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사원의 오체투지

2024. 8. 8. 09:55좋은글

함박웃음방/자유게시판

2012-08-09 01:34:00


<서티벳~라사~동티벳>

 

.일정:2004.9.18~2004.10.28

.여정:예청-아바-알리-다르첸-카일라스 순례-마나사로바호수-프랑-사가-라체-에베레스트베이스캠프-

시가체-라사-빠이-뽀미-조공-망캉-더친(운남성)

 

<9월 18일,토요일>,예청,4시간(카슈가르에서),20위엔

-필름 몇 롤을 써도 아깝지 않다는 카슈가르의 일요시장을 보지 못하고 예청으로 향한다.알리로 가기 위한 전초기지로 가는 셈이다.매끈한 도로 위를 차가 쌩쌩 달리건만 꼬박 4시간이 걸렸다.

터미널 근처에 있는 <교통빈관>에 짐을 풀자마자 알리阿里로 가는 차 편을 알아보러 아바로 갔다.떠그덕 떠그덕 마차를 타고서..분주한 마음과는 달리 마차에 앉아서 풍경을 천천히 보며 가고 있으려니 어디 유람이라도 가는 것같다.

.Tip..2004년 9월 18일 현재

아바에서 알리로 가는 버스가 있다.

침대버스-위칸 400위엔(외국인),200위엔(중국인),아래칸500위엔(외국인),250위엔(중국인)

좌석버스-400위엔(외국인),200위엔(중국인),36시간 소요

.표파는곳1.침대버스:알리 가는 방향으로 왼쪽에 있음

2.좌석버스:알리 가는 방향으로 오른쪽에 있음

-400위엔을 내고 침대 아래칸을 샀다.

월요일 저녁 8시에 출발해서 수요일-9월 22일-에 도착할 예정이다.

예청은 카슈가르와는 분위기가 아주 다르다.위구르인들이 본래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같다.상점주인도,손님도,버스 운전사도,안내양도,승객도 대개가 위구르 사람들이다.여자들은 보자기를 머리에 써서 얼핏보면 비련의 여인들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녀들이 즐겨 입는 반짝이가 들어간 옷과 머리에 두른 반짝이가 들어간 보자기때문에 희극적으로 보이기도,촌스럽게 보이기도 한다.대개의 남자들은 위구르인 특유의 모자를 쓰고 있다.

음식점에 가면 먼저 밥공기 정도의 그릇에 차를 따라 주고 주문을 받는다.우리가 중국집에 가면 짜장면을 먹듯 그들은 '신장 라면'을 먹는다.수타 짜장면처럼 즉석에서 뽑아낸 면발에 고기와 야채로 만든 소스를 얹어 주는데 부드럽게 넘어가는 맛이 짜장면 못지 않다.시장에 가면 먹거리 천국인데 계절이 계절이어서인지 무엇보다 과일이 풍성하다.알이 굵고 당도가 높은 포도가 1킬로그램에 3위엔이고 사과는 2.5위엔,수박은 한 조각에 5마오-0.5위엔-,메론과 천도복숭아도 하나같이 달콤하고 값싸다.또 케밥과 삶은 고구마, 옥수수와 호박도 보이고 여러 가지 모양의 이 고장 특유의 빵도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카일라스로 가기 위한 준비로 내복바지와 비상식량을 샀다.

<9월 20일,월요일>,알리로..

-7시 30분에 알리로 떠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저녁 6시 조금 넘어 아바로 갔다.7시 30분쯤 큰 배낭은 버스에 실은 채 몸만 지프에 타고 먼저 출발했다.검문소에서 검문이 심해서 지프를 타고 서티벳을 여행하는 한족들로 가장하고 검문소를 무사히 통과려는 것이다.그 후에는 일정한 지점에서 나중에 출발한 버스와 만나기로 했다.두 군데 검문소중 한 곳에서 공안이 지프를 세우고 안에 있는 사람들을 주욱 훑어본다.이곳은 지난번 주엽이가 서티벳 여행을 시도했을때 걸린 곳이기도 하다.중국인(한족)과 생김이 비슷한 동양 외국인들이 앞자리에 타고 서양외국인들은 어두운 뒷자리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아무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마음이 긴장되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었다.게다가 공안이 몇마디 물으면 앞자리에 탄 중국어를 할 수있는 사람이 응대하기로 했다.다행히 공안은 별 말이 없다.무사통과다. 무사히 두 곳의 검문소를 지나 70킬로미터쯤 되는 곳에서 내려서 버스가 오기를 기다린다..처음에는 편안하던 마음이 2시간여를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자 조금 초조해진다.

저만치서 버스가 온다.우르르 버스에 올라탔다.알리로 향한다.

침대버스에서 덜컹거리며 자다깨다를 반복한다.고도가 높아지면서 머리가 아파온다.그건 버스에 탄 다른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듯 연신 포도당이며 고소약, 음료수를 마신다.그리고 여기저기서 구토를 한다. 언제 빨았는지 가늠할 수없는 냄새나는 더러운 이불이 싫어 밤새 침낭만 덮고 잤더니 감기가 오려나보다.식욕이 없다.뗀뚝하고 삶은 계란을 아침으로 먹은 이후 하루 종일 먹은 것이 없다.바람이 거세다.숨이 가쁘다.풍경은 가도가도 황량하기 이를 데없다.거얼무에서 라사로 가던 때를 떠올려본다.폐차 직전의 버스를 타고 48시간 20분만에 갔던 곳.구토와 두통으로 아무 것도 먹지 못했었다.

버스는 계속 달린다.호수가 나오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른다.별님이 하나둘 눈빛을 반짝이고 달님도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버스 속에서 또 하루가 지고 뜬다.

<9월 22일,수요일>,알리(4280)

-알리에 왔다.38시간이 걸렸다.저녁 먹을 틈도,화장실 갈 틈도 주지 않고 정신없이 달리더니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다.생각보다 꽤 큰 마을이다.아니,그래 보인다.그런데 자세히 보니 아니다.중심지 주위만 도로를 포장하고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섰을 뿐 작은 마을이다.

감기가 오려나.몸이 으슬으슬하다.춥고 어설픈 방에서 이불 두 개를 뒤집어썼다.

괜시리 눈물이 나온다.

아침 일찍 공안국으로 가서 벌금300위엔과 퍼밋50위엔을 합쳐 거금 350위엔을 냈다.속이 쓰리고 아깝지만 어쩔 수없다.이곳 공안들은 모두 티벳탄들이어서인지 이제까지 중국에서 만났던 어는 공안들보다 친절하다.

구게 왕국으로 가기 위해 히치할 차들을 알아보다 우연히 한국인 세 명을 만났다.두 명은 어제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이고 한 명은 카슈가르에서 얼핏 보았던 얼굴이다.그 중 나이가 가장 많은 분이 고소증세로 고생을 하고 있었다.함께 차를 빌려서 가기로 의견이 모아졌다.차를 알아보니 8박 9일에 7800위엔이란다.김상배님이 4000위엔을 내고 우리는 각기 숙식비를 포함하여 1500위엔씩 냈다.$200이 넘는 거금이다.하지만 생전 처음 해보는 랜드 크루저에 우리는 호화판 여행을 한다며 들떴다.드디어 내일 구게왕국을 향해 떠난다. 추위를 대비해서 모자와 장갑을 샀다.

Tip..알리에 도착하면 바로 공안국에 가서 300위엔의 벌금을 내는 것이 법(원칙)이다.공식적으로는 올

수없는 이곳까지 허가없이 들어왔으니 이 벌금을 받으시오하며 자진납세를 하는 것이다.동시에

이후의 서티벳여행을 허가해주시지요하는 의미의 퍼밋비 50위엔을 낸다.그리고 이 돈 350위엔은

도착하는 날 내야하며 다음날 내면 초과벌금이 있다.

알리는 작은 마을이고 공안들이 들고 나는 외국인들의 동태를 거의 파악하고 있어 이 돈을 내지 않고

서티벳을 여행하기는 실제적으로 어렵다.(물론 내지 않고 여행하는 극소수의 여행자들을 만난 적도

있지만 곳곳에 있는 검문소에서 퍼밋을 확인하기 때문에 그리 권하고 싶지는 않다.)그것말고도

서티벳은 고도가 높고 먹거리가 신통치 않아서 내 한몸 돌보기도 버거울 때가 많기 때문이다.

<9월 24일,금요일>,다르첸

-구게로 향한다.아침 6시 30분.시간상으로는 여명이 밝아와야 하지만 아무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오히려 하늘에 별이 초롱하다.그도 그럴 것이 공식적인 업무는 베이징 시간을 적용하기 때문에 적어도 현지 시간과는 두 시간 이상의 차이가 난다.두 시간여동안 포장도로를 쌩쌩 달리고서야 서서히 아침이 밝아올 기색을 보인다.별님들도 어느새 사라졌다.

지프 운전사는 한족으로 착하게 생겼다.여섯 명이 함께 하는 9일간 여정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구게왕국으로 가는 갈림길에 접어들자 길은 바로 비포장도로다. 계속되는 오르막.저 멀리 설산들이 펼쳐져있다.내린 눈이 녹지 않아 미끄러지기도 하고 차가 헛바퀴가 돌기도 한다.산등성이에 오르자 크고 작은 산들이 내려다 보인다.숨이 가빠온다.야생 토끼와 들쥐들도 보인다.드물게 돌로 지은 집들이 나타나기도 한다.티벳탄 개들과 야크떼들도 보이고..

이곳도 사람 사는 세상인가..있는대로 옷을 껴입어도 잠시 차밖으로 나올 때면 한기가 옷 속을 헤집는다.아슬아슬한 길을 돌고 돌아 짜다에 거의 도착했을 즈음 맞은 편에 트럭 세 대가 눈 속에 빠져 오도가도 못하고 있다.길은 외길..이리저리 방법을 찾아보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다.결국 여기서 후퇴다.욕심을 낸다고 볼 수있는 풍경이 아닌가보다.아쉬운 마음을 접고 다시 훠이훠이 온 길을 되짚어 다르첸으로 향한다.

다섯명이서 한 방에서 잔다.나무로 만든 엉성한 침대,몇사람이 거쳐갔는지 알 수없는 이불,적당한 노천화장실을 찾아가노라면 티벳탄 개가 무슨 구경났다고 따라와 짖어대고 물이 귀해 세수할 물도 없다.

아무려면 어떠랴.

카일라스를 알현하는 즐거움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고생도 아니다.

<9월 25일,토요일>,카일라쉬(6741),코라 52킬로미터,고개 정상5630미터

-5년 전에 이곳에 한 번 와 본적이 있다는 일행중 한 명이 앞장을 섰다.가장 연장자인 수미산님은 고소로 힘들어하면서도 저만치 앞서가고 주엽이도 힘겨워하며 한걸음한걸음 떼어 놓고 있다.나와 일행중 막내인 경하는 아직 쌩쌩하다.쉼터인 천막이 나올 때마다 차도 마시고 사발면도 먹으면서 쉬어 간다.위로 올라갈수록 숨이 가빠온다.보통은 2박 3일이 걸리는데 우리는 1박 2일을 예정했다.고개 중턱에서 좀더 갈 것인가 이쯤에서 하룻밤 묵어갈 것인가를 놓고 설왕설래를 한다. 수미산님을 제외하고는 모두 계속 가자는 의견이다.가도가도 끝이 없을 것만같은 길을 향해 한발한발 떼어 놓는다.점점 숨이 가빠온다.두세걸음 떼고 거친 숨을 몰아쉰다.주엽이와 내가 많이 쳐졌다.날씨는 갈수록 추워지고..가는 길엔 순례객들이 쌓아 놓은 돌탑들이 여기저기 있다.길안내 표지판 역할을 하기도 하는 이 돌탑들은 이 길을 지나간 이들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이 순례를 마치면 나의 업도 소멸되는가.다시는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다는 간절한 바램이 이루어지는가.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고 싶다!! 아니 아주 작은 돌맹이로 태어난대도 감지덕지다.

고개 정상이다.5630미터.해냈다.오색 기도깃발들이 사방으로 휘날리고 돌탑들도 여기저기 보인다.저 수많은 바램들..나의 간절한 바램을 바람결에 실어 보낸다.

예정보다 많이 늦었다.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체력보충을 위해 연신 사탕이며 초코바 등을 먹었다.

내려 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온도는 저녁이 되면서 더 떨어져 체감온도는 더욱 낮게 느껴지고 낮게 내려앉은 어둠이 금방이라도 우리에게 스며들 것만 같다.30분 정도 길을 찾아 헤매다 간신히 길을 찾아 내려 온다.보름이 얼마 남지 않아 환한 달님이 길을 비추고 있다.나는 눈길을 천천히 걸으며 수미산 순례를 하고 있다. 헉헉거리며 올라올 때와는 달리 내려 가는 길은 제법 여유가 있고 마음이 차분해진다.몇번씩 미끄러지기도하고 돌에 부딪히기도 한다.모두들 조금씩 긴장하고 지쳤다.막내가 지친 표정이 역력하다.농담을 해도 웃지 않는다.고개 너머에 있다는 텐트가 보일 시간이 벌써 지났는데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뭐가 잘못된 것일까.밤 10시가 넘어 11시가 되어 간다.이렇게 늦게까지 산길을 걸은 적이 있던가..몇번 길을 잃고 되찾기를 반복하며 11시가 넘어서 다행히 순례자용 텐트를 발견했다.15분 먼저 도착했다는 수미산님은 텐트안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드디어 하루가 끝났다.우리도 간신히 텐트 한 켠에 잠자리를 마련했다.길고 긴 하루다.모두에게 고맙다.같이 걷고 무사히 이곳까지 오게 되어서..

 

<9월 26일,일요일>,프랑

-밤새 추위에 떨며 칼잠을 잤다.

