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 中 - 복잡한가, 간단한가 |가공 식품 대 신선한 음식

2024. 10. 24. 11:00생활의지혜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
헬렌 니어링 | 공경희 역 | 디자인하우스 | 2001.09.20 | 284p

 

5. 복잡한가, 간단한가 |가공 식품 대 신선한 음식

 

감옥이나 병원에 있다면 먹는 것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우리는 먹을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신선한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가게에서 파는 반조리 제품을 사 먹을 수도 있다. 요즘 시장에서 파는 음식은 대개 무가치한 방식으로 뒤섞거나, 원재료의 중요한 성질이 빠져나간 것들이다. 이렇게 부자연스런(저온 살균하고, 훈제하고, 소금에 절이고, 설탕을 뿌리고, 색소를 입힌) 가짜 음식에는 천연의 요소가 남아 있지 않다. 이런 것들은 자연 친화적인 식품이 아니라, 반(反)자연적인 식품이다.

음식의 종류는 자연에서 찾을 수 있는 싱싱한 날것, 고온에 가열함으로써 생기가 빠져나간 조리된 음식, 제조되고 조리되어 죽고 독성이 든 음식,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독성에 찌든 이 세상에서 안전한 식습관이란 바로 부패하지 않는 음식을 피하는 것이다. "썩거나 부패하는 것만 먹으라. 그러나 썩기 전에 먹으라."존스 홉킨스 대학의 닥터 E. V. 맥컬럼(Dr. E. V. McCollum)

흰 빵, 흰 크래커, 백설탕, 백미, 가공한 치즈 같은 죽고 변성된 음식은 피하라. "우리 문명을 파괴하는 네 가지 요소는 정제한 설탕, 정제한 밀가루, 경화유, 가솔린 매연이다."닥터 칼 C. 왈(Dr. Carl C. Wahl)의 《기초 건강 지식 Essential Health knowledge》 (1966)

살균 처리나 훈증, 건조, 가스 분해, 균질, 색소 처리, 표백, 지방 제거, 씨를 제거한 음식을 대하거나, 어떤 처리가 되었는지 모르는 음식을 대할 때는 먹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내 친구인 우디 칼러는 절임과 방부 처리한 음식이 얼마나 큰 대가를 요구하는지에 대한 글을 썼다. "그것은 연구소, 마약 거래업자, 의사, 병원을 먹여 살리고 있다. 그러고도 남은 돈이 있다면 심리 치료사까지. 그리고 장의사에게도 돈을 치른다."우들랜드 칼러(Woodland Kahler)의 《욕망에의 갈망 The Cravings of Desire》 (1960)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저장 음식은 치아를 상하게 한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식습관은 ─ 다른 많은 것들과 함께 ─ 완전히 변하고 있다. 아직은 대기업이 공기와 햇빛, 잠, 휴식, 맑은 물을 독과점하지 않지만, 세계인이 먹는 음식은 많은 부분을 독과점하고 있다. 미국은 슈퍼마켓의 나라이다. 상점의 선반마다 방부 처리된 포장 음식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예전에는 식사 준비가 개인의 솜씨가 발휘되는 과정이었지만, 지금은 대량 생산의 형태로 변했다. 우리가 아는 수백 가구의 농가에서는 자급자족하면서 "먹을거리를 사지 말고 재배하라. 필요 없는 것을 사는 대신 가진 것을 이용하라."라고 말한다. 하지만 식품 광고는 아랑곳없이 주변에 난무한다 ─ 쉽게 준비하는 음식을 사세요. 여기 있는 조리한 제품은 깨끗하고, 잘라 놓았으며, 살균 소독했고, 색을 곱게 냈고, 조미료를 첨가했으며, 건조했습니다. J. 웬트워스 데이(J. Wentworth Day)의 보고에서처럼, "아침 식사용 음식들이 빻고, 갈고, 굽고, 말리고, 대충 자르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 뒤 대대적인 홍보 속에 팔리고 있다."《농작 모험 Farming Adventure》 (1937)

쇼핑 센터가 버섯 피듯 순식간에 늘어나면서, 간편식이 시장에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면, 고객이 구입하고 소비한 다음 다시 사러 온다면, 10센트를 들여서 1달러에 팔리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면……. 사업가는 큰 이익을 거두는 데만 정신을 팔 뿐 소비자의 건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큰 이익은 곧 대중에게 나쁜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일 수도 있다.

