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ors

2024. 9. 17. 11:24팝아티스트

 
 


1943년 12월 8일 James Douglas Morrison이라는 본명으로 플로리다 멜버른에서 태어난 짐 모리슨(Jim Morrison)은 조지 워싱턴 고등학교를 졸업, 세인트 피터스버그 주니어 컬리지에 진학할 때 까지는 그저 문학에 심취한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뜻한 바 있어 UCLA 대학에 재진학해 영화 감독이 되기 위한 수업을 하게된다. 그러던 중 필생의 음악동료라 할 수 있는 시카고 태생의 키보디스트 레이 멘자렉(Ray Manzarex)을 만나게 된다. 이들은 Ray의 동생들과 함께 <Rick and The Ravens>라는 밴드를 결성해 음악에 첫 발을 내딪게 된다.

이후 <Psychedelic Rangers>라는 밴드를 만나게 되고 드러머인 존 덴스모어(Jhon Densmore)와 기타리스트 로비 크리거(Robbie Krieger)를 맞아들여 4인조 밴드로서의 구색을 갖추고 영국의 시인 월리엄 브레이크의 명시구절 (If Doors of were cleansed, All Things Would Appear Infinite)을 인용해 <THE DOORS>라는 전설을 만들게 된다. LA에 있는 소규모 클럽에서 연주를 하던 그들은 짐 모리슨의 격렬하고 선정적인 스테이지 매너와 이야기로 클럽 관계자로부터 해고의 위기에 처하지만 아이러니컬 하게도 짐 모리슨에게 매료된 일렉트릭 레코드사로부터 음반 취입의 권유를 받게 된다. 그들의 데뷔 앨범 <THE DOORS>는 센세이션을 불려 일으켰으며, 사람들은 <Light my fire>, <The End>에 열광했다

1967년부터 1971년 5년 동안 7장의 공식 앨범을 발표한 도어즈는 <THE DOORS> <STRANGE DAYS> <WAITING FOR THE SUN > <THE SOFT PARADE> <MORRISON HOTEL> <ABSOLUTELY LIVE> <L.A WOMAN> 등의 공식 앨범 말고도 짐 모리슨이 세상을 떠난 지금에도 그의 시 낭송 앨범인 <AN AMERICAN PRAYER>와 <GREATEST DOORS "IN CONCERT"> 등 많은 편집 앨범들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짐 모리슨이 세상을 떠날 무렵인 1970 ~ 1971년 그의 말기에는 주로 그룹을 떠나 프랑스 파리에서 생활을 했다. 그는 시에 열중했으며, 1971년에는 <THE LIZARD>와 <THE NEW CREATURES>라는 2권의 시집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천재적인 광기를 추스리지 못하고 1971년 7월 3일 목욕 도중 심장마비(마약과다복용이 원인)로 죽게된다. 그는 프랑스의 유명 음악가, 아티스트 등이 잠들어 있는 <PERE LACHAISE > 공동 묘지에 묻혀 있으며, 이 곳은 히피들과 그를 흠모하는 아티스트들의 순례지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그의 죽움에 대한 의문이 무성하게 남아있다.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도어즈의 <THE END>가 소개되면서 도어즈의 음악은 월남전의 주제가 처럼 쓰여지게 되었다. 1991년 올리버 스톤 감독은 <THE DOORS>라는 영화를 통해 그들을 형상화 하였고 짐 모리슨 만큼이나 비난과 찬사를 받았다. 대체로 평생걸려 만들어야할 명작들을 몇 년 사이에 토해내고 스스로의 천재적 광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타개하는 것이 요절한 아티스트들의 공통분모가 아닌가 싶다.짐 모리슨이 세상을 떠난 지도 30년 가까이 흘렀다. 하지만 그의 천재성과 광기는 그가 남긴 앨범들로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란 거대전함에 온몸으로 달려든 반항아 - 도어즈

