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아티스트

Television

Lucy Cheong 2024. 10. 17. 16:45

데뷔/결성: 1973년

활동/시기: 1970년대

멤 버: 탐 벌레인(Tom Verlaine), 리차드 헬(Richard Hell), 빌리 피카(Billy Ficca), 리차드 로이드(Richard Lloyd), 프레드 스미스(Fred Smith)


텔레비전은 펑크 록 역사에 있어서 '혁신적인 도전'을 일궈냈던 그룹. 이들의 음악은 실험적인 기운이 감싸안았던 일군(一群)의 포스트 펑크 밴드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고, 한 발 더 나아가 기타 록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그들은 기성 록에서 필연적으로 존재했던 블루스의 요소를 제거했다. 사운드는 날 것의 질감이 살아있었지만 아름답고 감상적인 솔로를 선보였고, 재즈에서나 볼 수 있었던 즉흥 연주를 도입하기도 했다. 특히 '새가 지저귀는 듯 하다'라고 표현되는 'Marquee moon'에서의 연주는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 했다.

혀를 내두르게 하는 곡예에 가까운 연주, 대곡이 난무하는 텔레비전의 음악적 성격에 펑크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어딘가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뉴욕 펑크의 커다란 자리를 차지했던 그룹 핫브레이커스(The Heartbreakers)의 베이시스트 리차드 헬(Richard Hell)이 거쳐갔고, 펑크의 영원한 안식처인 CBGB클럽에서 패티 스미스(Patti Smith), 라몬즈(The Ramones) 등과 함께 공연을 했고, 또한 선동적인 구호나 상투적인 로맨스에서 벗어나 개인의 허무주의적 세계관을 탐닉했던 예술적 취향을 보았을 때, 분명 이들은 70년대 중반 뉴욕 펑크씬의 가장 창조적인 위치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룹은 1973년 뉴욕에서 베이시스트 리차드 헬을 중심으로 기타리스트 탐 버레인(Tom Verlaine), 드러머 빌리 피카(Billy Ficca), 리듬 기타리스트 리차드 로이드(Richard Lloyd)의 4인조로 결성되었다. 리더인 탐 버레인은 한때 피앙새이기도 했던 패티 스미스의 여러 앨범에서 기타를 연주해 주었고, 함께 시집을 내기도 했던 인물.

이들은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와의 데모 작업 후, 리차드 헬이 전 뉴욕 돌스(New York Dolls)의 기타리스트 자니 선더스(Johnny Thunders)와 핫브레이커스를 결성하기 위해 팀을 떠나자 블론디(Blondie)출신의 베이시스트 프레드 스미스(Fred Smith)를 영입했다.

라인업이 안정된 후 <일렉트라(Elektra)>와 계약한 텔레비전은 77년, 첫 작품인 <Marquee Moon>을 내놓는다. 이들의 데뷔작은 'See no evil', 'Marquee moon'등의 숱한 명곡들을 남기며 최고의 격찬을 받았다. 수록곡인 'Foxhole' 'Prove it' 은 톱 40에 올랐지만, 뛰어난 완성도에 비해 좀 더 넓은 이목을 끌지는 못했다.

바로 다음해인 78년, 두 번째 작품 <Adventure>가 발표되고 앨범이 톱 텐 히트를 기록하는 좋은 성과를 보였지만, 그룹은 돌연 해체를 선언했다. 탐 버레인과 리차드 로이드의 뿌리 깊은 불화로 인한 결과였다. 이후 버레인과 로이드는 각자 솔로 활동을 시작하였고, 스미스는 다시 블론디의 일원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해서 텔레비전은 정식 데뷔 후 2년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흩어졌던 멤버들은 92년 글래스톤베리 섬머 페스티벌을 통해 화려한 재 결성 무대를 가졌다. 그리고 동시에 발표된 컴백 앨범 <Television>에는 후한 점수가 주어졌다. 밴드는 93년까지 짧은 활동만을 남기고 다시 해산했지만, 2001년 노이즈 팝 페스티벌 참가를 위해 또 한번의 결합을 이루어 아직까지도 그들의 열정이 식지 않았음을 알렸다.

텔레비전은 개러지(Garage) 록의 고물이 아닌 '아트(Art) 펑크의 고전'으로 기억된다. 그것은 아마도 20년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까지도 후배 뮤지션들의 존경을 받고있는 뉴욕 펑크의 전설들이 이루어낸 필연적인 결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