식품 업계에서는 신선한 재료에 화학 물질과 조리 과정, 포장을 더한다. 고도로 인위적인 과정을 거친 생명력 없는 음식이 시장에 나온다. 슈퍼마켓과 상점은 빨리 재고를 처분하는 일에만 관심을 쏟는다. 소비자의 건강을 파괴하는 데는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미각과 눈을 현혹한다. 끔찍한 예로 블루베리 와플을 들 수 있다. 상점에서 파는 블루베리 와플의 재료는 "설탕, 면실유, 소금, 이산화규소, 색소, 구산염, 변형된 콩 단백질, 인공 향미료, 블루베리 덩어리 등"이라고 포장지에 적혀 있다.

 

1969년 미국의 식품 업계는 9천만 파운드 이상의 조미료와 첨가물을 사용했다. 이 밖에 색깔과 감촉을 증진시키고 식품의 질을 보존하기 위해 8억 파운드 분량의 첨가물이 이용되었다.…… 미국 식품에는 몇 가지 발효제와 9가지 유화제, 30가지 농축제, 85가지 계면활성제, 7가지 응고 방지제, 28가지 산화 방지제, 열댓 가지 색소를 비롯해 30가지의 화학 방부제, 1천 1백여 가지의 조미료 재료를 포함해 2천 5백에서 3천 종류의 식품 첨가물이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신종 첨가물이 매년 소개된다.…… 미국 제과 업계는 연간 1천 6백만 파운드 이상 분량의 화학 물질을 사용하는데, 대개가 발효제, 방부제 등이다.…… 1969년 여름, 한 영국 과학자는 빵에 빵의 풍미를 내게 할 새로운 첨가물의 특허를 출원했다. 제임스 트래거(James Trager) 식품서 Foodbookㆍ1970

 

점점 다양한 화학 첨가물을 넣은 음식을 접하게 되는 것이 점점 두려워진다. 우리는 왜 현재 식품에 사용되는 화학 물질을 계속 소비해야 되는가? "사람들 속에서 살아야 한다 할지라도, 남들처럼 먹으면서 살 필요는 없다."헨리 반 다이크(Henry Van Dyke)의 《인생이라는 학교 The School of Life》 (1925)

하버드 공중 보건 대학의 마크 헥스테드(Mark Hegstead)는 좀 온건하게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식료품점의 30퍼센트가 문을 닫는다고 해도 해를 입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실 해는커녕 모두에게 훨씬 득이 될 것이다.

인스턴트 음식은 좋은 먹을거리가 될 수 없다. 이런 만화를 봤다. 뉴욕 센트럴 파크에 우주선이 내리고 거기서 작은 초록 인간들이 내린다. 대장은 "이 혹성이 지구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도록. 여기서는 숨을 쉬지도, 물을 마시지도, 인스턴트 식품을 먹지도 말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쯤에서 <뉴욕 타임즈>에 식품 관련 칼럼을 게재하는 저명 문필가 미미 셰라턴(Mimi Sheraton)이 강한 어조로 쓴 글을 인용하고 싶다. <다이버전 Diversion>이라는 잡지(1974년 2월 호)에 실은 기고문에서, 미미 셰라턴은 합성 가공 식품에 대해 이렇게 혹평했다.

