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아티스트
Thelonious Monk
Lucy Cheong
2024. 10. 17. 16:52
비밥 시대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셀로니어스 몽크(이하 몽크)의 연주는 독특하다. 세련됨하고는 거리가 먼 그의 전위(?)적인 건반 터치는 분위기를 돋우는 감상용 음악과 차원을 달리하며 '피아노 연주 새로운 위상'을 제시했다. 그는 재즈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듣고 연주해봐야 하는 우울한 재즈 스탠다드의 대 명사 'Round midnight'(1944)의 작곡자이기도 하다. 그의 연주는 투박하고 거칠다. 물 흐르는 듯한 유려하고 기분 좋은 선율과는 한참 떨어진 그의 피아노 주법은 언뜻 들어서 '엉터리'니 '개념 없니'하는 식의 비난을 퍼붓기 십상이다. 비드와 디지가 40년대 소개한 그 전위적이고 난해하다고 소문난 비밥이지만, 몽크가 제시한 그 전위성엔 비할 바가 못된다. 그만큼 그의 음악 세계는 비밥에서도 변방에 위치했다. 그의 연주는 확실히 청중들에게 인내심을 요구한다. 그의 연주엔 자지러질 만한 고난이의 테크닉으로 점철된 연주가 아닌, 자기 나름의 공식에 기반해 한가지 연주 주제를 다양한 리듬 패턴과 화성으로 조합하며 펼쳐내는 즉흥연주의 새로운 묘미를 제시했다. 버드나 디지가 선보였던 화려한 기교와 초스피드로 무장한 비밥 연주에 흥분했던 청중들은 몽크의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선 '절제와 기다림'을 필요로 했다. 난수표처럼 얽힌 그의 연주는 얼른 들어서 감이 오지 않지만, 씹을수록 맛이 우러나는 그의 음악성은 비밥의 또 다른 표상이었다. 이런 연유로 그는 1947년 데뷔했지만, 대중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몰라주던 당시 연주인들에게 까지 냉대를 당한다. 그가 재즈 계의 심상치 않은 대가로 인정받기 시작한 건 10 여 년이 지난 50년대 후반에 와 서였다. 1947년 30세 나이에 발표한 <Genius Of Modern Music Vol.1,2 >을 통해 자신의 스타일을 제시한 몽크는 향후 25년 동안 데뷔 때 보여준 스타일을 견지하며 재즈 계에서 '가장 독창적인 연주 패턴'을 지닌 인물들 중 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중절모가 인상적인 몽크는 1917년 태어나 5살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다. 뉴욕에서 보낸 유년시절동안, 20년대 할렘 스트라이드(Harlem Stride) 주법의 일인자 제임스 P. 존슨(James P. Johnson)의 음악을 늘 끼고 살며(제임스 P. Johnson은 그의 이웃이었다) 이를 통해 자신의 독특한 주법을 확립해간다. 1940-1943년 비밥의 고향 민턴스 플레이 하우스에 입성, 연주의 내공을 다짐과 동시에 1942년 쿠티 윌리엄스 오케스트라에 합류하며 피아니스트로 활동한다. 평소 작곡에 재능 있던 그는 “Epistropy"(1942), 그리고 ” 'Round midnight"(1944)를 밴드 멤버 자격으로 처음 녹음한다. 1945-54년까지 몽크에겐 '시련의 시간'이었다. 민턴스 플레이 하우스에서 알게 된 동료 버드와 디지와 함께 연주활동을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특이한 그의 피아노 주법에 다들 그를 '엉터리 피아니스트'로 여겼다. 비밥의 주역들에게까지 소위 '왕따'를 당한 그였지만 '끝내 이기리라'는 신념으로 블루노트와 프레스티지 레코드사를 통해 수많은 솔로 앨범을 발표했다. 화려한 프레이징 구사로 한층 주가를 올리고 있던 동료 버드 파웰(Bud Powell)과는 달리 그의 처음 10년은 알아주지 않는 고군분투 그 자체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버드와 그는 둘도 없는 친구였다.) 1955년 리버사이드와 계약하며 레코드사의 권유로 다른 음악인의 곡을 녹음하기로 합의, 듀크 엘링턴의 스탠다드를 자신의 스타일로 해석한 <Plays Duke Ellington>을 시작으로 차츰 좋은 반응을 얻기 시작, 여세를 몰아 그의 중기 걸작 <Brillant Corners>(1956)을 발표한다. 이듬해 색스폰 주자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과의 운명적인 만남은 몽크에게 '제2의 음악인생'을 열게 해준 계기였다. 고수가 고수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100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만남으로 기억되는 1957년-1961년까지 두 사람의 수많은 스튜디오 세션녹음을 통해 몽크의 음악성은 더 이상 '엉터리 연주'라는 오명을 지니지 않게 되었다. 함께 했던 존 콜트레인 역시 몽크와의 만남을 계기로 같은 시기 그의 극복 대상이었던 마일스 데이비스에 버금가는 대가로 성장한다.(존 콜트레인은 같은 시기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의 멤버이기도 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마일스-몽크-콜트레인의 관계이다. 1954년, 마일스 데이비스와 몽크와의 함께 한 녹음에서 마일스는 몽크의 그 괴기한(?) 연주 스타일에 넌더리를 내며 녹음도 끝나기 전에 자리를 뜨고 만다. 이 유명한 일화는 결국 둘의 간극을 매워줄 수 있는 인물이 바로 존 콜트레인 일 수 밖에 없었음을 시사해준다. 1962년 콜럼비아 레코드사와 계약하며 메이저로 진출, 1962-1968년 동안 자신의 쿼텟을 이끌며 재즈계의 유명인사로 군림하며 화려한 커리어를 일군다. 70년대 초엔 디지 길레스피가 조직한 프로젝트 재즈 자이언츠(Jazz Giants)의 멤버로도 활동하지만 1973년 갑작스러운 은퇴를 선언한다. 그리고 1982년 사망할 때까지 그는 철저히 은둔생활을 한다. 'Round midnight', '52nd street theme', 'Ruby my dear' 등 그가 작곡한 수많은 재즈 스탠다드들은 지금까지도 젊은 재즈뮤지션들의 단골 연주 레퍼토리이다. 현역으로 활동하는 동안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스럽게 지키며 이렇다할 슬럼프 없었던 올곧은 그의 음악여정은 후대에 갈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듯 하다. 데뷔 초기에는 비록 버드나 디지, 파웰이 누린 주목을 얻진 못했지만, '혁신과 실험'으로 대변되는 '비밥의 정신'에 그 만큼 부합되는 인물은 없을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