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ills, The

2024. 10. 15. 09:07팝아티스트

 
 
팝 음악을 듣다 보면 밴드나 가수의 바이오그래피를 살펴보지 않아도 어느 나라 출신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때가 많다. 아무리 글로벌화가 됐다고 하더라도 그 나라만의 고유한 특성은 절대 간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서구의 대중 음악을 영․미 팝 음악으로 칭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영국과 미국이 대중 음악의 중심지이기 때문이 아니라, 두 나라만의 고유의 음악적 특성이 있기에 서로 하나의 카테고리로 정의 내리지 않고, 국적으로 구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스웨디시 팝, 아이리시 팝 등으로 스웨덴, 아일랜드의 팝 음악을 분류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번에 국내에 발매되는 스릴스의 데뷔 앨범 <So Much For The City>를 듣다보면 상기한 방정식들은 여지없이 대입이 불가능하게 된다. 달콤한 보컬 하모니, 아기자기한 징글 쟁글 기타, 신나는 서프 사운드는 스릴스가 분명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나고 성장하며 데뷔한 밴드라고 듣는 이에게 강력히 메시지를 던진다. 그러나 앨범 안쪽에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밴드의 주소가 적혀있는 것을 보는 순간 자신만만, 의기양양은 백일몽으로 바뀌고 만다.

스릴스는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친구들인 보컬리스트 커너 데시(Connor Deasey), 기타리스트 다니엘 라이언(Daniel Ryan), 베이시스트 포드레이크 맥마흔(Podraic Mamahon), 드러머 벤 캐리건(Ben Carrigan), 그리고 키보디스트 케빈 호랜(Kevin Horan) 등이 모여 만든 그룹. 어릴 때부터 동네 친구, 학교 친구들로 항상 같이 지내며 음악 듣기, 연주하기 등으로 우정을 쌓아온 그들은 1999년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하기로 결정하고 스릴스를 밴드명으로 정했다.

스릴스를 그룹명으로 정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째는 존경해마지 않는 필 스펙터(Phil Spector)가 1960년대 키운 걸 그룹들인 크리스탈스(The Crystals), 로네츠(The Ronettes) 등과 비슷한 어감의 단어로 만들고자 했고, 다음으로는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세계를 뒤흔든 1982년도 명반 [Thriller]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여기서 바로 스릴스의 지향점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그룹 결성 후 그들은 미국 서부의 샌디애고로 여름 휴가를 떠나 그 곳에서 음악 작업을 했다. 직접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 버즈(The Byrds) 등으로 대표되는 웨스트코스트의 태양 빛 가득 머금은 사운드를 체험하면서 몸으로 체화시키고 싶은 욕구때문이었다. 이후 더블린으로 돌아온 멤버들은 <버진(Virgin)> 레코드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다시 미국의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가 녹음 작업을 하고 올 여름 데뷔 앨범 <So Much For The City>를 내놓았다.

스릴스의 이번 데뷔 음반은 근래 보기 드문 완벽한 팝 앨범이다. 초콜릿처럼 입안에서 살살 녹는 달콤한 선율과 그 위를 흐르는 감미로운 보컬, 그리고 그 뒤를 정겹게 받쳐주는 하모니 등은 버트 바카라크(Burt Baccarach), 브라이언 윌슨(Brian Wilson) 같은 위대한 작곡가들을 통해 1960년에 폭발했던 팝 사운드의 재림이다. 그 곳에는 아름다운 브릴 빌딩이 있고, 경쾌한 서프 사운드도 있으며, 오밀조밀한 컨트리도 있다. 또한 햇살 가득한 포크 록도 있으며, 낭만적인 챔버 팝도 있다.

첫 곡 'Santa cruz (You're not that far)'는 귀에 쏙쏙 들어오는 친근한 멜로디와 보컬 하모니가 절묘하게 이어지는 서프 팝이고, 비틀스에 대한 미국의 대항마 몽키스(The Monkees)를 테마로 삼은 'Big sur'는 다니엘 라이언이 연주하는 밴조 기타 연주를 중심으로, 커빈 데시의 감성적인 보컬, 매력적인 여성 코러스 등이 하나가 된 베스트 송이다.

또한 앨범의 수록곡 중에서 가장 멜로디가 아름다운 'one horse town'은 모타운의 걸 그룹 사운드와 웨스트 코스트의 서프 사운드가 황금 분활되어 있는 트랙이고, 'Deckchairs and cigarettes'는 커빈 데시의 멜랑꼴리한 보컬 실력에 정점에 달해있는 곡이다. 그리고 'Say it ain't so'는 2000년대에 울려 퍼지는 컨트리 넘버이며, 'Just traveling through'는 아기자기한 팝 소품집이다. 음반 프로듀서는 에어(Air), 벡(Beck), 스매싱 펌킨스(The Smashing Pumpkins)와 작업을 했던 토니 호퍼(Tony Hoffer)가 맡았다.

스릴스의 음악은 현재가 아닌 과거에 머물러 있다. 그것도 조국 아일랜드가 아닌 미국의 캘리포니아에 정착해 있다. 그래서 유구한 역사를 품고 있는 1960, 70년대 미국 서부 해안 지대의 팝 음악을 순례하고자 하는 이들은 굳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된다. 스릴스의 데뷔 앨범이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해 줄 것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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