 

양의 가죽을 쓴 채 슈퍼마켓과 레스토랑에서 팔리는 인스턴트 식품의 양이 증가하면서, 일반 가정에도 들어오고 있다. 슈퍼마켓의 통로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이 가짜 식품이 미국인의 미각을 얼마나 단단히 붙들고 있는지 확인하게 된다.…… 종이로 싸거나, 상자 포장하거나, 튜브에 넣거나, 깡통에 담거나, 얼리거나, 건조시키거나, 하나같이 인공 색소와 조미료가 첨가되어 있고 전혀 썩지 않을 정도의 방부제가 들어 있다.…… 냉동고에는 인스턴트 식품만 넘쳐난다. 끈적거리는 그레이비 소스를 넣고 찐 고기나, 영양과 맛이 형편없는 걸레 같은 야채, 가루를 물에 녹여 만든 뒤 다시 냉동한 감자, 엄마라면 전혀 그렇게 만들지 않을 '엄마 손' 파이 등이 냉동 식품으로 팔린다. 아무리 솜씨가 없는 어머니라도 그 따위 음식은 만들지 않을 것이다.…… 케이크는 너무 촉촉하고, 너무 달고, 종이 장미처럼 인위적이다.…… 깡통에 든 그레이비 소스는 기름기가 많고 꼭 개사료 같은 맛이 나며, 마늘과 양파, 소금으로 만들었다는 병에 든 샐러드 드레싱은 은식기 광택제 같은 맛이 난다.…… 구워 먹는 타트는 마치 봉투 붙이는 풀 맛이 나는 마닐라지 사이에 잼을 바른 것 같은 맛이 난다.……종잇장처럼 얇은 햄버거는…….

 

미미 셰라턴은 이런 식품을 '인스턴트 찌꺼기'에 비유하며, 이 같은 식품의 일부를 '음식 범죄'로 규정한다. 이보다 더 강력하고 분명한 설명이 있을 수 있을까? 셰라턴은 이렇게 설명을 잇는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이런 쓰레기 같은 음식을 먹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수백만 명의 어른들이다."

<에스콰이어 Esquire> 지(1974년 6월 호)에 실린 오늘날의 음식에 관한 맹렬한 비평을 살펴보자. 로이 앙드리 드 그루(Roy Andries de Groot)가 식품점에서 판매하는 프렌치 드레싱과 스테이크 소스에 대해 적은 글이다.

 

이 사악한 업계 전체가 글루타민산 소다와 당분을 과도하게 사용할 뿐 아니라, 소스에서는 오래 되어 썩기 직전인 달걀, 건초처럼 메마른 로즈마리, 5년쯤 선반에 놓여 있었던 것 같은 너트멕 가루, 하도 오래되어 까맣게 변한 개사철쑥(타라곤)을 섞어 만든 맛이 난다. 혀에 닿는 감촉은 끈적거리고, 화학 방부제의 냄새가 풍긴다. 유령집에 사는 늙은 쥐 냄새랄까.…… [소스의] 끔찍한 내용물을 맛보는 것은 무서운 경험이다. 곰팡이 같은 썩은 맛이다. 완전히 부패한 맛이랄까. 땀에 전 셔츠를 세탁물 바구니에 사흘쯤 던져둔 것 같은 그런 맛이 난다.

 

내 충고는 이렇다. 다른 사람들처럼 순간적으로 미각을 자극하는 것을 먹지 말도록. 또 TV나 라디오에 나오는 식품이나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광고하는 음식에 빠지지 말자. 정크 푸드를 먹는 사람은 온전한 생활 방식에서 벗어난 사람이고 맛의 유행을 좇는 사람이며, 흔히 우리가 말하는 '건강 식품에 중독된' 사람이 아니다. 맛의 유행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는 사람은 기계에서 나오는 식품이나 공장에서 제조하는 음식을 사 먹고, 원료비보다 포장비가 더 많이 드는 뻣뻣한 피자나 톱밥 같은 콘플레이크를 즐긴다. 또 스펀지 같은 빵을 즐긴다.

현재 대부분의 미국인이 건강에 좋지 않고 수상쩍은 음식인 '간편식'을 매일 대한다는 게 큰 문제다. 슈퍼마켓에 갔을 때, 조리된 감자나 도넛, 인스턴트 푸딩, 샐러드 드레싱, 소금 절임한 음식, 탄산 음료, 방부제, 피클, 튀긴 음식, 조미료, 흰 밀가루로 잔뜩 부풀린 빵, 백설탕, 사탕류는 구입하지 말자.

