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산에서 띄우는 편지

2023. 4. 24. 08:46카테고리 없음

강원도 영월하면

태고의 비경을 간직한 푸른 동강이

눈앞에 아련해지고...

첩첩산중 깊은 계곡 망루에 홀로 선

단종의 애잔한 넋이

가슴 져미는 슬픔으로

채색되어 오는 이 가을....

 

그곳 영월엔

또 다른 빛으로 우리를 설레이게 하는

단풍산이 있어

어둠깃든 새벽 영동고속도로를

몽환속에 질주하고 있었다

 

늦 잠자다가  시간을 놓쳐버린 사람

회사일로 집안행사로 빠져 버린 회원님들의

빈좌석이 공간을 넉넉하게 해주고 있었는데

 

언땅에 새싹이 돋아나듯

새로 오신 선남선녀 일곱분이

말없이 그자리를 가득하게 해주고 있어서

솔향기는 늘

웃을수있는 멋진 족속인것 같아 미소짓는 아침....

 

그대 어디로 부터 오셨습니까...

그대 이름이 무엇입니까....

 

진정한 산꾼들에겐

예의바른 이세속의 율법도

남의 집안 경계를 넘어드는

무례함인지도 모르겠다....

 

일상에서 벗어나는 여행...

산행이란 온갖 속박으로 부터의 탈출을 소망하며

원초적 자유를 향유하고픔이 아닐까....

 

잔잔한 호수에 유유히 떠도는

작은 나뭇잎처럼

한줄기 바람속에

지친 심신을 놓아 주고 싶어 한다...

 

따뜻한 마음과 눈빛 하나만으로도

최상급 언어소통을 이루어 낼수있는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향기...

침묵하는 산의 향기에 동화되어

한없이 행복해 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친절한 금자(?)씨 때문에

어쩔수없는 쓴웃음을 짓기도 한다

 

오래전부터 무척이나 친한것 처럼 다가와서

진심으로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언니..어디 아프세요? 어머 퉁퉁부었넹...어디가 많이 아픈가봐..>

하면서

마치 소장수가 황소 엉뎅이를  탁탁치면서

<아..새끼 잘낳겠군..>하듯이

남의 허벅지를 주물럭거리는가 싶었는데

어느덧 자신의 허벅지를 만지면서..

<아유...난 이렇게 탱탱한데...ㅎㅎㅎ>

<......!>

<아..요즘에는 또 같이 다니시나봐 !!>

함께 산행에 참석한 남편을 보고 무엇이 그리 신기한지

계속 꼬치꼬치 케물어서 대답조차도 하기 힘들었는데

사실은 자신의 빛나는 부부금실을 간접적으로 자랑하는

친절한 금자씨 때문에 한참동안 숨넘어가는줄 알았었다

 

지나친 자랑도 죄악이 된다는것을

친절한 금자씨는 어찌 모르고 계셨을까...ㅎㅎㅎ

 

말이란 하면 할수록 거칠어지고

쏱아놓은 만큼  그마음이 공허해 진다는 것을 안다면

 

나자신이 소중한 만큼 남도 소중하기에

말을 아끼고 다듬는것은

산사를 지키는 스님의 벽면수행에 버금가는

고운 마음의 수련이 아닐가 여긴다

 

산을 탄다는것은

묵언의 기도 같은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을 갈고 닦는 끝없는 인내의 장이며

함께 동행하는 이에게 보내는 배려의 마음을

키워가는 것이며...

 

바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구름의 언어을 해득하는 과정이 아닐런지....

 

지는 해를 바라보며

끝없이 붉게 타오르는 낙엽의 장엄한 의식에

아름답게 침잠되어 가기를 바라면서....

 

산과 들판에 내려 앉은 가을의 정취에

흠뻑 빠져들었다가..

물밖으로 솟구쳐 오르는 돌고래의 비상처럼

가슴속에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옥빛 시냇물이

밝은 햇살아래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꼬불꼬불 굽이굽이 돌아가는

아슬아슬한  2차선도로를

한참동안을 숨가쁘게 돌아 올라와서

정차 한곳은

강원도 영월군 중동면 녹전 2리 솔고개 였다

 

솔고개.....

첫눈에 반했다고나 할까...

산으로 둘러 쌓인 마을 한복판..

아담한 공원으로 조성된 언덕위에

모셔진듯 서있는 소나무....

