 박진감있는연기를 보여주었다.그 후 그는 많은 영화에 출연했지만 우리에게는 사강원작 이수 (goodbye again: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그랑프리, 파리의 해후, Z등이 기억에 남아있다. 영화에서의 활약때문에 가수로서의 그의 존재가 희미해졌지만 1980년 새 앨범을 발표 샹송계에 복귀한 그는 81년 10월부터 82년 1월까지 올렝피아극장에서 리사이틀을 열어 선풍을 일으켰다. 이브 몽탕의 많은 레퍼토리중에서도 전세계에 알려진 스탠다드 넘버중에 하나는 아마도 "그것은 멋지다오"라는 뜻의 "세 시봉"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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