이제 가공과 보존 처리를 거치면서 재료 본연의 특성이 없어지지 않은, 자연적이고 간단한 음식을 선택하는 것이 기본 지식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과 전세계 사람 대부분은 비자연적인 음식에 길들여지고, 그런 음식을 남용한다.

문명인들이 레스토랑이나 비행기나 바 같은, 인공 조명 장치를 하고 커튼을 내려서 더러운 공기가 가득하고 소음이 요란한 곳에서 식사하는 이상한 식습관을 살펴보자. 오래 전에 도축해 냉동 보관한 고기며, 몇 년은 선반에 놓여 있던, 방부 처리한 뒤 깡통 포장한 재료를 불 위에서 몇 시간씩 조리해서, 이 썩은 음식에 갖가지 소스를 뿌려 댄다. 대단한 식사다!

상업적이고 복잡한 경제 구조 따위는 내던지고, 우리는 더 간단하고 건강에 좋고 쉬운 방식으로 먹도록 노력하자. '저장된 썩은 것'을 먹느냐 '밭에서 갓 따온 싱싱한 푸성귀'를 먹느냐의 선택권은 우리에게 있다.

 

품질이 완벽하고 신선하며, 간단히 준비되면서도 제 맛이 강하게 나는 소박한 음식을 풍족히 먹는 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 시빌 베드포드(Sybille Bedford) 예술가 겸 저술가의 요리책 The Artist's & Writer's Cook Bookㆍ1961

 

나는 음식과 요리를 최소한의 분모로 줄여서, 가장 간단하고 비용이 적게 드는 ─ 가장 쉽게 준비해서 내놓을 수 있는 ─ 식사를 만들고 싶다. 가장 간단하게 샐러드를 만들거나 야채를 다듬고 준비하는 법을 안다면, 여러분에게 그대로 말하겠다. 여러분이 더 간단한 방법을 안다면 그 방법대로 요리하고, 내게도 방법을 알려 주면 좋겠다. 더 복잡한 방식이 좋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하지만 내게 알려 줄 필요는 없다. 내가 그렇게 해 보지 않을 테니, 알려 줘 봤자 시간 낭비가 될 뿐이다. 내겐 천연 상태에 가장 가까운 음식이 최고의 음식이다. 하지만 리즈에 사는 노인처럼 천연 그대로를 고집하지는 않는다. 그 노인은 "채소나 곡물이 땅에서 자라는 노고를 아끼기 위해, 나는 씨앗을 먹겠다."라고 말했다나. 간단한 게 좋지만 그 정도는 지나치지 않을까.

몇 해 전, 남편과 나는 일본에 갔다. 꼭 필요한 경우에 쓸 일본어 구문집 한 권만 들고, 단둘이서 시골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후지야마 산이 보이는 하코네 호수 근처의 작은 식당에 들어갔다. 우리는 일본어 구문집을 참고해서 고기 요리를 손짓하다가, 다시 손을 내젓고는 "아뇨, 아니예요! 우린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먹고 싶어요."라고 말하면서 '들어가지 않은'이라는 일본어를 가리켰다. 영어 실력이 우리의 일본어 실력만큼이나 보잘것없는 웨이터는 절을 하고, 주문을 넣으려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한참 기다리는 사이, 주방과 홀 사이에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더니, 식당 주인이나 주방장쯤 되는 사람이 나와서 엉터리 영어로 "손님이 원하시는 음식을 드리고 싶은데, 도대체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고기 요리를 어떻게 만듭니까?"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이 요리책은 '들어가지 않는' 게 많은 책이다. 물론 고기나 생선, 닭고기류가 들어가지 않는다. 또 백설탕, 흰 밀가루, 베이킹소다와 파우더가 들어가지 않는다. 후추와 소금(다만 천일염은 예외이다), 달걀과 우유도 들어가지 않는다. 또 폭신한 빵과 파이, 페이스트리도 없다. 그럼 남는 게 뭐냐고 물을 것이다. 다 빼고 남는 걸로 음식을 만들기 어려울 거라고들 생각하리라.