보는이들의 가슴에

깊이 각인될 만큼 기품있는 자태가 수려하다

 

그랬다

이곳은 상동읍을 지나 태백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조선국(朝鮮國) 단종(端宗) 임금이 승하 한후

태백산 산신령(山神靈)이 되어 쉬어가던 영혼을 노송(老松)들이

배웅했다는 전설(傳說)이 있고 고개위에 정이품송(正二品松)을 닮은

노송(老松)이 있어 지명(地名)을 솔고개(松峴洞)로 전해져 왔다고 한다

 

수령 280년이며 영월군에서 보호수로 정해 관리하고 있는데

이노송이 조선무약의 심볼 마크를 닮아서

이제약회사에서 매년 정성스럽게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17세에 죽임을 당하여 강물에 띄워지는

주검이 되었지만 삼족을 멸한다는 엄명에도 두아들을 데리고 한밤중에

단종을 자신들의 조상묘에 암장하고 자취를 감춘 호장 엄흥도의 충혼으로

1698년 숙종때 단종이 왕으로 복권되고 단종이 암장된곳을 찾아내어

왕릉을 정비하였다 하는데 구전에 의하면 그곳으로 부임해온 호장이

7명이나 목숨을 잃었다고 전하며 목숨을 걸고 피하지 않았던 호장에게

꿈에 나타나서 암장된 장소를 발견하였다하니 이곳 사람들의 단종에 대한

충절은 거대한 신앙으로 자리하고 있는듯하다

소나무 마저도 단종의 묘를 향하여 가지를 뻗어내고 있다 하는데...

사람이 어찌 그리할수있는가....라고 사람들은 말한다고 하네요

 

햇살은 화창한 봄날처럼 눈부시고

바람이 상쾌하여 가슴속에서 왠지 모를 설레임이 가득하였다

푸른 하늘 우뚝솟은 산정상에 병풍처럼 펼쳐진 바위암벽이

금강산의 일부분처럼 웅장하고 장쾌하여 보였는데...

<언제 오를까나....>

잡목 우거닌 평탄한 오름길 어디쯤엔가

버려진 빈집엔 옹기종기 부엌살림이 그대로 있고

벽이랑 지붕이 구멍이 숭숭 뚫여있었지만

따스한 햇살 아래 빛나서 흉가스럽지 않은

다정한 온기가 느껴지니 왠심사일까....ㅎㅎㅎ

 

10시에 출발해서 오르고 또 오르고...

이제는 그만인가 하였는데

내가 올라야 할 산의 정점은 능선을 따라

한참 멀리 달아나 있어서....

<아니..아니...어쩌자고 산이 저 만큼 가있는겨!! .....>

고래 고래 소리 지르고 싶었지롱 ~ ㅎㅎㅎ

 

산은 어느산이고 만만한 산은 없다

쉬었다가 가면서도 꽤가 날만큼 힘들다 싶었는데

선배님께서 오늘 함께 오신 여성 후배 두분을 모시고

왔던곳으로 하산하셨다하니 섭섭하기도 하였지만

안도의 한숨이 나오기도 하였다

처음 오셔서 고생하시면 무지 미안한 일인것 같아서요

 

수목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이면 이제 정상에 왔나보다

좋아했었는데 이번에도 아니어서

<이제 더이상 가지 않겠다>고 땅바닥에 주저 앉아서

생떼를 쓰기도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는지라

다시 걷기를 몇번인가 되풀이 하였을 즈음

병풍바위 절벽 아래 도착하기까지 3시간은 걸린것 같았다

 

바위 암벽을 끼고 오른쪽으로 난 좁은 비탈길은

바다의 작은 게들이 달리면 엄청 신날것 같은 길이었는데

미끄러지면 한없이 굴러 떨어져서

엉금엉금 기어올라 와야 할것 같아서 한껏 긴장하고

한참을 걸었는데 겨우 산 정상 하나에 오를수 있었다

진청색의 그림같은 조망은 역시 일품이었다

 

우째 산에 오르기전 부터

단풍산이라는 지명에 의구심이 들어서

소나무산이 아닐까 하면서

한바탕 깔깔대고 웃었는데

옴메나 정말로 단풍이 별로 없었다

<하하하>

맞아 소나무산이라야 맞는 지명인디..