날이 밝았다.너나없이 몰골이 부시시하다.라면 국물로 아침을 대신하고 다시 출발한다.주엽이의 상태는 어제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다.고소도 고소지만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단다.평지에서도 한 발을 떼기가 벅차단다.주엽이와 나는 뒤에 쳐져서 쉬다걷다하며 천천히 걸었다.주엽이는 그토록 오고 싶어했던 카일라스에 와서 맥을 못추는 자신을 보니 살면서 지은 업이 많나보다한다.앞서간 일행은 보이지 않는다.앉아서 쉬고 있는데 저만치서 누가 오고 있다.일행중 한 명인 반백님이 음료수와 참치캔,빵을 싸들고 우리에게 주러 왔다.45분을 되걸어 왔단다.그의 마음이 너무도 고마웠다.그는 담배 한 대 피우고는 담배 연기처럼 저 만치 사라졌다.

주고간 음식으로 요기를 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코라를 돌고 있는 티벳탄 가족이 우리 앞에서 걷고 있다.고개를 두 개 넘어 계속 걸어서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순하야 해냈구나..주엽아,잘했어.그리고 함께한 수미산님,반백님,막내..고맙습니다'

다들 많이 지친 표정이다.이로써 우리의 죄가 조금은 사해졌는가..알 수없는 일이다.

다르첸에 온 뒤 바로 프랑으로 갔다.프랑은 인도 네팔과 맞닿은 국경마을다.부분적으로 개방된 곳이라 이곳을 방문하는 외국 여행자에겐 불편하고 성가신 곳이기도 하다.왜냐하면 이곳에 오면 공안국에 가서 신고를 해야 하며 가이드를 동반하고 다녀야하고 사진도 마음대로 찍을 수없고 지정된 숙소에서만 자야 한다.그것도 현지인보다 두 배 이상의 돈을 내고-30위엔(현지인),70위엔/침대당(외국인)-말이다. 지저분하고 화장실도 없는 곳에서 침대 하나에 70위엔을 내고 묵었다.아무렇지도 않게 버젓이 이중가격제를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중국에서 가장 비싸게 묵는 침대이다.물가가 중국에서 가장 비싸다는 상해에서 침대당 55위엔에 잔 걸 생각하면 폭리도 이런 폭리가 없다.

<9월 27일,월요일>마나사로바 호수,4시간

-국경 도시가 주는 특별한 즐거움을 기대했지만 예상밖이다.중국 어디서나 볼수 있는,도로가에 늘어선, 지은지 얼마 안된 건물들에 거부감마저 든다.도무지 주변 풍경들하고 따로 국밥이다.마치 보여주기 위한 도로요 건물처럼 보인다.네팔과 인도인들이 와서 가져온 물건을 팔고 산다는 시장에도 가봤지만 시장 특유의 활기라고는 찾아볼 수없다.이래저래 실망이 크다.

불교도나 힌두교도 모두에게 성지인 마나사로바 호수에 왔다.수미산님은 고소 증세로 여전히 힘들어 한다.하기사 고소엔 고도를 낮추는 것이 급선무인데 여전히 4000미터 이상인 곳에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침대당 20위엔인 방에 묵었다.기대할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그저 바람을 막아줄 네 개의 벽과 천장이 있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9월 28일,화요일>사가,14시간

-다시 출발이다.한시라도 빨리 고도가 낮은 곳으로 내달린다.길은 여전히 비포장이고 며칠간 봤던 비슷한 풍경들이 이어진다.잔설을 인 산들,야크떼와 양떼들,지킴이처럼 들판 한가운데 외롭게 서있는 집,티벳탄 개들..가끔씩 맞은편에서 지프와 트럭들이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간다.

사가에 도착하니 밤 11시가 넘었다.오늘이 추석이다.운전사가 중국인들이 추석에 먹는 음식인 월병을 사고 샴페인과 사과도 사와서 늦은 저녁을 먹으며 추석 기분을 냈다.다행히 오랜만에 꺠끗한 방,정갈한 침대에서 잔다,25위엔

<9월 29일,수요일>,라체,7시간

- 에베레스트 배이스캠프로 가는 갈림길인 라체에 오면서 베이스캠프에 들를 것인가를 놓고 의견을 나눈다.수미산님의 상태는 조금 나아지는 듯하다.식사량이 조금씩 늘었다.운전기사는 한 번도 안가본 곳이라며 난색을 표한다. 나는..?잘 모르겠다.궁금증과 자금 압박이 동시에 공존한다.

Tip..라체~EBC:198킬로미터,입장료 65위엔,차량통행료405위엔,기름값1500위엔

매표소는 팅그리에 있으니 그곳에서 미리 표를 사야 한다.그리고 표를 확인하는 곳은 30킬로미터

쯤 가면 나온다.만약에 팅그리에서 표를 사지 않았을 경우 다시 팅그리까지 되돌아가서 사야 하

니 유의해야 한다.

<9월 30일,목요일>,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10시간

-만만치않은 자금 부담을 감수하며 최종적으로 베이스캠프에 가기로 정했다.

팅그리에서 점심을 먹고 며칠간 함께 한 반백님과 헤어졌다.그는 바로 네팔로 넘어가겠다고 한다.

팅그리에서 30킬로쯤가면 표를 확인하는 곳이 나오는데 거기서부터 갈짓자 오르막과 내리막이 한참이다.이곳에 처음 와보는 운전기사는 고개마루에서 설산을 보며 연신 셔터를 눌러대면서 즐거워한다.갈짓자로 된 내리막을 내려가고 있을 때쯤 벌써 어둠이 내려 앉았다.그리고 다시 오르막.어두워지자 운전사도 마음이 급해졌는지 속력을 낸다.열시가 넘어 룽포마을에 도착했다.이곳에서 B.C.까지는 8킬로미터 .걸어가던지 마차를 타고 가야 한다.30위엔/한대당

달빛이 휘영청~이만큼 다가온 에베레스트가 하얗게 빛난다.

<10월 1일,금요일>,시가체,10시간

-옷을 입은 채로 자고 일어났다.몸이 으슬으슬하다.마차 두 대를 빌려 B.C.로 향한다.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시리다.먼 거리도 아니건만 마차를 타고서도 한시간 30분만에 B.C.에 도착했다.차와 음식을 파는 천막이 몇 개 있고 우체국도 있었다.기대가 커서인가..실망도 적잖다.적어도 이곳에 오면 낭가파르밧이나 라카포시,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갔을 때처럼 거대한 설산의 전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을 줄 알았다.그런데 이곳에서는 에베레스트가 여전히 저만치 있다.만약에 이곳에 지프를 타고 마차를 타지 않고 버스를 몇번씩 갈아타고 걸어서 왔다면 어떘을까.똑같은 풍경이었다해도 조금은 더 감격스러웠을까.아니면 세계에서 최고 높은 산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을까.다음에는 네팔 쪽에서 트레킹을 하여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까지 가보고 싶다.

천막 찻집에서 차 한잔으로 속을 녹이고 다시 내려와 라체로 향했다.

라체까지만 가자는 말에 운전기사는 숙소도 편하고 샤워도 할 수있고 먹거리도 풍부한 시가체까지 가잔다.노는 일도 쉽지 않다.열정이 있어야 하고 체력도 있어야 한다.물론 돈도 필요하다.따뜻한 물 샤워와 푹신한 잠자리가 그리운 우리는 시가체로 향한다.갑자기 멀리 신생 도시가 나타난듯 휘황한 불빛들이 반짝인다.문명세계에 온 것같다.매끈한 포장 도로와 휘황찬란한 가로등들,번듯한 건물들..

이상한 나라에 온 앨리스라도 된 기분이다.더블룸에 140위엔하는 전신빈관은 아주 근사했다.본래 280위엔 하는 방인데 50%할인된 가격이란다.

방안에는 침대와 보조탁자 넓은 화장대겸 책상,텔레비전,붙박이장,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는 목욕탕,욕조와 샤워커튼에 샤워타월까지..그리고 밝은 조명.

우리는 행복해하며 일주일간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냈다.

<10월 2일,토요일>라사,8시간 30분

-시가체는 전에 와본 곳이다.하지만 그때는 장무로 가는 길에 잠시 들러 점심을 먹었을 뿐이다.티벳 제 2의 도시라는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우리 나라의 궁벽진 시골같은 느낌이었다.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 시가체는 완전히 달라졌다.진한 화장으로 본래의 모습을 알아보기 힘든 여자같았다.그 치장이 어찌나 요란하고 돈냄새가 나는지 '여인의 향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없었다.순정을 바친 여자에게 배신당한 사내의 심정이 되어 거리를 걸어다녔다.어디에서도 순진하고 순수했던 그녀의 옛자취는 찾아볼 수없었다.타쉴훈포 사원 앞에도 가봤지만 잡상인들로 가득찬 그곳에 경건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서둘러 라사로 갔다.늦게 출발한 탓에 도착도 늦어졌다.라사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잘 닦인 도로와

가로등이 불안감을 더한다.

'뭔가 심상치 않다..'

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차가 시내에 들어섰다.이럴수가..

이곳이 정녕 라사인지 아니면 중국의 여느 도시에 와 있는건지..졸부가 부티를 내려고 천박스럽게 있는대로 치장한 듯 라사는 현란하다.라사의 상징이자 중심인 포탈라 궁도 덩치 큰 다른 건물들 속에 묻혀 있다.경건하고 성스러운 기운이 감도는 조캉사원 주변도 이제는 자본주의 냄새가 물씬난다.

포탈라궁앞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티벳탄 순례객들

<10월 3일,일요일>,라사

-엊저녁의 당혹감을 그대로 안고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 산책에 나섰다.비만 오면 진창이 되었던 키레이호텔 앞길은 말끔히 포장되었고 양옆으로는 큰 건물들이 들어 섰다.서둘러 조캉사원에 갔지만 실망감은 여전하다.

점심에는 한국 음식을 먹으며 그동안 애쓴 운전사와 작별을 했다.덕분에 무사히 9일동안 서티벳을 여행했다.고마운 인연이다.

지프를 타고 서티벳을 여행한 후유증은 크다.$400을 환전한지가 얼마나 됐다고 또 다시 환전을 했다.앞으로는 긴축재정을 해야할 것같다.

예상과는 달리 10월의 라사는 그리 춥지 않다.그런데 오늘은 예외다.하루 종일 먹구름에 스산한 바람이 분다.이러다 금세 겨울이 올 것만 같다.

예전에도 그랬던가..라사에 유난히 거지가 많다.거리에는 물론 식당에 앉아 있노라면 순회를 하듯 줄줄이 거지들이 달려와 잔돈이면 음식을 요구한다.배고픔앞에 자존심이 뭐 대수겠는가마는 자본이 물밀듯 침식한 이곳에 빈부의 격차는 커져만 간다.

<10월 6일,수요일>,라사

-숙소를 옮겼다.키레이에서 야크호텔로..바닥이 원목이고 사방벽은 깨끗하게 칠해져 있고 침대는 푹신하고 무엇보다 화장실이 깨끗한 야크호텔 도미토리는 20위엔이고 방 하나에 9개의 침대가 다닥다닥 붙어 있고 벽은 칠이 벗겨져 볼썽사납고 전등은 희미하고 무엇보다 화장실이 비인간적으로 좁고 지저분한 키레이는 25위엔이다.

새 집 사서 이사한 듯 마음까지 개운하다.

한국음식점<아리랑>에 갔다.키레이 호텔에서 중국은행 쪽으로 100미터쯤 가면 있는데 심양이 고향인 조선족이 한 달전에 개업했다고 한다.불고기와 삼겹살,냉면으로 향수를 달래며 입맛을 돋구웠다.

다음 날은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비는 밤새 그칠 줄을 모른다.

수미산님이 떠났다.

어제부터 내린 비가 여전히 내리고 있다.

<10월 9일,토요일>,라사

-비구니 스님들만 사는 티벳절 아니상쿵에 갔다가 '옴마니밧메홈-불성佛性은 당신안에 있습니다'-이 새겨진 반지를 샀다.그리고 저녁먹고 산책하면서 며칠 전에 봐두었던 ,적당한 크기의 터키석이 예쁘게 박힌 단아하고 맑은 느낌이 드는 반지도 샀다.아니 주엽이가 사주었다.

하루에 반지를 두 개나 장만하고 희희낙락.

다음 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 포탈라궁 코라를 돌았다.신심깊은 티벳탄들이 마니차와 염주를 돌리며 코라를 돌고 있다.그리고 포탈라궁 앞에서는 두 손을 모으고 오체투지를 한다.대개는 적어도 40~50대 이상인 분들이다.

새로 산 염주 알을 굴리며 가슴 깊이 소망한다.

'부디 저들의 간절한 소망을 들어 주소서..'

<10월 11일,월요일>라사-드레풍사원,세라 사원

-301번 버스를 타고 드레풍 사원에 갔다.많은 티벳탄들이 순례 중이었다.그곳에서 만난 한 아저씨는 집에 달라이 라마 사진을 모시고 있다고 속삭였다.그리고 매일 경배드린다고..그리고 그건 대부분의 티벳탄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가슴이 뭉클해온다.

티벳에서는 달라이 라마 사진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죄가 되기에 사복 경찰이나 경찰 앞잡이가 들었다면 당장에 공안국(경찰서)으로 끌려가 감옥 신세를 져야 할 엄청난 일이다.하지만 그는 큰 두려움 없이 이방인에게 그의 깊은 믿음을 이야기했다.

더이상의 이야기는 서로가 삼갔지만 그의 눈빛에서 더 많은 것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 분들은 티벳의 살아있는 숨결이자 생명의 원동력이다!!

다음 날은 세라 사원으로 갔다. 503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세라 사원 입구에 닿는다.바로 앞에서는 할머니와 어린 손녀가 코라를 돌고 있다.나도 염주 한 알마다 옴마니밧메홈을 담는다.코라 중에 만난 노스님께서도 달라이 라마 말씀을 하신다.그분께 경배드린다고..