 

 

이 선한 부인은, 언제나 풀만 먹는 들판의 동물들처럼 사람들을 먹이고 싶어한다. 매일의 허기가 되풀이된다면, 오늘도 내일도 사람들은 만족할 것이다. 그 이상의 미각은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여인 숙녀의 동반자 The Lady's Companionㆍ1851

 

무엇이 남는가? 온갖 과일과 야채, 건강에 좋은 곡물이 있다. 유익한 것이 너무 많아 고르기가 어려울 정도다. 지면만 충분하다면, 이 책에 내가 쓰려는 조리법의 두 배는 게재할 수 있다. 분명히 말하건대 우리는 집에서 굶지 않는다. 우리 부부는 잘 먹고, 심지어 과식하기도 한다.

1년 3백 65일 어떻게 똑같이 간단한 음식만 먹고 살겠느냐고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나라에 살았던 건장한 선조들 가운데는 그렇게 먹고 살았던 사람이 많다. 《옛 온타리오의 개척자들 Pioneers of Old Ontario》 (1923)의 저자인 W. L. 스미스(W. L. Smith)는 그 저작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북쪽 끝에 사는 백인들은 하루는 감자와 양배추를, 그 다음날은 양배추와 감자를 먹으며 지냈다."

또 다른 저자는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궁핍한 시기에, 서부 개척지에 사는 보통 주부들은 솜씨가 좋아서, 최소한의 재료로 맛있고 만족스러운 식사를 준비했다."에드워드 에브레트 데일(Edward Everett Dale)의 《서부 개척지의 음식 The Food of the Frontier》 (1947)

계절에 따라 음식이 다양할 수 있다. 겨울에는 단단하고 무거운 음식이 좋다. 근채류가 더 많이 나오고, 말린 콩, 감자, 무도 많은 시기다. 봄과 여름이면 더 가벼운 먹을거리가 좋겠다 ─ 아스파라거스, 식용 민들레, 완두콩, 토마토, 오이가 좋다. 그 계절에 갓 나온 것을 쓰는 게 가장 좋다. 스코틀랜드에는 이런 격언이 있다. "한 번에 한 가지 요리를 먹는 사람에겐 의사가 필요 없다." 한 번에 제철 식품으로 한 가지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도 좋은 식습관이다.

남편 스코트로부터 친구인 존 홈즈 목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존 홈즈는 뉴욕과 보스턴에서 활동하는 목회자로, 어느 날 멋진 호텔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면서 노동자 신문인 <데일리 워커 Daily Worker> 지의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 2월인데 딸기와 크림이 나왔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인 사람 앞에서 제철 식품이 아닌 희귀한 것을 먹는 장면을 목격당하자 당황한 홈즈는 기자에게 먹어 보라고 권했다. 그랬더니 기자는 무뚝뚝한 태도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닙니다. 곧 자두를 먹을 텐데, 공연히 입맛만 버릴 수야 없지요."

<데일리 워커>와 프롤레타리아 얘기를 하다 보니, 이런 말을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이 책이 마치 모든 사람에게 먹을 것이 풍부해서 우린 가장 영양가 높은 것으로 고르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읽힐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에는 기아 상태에 있거나 그 직전 상태에 처한 사람이 수백만 명이나 있으며, 그들은 빈속을 채울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먹으리란 것을 나는 잘 안다. 누가 그들에게 에밀리 디킨슨이 어느 시에 쓴 것처럼 "음식이 굶주린 사람에게 의미하는 것처럼 중차대한"이라는 냉소적인 형용사를 사용할 수 있을까.

소박하게 먹는다고 해서 반드시 단조로운 식단을 구성할 필요는 없다. 매일 매끼 다양하게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음식을 먹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마음에 드는 것을 찾으면 계속 그것을 고수하자. 인생이나 요리에서 다양성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다양한 음식이 있으면 과식하게 된다. 이것저것 손대다가 다시 처음 것으로 돌아오고, 처음부터 다시 먹기 시작해서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기 십상이다. 제대로 씹지 않고 그냥 목구멍으로 넘겨 버리게 되고. 먹을 때처럼 요리할 때도 가짓수가 줄어들면 그것에 집중하게 되고 그것을 높이 평가하게 된다.

