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ngelis

2024. 10. 19. 08:26팝아티스트

신시사이저의 무한한 잠재력을 탐구해 나가는 반젤리스(Vangelis)는 록, 클래식, 재즈, 뉴에이지 등 다양한 음악 장르를 장대한 스케일이 느껴지는 연주로 종합해내는 뮤지션이다. 신시사이저라는 기계에 '따듯한 인간의 체온'을 실어내는 그의 연주엔 가슴 깊숙이 파고드는 전율이 있다.

이미 수많은 솔로 연주 앨범과 영화음악을 통해 국내에서도 확고한 추종세력을 확보한 그는 자신의 음악을 통해 '인간의 위대함'을 설파한다. 그의 대표곡 'To the Unknown man', 'Chariot of fire' 그리고 'Conquest of Paradise'는 '도전과 응전'으로 점철된 인간의 시도는 끝내 승리한다는 해피 엔딩의 서사시이다.

반젤리스는 신비의 베일로 싸여있는 존재다. 런던에 소재한 자신의 작업실인 '네모 스튜디오'(Nemo Studio)에서 칩거하며 오로지 '창조'를 위해 몸부림친다. 같은 그리스 출신이자 그에게 영향을 받은 야니(Yanni)가 대중들과의 교감을 중시하는 팝 스타라면 반젤리스는 자신의 예술혼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고집스런 대가가 따로 없다.

에반겔로스 오딧세이 파파타나시우(Evangelos Odyssey Papathanassiou)라는 긴 이름의 본명으로 1943년 3월 29일 그리스 동부 발로스에서 태어난 반젤리스는 4세부터 피아노 교습을 받았으나 이내 싫증을 내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우며 연주감각을 익힌다. 이미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데가 있어서 훗날 인터뷰에서 '나는 내 자신의 경험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확실한 지침서라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전해주는 지식은 나에겐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얘기했을 정도로 강한 개성을 드러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포밍스(Forminx)라는 록 밴드를 결성하고 1960년대 당시까지 록음악에 문외한들인 그리스 대중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며 반젤리스는 그리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악인으로 성장한다. 1967년 포밍스가 해체되고 보컬과 베이스 주자이 데미스 루소스와 드러머 루카스 시데라스를 만나 자신의 이름을 딴 파파타나시우스(Papathanassious)라는 밴드를 결성한다. 이들 셋은 더 넓은 무대에서 활동하길 원했고, 영국에 진출하기 위해 1968년 프랑스 파리로 간다.

그러나 '혁명의 물결'이 1968년 파리를 중심으로 전 유럽에 퍼지면서 이들의 녹음 작업을 위해 영국으로 가려던 계획은 당시 공장 노동자 파업으로 인해 비자발급이 되지 않은 관계로 수포로 돌아간다. 이 때 그들의 음악성을 높이 산 프로듀서 삐에르 스바로(Pierre Sbarro)의 도움으로 파리에서 레코딩을 할 수 있었다.

아프로디테스 차일드(Aphrodite's Child)로 밴드 이름을 바꾸고 발표한 첫 싱글 'Rain and Tears'가 유럽시장을 석권하며 60년대 후반부터 1972년 밴드가 해산될 때까지 이들의 음악은 유럽지역 전역에서 확고한 지지기반을 얻는다.

1972년 밴드는 해산하게 되고, 반젤리스는 솔로로 나선다. 이미 <Dragon>(1971), <Sex Power>(1972)같은 솔로 앨범을 내놓았지만 반응은 극히 저조했다. 그러나 1973년 프랑스 영화 감독 프레드릭 로시프의 TV 다큐멘터리 <동물의 묵시록>('L'Apocalypse Des Animaux)의 배경음악과, 폴리돌(Polydor)에서 발표된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La petite fille de la mer'가 좋은 반응을 얻는다.

<동물의 묵시록> 덕분에 본격적인 솔로활동을 할 수 있게 되면서 1974년 영국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예스(Yes)와 수개월간 공동작업을 하게 되고, 얼마 후 밴드의 키보드주자 릭 웨이크먼(Rick Wakeman)의 후임으로 활동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돈다. 그러나 결국 스위스 출신의 키보드 주자 패트릭 모라즈(Patrik Moraz)가 가입하게 됨으로써 소문은 거짓임이 드러난다. 하지만 이를 통해 반젤리스는 이후 예스의 보컬 주자 존 앤더슨(Jon Anderson)과의 지속적인 음악 교분을 갖게 된다.

1975년 RCA와 계약하며 반젤리스는 런던에 자신의 음악 작업실 '네모 스튜디오'(Nemo Studio)세우고 수많은 솔로 명반들을 발표한다. 존 앤더슨의 보컬이 참여한 'So long ago, so clear'가 수록된 명반 <Heaven & Hell>(1975)을 시작으로 <Albedo 0.39>(1976), 그의 대표곡 'To the Unknown Man'이 수록된 <Spiral>(1977), <Beauborug>(1978)를 연속으로 발표한다.

하지만 반젤리스라는 이름이 대중들의 뇌리 속에 각인되게끔 한 것은 역시 영화음악이다. 먼저 <동물의 묵시록>에 이어 <Ode>, <Opera Savage>, <China>, <Antratica>, <The City>와 같은 TV 다큐멘타리 시리즈에서 배경음악을 맡으며 그의 재능이 영화 감독들 사이에서 널리 회자되었다.

그리고 1981년, 1924년 파리 올림픽에 출전한 영국 육상선수들의 우정을 그린 휴 허드슨(Hugh Hurdson)감독의 영화 <불의 전차>(Chariot Of Fire)의 사운드트랙을 맡았고 여기서 동명의 테마 연주곡 'Chariot of fire'가 전미차트 정상을 차지하면서 그의 솔로활동은 정점을 맞기에 이른바. <불의 전차> 영화 음악으로 그는 1982년 오스카상 영화음악 부문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한다.

영화음악에서의 재능은 그칠 줄 몰라 리들리 스콧 감독의 걸작 <Blade Runner>(1982)에서 반젤리스는 미래 도시의 음습하고 차디찬 분위기를 그의 신시사이저 연주로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영상만큼이나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이 앨범은 사운드트랙의 빛나는 걸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1980년 반젤리스는 <Heaven & Hell>에서 함께 한 보컬리스트 존 앤더슨과 다시 한번 조우하며 존 & 반젤리스<Jon & Vangelis)라는 듀오를 결성한다. <Short Stories>(1980) <Friends of Mr. Carino>(1981), <Private Collection>(1983), <Page of life>(1991)로 이어진 공동작업은 'Polonaise', 'The freinds of Mr. Cairo'와 같은 히트곡을 남긴다.

1990년대 들어서도 반젤리스의 명성은 지속된다. 이미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 음악가로 대접받던 반젤리스는 <블레이드 러너>의 리들리 스콧 감독과 다시 한번 만나며 영화 <1492: Conquest of paradise>(1992)로 여전히 웅장하고 힘이 느껴지는 신시사이저 연주를 들려주면서 과거 <불의 전차>에 못지 않은 찬사를 받는다. <1492: Conquest of paradise>의 성공은 반젤리스가 '영화음악계의 지존'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1990년대의 솔로앨범으로는 <Voices>(1995), <Oceanic> (1996), <El Greco>(1998)가 있다. 2001년에는 미국 나사(NASA)의 후원으로 작업한 클래식 소품 <2001 Mars Odyssey>를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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