과거불,미래불 현세불앞에 깊이 머리 숙인다.

'그들의 간절한 염원을 들어 주소서.....'

<10월 13일,수요일>,라사

-찻집에 갔다.

대개는 찻집겸 식당 역할을 하는데 많은 티벳탄들은 부담없이 와서 찻잔을 앞에 두고 담소를 나눈다.이방인이 와도 무심한 편이라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이곳에서 파는 차는 티엔차甘茶라하여 인도의 짜이와 비슷하다.흰 가운을 입은 복무원들이 주전자에 가득 티엔차를 담아 테이블마다 돌아다니며 손님들의 요구가 있을 때마다 작은 유리잔에 따라 준다.한 잔에 3마오角.달디 달면서도 따끈한 티엔차는 가격도 저렴하지만 맛도 괜찮고 잠시 몸을 녹이기에도 그만이다.

저녁에 서티벳을 함께 여행했던 막내 경하가 동티벳으로 떠난다며 다녀 갔다.

노블링카 근처에 있는 티벳 박물관에 갔다.학생 5위엔,일반 20위엔

유효기간이 지난 내 학생증과 주엽이의 대학원 학생증을 자연스럽게 들이밀며 학생표 2장을 샀다.거구처럼 서있는 외양과는 달리 속내는 적잖이 실망스러웠다.다분히 한족의 시각에서 그들의 필요에 따라 취사선택을 한 전시물들과 출토시기와 장소가 제대로 명기되어 있지 않은 유물들,티벳박물관이라며 청대의 도자기 전시실을 마련한 것은 무슨 이유인지..

티벳 박물관이 온전히 티벳탄들의 것이 되었을 때 진정 그들의 역사가 살아 있는 박물관이 되리라.

<10월 15일,금요일>,라사

-동부터미널에 가서 빠이행 차편을 알아보았다.그 곳까지 가는 차편이 꽤 많은 듯했다.이제 동티벳으로 갈 날짜를 정하고 가는 일만 남았다.

노리꼬와 유쾌하게 수다를 떨었다.그녀는 같은 도미토리에 묵는 일본 친구인데 암도에서 2년간 지냈다고 한다.그러면서 티벳불교와 티벳탄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었단다.자학자습했다는 그녀의 중국어 실력은 함께 수다떠는데 전혀 손색이 없다.전형적인 일본 여인의 목소리와 외양을 지녀 주엽이를 들뜨게 하게도 하는 노리꼬.

라사에 머문지 벌써 두 달이 되어간다는 노리꼬가 소개해준 주변의 작은 절들을 지도 한 장을 들고 찾아다녔다.지도 해독에 탁월한 능력이 있는 주엽이가 앞장섰다.우리는 단숨에 아홉 곳의 크고 작은 절들을 방문했다.

아는 만큼 보이기도 하고 보는 만큼 알아가기도 한다..

<10월 16일,토요일>,라사

-오랜만에 한밤중에 깨지 않고 달게 잤다.상쾌하게 아침 일찍 일어나 조캉사원으로 갔다.언제나처럼 순례자들이 코라를 돌고 있다.오체투지를 하며 코라를 도는 사람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코라를 돌다가 이꾸꼬를 만났다.그녀 역시 코라를 도는 중이다.그녀와 함께 조금 전에 혼자 들렀던 조캉사원 근처에 있는 절에 갔다.처음 와본다며 좋아한다.더구나 스님께 정화까지 받고 카일라스를 향해 가는 첫출발이 아주 좋다면 환하게 웃는다.

이꾸꼬.나이 서른 일곱,5남 2녀의 막내.미혼.온천과 술과 맛난 먹거리를 즐기며 여행을 좋아하는 용기있는 씩씩녀다.무엇보다 솔직하고 담백한 성격이 영어와 중국어 한 마디 못하면서도 풍요롭게 여행을 즐기는 그녀만의 비결이다.그녀는 며칠 전에 운남성의 더친에서 동티벳을 지나 라사에 들어 왔다.수더분하고 편안한 차림새와 인상이 공안을 피해 마음졸이며 다녀야하는 길을 재미있게 지나 왔다.

슈퍼마켓 식품 판매 매장에서 일을 하며 돈이 모이면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그녀는 우리와는 반대로 이제 서티벳을 여행할거라며 기대에 차 있다.우리는 서로 영양가 있는 정보를 교환했다.

오늘 알리로 가는 제일 싼 버스 맨뒷자석표를 사고 좋아하는 이꾸꼬,一路平安 !

<10월 17일,일요일>,라사

-오늘 새로 도미토리에 온 Mark와 함께 조캉 사원 코라를 하고 근처 사원에도 갔다.대만에서 조류 연구원으로 일한다는 그는 키도 훤칠하고 6년 동안 대만에서 산 덕분에 중국어도 유창한, 밝고 정감이 가는 서른 다섯살 총각이다.찻집에 가니 차를 마시고 있는 옆테이블의 티벳탄들이 마크에게 호기심을 보인다.같은 외국인이라도 생김이 비슷한 한국 사람보다는 피부색도 머리색도 생김도 다른 서양인이 궁금하리라.이런 곳에 처음 와본다는 마크도 서민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찻집 분위기를 마음에 들어한다.중국어로 사람들의 질문에 친절하게 답하며 한동안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저녁에 다시 조캉 사원으로 갔다.사원 대법당앞에는 법당문이 열리길 기다리며 많은 순례객들이 줄지어 있다.사원 안에서 코라를 돈 후 법당문이 열려 안으로 들어 갔다.

전율!!

각지에서 온 순례객들의 최종 목적지이기도 하며 티벳탄들에게 가장 신성한 곳.

어디에서 왔는지 키가 작고 허리가 굽은, 머리를 산발을 한 주름 깊은 할머니께서 스님의 안내를 받으며 대법당을 둘러보신다.자식의 등에 업혀 이곳까지 순례를 온 할머니도 있다.갓난 아기를 조심스레 안고 온 젊은 부부도 눈에 띈다."옴마니밧메홈"을 외며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스님의 발바닥은 굳은 살이 배긴지 오래다. 옷은 해질대로 해졌어도 그에게서 풍기는 향기는 은은하고도 깊다.

<10월 18일,월요일>,간덴사원(4750)

-간덴사원.총카파가 1417년에 건립한 유서깊은 사원이다.

해발 4750미터에 있어 라사에서 빠이 방향으로 한시간쯤 간 후 갈짓자로 난 비포장길을 따라 올라가며 천미터 이상 고도를 높인다.순례자들을 따라다니며 사원순례를 하고 옆의 산등성이로 향한다.산등성이는 어디나 그렇듯 기도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오랜만에 교외로 나오니 기분이 새롭다.나뭇잎들은 노랗게 물들어가고 벌써 추수가 끝난 논에는 건초 더미들이 쌓여 있다.

바지를 수선했다.지난 여행때 쿤밍에서 산 바지인데 엉덩이 부분이 해졌다.해진줄도 모르고 입고 다니다가 주엽이가 얘기해줘서 알게 됐다.주엽이는그만하면 오래 입었으니 처분하라 하고 나는 조금 해졌다고 버리는게 능사는 아니잖냐고 응수한다.그러자 날아온 주엽이의 일갈.

"나도 네 마음에 안드는 부분이 있으면 툭 내치지 말고 수선해서 오래오래 데리고 있어줘~"

<10월 21일,목요일>,사미에 사원

-사미에 사원으로 가는 길은 조금 복잡하다.우선 바코르앞에서 버스를 타고(25위엔)선착장까지 간다.그곳에서 배로 갈아타고(10위엔 안팎) 한 시간 정도 후에 맞은편에 닿으면 다시 경운기(3위엔)나 버스(4위엔)로 갈아 타고 사미에까지 간다.아침 일찍부터 서둘러도 사미에 사원에 도착하려면 4시간 이상이 걸린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사미에 사원은 공식적으로는 외국인들은 허가(퍼밋)를 받고 가야 하는 곳이라 허가증없이 온 우리는 공안들이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다.지난 번 티벳 여행때 이 곳에 온 적이 있는 주엽이도 허가증없이 왔다가 공안들에게 쫓겨간 경험이 있다고 했다.마음을 졸이며 사원 주변을 구경하고 사원과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산 위로 올라 갔다.우연히 함께 온 미찌꼬와 같은 도미토리에 묵는 꽃미남-한국 청년인데 장동건 못지 않게 생겼다-이 미리 와 있었다.

나는 그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조금 멀리 떨어져 앉아서 우주의 중심을 내려다 보았다.

어김없이 이곳에도 수없는 기도 깃발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우주 한 가운데에서 깃발들처럼 바람에 흩날리다가 어느결엔가 바람 속에 묻혀 사라지고 싶다.

이곳은 며칠 머물고 싶은 곳이지만 공안과 함께 열악한 숙소 사정이 발길을 재촉하게 한다.

사미에 사원 바로 옆에 있는 숙소에 잠자리를 정했다.한 방에 침대가 다섯 개있는 어설프기 이를데없는 도미토리.그런데 이것은 나만의 생각인가..주엽이는 냄새가 지독한 이불말고는 이 정도면 훌륭하다고 하고 꺼얼무에서 왔다는 티벳승과 순례중이라는 한 사내도 아늑하기만 하다는듯 이불을 푹 덮고 잠자리에 들고 티벳의 문화와 역사를 연구한다는, 북경에서 왔다는 한족 사내는 세숫대야에 물을 떠와 방 안에서 손과 발을 씻고 웃도리까지 벗고 잠자리에 든다.이 정도면 준수하다면서..

나는..?

삐그덕거리고 푹 꺼진 철제 침대와 불결하기 이를데없는 이불 그리고 눅눅하고 냄새나는 방이 싫다.

싫다고 생각하면서 원효대사를 생각한다.깜깜한 밤중에 바가지에 물을 떠 마시고 갈증을 달랬더니 알고 보니 바가지가 아니고 해골이었다고 했던가..원효대사를 생각하며 '싫다'고 여기는 내 마음을 들여다 본다.중국 아저씨가 씻고 잠자리에 누우며 불을 껐다.깜깜하다.벌레가 사방에서 줄지어 나올 것만 같은 침대며 이불이 어둠 속에 묻혔다.'싫다'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너무 추워 무릎께에 의마무지로 걸쳐 놓은 이불을 조금 더 위로 끌어올린다.

사미에 사원

<10월 22일,금요일>,라사

-노리꼬,서른넷.스무살에 일본에서 재일교포 청년을 만나 7년간 사귀었다.하지만 사귄지 4~5년이 지났을 때 그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하지만 그에게는 말하지 못했다.어느날,그가 프로포즈를 하자 그녀는 자가의 마음을 얘기하지 않을 수없었다.그리고 자신을 거부하는 여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의 두 번에 걸친 자살 시도..이후 그녀는 누군가를 만나서 사귀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또한 이성을 만나는 것에 흥미를 잃기도 했다.누군가에게 사랑을 느끼기가 쉽지 않았다. 나이가 무색하리만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그녀.노리꼬에게 이제 다시 사랑이 찾아오리라.

<10월 24일,일요일>,빠이八一,2990,7시간 30분,70위엔/bus

-차를 탄 시각은 11시였지만 빈 좌석이 없을 때까지 사람을 태우고서야 12시 30분에 출발한다.

드디어 동티벳을 여행하는구나.허가증없이 가는 길이기에 긴장감과 함께 앞으로 무엇이 다가올지 모르는 기대로 마음이 들뜨고 흥분된다.주엽이는 티벳탄으로 위장했다.그래서 머리는 떠나기 며칠 전부터 감지 않아 벌써부터 기름기가 돌고 옷도 허름한 점퍼를 구해 입었다.안경을 쓰긴 했지만 검문소가 저만치 보이면 안경을 벗었다.그리고 나는 한족 행세를 했다.그래서 누군가 말을 걸어 오면 그건 내 담당이다.

풍경은 완연한 가을이다.이 길을 지나온 이의 조언대로 오른쪽에 앉았더니 금상첨화다.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멋진 풍경들이 하나같이 오른쪽에 펼쳐져 있다.가도 가도 황량한 서부 티벳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다.산과 길에 나무가 우거지고 물소리가 들리고 들판이 펼쳐져 있고 계속 마을들이 이어진다.게다가 스피커에서는 재즈 음악이 흘러 나온다."what a wonderful world~"그래,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가끔씩 저만치 공안들이 보이고 검문소가 나올 때마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모자를 벗어서 다른 승객들과 비슷해 보이도록 했다.숨바꼭질같기도 하고 적당히 긴장감을 주는 놀이같기도 하다.

버스가 쉬어 가기 위해 잠시 멈추었을때 버스 안내양이 다가와 어디에서 왔냐고 묻는다.준비한대로 태연하게 대답했다."똥베이"(동북지방에서 왔어요).그랬더니 이 양반이 동북지방 어디냔다.심양이라고 했더니 남편이 심양에서 운전사를 한다며 심양 어디에 사냐고 꼬치꼬치 묻는다.지나친 관심이 부담스러워 성의없이 대답했더니 그녀도 더 이상 묻지 않는다.

빠이에 도착하니 밤 8시 .사방이 깜깜하다.생각보다 꽤 규모가 있는 마을 같다.수집한 정보대로 신분증이 없다고 해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터미널 옆에 있는 <의원醫院초대소>로 갔다.듣던대로다.신분증이 있냐고 물어보긴 했지만 없다고 하니 별말없이 방을 내준다.무사히 하루가 끝났다.