 

단순하라. 단순하게 하라. 하루에 세 끼를 먹지 말고 필요하다면 한 끼만 먹자. 수백 가지 요리 대신 다섯 가지만 먹자. 다른 것도 그렇게 줄이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월든 Waldenㆍ1854

 

음식은, 선택과 준비와 대접을 간단히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기 집의 텃밭에서 간단히 생산할 수도 있다. 야채와 과일만 먹는다면, 작은 땅에서 별다른 비용이나 노고 없이도 먹을거리를 생산할 수 있다. 가을에는 텃밭에 건초나 해초, 낙엽으로 두툼한 짚을 만들어 깐다. 혹은 동물의 거름을 준다. 짚을 겨우내 땅에 깔아 둔다. 이른 봄, 그 위에 퇴비를 덮고 땅을 판다. 씨를 뿌리고 가꾸어 주면, 시간이 흐르면서 야채가 잘 익는다. 살충제나 화학 비료를 쓰지 말도록. 여름이 되면 그날 필요한 재료를 밭에서 딴다. 아무런 조리 과정을 거치지 말고 야채를 싱싱한 그대로 먹는다. 텃밭에서 따서 곧 식탁에 올리고, 조리를 해야 한다면 10분 이상 가열하지 않는다.

 

저절로 자라 통째 먹을 수 있는 먹을거리는, 이국적이고 맛이 풍부한 그 어떤 것보다 ─ 온갖 양념을 해서 교묘하게 맛을 변조한 음식보다 ─ 입에 맞고 생명력을 준다. H. J. 매싱엄(H. J. Massingham) 땅의 이 같은 계획 This Plot of Earthㆍ1944

 

1824년에 발간된 어느 책에 요리의 의의가 잘 나와 있다. "1. 유익을 극대화하고 그것이 지닌 영양학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음식물을 준비한다. 2. 이것을 낭비 없이 가장 경제적인 방식으로 조리한다. 3. 가장 입맛에 맞으면서 건강에도 좋도록 조리한다."토머스 쿠퍼(Thomas Cooper)의 《가정 요리의 실질적인 시스템 A Practical System of Domestic Cookery》 (1824)

나는 여기에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싶다. 4. 요리하는 소란을 줄이고 최소한으로 먹는다. 5. 집에서 기른 것을 거두어 먹는 생활 양식을 조성한다. 먹을거리가 집에서 나면, 운반 과정이 없어도 되고 따라서 중간 상인의 이익과 과도한 생산비를 덜게 되며, 즉석에서 신선한 것을 먹을 수 있다.

단순한 먹을거리(과일, 견과, 야채). 간단한(유기농법) 재배 방식. 간단한 준비(껍질을 벗기거나 자르지 않는). 간단한 조리(살짝 볶은 후 끓이거나, 뜨거운 물에 넣어 껍질을 벗기기, 혹은 찌기나 굽기). 간단한 장식(어린 잎을 다져서. 소스나 그레이비는 뿌리지 않고). 간단한 차림(냄비째 스토브에서 식탁으로. 식사 내내 각자 나무 사발 하나면 충분). 아니면 더 좋은 것은 날것으로 먹는 것이다. 선 채로 나무에서 따 먹지 않는 바에야, 그보다 간단한 게 어디 있을까?

 

여기, 이곳에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먹고 산다네.

진수성찬은 아닐지라도, 이 정도면 나는 만족스러워.

콩이든 맥아즙이든 사탕무든

뭐든 달게 느껴지지.

다른 이의 노고를 먹지 않고

우리가 공들인 것을 먹고 사니까. 로버트 헤릭(Robert Herrick) 완벽한 풍자시 Epigram Completeㆍ1670

출처 : 책속에 감춰진 보물을 찾아서
글쓴이 : 독학자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