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짜르트의 독살..새로운 범인.

2024. 5. 21. 10:50음악창고

음악창고

2012-08-15 00:14:57


 
모짜르트 독살, 새로운 범인


1791년12월5일오전0시55분에 모짜르트가 빈에서 사망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그 사인은 분명치 않다...모짜르트의 시체에는 발뒤꿈치부터 복부에 이르기까지 많은 종양이 있어서, 독물에 의한 죽음이라는 의혹을 불러일으켰으며, 모짜르트가 죽기 반년전에, 처 콘스탄체와 산보하다가 누군가가 자기에게 독을 먹게 했다고 얘기했다는 사실이 전해짐에 따라, 당시에는 모짜르트 독살설이 널리 퍼져 있었다.


그 범인으로 가장 먼저 지목된 것은 당시 빈의 궁정악장이었던 살리에리로, 그것은 살리에리가 모짜르트의 재능을 시기하여 범행을 했다는 것인데, 그후 살리에리가 만년에 정신이상이 되어 일시적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자신이 모짜르트를 독살했다고 얘기한 것이, 살리에리 범인설을 유력하게 했으나,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살리에리는 범인일 수 없다는 것이 현재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1983년에, 영국의 음악학자 프란시스 카는, 모짜르트를 독살한 것은 살리에리가 아니라 프란츠 호프데멜 이라는 새로운 범인설을 주장했다. 호프데멜은 당시 빈 최고재판소의 서기관이었는데, 이사람은 모짜르트의 장례식이 있던 1791년12월6일저녁 자택에서 사망했다. 그것도 그냥 사망한 것이 아니라, 아내인 막달레나의 얼굴이랑 신체에 상처를 낸후 자신도 목을 찔러 동반자살을 기도한 것이었다. 모짜르트의 장례식에서 돌아오던 친구에게 발견되어 아내인 막달레나는 생명을 건졌으나, 호프데멜은 이미 절명했다 한다. 이 사건 자체는 당시 빈에서 신문등에 보도되어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나, 이를 모짜르트의 죽음과 관련짓지는 않았다. 아니 그보다는 궁정이나 정부관계요로의 압력으로 일반사람들이 관련지어 생각하지 않도록 한 듯하다. 어쨌든, 동반자살의 원인이 아내 막달레나의 부정에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 막달레나의 상대는 누구였는가. 실은 그것이 모짜르트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나중에 베토벤도 막달레나로부터 자신을 위해 연주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모짜르트와 관계가 있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연주를 거절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모짜르트와 막달레나는 상당히 깊은 관계로, 동반자살 사건이 있을 때 막달레나는 이미 임신5개월이었는데, 그 아이는 모짜르트와의 사이에서 생긴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결벽증이 있던 호프데멜은 이것을 용서하지 못하고, 모짜르트에게 독을 먹여 죽게 한다음, 그의 죽음을 확인하고 자신들도 죽으려 했다는 것인데, 그가 사용한 독약이 아쿠아 토파나라는 것까지 추정되고 있다. 아쿠아 토파나는, 17세기 중엽에 시칠리아출신인 두사람의 모녀에 의해 발명된 것인데, 문제가 되었던 것은 1659년의 로마에서이며, 당시 자신의 남편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아내들이 남편을 죽이는데 이 약을 사용, 상당수의 남성이 죽었다는 것이 기록에 남아있다. 이 독약은 먹으면 바로 죽는게 아니라 몇 개월간 서서히 작용하여 죽음에 이르는 것이었으며, 18세기에도 암살용으로 자주 이용되었다고 한다. 모짜르트가 '누군가가 내게 독약을 먹였다' 고 말한 이후 약 6개월뒤에 사망한 것도 이 독약에 의한 살인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면, 왜 이런 사실들이 알려지지 않았는가. 물론, 천재음악가 모짜르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동시에 호프데멜도 공직에 있었던 사람이었고, 막달레나는 황제, 황후를 비롯하여 궁정관계자들의 비호를 받고 있었으므로, 소문을 막으려는 공작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이 상상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콘스탄체는 그후에도 아무런 언급을 않고 있으나, 실은 콘스탄체도 당시 모짜르트의 제자였던 쥐스마이어와 내연의 관계에 있었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모짜르트가 죽은해에 태어난 4남은 십중팔구 쥐스마이어의 아들이라고 추측된다. 이 아들은, 1791년7월26일에 태어났으나, 모짜르트가 전년도 9월22일부터 11월10일까지 신황제 레오폴트2세의 대관식이 있던 프랑크푸르트에 있었던 것만 보아도, 모짜르트의 아들일 확률은 적다. 모짜르트는 이러한 쥐스마이어와 콘스탄체의 관계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막달레나에게 마음이 갔었는지도 모르겠다. 최후의 모짜르트는 파아노 제자가 둘밖에 없었는데, 일설에 의하면, 어지간히 마음에 드는 여성이 아니면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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