<10월 25일,월요일>,뽀미波密,8시간 30분,100위엔(share jeep)

-아침 일직 버스 터미널로 갔지만 뽀미를 거쳐 참도나 랑우까지 가는 버스는 내일에나 있다.결국 오늘 은 뽀미로 가는 공공버스는 없는 것이다.뽀미행 share jeep들이 몰려있다는,터미널에서 택시로 5분쯤걸리는 糧食局으로 갔다.마침 뽀미행 지프 몇 대가 호객을 하고 있다.가볍게 흥정하고 냉큼 올라탔다.한 시간 이상 차는 완벽하게 포장된 오르막 길을 서서히 올라간다.가을이 점점 깊어가더니 정상이 가까워지자 풍경은 갑자기 겨울로 바뀐다.serkhym la(4515)에 오니 침엽수가 우거진 산 전체에 눈꽃이 활짝 피었다.이곳이 과연 티벳인가 싶다.서부티벳이나 중부 티벳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삼림지대다.사방 천지가 만개한 눈꽃 세상이다. 고개를 내려서자 풍경은 다시 가을로,가을에서 여름으로 바뀐다.야자나무도 보이고 축축 늘어진 나무 이끼들도 신기하기만 하다.환호성을 지르며 감격을 함께 나누고 싶지만 외국인인 것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주엽이는 말한마디 없고,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던 지프 승객들도 시간이 흐르자 말 한마디 없는 주엽이를 긴가민가 하면서도 모른체하는 눈치다.

뽀미에 도착하자 다른 승객들은 하나 둘 모두 내리고 우리만 남았다.잘 곳을 정하는 일이 큰 일이다.지프 기사에게 싼 가격에 하룻밤 잘 만한 곳을 물어봤더니 인상처럼 마음씨도 고운 그가 한 숙소로 우리를 안내했다.그리고 숙소 주인에게 우리가 신분증이 없으니 장부에는 자기 이름을 쓰라고 일렀다.꼬치꼬치 캐묻지 않으면서도 알아서 마음을 써주는 그가 너무 고맙다.가격(15위엔)에 비해 방도 깨끗하다.라사에서 이곳까지 오면서 본 풍경만으로도 '기쁨 가득'이다.내일이 기대 된다.갈수록 풍경은 그 도를 더하고 검문도 도를 더한다는데..오늘은 세곳의 검문소를 통과했지만 별 문제 없었다.내일은 인도와 미얀마 국경과 가까운 지역을 지나는지라 이쪽에서도 민감하게 구는 것같다.

'숙소<랑우초대소>15위엔

<10월 26일,화요일>,조공左貢,13시간 30분,105위엔

-8시가 안되어 광장으로 나갔다.빠이행 share jeep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오늘은 적어도 빵다까지 가려고 하는데 광장에는 랑우까지 가는 share jeep이 한 대 있을 뿐이다.아침부터 광장에서 왔다갔다 하는 공안들이 신경쓰인다.

다행히 조공까지 가는 차를 수배했다.기사와 조수가 둘다 티벳탄이다.어디서 왔냐기에 동북지방에서 왔다고 했다.차는 곧장 잘 닦인 포장도로를 빠져 나간다.한 폭의 그림같은 풍경들이 연이어 펼쳐진다.갑자기 '쨍'하고 나타난 눈부신 설산이 하늘을 향해 뾰족한 날을 세우고 있다.그 아래로는 신설이 내린 산들과 상록수와 노랗게 단풍이 든 활엽수들이 눈을 풍성하게 하고 길가에 늘어선 성성한 소나무와 비취빛 강물은 보는 즐거움에 듣는 즐거움까지 더한다.

주엽이 말대로 오늘 풍경은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선물이다.2시간 가까이 잘 왔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차가 멈췄다.앞에서 벼랑에 붙어 있던 커다란 돌판이 떨어지면서 길을 막았다.3시간 동안 기다리고서야 간신히 통과했다.공안차들이 여러 대 왔고 여러 명의 공안들이 내렸다.시간이 길어지면서 차에서 내려서 주변을 조금 둘러보고 싶었지만 공안들 눈에 띄어서 좋을 것이 없다는 생각에 내내 차 안에 있었다.덕분인지 검문이 심하다는 랑우도 무사통과다.빠수에서 늦은 점심겸 저녁을 먹고 다시 출발.도중에 4명의 한족 여자들을 태웠다.좁은 공간에 여덟 명이 앉아가자니 옴짝달싹 못하겠다.조금 과장하면 숨쉬기도 힘들다.그런데도 한족 여자들은 아랑곳없이 왕성한 수다를 떨기도 하고 스피커에서 나오는 가요를 신나게 따라하기도 한다.갑자기 차 안 분위기가 떠들썩하다.

오가는 순례트럭을 만난다.트럭 한 대에 적게는 십수명에서 이삼십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타고 한 달 가까이 순례를 한다.그 중에는 노인도 있고 어린 아기도 있다.그들은 바람막이도 변변치 않은 트럭 뒷칸에 타고 울퉁불퉁한 길을 깊은 신심 하나로 다니며 순례를 한다.그런가 하면 오체투지를 하며 라사로 가는 티벳탄들도 보인다.어디서부터 시작했을까.삼보일배하며 한 발 한 발 라사로 다가간다.나같은 이방인은 도저히 가늠할 수없는 신심이다.

4600미터가 넘는 고개를 넘어 빵다에 오니 저녁 7시다.내친 김에 조공까지 가기로 했다.쭉쭉 뻗은 길을 기사는 쌩쌩 달린다.졸음이 쏟아진다.마침내 차를 탄지 12시간 30분만에 조공에 도착했다.신분증이 없어 일부러 허름한 초대소에 갔지만 신분증이 없으면 방을 내줄 수없단다.신분증을 잃어버렸다는 말에 여행증이라도 내놓으라며 윽박지른다.중국 정부에서는 외국 여행자가 동티벳을 여행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금지하고 신분증이 있는 중국인에 한해서만 숙박할 수있도록 정해 놓았다.그리고 수시로 검문을 해서 그것을 위반할 때에는 숙소 주인에게 벌금을 크게 물리는 통에 그들도 돈 몇 푼 때문에 모험을 하기를 꺼려하는 것이다.그래도 오늘밤 어디선가 자야만 한다.밤이 깊어가자 마음도 급해졌다.작전을 바꾸어 조공에서 제법 커보이는 <조공빈관>으로 갔다.태연스럽게 방이 있냐고 물어보았다.다행히 방은 있었다.아침 일찍 나갈거라며 방값까지 깎고서 방으로 올라가려는데 체크인을 해야 하니 신분증을 달란다.며칠 전에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했다.복무원의 눈에 동요하는 빛이 보인다.재빠르게 방값을 쥐어 주며 아침 일찍 떠날 거니까 걱정말라고 했다.마지못해 돈을 받는 그녀.이제 살았다.

작은 동네인데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이런 곳은 새벽같이 뜨는게 상책이다 공안이 깨기 전에..

.숙소 <조공빈관>40위엔 /dbl

<10월 27일,수요일>,망캉芒康,5시간 20분,75위엔

-밤새 추위에 떨며 제대로 잠을 못잤다.새벽 1시가 넘도록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에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새벽 5시에 잠이 깨어 다시 잠을 이루지 못했다.7시 쯤에 5분만에 짐을 싸고 나왔다.밖은 생각보다 훤하다.죽으로 빈 속에 기별하고 히치할 차를 기다린다.오늘의 목적지는 망캉.춥다.히치를 하려해도 오가는 차가 없다.일단 마을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망캉 방향으로 걷다가 마을이 끝나는 곳에서 바로 후퇴다.바로 앞에 검문소가 있네.

다시 마을로 걸어와 추위에 덜덜거리며 지나가는 차마다 시도해보았지만 망캉까지 가는 차는 없다.시간이 지날수록 여행자임을 한 눈에 알 수있는 한 쪽에 쌓아 놓은 배낭과 점점 늘어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다.이따금 봉고차들이 접근한다.망캉까지 500위엔.

2시간 30분을 기다린 후에 망캉으로 간다는 낡은 지프에 오른다.어른 일곱명에 운전사 .어제보다 더 최악이다.덜덜거리는 차가 넘쳐나는 사람과 짐때문에 조그만 돌부리에 걸리기만 해도 금세 산산히 분해될 것만같다.가다쉬다를 반복하며 지프는 4000미터가 넘는 고개 세 개를 무사히 넘었다.풍경은 뒷전이고 어젯밤 추위와 긴장으로 잠을 제대로 못잔 탓에 잠이 쏟아진다.

망캉이다.말로만 듣던 망캉.서티벳과 운남을 가르는 마지막 큰 마을.망캉에 왔다는 감격을 누릴 겨를도 없이 마음은 두근거린다.잘 곳을 찾아야 한다.하지만 이곳에서도 숙소 구하기가 쉽지 않다.<망캉초대소>는 신분증이 없는 사람은 사절이다.공안에게 걸리면 벌금 500위엔을 물어야한다며 통사정을 해도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다.대낮에 둘이서 배낭을 매고 숙소를 찾아다니는 것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사람들과 공안들에게 "이보쇼,나 외국인 여행자요."하고 광고하고 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더구나 이곳은 여행자들이 거의 없어 우리의 차림이나 배낭-주엽이는 배낭을 쌀자루에 넣어 위장을 했고 등에 매지 않고 마치 쌀자루처럼 어깨에 졌고 나는 낡디 낡은 배낭 커버를 씌어 가능하면 눈에 띄지 않도록 했음에도-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도 남았다.

어디라도 빨리 숙소를 잡아야 한다.다행히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민정 복리 빈관>이 있다.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집앞에 공안차가 세워져있다.걸음을 빨리하며 살짝 모자를 벗었다.이곳에서도 신분증이 없다고 했더니 안된다고 했다.신분증 대신에 방값을 쥐어주며 얼버무리고 넘어 갔다.이제 한시름 놨다.오늘 밤을 무사히 넘기고 내일 아침 8시 더친행 버스를 타면 만사 형통이다.

방은 얇은 베니아 판이 옆방과의 벽 역할을 하는 허름하기 이를데없는 방이다.옆방에서 말하는 소리가

마치 한 방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선명하게 들린다.우리는 옆방에 묵는 사람들이 그들 옆방에 외국인이 묵은 걸 알까봐 방안에서도 말한마디 하지 않았다.

하루종일 죽 한그릇말고는 먹은 것이 없는데도 긴장한탓에 배고픈줄도 모르겠다.어서 날이 어두워져 밖으로 나가 빈 속을 채우고 싶다.

<10월 28일,목요일>,망캉~옌징(4시간 10분)~더친(4시간 20분),

-눈을 뜨니 12시 10분이다.조금 있자니 발소리가 쿵쿵 들린다. 누군가 우리방 문을 쾅쾅 두드린다.올 것이 왔나?주엽이는 소리가 안들리는지 세상 모르고 자고 있다.다시 밖에서 방문을 세게 흔든다.심장 박동이 점점 빨라지고 박동 소리가 커진다.다시 발소리가 멀어지더니 우리에게 방을 내준 복무원에게 하는지 큰 소리로 야단치는 소리가 들린다.다시 가까워지는 발소리.그리고 조금 전보다 조금 더 세게 문을 흔들어대고 두드려댄다.하지만 절대로 문을 열수는 없다!! 이 시간에 쫓겨나면 갈 곳이 없다.무조건 버티기 작전이다.

조용해졌다.마음을 쓸어내린다.심장이 콩알만해졌다.

무사히 아침이 밝았다.버스 시간은 아직 멀었지만 재빨리 짐을 싸서 터미널로 향한다.터미널 주변에

있는 식당에서 따끈한 죽으로 몸을 녹이고 싶었지만 사람들 눈에 띌까봐 그만두었다.더친행 버스는 8시에 출발한다.어서 차가 시동을 걸고 떠나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렸다.시간이 되어 가자 차에 탈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들고 차가 시동을 건다.

4시간 만에 옌징鹽井에 도착했다.차안에 탄 사람들이 줄담배를 피워대는 바람에 눈과 목이 따꼼거렸지만 긴장된 마음때문에 견딜만했다.옌징까지 오는 길은 완전 비포장이다.고개를 하나 넘었다.고개 마루에서 신설이 내린 산들이 한눈에 들어왔다.옌징은 티벳(시장자치구)과 운남성의 경계이다.그래서 운남성의 더친으로 가려면 이곳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40여분을 기다려 더친행 차를 타고 운남성 경계에 들어섰다.드디어 해냈다!! 주엽이와 남몰래 의미있는 눈길을 교환하며 악수를 했다.긴장감 대신에 무엇과도 바꿀 수없는 자유와 안도감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온 몸으로 퍼져나갔다.

전에 와봤던 비래사를 지나 더친에 있는 터미널에 들어섰다.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해방감에 날아갈 것만같다.

Tip..동티벳은 공식적인 허가를 받지 않고는 외국인이 여행을 할 수없는 지역이다.허가비는 배낭여행

자들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비싸서 대부분의 배낭여행자들은 허가없이 동티벳을 여행하고 있다.

공안에게 걸리면 벌금을 물고 다시 온 곳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한다.지금은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이곳을 여행하기 쉬워지고 있는듯하다.이후에 동티벳을 여행한 사람들에 따르면

숙소를 구하는데 큰 불편이 없었다고 한다.

라사에서 동티벳으로 가는 경우,운남성에서 손님을 태우고 라사까지 왔다가 중띠엔으로 돌아가는

지프들이 있어서 날짜와 가격만 흥정하면 교통편을 크게 걱정하지 않고 운남성으로 갈 수있고

터미널에는 중띠엔까지 가는 버스도 있으니 다각도로 방법을 찾아볼 수있다.

라사에서 퍼밋을 받고 공식적으로 동티벳을 여행할 수도 있지만 가격이 무척 비싸다.

운남성에서 동티벳을 거쳐 라사로 갈 경우에는 중띠엔에서 라사까지 가는 버스를 알아볼 수있다.

또 더친에서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다.물론 중띠엔에서 라사까지 가는 지프투어도 있으나

역시 가격이 만만치 않다.

육로여행이 버겁다면 라사와 중띠엔을 오가는 비행기를 탈 수도 있다.