도어즈란 그룹 혹은 짐 모리슨이란 한 아티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올리버 스톤 감독이 그의 영화 <더 도어즈>에서 던지는 것과 같이 미국의 60년대와 당시 미국 젊은이들이 느끼고 있던 절망감에 대해서 먼저 공감해야 할 것이다.(물론 그런 것 전혀 몰라도 도어즈의 음악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의 음악은 너무나 단순한 것이기 때문이다. 단, 단순하다는 말을 나쁜 의미로만 해석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도어즈의 음악은 문학적이지만 내용은 간결하고 무서울 정도로 원초적이다.) 도어즈의 유명한 곡인 <The End> 등이 롤링 스톤즈의 <Paint it black>과 함께 월남전 영화나 혹은 월남전 당시의 미국 사회를 읽는 키워드 역할을 한다고 많은 이들이 느끼게 된 배경에는 그들의 곡들이 그런 시대 배경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The End>란 곡을 살펴보면 이 노래는 오이디푸스적인 사랑(?)을 담고 있다. 규율과 억압의 기존 사회질서에 역행한다는 의미에서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는 살부의식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곡은 당시의 미국 사회를 극명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68년이 되자 미국 사회는 점점 더 양극을 향해 치닫기 시작했다. 60년대 초반부터 존재했던 사회의 모든 갈등이 이제는 한꺼번에 불거져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극단으로 미국을 몰아 가고 있었다. 그 중심축은 물론 월남전으로 상징되는 세대 갈등이었다. 젊은이와 기성 세대는 모든 문제에서 사사건건 첨예하게 맞붙었다. 나라 전체가 이들의 싸움으로 상처 투성이었다. 젊은이들은 이제 기성 세대를 타도와 일소의 대상으로 생각했다. 히피와 블랙 팬더는 이러한 극단을 가장 잘 상징했다.그러나 이제는 기성세대들도 만만치 않았다.기성 세대는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 이후 히피로 대표되는 체제 반항적인 청년 세력 전체를 잠재우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고 보다 고도의 방식으로 젊은이들을 억누르려 하고 있었다. 그러자 한때 완전 우위를 점할 듯 보였던 젊은이들은 조금씩 힘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기존의 벽은 생각만큼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이들은 그 속에서 분노와 절망이라는 두 개의 감정을 함께 느껴야 했다. 이들은 상황을 타계할 강한 자극과 돌파구를 원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1967년 1월 벽두에 발표된 그들의 데뷔 앨범 <The Doors>는 하늘에서 내려준 만나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었을 것이다. 도어즈는 히피들의 대축제인 이른 바 '사랑의 여름'을 대변하는 그룹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아버지, 난 당신을 죽이고 싶어.
어머니 난 당신을 밤새도록 사랑하고 싶어.
그건 가슴시리도록 당신을 자유롭게 하지. <The end 중에서>

규율과 억압의 질서를 죽임으로써 이들이 얻고자 한 것은 자유였다. 이 곡이 발표된 직후 사회적으로 쏟아진 기성세대의 비난은 엄청난 것이었지만, 당시 프로듀서를 맡았던 폴 로스차일드는 "녹음할 당시 짐 모리슨은 마치 무당이 된 듯한 분위기에 휩싸였으며 몰아의 경지로 빠져 들어갔다"고 회상한다. 실제로 이 앨범을 녹음할 당시 분위기를 북돋우기 위해 촛불을 켰고 향을 피웠다고 한다. 따라서 이 음반은 음향기술에 의한 여과가 거의 없는 순수한 의식의 산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도어즈의 음악은 라이브 공연에서 더욱 그 진가를 발휘했으며 거기에는 그룹 구성원인 네 명의 음악적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으며 그 중에서도 짐 모리슨의 야수와 같은 보컬과 레이 만자렉의 단단한 구성으로 꾸며진 신서사이저 연주 실력이 뒷받침하고 있었다. 짐 모리슨은 라이브 공연에서 샤머니즘의 제의와 같은 의식을 진행했는데 그 의식들은 오만하고 광기가 넘쳐 흘렀다. (물론 거기에는 아직 라이브 공연의 상업적 기술들이 현재와 같이 고도로 발전되지 못한 상태에서 그들만이 지닌 특별한 노우하우가 작용했을 것이다. 가령 사이키델릭한 약간의 조명만으로도 그들은 관중을 흥분시킬 수 있었다.)