월메나 단풍이 귀했으면

단풍산이라꼬 하였을까...ㅎㅎㅎ했는데

진짜로 그말이 틀린말이 아니었었다 ~ㅎ

 

정상에 도착하기도 전에 배꼽 시계가 요란하게

울린다고 할즈음 전망 좋은 넓은 공터에 둘러 앉아서

꿀맛같은 진수성찬의 시간이 이어졌었다

 

오래된 수목이 명을 다하여 쓰러져 편히 누운 모습에

깊은산의 원시림을 연상케하며 이곳 산행의 묘미를 즐길수 있었다

 

점심 후 오르고 내리고 산정상에는 표지석이 없었는데

한참후 만난 <매봉산 가는길>이정표를 보면서

단풍산 정상을 지나온것을 알게 되었다

 

대장님을 비롯한 혈기왕성한 젊은 산꾼들은 매봉산을 가지 못해

안달이었는데 아무리 바라 보아도 갔다가 되돌아 오거나

그길로 하산하는것이 미심쩍어서 모두가 함께 계곡으로 가자고 하고

2시간의 하산 작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단풍산

산정상에 간혹 보였던 단풍은 지난번 한바탕 내린 서리에 수분을

빼앗기고 모두가 오그라들어서 바삭하게 말라 버렸는데

양지 바른 계곡의 무풍지대의 단풍은 고운 햇살에 광합성이 좋아

예쁜 빛으로 곱게 물들어 있어서 여성들의 탄성을 자아내면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거의 한시간 동안의

하산길의 사투는 스릴 만점 고행이었다

제대로 꼿꼿하게 서있을 수 조차없이 가파른 경사에는

낙엽과 돌맹이 들이 흙위에 쌓여 있고

한발자욱씩 옮겨 놓을때 마다 미끄러워져 썰매를 타는듯 하였다

 

지난 첫추위에 땅이 얼어서 흙을 한뼘씩 이고 일어선 서리가

녹아 버리면서 땅이 푸석푸석 해졌으니

영락없는 흙썰매판이 되어 버린것이다

 

<옴메나....까꿍..까꿍... 돌 굴러 가유...!!>

뒤돌아 보는 순간 손바닥 만한 돌맹이 2개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굴러 오고 있었다

 

왠일이얌...

그래도 위기에 아주 냉정해지는 침착함으로

여유있게 물러 서기는 하였지만

간담이 서늘해지는 경험이었다

 

가파른 경사를 벗어나자 계곡의 푸른 수목 산행이 시작되고

희미하지만 옛길을 따라 걷는 여유로움도 즐기고 있었다

<강원랜드수련원>을 짓고 있는 산아래 계곡의 산길은

가을 들꽃이 지천을 이루고 있었는데

시냇가 바로 옆에 넓은 공터의 구멍이 뻥뻥 뚫린 빈집이

<솔향기산악회 수련원>으로 안성 맞춤이게 보기 좋았었다

솔향기님들이여 ~

그대들이 결정만 하시면

얼렁뚱땅 새집 한채 짓는 것은 무예 그리 어렵겠어요 ~

<ㅎㅎㅎㅎㅎㅎㅎㅎㅎ>

꿈이란 꾸라고 있는 것이고

꿈을 꾸어야 꿈이 이루어 진다꼬 했지요 ~ㅎ

 

얼음짱 처럼 차가운 물에 족욕을 마치니

산뜻한 마음이 날아 갈듯 가벼웠다

아침에 먹었던 순두부의 그말랑한 달큰함이 입속을 감도는데

순두부라면탕을 기대하면서 쪼로로 줄서기를 해보았지만

<단풍산>이 서릿발에 헛탕을 치고 <소나무산>으로 바뀌었듯이

대형가스버너의 고장으로 인하여 순두부라면탕도

서늘한 갈바람에 날아 간줄 알았더만

 

손바닥에 올려 놓아도 좋을 만큼 작은 버너로

해오름 전회장님이 끊여 내신 라면탕으로

멋들어진 하산주를 한잔씩 홀짝 이면서

그토록 오래도록 아껴 먹은 라면은 생전 처음이었고

그토록 맛있게 짭짭대며 먹은 라면도 솔향기창단 이후 처음이었다

 

아기 손가락 만한 작은 더덕이

술병속에서 목욕을 하면

천지가 더덕의 향기로 가득해진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

 

오늘 함께 했던 모든님들 가정에

웃음가득 행복가득 좋은일 가득하시길

기원드리면서 다음 산행에서 다시 뵙기를...

고맙습니다 ^^*

 

 

        2007년    10월 23일  까꿍이가 전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