티베사원의 오체투지

함박웃음방/자유게시판

2012-08-09 01:34:00


<서티벳~라사~동티벳>

 

.일정:2004.9.18~2004.10.28

.여정:예청-아바-알리-다르첸-카일라스 순례-마나사로바호수-프랑-사가-라체-에베레스트베이스캠프-

시가체-라사-빠이-뽀미-조공-망캉-더친(운남성)

 

<9월 18일,토요일>,예청,4시간(카슈가르에서),20위엔

-필름 몇 롤을 써도 아깝지 않다는 카슈가르의 일요시장을 보지 못하고 예청으로 향한다.알리로 가기 위한 전초기지로 가는 셈이다.매끈한 도로 위를 차가 쌩쌩 달리건만 꼬박 4시간이 걸렸다.

터미널 근처에 있는 <교통빈관>에 짐을 풀자마자 알리阿里로 가는 차 편을 알아보러 아바로 갔다.떠그덕 떠그덕 마차를 타고서..분주한 마음과는 달리 마차에 앉아서 풍경을 천천히 보며 가고 있으려니 어디 유람이라도 가는 것같다.

.Tip..2004년 9월 18일 현재

아바에서 알리로 가는 버스가 있다.

침대버스-위칸 400위엔(외국인),200위엔(중국인),아래칸500위엔(외국인),250위엔(중국인)

좌석버스-400위엔(외국인),200위엔(중국인),36시간 소요

.표파는곳1.침대버스:알리 가는 방향으로 왼쪽에 있음

2.좌석버스:알리 가는 방향으로 오른쪽에 있음

-400위엔을 내고 침대 아래칸을 샀다.

월요일 저녁 8시에 출발해서 수요일-9월 22일-에 도착할 예정이다.

예청은 카슈가르와는 분위기가 아주 다르다.위구르인들이 본래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같다.상점주인도,손님도,버스 운전사도,안내양도,승객도 대개가 위구르 사람들이다.여자들은 보자기를 머리에 써서 얼핏보면 비련의 여인들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녀들이 즐겨 입는 반짝이가 들어간 옷과 머리에 두른 반짝이가 들어간 보자기때문에 희극적으로 보이기도,촌스럽게 보이기도 한다.대개의 남자들은 위구르인 특유의 모자를 쓰고 있다.

음식점에 가면 먼저 밥공기 정도의 그릇에 차를 따라 주고 주문을 받는다.우리가 중국집에 가면 짜장면을 먹듯 그들은 '신장 라면'을 먹는다.수타 짜장면처럼 즉석에서 뽑아낸 면발에 고기와 야채로 만든 소스를 얹어 주는데 부드럽게 넘어가는 맛이 짜장면 못지 않다.시장에 가면 먹거리 천국인데 계절이 계절이어서인지 무엇보다 과일이 풍성하다.알이 굵고 당도가 높은 포도가 1킬로그램에 3위엔이고 사과는 2.5위엔,수박은 한 조각에 5마오-0.5위엔-,메론과 천도복숭아도 하나같이 달콤하고 값싸다.또 케밥과 삶은 고구마, 옥수수와 호박도 보이고 여러 가지 모양의 이 고장 특유의 빵도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카일라스로 가기 위한 준비로 내복바지와 비상식량을 샀다.

<9월 20일,월요일>,알리로..

-7시 30분에 알리로 떠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저녁 6시 조금 넘어 아바로 갔다.7시 30분쯤 큰 배낭은 버스에 실은 채 몸만 지프에 타고 먼저 출발했다.검문소에서 검문이 심해서 지프를 타고 서티벳을 여행하는 한족들로 가장하고 검문소를 무사히 통과려는 것이다.그 후에는 일정한 지점에서 나중에 출발한 버스와 만나기로 했다.두 군데 검문소중 한 곳에서 공안이 지프를 세우고 안에 있는 사람들을 주욱 훑어본다.이곳은 지난번 주엽이가 서티벳 여행을 시도했을때 걸린 곳이기도 하다.중국인(한족)과 생김이 비슷한 동양 외국인들이 앞자리에 타고 서양외국인들은 어두운 뒷자리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아무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마음이 긴장되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었다.게다가 공안이 몇마디 물으면 앞자리에 탄 중국어를 할 수있는 사람이 응대하기로 했다.다행히 공안은 별 말이 없다.무사통과다. 무사히 두 곳의 검문소를 지나 70킬로미터쯤 되는 곳에서 내려서 버스가 오기를 기다린다..처음에는 편안하던 마음이 2시간여를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자 조금 초조해진다.

저만치서 버스가 온다.우르르 버스에 올라탔다.알리로 향한다.

침대버스에서 덜컹거리며 자다깨다를 반복한다.고도가 높아지면서 머리가 아파온다.그건 버스에 탄 다른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듯 연신 포도당이며 고소약, 음료수를 마신다.그리고 여기저기서 구토를 한다. 언제 빨았는지 가늠할 수없는 냄새나는 더러운 이불이 싫어 밤새 침낭만 덮고 잤더니 감기가 오려나보다.식욕이 없다.뗀뚝하고 삶은 계란을 아침으로 먹은 이후 하루 종일 먹은 것이 없다.바람이 거세다.숨이 가쁘다.풍경은 가도가도 황량하기 이를 데없다.거얼무에서 라사로 가던 때를 떠올려본다.폐차 직전의 버스를 타고 48시간 20분만에 갔던 곳.구토와 두통으로 아무 것도 먹지 못했었다.

버스는 계속 달린다.호수가 나오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른다.별님이 하나둘 눈빛을 반짝이고 달님도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버스 속에서 또 하루가 지고 뜬다.

<9월 22일,수요일>,알리(4280)

-알리에 왔다.38시간이 걸렸다.저녁 먹을 틈도,화장실 갈 틈도 주지 않고 정신없이 달리더니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다.생각보다 꽤 큰 마을이다.아니,그래 보인다.그런데 자세히 보니 아니다.중심지 주위만 도로를 포장하고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섰을 뿐 작은 마을이다.

감기가 오려나.몸이 으슬으슬하다.춥고 어설픈 방에서 이불 두 개를 뒤집어썼다.

괜시리 눈물이 나온다.

아침 일찍 공안국으로 가서 벌금300위엔과 퍼밋50위엔을 합쳐 거금 350위엔을 냈다.속이 쓰리고 아깝지만 어쩔 수없다.이곳 공안들은 모두 티벳탄들이어서인지 이제까지 중국에서 만났던 어는 공안들보다 친절하다.

구게 왕국으로 가기 위해 히치할 차들을 알아보다 우연히 한국인 세 명을 만났다.두 명은 어제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이고 한 명은 카슈가르에서 얼핏 보았던 얼굴이다.그 중 나이가 가장 많은 분이 고소증세로 고생을 하고 있었다.함께 차를 빌려서 가기로 의견이 모아졌다.차를 알아보니 8박 9일에 7800위엔이란다.김상배님이 4000위엔을 내고 우리는 각기 숙식비를 포함하여 1500위엔씩 냈다.$200이 넘는 거금이다.하지만 생전 처음 해보는 랜드 크루저에 우리는 호화판 여행을 한다며 들떴다.드디어 내일 구게왕국을 향해 떠난다. 추위를 대비해서 모자와 장갑을 샀다.

Tip..알리에 도착하면 바로 공안국에 가서 300위엔의 벌금을 내는 것이 법(원칙)이다.공식적으로는 올

수없는 이곳까지 허가없이 들어왔으니 이 벌금을 받으시오하며 자진납세를 하는 것이다.동시에

이후의 서티벳여행을 허가해주시지요하는 의미의 퍼밋비 50위엔을 낸다.그리고 이 돈 350위엔은

도착하는 날 내야하며 다음날 내면 초과벌금이 있다.

알리는 작은 마을이고 공안들이 들고 나는 외국인들의 동태를 거의 파악하고 있어 이 돈을 내지 않고

서티벳을 여행하기는 실제적으로 어렵다.(물론 내지 않고 여행하는 극소수의 여행자들을 만난 적도

있지만 곳곳에 있는 검문소에서 퍼밋을 확인하기 때문에 그리 권하고 싶지는 않다.)그것말고도

서티벳은 고도가 높고 먹거리가 신통치 않아서 내 한몸 돌보기도 버거울 때가 많기 때문이다.

<9월 24일,금요일>,다르첸

-구게로 향한다.아침 6시 30분.시간상으로는 여명이 밝아와야 하지만 아무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오히려 하늘에 별이 초롱하다.그도 그럴 것이 공식적인 업무는 베이징 시간을 적용하기 때문에 적어도 현지 시간과는 두 시간 이상의 차이가 난다.두 시간여동안 포장도로를 쌩쌩 달리고서야 서서히 아침이 밝아올 기색을 보인다.별님들도 어느새 사라졌다.

지프 운전사는 한족으로 착하게 생겼다.여섯 명이 함께 하는 9일간 여정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구게왕국으로 가는 갈림길에 접어들자 길은 바로 비포장도로다. 계속되는 오르막.저 멀리 설산들이 펼쳐져있다.내린 눈이 녹지 않아 미끄러지기도 하고 차가 헛바퀴가 돌기도 한다.산등성이에 오르자 크고 작은 산들이 내려다 보인다.숨이 가빠온다.야생 토끼와 들쥐들도 보인다.드물게 돌로 지은 집들이 나타나기도 한다.티벳탄 개들과 야크떼들도 보이고..

이곳도 사람 사는 세상인가..있는대로 옷을 껴입어도 잠시 차밖으로 나올 때면 한기가 옷 속을 헤집는다.아슬아슬한 길을 돌고 돌아 짜다에 거의 도착했을 즈음 맞은 편에 트럭 세 대가 눈 속에 빠져 오도가도 못하고 있다.길은 외길..이리저리 방법을 찾아보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다.결국 여기서 후퇴다.욕심을 낸다고 볼 수있는 풍경이 아닌가보다.아쉬운 마음을 접고 다시 훠이훠이 온 길을 되짚어 다르첸으로 향한다.

다섯명이서 한 방에서 잔다.나무로 만든 엉성한 침대,몇사람이 거쳐갔는지 알 수없는 이불,적당한 노천화장실을 찾아가노라면 티벳탄 개가 무슨 구경났다고 따라와 짖어대고 물이 귀해 세수할 물도 없다.

아무려면 어떠랴.

카일라스를 알현하는 즐거움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고생도 아니다.

<9월 25일,토요일>,카일라쉬(6741),코라 52킬로미터,고개 정상5630미터

-5년 전에 이곳에 한 번 와 본적이 있다는 일행중 한 명이 앞장을 섰다.가장 연장자인 수미산님은 고소로 힘들어하면서도 저만치 앞서가고 주엽이도 힘겨워하며 한걸음한걸음 떼어 놓고 있다.나와 일행중 막내인 경하는 아직 쌩쌩하다.쉼터인 천막이 나올 때마다 차도 마시고 사발면도 먹으면서 쉬어 간다.위로 올라갈수록 숨이 가빠온다.보통은 2박 3일이 걸리는데 우리는 1박 2일을 예정했다.고개 중턱에서 좀더 갈 것인가 이쯤에서 하룻밤 묵어갈 것인가를 놓고 설왕설래를 한다. 수미산님을 제외하고는 모두 계속 가자는 의견이다.가도가도 끝이 없을 것만같은 길을 향해 한발한발 떼어 놓는다.점점 숨이 가빠온다.두세걸음 떼고 거친 숨을 몰아쉰다.주엽이와 내가 많이 쳐졌다.날씨는 갈수록 추워지고..가는 길엔 순례객들이 쌓아 놓은 돌탑들이 여기저기 있다.길안내 표지판 역할을 하기도 하는 이 돌탑들은 이 길을 지나간 이들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이 순례를 마치면 나의 업도 소멸되는가.다시는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다는 간절한 바램이 이루어지는가.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고 싶다!! 아니 아주 작은 돌맹이로 태어난대도 감지덕지다.

고개 정상이다.5630미터.해냈다.오색 기도깃발들이 사방으로 휘날리고 돌탑들도 여기저기 보인다.저 수많은 바램들..나의 간절한 바램을 바람결에 실어 보낸다.

예정보다 많이 늦었다.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체력보충을 위해 연신 사탕이며 초코바 등을 먹었다.

내려 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온도는 저녁이 되면서 더 떨어져 체감온도는 더욱 낮게 느껴지고 낮게 내려앉은 어둠이 금방이라도 우리에게 스며들 것만 같다.30분 정도 길을 찾아 헤매다 간신히 길을 찾아 내려 온다.보름이 얼마 남지 않아 환한 달님이 길을 비추고 있다.나는 눈길을 천천히 걸으며 수미산 순례를 하고 있다. 헉헉거리며 올라올 때와는 달리 내려 가는 길은 제법 여유가 있고 마음이 차분해진다.몇번씩 미끄러지기도하고 돌에 부딪히기도 한다.모두들 조금씩 긴장하고 지쳤다.막내가 지친 표정이 역력하다.농담을 해도 웃지 않는다.고개 너머에 있다는 텐트가 보일 시간이 벌써 지났는데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뭐가 잘못된 것일까.밤 10시가 넘어 11시가 되어 간다.이렇게 늦게까지 산길을 걸은 적이 있던가..몇번 길을 잃고 되찾기를 반복하며 11시가 넘어서 다행히 순례자용 텐트를 발견했다.15분 먼저 도착했다는 수미산님은 텐트안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드디어 하루가 끝났다.우리도 간신히 텐트 한 켠에 잠자리를 마련했다.길고 긴 하루다.모두에게 고맙다.같이 걷고 무사히 이곳까지 오게 되어서..

 

<9월 26일,일요일>,프랑

-밤새 추위에 떨며 칼잠을 잤다.

