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flowers

2024. 10. 20. 10:28팝아티스트

데뷔/결성: 1990년

활동/시기: 1990년대

멤 버: Jakob Dylan, Rami Jaffee, Barrie Maguire, Tobi Miller, Michael Ward, Peter Yanowitz, Greg Richling, Mario Calire


"아버지? 이젠 극복했어!"

사상 초유의 관심을 끌어 모았던 미국 대선은 결국 부시의 당선으로 끝났다. 미 역사상 두 번째 부자(父子) 대통령이라는 신기원도 창출했다. 선거기간 내내 부시 부자의 다정한 모습은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과연 이를 바라보는 딜런 부자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아버지 밥은 가까이 다가가려 애쓰지만, 아들 제이콥은 아버지를 잊고만 싶다. 전설의 그늘에서 탈출하려는 제이콥 딜런의 가족투쟁 (?) 다큐멘터리!

냇 킹 콜과 나탈리 콜, 팻 분과 데비 분, 존 레논과 줄리안 레논, 전위 뮤지션 프랭크 자파와 드위질 자파. 모두 팝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거물 아버지와 그 든든한 배경을 밑천 삼아 자리잡은 자식의 관계다. 한마디로 보기 좋은 부자 부녀들이다.

핏줄로 맺어진 인연은 이처럼 축복과 화제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한번 어긋나면 돌이키기 힘든 것도 혈연관계라고 할 수 있다. '살아있는 전설'로 추앙 받는 밥 딜런과 월 플라워스의 리더 제이콥 딜런(Jakob Dylan)의 관계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 물론 제프 버클리도 1960년대 최고의 록 가수인 아버지 팀 버클리와 연관되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러나 제프 버클리는 인간적인 면에서가 아닌 음악에 있어서의 동질성에 대한 반발이었다.

이와 달리 제이콥은 음악과 가정 등 모든 삶 속에서 아버지와의 끈을 맺으려 하지 않는다. 그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를 지칭할 때 'My father'나 'dad'가 아닌 'He, his, him'이라고 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가 아버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보자.

"나는 모든 책들에서 그의 각주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의 작업은 정말 대단하다. 학교의 모든 역사책에 실려있다. 그리고 그 책들 대부분은 그의 자식에 대한 이름도 언급한다. 하지만 나는 결코 그 책의 한 페이지에 실리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사람들은 항상 나에게 선입견을 갖고 있다. 나는 그저 참았다. 시간이 흐르면 그들은 나의 다른 사진들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진실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나는 정말 방어할, 문제를 해결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뼈가 있다. 또한 이 부분은 그의 가사 쓰기의 핵심을 이루기도 한다. 우리 동방예의지국에선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불효자라는 꼬리표에 '내 논 자식'이라는 어른들의 따끔한 질책도 쏟아진다. 하지만 제이콥이 비난을 감수하며 이런 스토리를 전개하는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자식의 심정

그는 1969년 12월 미국 뉴욕에서 아버지 밥 딜런과 어머니 사라 로운즈(Sara Lowndes) 사이에서 태어났다. 사라는 딜런이 그녀와 결혼했을 때의 기쁨을 명반 <Blonde on Blonde>로, 거기 수록된 노래 <Just like a woman> <I want you>로 담아냈던 인물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바쁜 일정 때문에 제이콥은 여러 도시를 전전하며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가까이 하기에 아버지는 너무 멀었고 급기야 그가 여덟 살이던 1977년에 양친은 이혼하고 말았다.

(무슨 이유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의 말에 따르면 아버지가 어머니를 거의 버리다시피 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당연히 아버지와 감정의 골은 깊어졌다. 사춘기도 우울하게 보냈다. 그가 지금도 공개석상에서 가장 영향 받은 음악이 클래시, 엘비스 코스텔로, 버즈 콕스로 대변되는 브리티시 펑크라고 애써 밝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어머니 집의 차고에서 기타와 앰프 하나와 함께 예민한 10대를 보냈다. 그의 음악이 루츠 록(roots rock)의 스타일을 취하고있지만 자세는 펑크의 D.I.Y 정신으로 무장되어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당연한 것 아닌가. 무도회장에서 춤 신청을 받지 못하고 벽만 쳐다봐야 하는 인기 없는 가련한 아가씨를 가리키는 월플라워스를 그룹명으로 선택한 것도 어쩜 일맥상통한다 (월플라워가 혹시 아버지한테 버림받은 어머니?!).

제이콥의 가투(家鬪)는 본격적인 음악의 길로 들어서면서 강도를 더했다. 월플라워스가 발표한 1992년 데뷔작 <Wallflowers>와 1996년의 메가히트 앨범 <Bringing Down The Horse>의 앨범 커버를 자세히 보면 어디에도 자신의 사진이나 이름은 없다. 그저 속지에서만 볼 수 있다. 상업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음반사의 보도자료에도 '밥 딜런의 아들이 결성한 밴드'라는 효력을 발휘할 만한 홍보문구는 단 한 줄도 목격되지 않았다. 아버지와 관계된 모든 것과 거리를 두고자 한 조치였다.