도어즈, 침몰하지 않는 신화

도어즈 특히 짐 모리슨은 당시 팽배해 있던 마약과 깊이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애시드 록(acid rock)의 느낌이 강하다. 거기에 클래식 음악 교육으로 단련된 레이 만자렉의 신서사이저 연주의 반복적인 리듬과 멜로디는 청중을 사이키델릭한 환상 속으로 끌고 들어가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도어즈의 음악적 성향은 단순히 사이키델릭이나 애시드 록적인 분위기였다고만 단언할 수 있는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만큼 도어즈의 음악적 성향은 자유로움으로 충만해 있었던 것이다. <수정의 배 The Crystal ship>은 웬만한 발라드 뺨칠 만큼 부드러운 멜로디와 선율을 선사하고 있으며 Back door man과 같은 곡은 블루스맨 윌리 딕슨의 작품으로 하울링 울프가 불러 유명했던 곡으로 이를테면 도어즈가 당대의 다른 많은 명 밴드들과 마찬가지로 그 음악적 뿌리가 블루스에 있었음을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곡이다.

<알라바마 송>은 서사극을 확립시킨 것으로 유명한 - 게다가 그는 공산당원이었고 동서독 분단 이후 스스로 장벽을 넘어 동독으로 간 인물이다. - 마르크시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작곡가 쿠르트 바일의 오페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베를린 지하운동이 제제가 된 곡으로, 도어즈는 동명의 노래에 그들의 대담성과 이데올로기적 색깔을 깔았다. 도어즈가 당대 최고의 그룹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도어즈가 시대 정신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self-interview

나는 인터뷰가 새로운 예술의 형태라 생각한다. 나는 셀프 인터뷰가 창작의 근본이라 생각한다. 당신에 게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내려 해보라. 작가는 단지 말도 안되는 연쇄적인 질문에 답할뿐이다. 이것은 증인석에서 답변하는것과 유사하다. 이는 당신이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고정시키고 무엇을 하려고 했었는가를 정직하게 기억하고자 시도하는 그런 낯선 장소이다. 잔인한 정신활동이지. 인터뷰는 당신의 정신이 문제와 맞닥뜨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이것이 내게는 예술에 관한 모든것이었다. 인터뷰는 또 한 공간을 채워주는 모든것들을 시도해보고 재조명할수 있는 기회를 준다. 당신은 명확하고, 정연하고, 정확하여야 한다. 지랄하지 말고. 인터뷰는 고해와 토론, 반대심문의 형태보다 먼저 존재했다. 당신이 무언가 말했다면, 철회할수 없다. 그러기엔 너무 늦다. 이것이 바로 존재의 순간이기 때문이다.나의 영웅들은 예술가들과 작가들이고 그러기에 난 예술과 문학이란 게임에 코를 꾀인 사람이다. 나는 언제나 무언가 쓰고 싶었지만 손이 펜을 잡고 자동기술마냥 내가 아무 것도 할 필요없이 스스로 움직 여지기 전까지는 쓰지 않는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았지. 물론 나는 얼마간의 시를 썼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가 쓴 저질의 시는 "포니 익스프레스"였는데 이것이 기억할수 있는 첫번째 것이고 아마도 발라드풍의 시였을것이다. 그러나 보관해 놓을 수 없었다.

"말의 태도"는 내가 고등학생일때 쓴 시이다. 나는 고등학교와 대학때까지 많은 습작노트들을 보관했지만 내가 학교를 떠나면서, 웃기는 이유때문에 - 아마도 지혜로운 행동이었겠지만 - 모두 버렸다.... 밤을 새워가며 썼었는데. 그러나 그것들을 버리지 않았다면 난 나만의 것을 쓸수는 없었을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내가 읽고 듣고 책에서 인용한 것들의 축적물이니까. 그것들을 버리지 않았다면 난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진정한 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것이다. 다만 가능성을 타진할 뿐이지. 모든 문을 열어놓으라. 당신은 어느것이든 자신에게 어울리는 문으로 나갈 수 있으니까. … 그리고 이것이 시가 내게 크게 어필하는 이유이다. 영원하기 때문이지. 인류가 존재하는한 그들은 단어를 기억하고 조합할 수 있다. 시와 노래를 빼곤 아무것도 대학살속에서 살아남을수 없지. 인류가 존재하고 노래와 시가 계속되지 않는한 그 누구도 영화나 조각이나 그림을 묘사할수는 없는노릇이다. 만일 나의 시가 무엇인가 이룩하자 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보고 느끼는 한계로부터 그들을 이끌어내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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