날이 밝았다.너나없이 몰골이 부시시하다.라면 국물로 아침을 대신하고 다시 출발한다.주엽이의 상태는 어제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다.고소도 고소지만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단다.평지에서도 한 발을 떼기가 벅차단다.주엽이와 나는 뒤에 쳐져서 쉬다걷다하며 천천히 걸었다.주엽이는 그토록 오고 싶어했던 카일라스에 와서 맥을 못추는 자신을 보니 살면서 지은 업이 많나보다한다.앞서간 일행은 보이지 않는다.앉아서 쉬고 있는데 저만치서 누가 오고 있다.일행중 한 명인 반백님이 음료수와 참치캔,빵을 싸들고 우리에게 주러 왔다.45분을 되걸어 왔단다.그의 마음이 너무도 고마웠다.그는 담배 한 대 피우고는 담배 연기처럼 저 만치 사라졌다.

주고간 음식으로 요기를 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코라를 돌고 있는 티벳탄 가족이 우리 앞에서 걷고 있다.고개를 두 개 넘어 계속 걸어서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순하야 해냈구나..주엽아,잘했어.그리고 함께한 수미산님,반백님,막내..고맙습니다'

다들 많이 지친 표정이다.이로써 우리의 죄가 조금은 사해졌는가..알 수없는 일이다.

다르첸에 온 뒤 바로 프랑으로 갔다.프랑은 인도 네팔과 맞닿은 국경마을다.부분적으로 개방된 곳이라 이곳을 방문하는 외국 여행자에겐 불편하고 성가신 곳이기도 하다.왜냐하면 이곳에 오면 공안국에 가서 신고를 해야 하며 가이드를 동반하고 다녀야하고 사진도 마음대로 찍을 수없고 지정된 숙소에서만 자야 한다.그것도 현지인보다 두 배 이상의 돈을 내고-30위엔(현지인),70위엔/침대당(외국인)-말이다. 지저분하고 화장실도 없는 곳에서 침대 하나에 70위엔을 내고 묵었다.아무렇지도 않게 버젓이 이중가격제를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중국에서 가장 비싸게 묵는 침대이다.물가가 중국에서 가장 비싸다는 상해에서 침대당 55위엔에 잔 걸 생각하면 폭리도 이런 폭리가 없다.

<9월 27일,월요일>마나사로바 호수,4시간

-국경 도시가 주는 특별한 즐거움을 기대했지만 예상밖이다.중국 어디서나 볼수 있는,도로가에 늘어선, 지은지 얼마 안된 건물들에 거부감마저 든다.도무지 주변 풍경들하고 따로 국밥이다.마치 보여주기 위한 도로요 건물처럼 보인다.네팔과 인도인들이 와서 가져온 물건을 팔고 산다는 시장에도 가봤지만 시장 특유의 활기라고는 찾아볼 수없다.이래저래 실망이 크다.

불교도나 힌두교도 모두에게 성지인 마나사로바 호수에 왔다.수미산님은 고소 증세로 여전히 힘들어 한다.하기사 고소엔 고도를 낮추는 것이 급선무인데 여전히 4000미터 이상인 곳에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침대당 20위엔인 방에 묵었다.기대할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그저 바람을 막아줄 네 개의 벽과 천장이 있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9월 28일,화요일>사가,14시간

-다시 출발이다.한시라도 빨리 고도가 낮은 곳으로 내달린다.길은 여전히 비포장이고 며칠간 봤던 비슷한 풍경들이 이어진다.잔설을 인 산들,야크떼와 양떼들,지킴이처럼 들판 한가운데 외롭게 서있는 집,티벳탄 개들..가끔씩 맞은편에서 지프와 트럭들이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간다.

사가에 도착하니 밤 11시가 넘었다.오늘이 추석이다.운전사가 중국인들이 추석에 먹는 음식인 월병을 사고 샴페인과 사과도 사와서 늦은 저녁을 먹으며 추석 기분을 냈다.다행히 오랜만에 꺠끗한 방,정갈한 침대에서 잔다,25위엔

<9월 29일,수요일>,라체,7시간

- 에베레스트 배이스캠프로 가는 갈림길인 라체에 오면서 베이스캠프에 들를 것인가를 놓고 의견을 나눈다.수미산님의 상태는 조금 나아지는 듯하다.식사량이 조금씩 늘었다.운전기사는 한 번도 안가본 곳이라며 난색을 표한다. 나는..?잘 모르겠다.궁금증과 자금 압박이 동시에 공존한다.

Tip..라체~EBC:198킬로미터,입장료 65위엔,차량통행료405위엔,기름값1500위엔

매표소는 팅그리에 있으니 그곳에서 미리 표를 사야 한다.그리고 표를 확인하는 곳은 30킬로미터

쯤 가면 나온다.만약에 팅그리에서 표를 사지 않았을 경우 다시 팅그리까지 되돌아가서 사야 하

니 유의해야 한다.

<9월 30일,목요일>,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10시간

-만만치않은 자금 부담을 감수하며 최종적으로 베이스캠프에 가기로 정했다.

팅그리에서 점심을 먹고 며칠간 함께 한 반백님과 헤어졌다.그는 바로 네팔로 넘어가겠다고 한다.

팅그리에서 30킬로쯤가면 표를 확인하는 곳이 나오는데 거기서부터 갈짓자 오르막과 내리막이 한참이다.이곳에 처음 와보는 운전기사는 고개마루에서 설산을 보며 연신 셔터를 눌러대면서 즐거워한다.갈짓자로 된 내리막을 내려가고 있을 때쯤 벌써 어둠이 내려 앉았다.그리고 다시 오르막.어두워지자 운전사도 마음이 급해졌는지 속력을 낸다.열시가 넘어 룽포마을에 도착했다.이곳에서 B.C.까지는 8킬로미터 .걸어가던지 마차를 타고 가야 한다.30위엔/한대당

달빛이 휘영청~이만큼 다가온 에베레스트가 하얗게 빛난다.

<10월 1일,금요일>,시가체,10시간

-옷을 입은 채로 자고 일어났다.몸이 으슬으슬하다.마차 두 대를 빌려 B.C.로 향한다.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시리다.먼 거리도 아니건만 마차를 타고서도 한시간 30분만에 B.C.에 도착했다.차와 음식을 파는 천막이 몇 개 있고 우체국도 있었다.기대가 커서인가..실망도 적잖다.적어도 이곳에 오면 낭가파르밧이나 라카포시,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갔을 때처럼 거대한 설산의 전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을 줄 알았다.그런데 이곳에서는 에베레스트가 여전히 저만치 있다.만약에 이곳에 지프를 타고 마차를 타지 않고 버스를 몇번씩 갈아타고 걸어서 왔다면 어떘을까.똑같은 풍경이었다해도 조금은 더 감격스러웠을까.아니면 세계에서 최고 높은 산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을까.다음에는 네팔 쪽에서 트레킹을 하여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까지 가보고 싶다.

천막 찻집에서 차 한잔으로 속을 녹이고 다시 내려와 라체로 향했다.

라체까지만 가자는 말에 운전기사는 숙소도 편하고 샤워도 할 수있고 먹거리도 풍부한 시가체까지 가잔다.노는 일도 쉽지 않다.열정이 있어야 하고 체력도 있어야 한다.물론 돈도 필요하다.따뜻한 물 샤워와 푹신한 잠자리가 그리운 우리는 시가체로 향한다.갑자기 멀리 신생 도시가 나타난듯 휘황한 불빛들이 반짝인다.문명세계에 온 것같다.매끈한 포장 도로와 휘황찬란한 가로등들,번듯한 건물들..

이상한 나라에 온 앨리스라도 된 기분이다.더블룸에 140위엔하는 전신빈관은 아주 근사했다.본래 280위엔 하는 방인데 50%할인된 가격이란다.

방안에는 침대와 보조탁자 넓은 화장대겸 책상,텔레비전,붙박이장,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는 목욕탕,욕조와 샤워커튼에 샤워타월까지..그리고 밝은 조명.

우리는 행복해하며 일주일간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냈다.

<10월 2일,토요일>라사,8시간 30분

-시가체는 전에 와본 곳이다.하지만 그때는 장무로 가는 길에 잠시 들러 점심을 먹었을 뿐이다.티벳 제 2의 도시라는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우리 나라의 궁벽진 시골같은 느낌이었다.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 시가체는 완전히 달라졌다.진한 화장으로 본래의 모습을 알아보기 힘든 여자같았다.그 치장이 어찌나 요란하고 돈냄새가 나는지 '여인의 향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없었다.순정을 바친 여자에게 배신당한 사내의 심정이 되어 거리를 걸어다녔다.어디에서도 순진하고 순수했던 그녀의 옛자취는 찾아볼 수없었다.타쉴훈포 사원 앞에도 가봤지만 잡상인들로 가득찬 그곳에 경건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서둘러 라사로 갔다.늦게 출발한 탓에 도착도 늦어졌다.라사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잘 닦인 도로와

가로등이 불안감을 더한다.

'뭔가 심상치 않다..'

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차가 시내에 들어섰다.이럴수가..

이곳이 정녕 라사인지 아니면 중국의 여느 도시에 와 있는건지..졸부가 부티를 내려고 천박스럽게 있는대로 치장한 듯 라사는 현란하다.라사의 상징이자 중심인 포탈라 궁도 덩치 큰 다른 건물들 속에 묻혀 있다.경건하고 성스러운 기운이 감도는 조캉사원 주변도 이제는 자본주의 냄새가 물씬난다.

포탈라궁앞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티벳탄 순례객들

<10월 3일,일요일>,라사

-엊저녁의 당혹감을 그대로 안고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 산책에 나섰다.비만 오면 진창이 되었던 키레이호텔 앞길은 말끔히 포장되었고 양옆으로는 큰 건물들이 들어 섰다.서둘러 조캉사원에 갔지만 실망감은 여전하다.

점심에는 한국 음식을 먹으며 그동안 애쓴 운전사와 작별을 했다.덕분에 무사히 9일동안 서티벳을 여행했다.고마운 인연이다.

지프를 타고 서티벳을 여행한 후유증은 크다.$400을 환전한지가 얼마나 됐다고 또 다시 환전을 했다.앞으로는 긴축재정을 해야할 것같다.

예상과는 달리 10월의 라사는 그리 춥지 않다.그런데 오늘은 예외다.하루 종일 먹구름에 스산한 바람이 분다.이러다 금세 겨울이 올 것만 같다.

예전에도 그랬던가..라사에 유난히 거지가 많다.거리에는 물론 식당에 앉아 있노라면 순회를 하듯 줄줄이 거지들이 달려와 잔돈이면 음식을 요구한다.배고픔앞에 자존심이 뭐 대수겠는가마는 자본이 물밀듯 침식한 이곳에 빈부의 격차는 커져만 간다.

<10월 6일,수요일>,라사

-숙소를 옮겼다.키레이에서 야크호텔로..바닥이 원목이고 사방벽은 깨끗하게 칠해져 있고 침대는 푹신하고 무엇보다 화장실이 깨끗한 야크호텔 도미토리는 20위엔이고 방 하나에 9개의 침대가 다닥다닥 붙어 있고 벽은 칠이 벗겨져 볼썽사납고 전등은 희미하고 무엇보다 화장실이 비인간적으로 좁고 지저분한 키레이는 25위엔이다.

새 집 사서 이사한 듯 마음까지 개운하다.

한국음식점<아리랑>에 갔다.키레이 호텔에서 중국은행 쪽으로 100미터쯤 가면 있는데 심양이 고향인 조선족이 한 달전에 개업했다고 한다.불고기와 삼겹살,냉면으로 향수를 달래며 입맛을 돋구웠다.

다음 날은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비는 밤새 그칠 줄을 모른다.

수미산님이 떠났다.

어제부터 내린 비가 여전히 내리고 있다.

<10월 9일,토요일>,라사

-비구니 스님들만 사는 티벳절 아니상쿵에 갔다가 '옴마니밧메홈-불성佛性은 당신안에 있습니다'-이 새겨진 반지를 샀다.그리고 저녁먹고 산책하면서 며칠 전에 봐두었던 ,적당한 크기의 터키석이 예쁘게 박힌 단아하고 맑은 느낌이 드는 반지도 샀다.아니 주엽이가 사주었다.

하루에 반지를 두 개나 장만하고 희희낙락.

다음 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 포탈라궁 코라를 돌았다.신심깊은 티벳탄들이 마니차와 염주를 돌리며 코라를 돌고 있다.그리고 포탈라궁 앞에서는 두 손을 모으고 오체투지를 한다.대개는 적어도 40~50대 이상인 분들이다.

새로 산 염주 알을 굴리며 가슴 깊이 소망한다.

'부디 저들의 간절한 소망을 들어 주소서..'

<10월 11일,월요일>라사-드레풍사원,세라 사원

-301번 버스를 타고 드레풍 사원에 갔다.많은 티벳탄들이 순례 중이었다.그곳에서 만난 한 아저씨는 집에 달라이 라마 사진을 모시고 있다고 속삭였다.그리고 매일 경배드린다고..그리고 그건 대부분의 티벳탄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가슴이 뭉클해온다.

티벳에서는 달라이 라마 사진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죄가 되기에 사복 경찰이나 경찰 앞잡이가 들었다면 당장에 공안국(경찰서)으로 끌려가 감옥 신세를 져야 할 엄청난 일이다.하지만 그는 큰 두려움 없이 이방인에게 그의 깊은 믿음을 이야기했다.

더이상의 이야기는 서로가 삼갔지만 그의 눈빛에서 더 많은 것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 분들은 티벳의 살아있는 숨결이자 생명의 원동력이다!!

다음 날은 세라 사원으로 갔다. 503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세라 사원 입구에 닿는다.바로 앞에서는 할머니와 어린 손녀가 코라를 돌고 있다.나도 염주 한 알마다 옴마니밧메홈을 담는다.코라 중에 만난 노스님께서도 달라이 라마 말씀을 하신다.그분께 경배드린다고..

