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아티스트
Scorpions - 3
Lucy Cheong
2024. 10. 13. 11:36
'독일 헤비메탈의 자존심' 스콜피온스는 특유의 서정적이고 고혹적인 멜로디로 많은 사랑을 받은 록 그룹이다. 보컬리스트 클라우스 마이네의 애절하고 스산한 창법을 주무기로 내세운 이들은 아시아권에서 폭발적인 지지를 획득했다. 무엇보다도 '선율'에 역점을 두는 이들의 드라마틱한 음악 세계는 동양인들의 감성을 뒤흔들기에 적합했다. 특히 1990년 이후 여섯 차례나 방문한 한국에서 이들의 인기는 절대적이었다. 강성(强性) 음악에 쉽사리 끌리지 않는 사람들조차 달콤하고 귀에 쏙쏙 감기는 이들의 선율에는 마음을 허락했다. 대부분의 국내 팬들은 엽기 가수 이재수가 불러 다시 히트한 'Still loving you'를 비롯해, 'Holiday', 'Always somewhere', 'Wind of change' 등을 열심히 듣고 따라 불렀다. 이 곡들은 라디오에서도 가장 많이 나오는 그룹의 인기 레퍼토리들이었다. 하지만 초, 중반기 스콜피온스의 음악 세계는 통념과는 분명히 선을 달리했다. 1969년 독일 하노버에서 기타리스트 루돌프 솅커의 주도 아래 칼 하인츠 폴머, 로타르 하임베르크, 볼프강 지오니를 라인업으로 결성된 그룹은 지미 헨드릭스가 일구었던 미국 사이키델릭의 숨결을 그대로 받아들여 약물 냄새로 찌든 록 음악을 추구했다. 15세의 천재 기타소년 마이클 셍커(루돌프의 동생)와 현재 우리가 접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음색을 갖고 있었던 클라우스 마이네의 영입은 사전정지작업이었다. '엑스타시'에 중독된 그룹의 사운드는 데뷔작 <Lonesome Crow>에 확연히 드러나 있다. 형의 테크닉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신기의 연주를 펼치던 마이클이 데뷔작 이후 브리티시 헤비메탈 그룹 UFO로 건너갔지만, 클래식과 하드 록에 모두 정통한 거물 기타리스트 울리히 로스가 그 자리를 채우면서 그들의 전반기는 만개했다. 지금도 이들의 열혈 마니아들은 고전음악의 장엄함과 하드 록의 파괴력을 모두 갖춘 로스의 기타가 넘실대던 이 때를 스콜피온스의 황금시대로 꼽는다. 사이키델릭 헤비메탈의 걸작인 <Fly To The Rainbow>, 초창기 마스터피스들인 <In Trance>, <Virgin Killer>, 헤비메탈 최고의 실황 공연 중 하나로 꼽히는 <Tokyo Tapes>가 모두 로스가 몸담고 있던 시기에 쏘아 올려진 작품들이다. 그러나 스콜피온스의 불꽃 튀는 격렬한 하드 록 캔버스는 로스가 탈퇴하며 완전히 채색을 달리했다. 사운드의 키를 쥐고 있던 그가 물러나자 이들의 목표는 메이저 음반 시장을 공략하는 것으로 수정되었다. 1979년 공개된 그룹의 월드와이드 히트 레코드 <Lovedrive>에서 변화의 면모는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로스의 바톤을 넘겨받은 마티야스 얍스는 새 프로젝트를 훌륭히 수행할 인물임이 판명되었다. 클라우스 마이네의 보컬 라인도 다분히 팝적인 컬러로 치장되었다. 'Always somewhere', 'Holiday' 등을 전면에 내건 음반은 대서양 건너 미국 시장까지 노크하며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이후 그룹은 철저히 팝 메탈 그룹으로의 변이과정을 밟아 나갔다. <Animal Magnetism>, <Blackout>, <Love At First Sting> 등이 그 증명서였다. 지금까지도 애청되는 'Zoo', 'No one like you', 'Rock you like a hurricane', 'Big city nights' 등은 대중 그룹으로 탈피한 그룹의 애티튜드를 대변했다. 앨범의 판매고는 기하급수적으로 비등했으며 그룹은 월드투어를 돌며 팬들의 뜨거운 열기와 접속했다. 1990년 공개된 <Crazy World>는 그룹의 위상을 세계 만방에 떨친 음반이었다. 록계 최고의 프로듀서중 하나인 키스 올센(Keith Olsen)을 맞아들여 공개된 LP는 어느 때보다도 세련된 연주와 보컬로 단숨에 팝과 록 팬들을 사로잡아 버렸다. 이 앨범은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판매된 스콜피온스의 음반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상업적인 성과치를 떠나더라도 이 음반을 기억해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붕괴된 베를린 장벽을 무대로 동서간의 화합, 나아가 지구촌의 하나됨을 노래하는 'Wind of change'는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음악이 선사할 수 있는 최고의 순간 중 하나였다. 이후 그룹은 <Face The Heat>, <Pure Instinct> 등을 공개하며 변함 없는 그들만의 소리바다를 그려 나갔다. 그 후 1999년엔 너무 식상하다는 주변의 비판을 수렴해 테크노 사운드를 실험한 <Eye Ⅱ Eye>를 공개했으나 반응은 그다지 신통치 못했다. 재미를 보지 못한 그룹은 그때부터 획기적인 아이디어보다는 성공이 보장된 안전지향 사운드로 나아갔다. 베를린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Moment Of Glory>와 예전의 히트곡들을 어쿠스틱으로 재편곡한 <Acoustica>는 그 산물이었다. 비록 대표곡 모음집이 가장 많은 록 그룹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고 현재 약간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스콜피온스의 음악 세계는 단순한 앨범 판매량이나 베스트 음반의 숫자로 재단할 수 있을 만큼 협소하지 않다. 단순히 히트곡 몇 곡만 듣고 이들을 이해했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들은 무려 20여장에 달하는 정규 디스코그래피를 보유한 중견 록 그룹이니까. |