그럼 음악은 어떠한가. '포크 록의 영웅' 아버지의 영향권 내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월플라워스의 음악은 상기한대로 루츠 록이다. 미국의 전통 음악인 컨트리, 블루스, 포크 등에 젊은 그룹답게 모던 록의 감수성을 집어넣어 새롭게 다듬이질했다. 따라서 있는 그대로를 본다면 아버지가 아니라 차라리 더 밴드(The band), 브루스 스프링스틴 혹은 탐 페티 앤 더 핫브레이커스에 닿아있다. 그리고 동료 밴드인 제이혹스나 카운팅 크로우즈와 닮아있다. 대물림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속을 잘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위에 언급한 인물 가운데 더 밴드는 말할 것도 없고 모두가 밥 딜런과 함께 앨범을 냈거나 공연을 다녔던 딜런의 직계들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제이콥은 그룹활동 전 잠깐 아버지의 월드투어에 동행한 적도 있다. 그는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그 노래들은 나에게 집에 있는 가구처럼 느껴졌다." 정녕 피는 속일 수 없다. 비록 월플라워스의 사운드에서 밥 딜런의 체취를 느끼지 못해도(또는 아무리 제이콥이 거부해도) 그 기저에 흐르는 음악은 끈이 이어있는 것이다.

가사도 그렇다. 둘 다 시인이다. '20세기의 지성' 밥 딜런만큼 제이콥의 세계도 철학적이고 은유적이다. 다만 아버지가 태양이라면 그는 달이다. 내적 공간의 깊이와 갈등을 파고든다. 그리하여 암울하지만 희망은 존재한다. 세계적으로 6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루츠 록 트렌드를 초래했던 2집의 수록곡 '6th avenue heartache'의 노랫말을 보자.

'그 거리를 걸어 집으로 가는데... 지하철의 수증기는 달빛처럼 내 옆에 있던 꿈속의 실루엣 같고...나처럼 그저 지나갈 뿐인 운성에 손가락을 걸어.(행운을 빈다)'

이 곡을 전후한 'one headlight'과 'The difference'의 연속된 히트와 1998년 그래미상 수상으로 제이콥과 월플라워스는 밥 딜런의 우산아래서 확실히 벗어났다. 그래서 성공한 이후에는 밥 딜런의 자식이 아닌 월플라워스의 프론트 맨 제이콥으로 더 많이 불려졌다. 심지어 밥 딜런을 잘 모르는 신세대들은 제이콥의 아버지로 밥 딜런을 떠올리기도 한다.

4년 만에 발표한 월플라워스의 신보 <Breach>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이제 제이콥의 지향은 '음악의 자유''에 있다. 루츠의 열기가 식은 현시점에서 전작만큼의 돌풍을 기대하는 것은 어쩜 과욕일 것이다. 하지만 앨범은 그 만큼의 화려한 빛을 발한다. 아니 그 이상으로 다가온다. 밴드의 모습을 맘껏 드러낸 재킷부터 이전과는 다른 위풍당당함이 엿보인다.

#신보로는 부친 아닌 음악추세의 굴레를 넘는다

앨범 프로듀서는 피오나 애플과 메이시 그레이와의 작업으로 명성을 얻은 앤드루 슬레이터(Andrew Slater)가 맡았으며 전작보다 사운드의 질감이 부드럽고 세련되어졌다. 기타리스트 마이클 워드(Michael Ward)와 키보드주자 래미 제피(Rami Jaffe)가 연출해내는 강한 흡인력의 중독성 멜로디가 더욱 부각되었으며 베이스 그렉 리칠링(Greg Richling)와 드럼 마리오 캘리어(Mario Calire)도 능란하게 리듬을 꾸려낸다.

확실히 그룹의 연주력과 곡 구성력이 진일보했다. 첫 싱글 'Sleepwalker'와 'Some flowers bloom dead'같은 곡들로 단박에 알 수 있다. 부드러운 점액질처럼 갖가지 루츠 음악의 갈래를 흡수, 듣는 사람의 가슴을 휘 젖는다. 하지만 커다란 장르의 부피가 밀도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안정감과 통일감을 부여했다. 제이콥의 목소리가 큰 역할을 했다. 그의 보컬은 이전처럼 깊이 침잠하여 그저 묵묵히 읊조리며 고뇌하지만 더욱 힘차고 세밀해졌다. 여운이 강하게 남는 곡 'Witness'나 'Mourning train'이 대표적이다.

이번에는 아버지의 음악적 영향도 드러내고있다. 극복의 결과, 화해의 징조 아닐까. 한 편의 시 낭송을 듣는 듯한 포크 곡 'Up from under'에서 그 가능성이 점쳐진다. 물론 펑크 사랑은 여전해 'Murder 101'에서는 우상 엘비스 코스텔로와 함께 호흡을 가다듬었다. "나는 이번 음반이 전작들보다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해온 작품 중 가장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였기 때문이다."

희망사항을 표하는 게 솔직하다. 2집이 플래티넘을 획득하며 승승장구할 때 동료 마이클 워드에게 "나는 더 이상 음반이 안 팔렸으면 좋겠다"며 투덜대던 모습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바로 아버지와의 뼈아픈 관계 때문에 성공을 부담스러워했던 그가 이제는 그 문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초연한 자세로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 밥 딜런은 이미 1997년 'USA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그의 업적이 자랑스럽다. 그는 아직 젊고 또 짧은 시간에 긴 길을 달려왔다."며 제이콥에 대한 애정을 공식화했다. 사실 오래 전부터 대견스런 아들의 콘서트를 보려고 먼발치에서 아들 몰래 관람을 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이제 미국인들은 백악관에 입성한 부시 부자의 감동에 이어 음악대권을 대물림하는 딜런 부자를 보고싶어한다. 그들 사이에 일기 시작한 화해의 기운은 신보 뒤의 큰 소식이다. 브라데인가 누군가가 속담집을 엮으면서 쓴 말이 언뜻 떠오른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선물을 할 때에는 부자가 함께 웃고, 아들이 아버지에게 선물을 할 때에는 둘이 다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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