과거불,미래불 현세불앞에 깊이 머리 숙인다.

'그들의 간절한 염원을 들어 주소서.....'

<10월 13일,수요일>,라사

-찻집에 갔다.

대개는 찻집겸 식당 역할을 하는데 많은 티벳탄들은 부담없이 와서 찻잔을 앞에 두고 담소를 나눈다.이방인이 와도 무심한 편이라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이곳에서 파는 차는 티엔차甘茶라하여 인도의 짜이와 비슷하다.흰 가운을 입은 복무원들이 주전자에 가득 티엔차를 담아 테이블마다 돌아다니며 손님들의 요구가 있을 때마다 작은 유리잔에 따라 준다.한 잔에 3마오角.달디 달면서도 따끈한 티엔차는 가격도 저렴하지만 맛도 괜찮고 잠시 몸을 녹이기에도 그만이다.

저녁에 서티벳을 함께 여행했던 막내 경하가 동티벳으로 떠난다며 다녀 갔다.

노블링카 근처에 있는 티벳 박물관에 갔다.학생 5위엔,일반 20위엔

유효기간이 지난 내 학생증과 주엽이의 대학원 학생증을 자연스럽게 들이밀며 학생표 2장을 샀다.거구처럼 서있는 외양과는 달리 속내는 적잖이 실망스러웠다.다분히 한족의 시각에서 그들의 필요에 따라 취사선택을 한 전시물들과 출토시기와 장소가 제대로 명기되어 있지 않은 유물들,티벳박물관이라며 청대의 도자기 전시실을 마련한 것은 무슨 이유인지..

티벳 박물관이 온전히 티벳탄들의 것이 되었을 때 진정 그들의 역사가 살아 있는 박물관이 되리라.

<10월 15일,금요일>,라사

-동부터미널에 가서 빠이행 차편을 알아보았다.그 곳까지 가는 차편이 꽤 많은 듯했다.이제 동티벳으로 갈 날짜를 정하고 가는 일만 남았다.

노리꼬와 유쾌하게 수다를 떨었다.그녀는 같은 도미토리에 묵는 일본 친구인데 암도에서 2년간 지냈다고 한다.그러면서 티벳불교와 티벳탄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었단다.자학자습했다는 그녀의 중국어 실력은 함께 수다떠는데 전혀 손색이 없다.전형적인 일본 여인의 목소리와 외양을 지녀 주엽이를 들뜨게 하게도 하는 노리꼬.

라사에 머문지 벌써 두 달이 되어간다는 노리꼬가 소개해준 주변의 작은 절들을 지도 한 장을 들고 찾아다녔다.지도 해독에 탁월한 능력이 있는 주엽이가 앞장섰다.우리는 단숨에 아홉 곳의 크고 작은 절들을 방문했다.

아는 만큼 보이기도 하고 보는 만큼 알아가기도 한다..

<10월 16일,토요일>,라사

-오랜만에 한밤중에 깨지 않고 달게 잤다.상쾌하게 아침 일찍 일어나 조캉사원으로 갔다.언제나처럼 순례자들이 코라를 돌고 있다.오체투지를 하며 코라를 도는 사람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코라를 돌다가 이꾸꼬를 만났다.그녀 역시 코라를 도는 중이다.그녀와 함께 조금 전에 혼자 들렀던 조캉사원 근처에 있는 절에 갔다.처음 와본다며 좋아한다.더구나 스님께 정화까지 받고 카일라스를 향해 가는 첫출발이 아주 좋다면 환하게 웃는다.

이꾸꼬.나이 서른 일곱,5남 2녀의 막내.미혼.온천과 술과 맛난 먹거리를 즐기며 여행을 좋아하는 용기있는 씩씩녀다.무엇보다 솔직하고 담백한 성격이 영어와 중국어 한 마디 못하면서도 풍요롭게 여행을 즐기는 그녀만의 비결이다.그녀는 며칠 전에 운남성의 더친에서 동티벳을 지나 라사에 들어 왔다.수더분하고 편안한 차림새와 인상이 공안을 피해 마음졸이며 다녀야하는 길을 재미있게 지나 왔다.

슈퍼마켓 식품 판매 매장에서 일을 하며 돈이 모이면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그녀는 우리와는 반대로 이제 서티벳을 여행할거라며 기대에 차 있다.우리는 서로 영양가 있는 정보를 교환했다.

오늘 알리로 가는 제일 싼 버스 맨뒷자석표를 사고 좋아하는 이꾸꼬,一路平安 !

<10월 17일,일요일>,라사

-오늘 새로 도미토리에 온 Mark와 함께 조캉 사원 코라를 하고 근처 사원에도 갔다.대만에서 조류 연구원으로 일한다는 그는 키도 훤칠하고 6년 동안 대만에서 산 덕분에 중국어도 유창한, 밝고 정감이 가는 서른 다섯살 총각이다.찻집에 가니 차를 마시고 있는 옆테이블의 티벳탄들이 마크에게 호기심을 보인다.같은 외국인이라도 생김이 비슷한 한국 사람보다는 피부색도 머리색도 생김도 다른 서양인이 궁금하리라.이런 곳에 처음 와본다는 마크도 서민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찻집 분위기를 마음에 들어한다.중국어로 사람들의 질문에 친절하게 답하며 한동안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저녁에 다시 조캉 사원으로 갔다.사원 대법당앞에는 법당문이 열리길 기다리며 많은 순례객들이 줄지어 있다.사원 안에서 코라를 돈 후 법당문이 열려 안으로 들어 갔다.

전율!!

각지에서 온 순례객들의 최종 목적지이기도 하며 티벳탄들에게 가장 신성한 곳.

어디에서 왔는지 키가 작고 허리가 굽은, 머리를 산발을 한 주름 깊은 할머니께서 스님의 안내를 받으며 대법당을 둘러보신다.자식의 등에 업혀 이곳까지 순례를 온 할머니도 있다.갓난 아기를 조심스레 안고 온 젊은 부부도 눈에 띈다."옴마니밧메홈"을 외며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스님의 발바닥은 굳은 살이 배긴지 오래다. 옷은 해질대로 해졌어도 그에게서 풍기는 향기는 은은하고도 깊다.

<10월 18일,월요일>,간덴사원(4750)

-간덴사원.총카파가 1417년에 건립한 유서깊은 사원이다.

해발 4750미터에 있어 라사에서 빠이 방향으로 한시간쯤 간 후 갈짓자로 난 비포장길을 따라 올라가며 천미터 이상 고도를 높인다.순례자들을 따라다니며 사원순례를 하고 옆의 산등성이로 향한다.산등성이는 어디나 그렇듯 기도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오랜만에 교외로 나오니 기분이 새롭다.나뭇잎들은 노랗게 물들어가고 벌써 추수가 끝난 논에는 건초 더미들이 쌓여 있다.

바지를 수선했다.지난 여행때 쿤밍에서 산 바지인데 엉덩이 부분이 해졌다.해진줄도 모르고 입고 다니다가 주엽이가 얘기해줘서 알게 됐다.주엽이는그만하면 오래 입었으니 처분하라 하고 나는 조금 해졌다고 버리는게 능사는 아니잖냐고 응수한다.그러자 날아온 주엽이의 일갈.

"나도 네 마음에 안드는 부분이 있으면 툭 내치지 말고 수선해서 오래오래 데리고 있어줘~"

<10월 21일,목요일>,사미에 사원

-사미에 사원으로 가는 길은 조금 복잡하다.우선 바코르앞에서 버스를 타고(25위엔)선착장까지 간다.그곳에서 배로 갈아타고(10위엔 안팎) 한 시간 정도 후에 맞은편에 닿으면 다시 경운기(3위엔)나 버스(4위엔)로 갈아 타고 사미에까지 간다.아침 일찍부터 서둘러도 사미에 사원에 도착하려면 4시간 이상이 걸린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사미에 사원은 공식적으로는 외국인들은 허가(퍼밋)를 받고 가야 하는 곳이라 허가증없이 온 우리는 공안들이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다.지난 번 티벳 여행때 이 곳에 온 적이 있는 주엽이도 허가증없이 왔다가 공안들에게 쫓겨간 경험이 있다고 했다.마음을 졸이며 사원 주변을 구경하고 사원과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산 위로 올라 갔다.우연히 함께 온 미찌꼬와 같은 도미토리에 묵는 꽃미남-한국 청년인데 장동건 못지 않게 생겼다-이 미리 와 있었다.

나는 그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조금 멀리 떨어져 앉아서 우주의 중심을 내려다 보았다.

어김없이 이곳에도 수없는 기도 깃발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우주 한 가운데에서 깃발들처럼 바람에 흩날리다가 어느결엔가 바람 속에 묻혀 사라지고 싶다.

이곳은 며칠 머물고 싶은 곳이지만 공안과 함께 열악한 숙소 사정이 발길을 재촉하게 한다.

사미에 사원 바로 옆에 있는 숙소에 잠자리를 정했다.한 방에 침대가 다섯 개있는 어설프기 이를데없는 도미토리.그런데 이것은 나만의 생각인가..주엽이는 냄새가 지독한 이불말고는 이 정도면 훌륭하다고 하고 꺼얼무에서 왔다는 티벳승과 순례중이라는 한 사내도 아늑하기만 하다는듯 이불을 푹 덮고 잠자리에 들고 티벳의 문화와 역사를 연구한다는, 북경에서 왔다는 한족 사내는 세숫대야에 물을 떠와 방 안에서 손과 발을 씻고 웃도리까지 벗고 잠자리에 든다.이 정도면 준수하다면서..

나는..?

삐그덕거리고 푹 꺼진 철제 침대와 불결하기 이를데없는 이불 그리고 눅눅하고 냄새나는 방이 싫다.

싫다고 생각하면서 원효대사를 생각한다.깜깜한 밤중에 바가지에 물을 떠 마시고 갈증을 달랬더니 알고 보니 바가지가 아니고 해골이었다고 했던가..원효대사를 생각하며 '싫다'고 여기는 내 마음을 들여다 본다.중국 아저씨가 씻고 잠자리에 누우며 불을 껐다.깜깜하다.벌레가 사방에서 줄지어 나올 것만 같은 침대며 이불이 어둠 속에 묻혔다.'싫다'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너무 추워 무릎께에 의마무지로 걸쳐 놓은 이불을 조금 더 위로 끌어올린다.

사미에 사원

<10월 22일,금요일>,라사

-노리꼬,서른넷.스무살에 일본에서 재일교포 청년을 만나 7년간 사귀었다.하지만 사귄지 4~5년이 지났을 때 그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하지만 그에게는 말하지 못했다.어느날,그가 프로포즈를 하자 그녀는 자가의 마음을 얘기하지 않을 수없었다.그리고 자신을 거부하는 여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의 두 번에 걸친 자살 시도..이후 그녀는 누군가를 만나서 사귀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또한 이성을 만나는 것에 흥미를 잃기도 했다.누군가에게 사랑을 느끼기가 쉽지 않았다. 나이가 무색하리만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그녀.노리꼬에게 이제 다시 사랑이 찾아오리라.

<10월 24일,일요일>,빠이八一,2990,7시간 30분,70위엔/bus

-차를 탄 시각은 11시였지만 빈 좌석이 없을 때까지 사람을 태우고서야 12시 30분에 출발한다.

드디어 동티벳을 여행하는구나.허가증없이 가는 길이기에 긴장감과 함께 앞으로 무엇이 다가올지 모르는 기대로 마음이 들뜨고 흥분된다.주엽이는 티벳탄으로 위장했다.그래서 머리는 떠나기 며칠 전부터 감지 않아 벌써부터 기름기가 돌고 옷도 허름한 점퍼를 구해 입었다.안경을 쓰긴 했지만 검문소가 저만치 보이면 안경을 벗었다.그리고 나는 한족 행세를 했다.그래서 누군가 말을 걸어 오면 그건 내 담당이다.

풍경은 완연한 가을이다.이 길을 지나온 이의 조언대로 오른쪽에 앉았더니 금상첨화다.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멋진 풍경들이 하나같이 오른쪽에 펼쳐져 있다.가도 가도 황량한 서부 티벳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다.산과 길에 나무가 우거지고 물소리가 들리고 들판이 펼쳐져 있고 계속 마을들이 이어진다.게다가 스피커에서는 재즈 음악이 흘러 나온다."what a wonderful world~"그래,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가끔씩 저만치 공안들이 보이고 검문소가 나올 때마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모자를 벗어서 다른 승객들과 비슷해 보이도록 했다.숨바꼭질같기도 하고 적당히 긴장감을 주는 놀이같기도 하다.

버스가 쉬어 가기 위해 잠시 멈추었을때 버스 안내양이 다가와 어디에서 왔냐고 묻는다.준비한대로 태연하게 대답했다."똥베이"(동북지방에서 왔어요).그랬더니 이 양반이 동북지방 어디냔다.심양이라고 했더니 남편이 심양에서 운전사를 한다며 심양 어디에 사냐고 꼬치꼬치 묻는다.지나친 관심이 부담스러워 성의없이 대답했더니 그녀도 더 이상 묻지 않는다.

빠이에 도착하니 밤 8시 .사방이 깜깜하다.생각보다 꽤 규모가 있는 마을 같다.수집한 정보대로 신분증이 없다고 해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터미널 옆에 있는 <의원醫院초대소>로 갔다.듣던대로다.신분증이 있냐고 물어보긴 했지만 없다고 하니 별말없이 방을 내준다.무사히 하루가 끝났다.

<10월 25일,월요일>,뽀미波密,8시간 30분,100위엔(share jeep)

-아침 일직 버스 터미널로 갔지만 뽀미를 거쳐 참도나 랑우까지 가는 버스는 내일에나 있다.결국 오늘 은 뽀미로 가는 공공버스는 없는 것이다.뽀미행 share jeep들이 몰려있다는,터미널에서 택시로 5분쯤걸리는 糧食局으로 갔다.마침 뽀미행 지프 몇 대가 호객을 하고 있다.가볍게 흥정하고 냉큼 올라탔다.한 시간 이상 차는 완벽하게 포장된 오르막 길을 서서히 올라간다.가을이 점점 깊어가더니 정상이 가까워지자 풍경은 갑자기 겨울로 바뀐다.serkhym la(4515)에 오니 침엽수가 우거진 산 전체에 눈꽃이 활짝 피었다.이곳이 과연 티벳인가 싶다.서부티벳이나 중부 티벳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삼림지대다.사방 천지가 만개한 눈꽃 세상이다. 고개를 내려서자 풍경은 다시 가을로,가을에서 여름으로 바뀐다.야자나무도 보이고 축축 늘어진 나무 이끼들도 신기하기만 하다.환호성을 지르며 감격을 함께 나누고 싶지만 외국인인 것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주엽이는 말한마디 없고,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던 지프 승객들도 시간이 흐르자 말 한마디 없는 주엽이를 긴가민가 하면서도 모른체하는 눈치다.

뽀미에 도착하자 다른 승객들은 하나 둘 모두 내리고 우리만 남았다.잘 곳을 정하는 일이 큰 일이다.지프 기사에게 싼 가격에 하룻밤 잘 만한 곳을 물어봤더니 인상처럼 마음씨도 고운 그가 한 숙소로 우리를 안내했다.그리고 숙소 주인에게 우리가 신분증이 없으니 장부에는 자기 이름을 쓰라고 일렀다.꼬치꼬치 캐묻지 않으면서도 알아서 마음을 써주는 그가 너무 고맙다.가격(15위엔)에 비해 방도 깨끗하다.라사에서 이곳까지 오면서 본 풍경만으로도 '기쁨 가득'이다.내일이 기대 된다.갈수록 풍경은 그 도를 더하고 검문도 도를 더한다는데..오늘은 세곳의 검문소를 통과했지만 별 문제 없었다.내일은 인도와 미얀마 국경과 가까운 지역을 지나는지라 이쪽에서도 민감하게 구는 것같다.

'숙소<랑우초대소>15위엔

<10월 26일,화요일>,조공左貢,13시간 30분,105위엔

-8시가 안되어 광장으로 나갔다.빠이행 share jeep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오늘은 적어도 빵다까지 가려고 하는데 광장에는 랑우까지 가는 share jeep이 한 대 있을 뿐이다.아침부터 광장에서 왔다갔다 하는 공안들이 신경쓰인다.

다행히 조공까지 가는 차를 수배했다.기사와 조수가 둘다 티벳탄이다.어디서 왔냐기에 동북지방에서 왔다고 했다.차는 곧장 잘 닦인 포장도로를 빠져 나간다.한 폭의 그림같은 풍경들이 연이어 펼쳐진다.갑자기 '쨍'하고 나타난 눈부신 설산이 하늘을 향해 뾰족한 날을 세우고 있다.그 아래로는 신설이 내린 산들과 상록수와 노랗게 단풍이 든 활엽수들이 눈을 풍성하게 하고 길가에 늘어선 성성한 소나무와 비취빛 강물은 보는 즐거움에 듣는 즐거움까지 더한다.

주엽이 말대로 오늘 풍경은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선물이다.2시간 가까이 잘 왔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차가 멈췄다.앞에서 벼랑에 붙어 있던 커다란 돌판이 떨어지면서 길을 막았다.3시간 동안 기다리고서야 간신히 통과했다.공안차들이 여러 대 왔고 여러 명의 공안들이 내렸다.시간이 길어지면서 차에서 내려서 주변을 조금 둘러보고 싶었지만 공안들 눈에 띄어서 좋을 것이 없다는 생각에 내내 차 안에 있었다.덕분인지 검문이 심하다는 랑우도 무사통과다.빠수에서 늦은 점심겸 저녁을 먹고 다시 출발.도중에 4명의 한족 여자들을 태웠다.좁은 공간에 여덟 명이 앉아가자니 옴짝달싹 못하겠다.조금 과장하면 숨쉬기도 힘들다.그런데도 한족 여자들은 아랑곳없이 왕성한 수다를 떨기도 하고 스피커에서 나오는 가요를 신나게 따라하기도 한다.갑자기 차 안 분위기가 떠들썩하다.

오가는 순례트럭을 만난다.트럭 한 대에 적게는 십수명에서 이삼십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타고 한 달 가까이 순례를 한다.그 중에는 노인도 있고 어린 아기도 있다.그들은 바람막이도 변변치 않은 트럭 뒷칸에 타고 울퉁불퉁한 길을 깊은 신심 하나로 다니며 순례를 한다.그런가 하면 오체투지를 하며 라사로 가는 티벳탄들도 보인다.어디서부터 시작했을까.삼보일배하며 한 발 한 발 라사로 다가간다.나같은 이방인은 도저히 가늠할 수없는 신심이다.

4600미터가 넘는 고개를 넘어 빵다에 오니 저녁 7시다.내친 김에 조공까지 가기로 했다.쭉쭉 뻗은 길을 기사는 쌩쌩 달린다.졸음이 쏟아진다.마침내 차를 탄지 12시간 30분만에 조공에 도착했다.신분증이 없어 일부러 허름한 초대소에 갔지만 신분증이 없으면 방을 내줄 수없단다.신분증을 잃어버렸다는 말에 여행증이라도 내놓으라며 윽박지른다.중국 정부에서는 외국 여행자가 동티벳을 여행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금지하고 신분증이 있는 중국인에 한해서만 숙박할 수있도록 정해 놓았다.그리고 수시로 검문을 해서 그것을 위반할 때에는 숙소 주인에게 벌금을 크게 물리는 통에 그들도 돈 몇 푼 때문에 모험을 하기를 꺼려하는 것이다.그래도 오늘밤 어디선가 자야만 한다.밤이 깊어가자 마음도 급해졌다.작전을 바꾸어 조공에서 제법 커보이는 <조공빈관>으로 갔다.태연스럽게 방이 있냐고 물어보았다.다행히 방은 있었다.아침 일찍 나갈거라며 방값까지 깎고서 방으로 올라가려는데 체크인을 해야 하니 신분증을 달란다.며칠 전에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했다.복무원의 눈에 동요하는 빛이 보인다.재빠르게 방값을 쥐어 주며 아침 일찍 떠날 거니까 걱정말라고 했다.마지못해 돈을 받는 그녀.이제 살았다.

작은 동네인데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이런 곳은 새벽같이 뜨는게 상책이다 공안이 깨기 전에..

.숙소 <조공빈관>40위엔 /dbl

<10월 27일,수요일>,망캉芒康,5시간 20분,75위엔

-밤새 추위에 떨며 제대로 잠을 못잤다.새벽 1시가 넘도록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에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새벽 5시에 잠이 깨어 다시 잠을 이루지 못했다.7시 쯤에 5분만에 짐을 싸고 나왔다.밖은 생각보다 훤하다.죽으로 빈 속에 기별하고 히치할 차를 기다린다.오늘의 목적지는 망캉.춥다.히치를 하려해도 오가는 차가 없다.일단 마을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망캉 방향으로 걷다가 마을이 끝나는 곳에서 바로 후퇴다.바로 앞에 검문소가 있네.

다시 마을로 걸어와 추위에 덜덜거리며 지나가는 차마다 시도해보았지만 망캉까지 가는 차는 없다.시간이 지날수록 여행자임을 한 눈에 알 수있는 한 쪽에 쌓아 놓은 배낭과 점점 늘어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다.이따금 봉고차들이 접근한다.망캉까지 500위엔.

2시간 30분을 기다린 후에 망캉으로 간다는 낡은 지프에 오른다.어른 일곱명에 운전사 .어제보다 더 최악이다.덜덜거리는 차가 넘쳐나는 사람과 짐때문에 조그만 돌부리에 걸리기만 해도 금세 산산히 분해될 것만같다.가다쉬다를 반복하며 지프는 4000미터가 넘는 고개 세 개를 무사히 넘었다.풍경은 뒷전이고 어젯밤 추위와 긴장으로 잠을 제대로 못잔 탓에 잠이 쏟아진다.

망캉이다.말로만 듣던 망캉.서티벳과 운남을 가르는 마지막 큰 마을.망캉에 왔다는 감격을 누릴 겨를도 없이 마음은 두근거린다.잘 곳을 찾아야 한다.하지만 이곳에서도 숙소 구하기가 쉽지 않다.<망캉초대소>는 신분증이 없는 사람은 사절이다.공안에게 걸리면 벌금 500위엔을 물어야한다며 통사정을 해도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다.대낮에 둘이서 배낭을 매고 숙소를 찾아다니는 것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사람들과 공안들에게 "이보쇼,나 외국인 여행자요."하고 광고하고 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더구나 이곳은 여행자들이 거의 없어 우리의 차림이나 배낭-주엽이는 배낭을 쌀자루에 넣어 위장을 했고 등에 매지 않고 마치 쌀자루처럼 어깨에 졌고 나는 낡디 낡은 배낭 커버를 씌어 가능하면 눈에 띄지 않도록 했음에도-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도 남았다.

어디라도 빨리 숙소를 잡아야 한다.다행히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민정 복리 빈관>이 있다.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집앞에 공안차가 세워져있다.걸음을 빨리하며 살짝 모자를 벗었다.이곳에서도 신분증이 없다고 했더니 안된다고 했다.신분증 대신에 방값을 쥐어주며 얼버무리고 넘어 갔다.이제 한시름 놨다.오늘 밤을 무사히 넘기고 내일 아침 8시 더친행 버스를 타면 만사 형통이다.

방은 얇은 베니아 판이 옆방과의 벽 역할을 하는 허름하기 이를데없는 방이다.옆방에서 말하는 소리가

마치 한 방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선명하게 들린다.우리는 옆방에 묵는 사람들이 그들 옆방에 외국인이 묵은 걸 알까봐 방안에서도 말한마디 하지 않았다.

하루종일 죽 한그릇말고는 먹은 것이 없는데도 긴장한탓에 배고픈줄도 모르겠다.어서 날이 어두워져 밖으로 나가 빈 속을 채우고 싶다.

<10월 28일,목요일>,망캉~옌징(4시간 10분)~더친(4시간 20분),

-눈을 뜨니 12시 10분이다.조금 있자니 발소리가 쿵쿵 들린다. 누군가 우리방 문을 쾅쾅 두드린다.올 것이 왔나?주엽이는 소리가 안들리는지 세상 모르고 자고 있다.다시 밖에서 방문을 세게 흔든다.심장 박동이 점점 빨라지고 박동 소리가 커진다.다시 발소리가 멀어지더니 우리에게 방을 내준 복무원에게 하는지 큰 소리로 야단치는 소리가 들린다.다시 가까워지는 발소리.그리고 조금 전보다 조금 더 세게 문을 흔들어대고 두드려댄다.하지만 절대로 문을 열수는 없다!! 이 시간에 쫓겨나면 갈 곳이 없다.무조건 버티기 작전이다.

조용해졌다.마음을 쓸어내린다.심장이 콩알만해졌다.

무사히 아침이 밝았다.버스 시간은 아직 멀었지만 재빨리 짐을 싸서 터미널로 향한다.터미널 주변에

있는 식당에서 따끈한 죽으로 몸을 녹이고 싶었지만 사람들 눈에 띌까봐 그만두었다.더친행 버스는 8시에 출발한다.어서 차가 시동을 걸고 떠나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렸다.시간이 되어 가자 차에 탈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들고 차가 시동을 건다.

4시간 만에 옌징鹽井에 도착했다.차안에 탄 사람들이 줄담배를 피워대는 바람에 눈과 목이 따꼼거렸지만 긴장된 마음때문에 견딜만했다.옌징까지 오는 길은 완전 비포장이다.고개를 하나 넘었다.고개 마루에서 신설이 내린 산들이 한눈에 들어왔다.옌징은 티벳(시장자치구)과 운남성의 경계이다.그래서 운남성의 더친으로 가려면 이곳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40여분을 기다려 더친행 차를 타고 운남성 경계에 들어섰다.드디어 해냈다!! 주엽이와 남몰래 의미있는 눈길을 교환하며 악수를 했다.긴장감 대신에 무엇과도 바꿀 수없는 자유와 안도감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온 몸으로 퍼져나갔다.

전에 와봤던 비래사를 지나 더친에 있는 터미널에 들어섰다.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해방감에 날아갈 것만같다.

Tip..동티벳은 공식적인 허가를 받지 않고는 외국인이 여행을 할 수없는 지역이다.허가비는 배낭여행

자들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비싸서 대부분의 배낭여행자들은 허가없이 동티벳을 여행하고 있다.

공안에게 걸리면 벌금을 물고 다시 온 곳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한다.지금은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이곳을 여행하기 쉬워지고 있는듯하다.이후에 동티벳을 여행한 사람들에 따르면

숙소를 구하는데 큰 불편이 없었다고 한다.

라사에서 동티벳으로 가는 경우,운남성에서 손님을 태우고 라사까지 왔다가 중띠엔으로 돌아가는

지프들이 있어서 날짜와 가격만 흥정하면 교통편을 크게 걱정하지 않고 운남성으로 갈 수있고

터미널에는 중띠엔까지 가는 버스도 있으니 다각도로 방법을 찾아볼 수있다.

라사에서 퍼밋을 받고 공식적으로 동티벳을 여행할 수도 있지만 가격이 무척 비싸다.

운남성에서 동티벳을 거쳐 라사로 갈 경우에는 중띠엔에서 라사까지 가는 버스를 알아볼 수있다.

또 더친에서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다.물론 중띠엔에서 라사까지 가는 지프투어도 있으나

역시 가격이 만만치 않다.

육로여행이 버겁다면 라사와 중띠엔을 오가는 비행기를 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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